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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등을 해결하라! (잠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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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다툼

어떤 두 사람이 버스 안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승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 소리를 높여 싸우니 거기 탄 승객들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습니까? 그 때 어느 중년의 승객이 참다못해 다음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던 승객은 버스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더니 다투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만든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참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렇게 교회가 다툼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서글픈 일이지요. 물론 반성도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가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는 모습이 좋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교회에 다툼이 생기면 그 동네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리고 전도의 문은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교회가 세상보다 특별히 더 많이 다투는 것도 아니요 똑같이 싸우더라도 교회에서 싸우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멱살 잡고 싸우는 것은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교회는 좀 달라야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그래도 안 다니는 우리보다는 좀 나아야 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다투더라도 교회에서 다투는 것이 더 커 보이고 꼴사납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기면 무엇보다도 교회가 시험에 들고, 성도들이 시험에 듭니다. 전도의 문도 닫히고 성도들의 마음문도 닫혀서 은혜도 못 받습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성화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교회 내의 갈등이 더 힘든 이유

종종 성도들 간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제게 찾아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든 짧게 다녔든 간에 누구나 한번쯤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기 때문에 목회자가 이런 상담을 자주 하게 됩니다. "아무개 집사와 불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누구누구만 만나면 정말 마음이 무겁고 힘이 듭니다." 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특별히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세상에서 겪는 어떤 갈등보다 힘듭니다.

첫째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마 5:44). 원수가 내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도 대라고 하십니다(39절). 그래서 교회만 가면 계속 원수 사랑과 용서에 대한 설교를 듣고 그 순간에는 "나도 그렇게 해야지"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이상이지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정작 그 사람을 만나면 또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고 힘이 들고 분노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용서해야지, 화해해야지 하다가도 정작 용서가 안 되고 화해가 안 된다는 것이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합니다.

둘째는, 보고 싶지 않아도 늘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싸우고 나면 안 보면 됩니다. 일부러 피해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이게 어렵습니다. 보고 싶던 안 보고 싶던 간에 주일만 되면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이런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들끼리 돈을 꾸어주었습니다. 사업자금으로 꽤 큰돈을 빌려준 것입니다. 여러분, 교인들끼리 돈 거래 하지 마세요.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이 집도 돈을 빌려주었는데 사업이 실패해서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두 사람이 교회에서 만나기만 하면 너무 불편한 것입니다. 돈 꿔준 사람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고, 꾼 사람도 너무 미안하고 힘듭니다. 그래서 꿔준 분 말씀이 이런 기도까지 했답니다. "저 사람 돈 갚고 안 갚고는 나중 문제고 다른 교회로 가게 해 주세요." 내가 교회 떠나기는 싫으니 이런 기도까지 나온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이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갔습니다. 이렇게 성도들끼리 갈등이 생기면 교회 갈 때마다 만나야지요, 피하자니 내가 교회를 안 나가던지, 교회를 떠나버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 안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우리가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갈등과 다툼이 생겼을 때 용서 외에는 방법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용서가 안 되고 화해가 안 되면 더 힘들어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갈등 해결방법이 용서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동안 이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되면 힘들어 했던 것이요,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복잡해지는 일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 나타난 갈등 해결방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다윗이라는 위대한 신앙인을 통해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겪는 갈등과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 네 가지가 있음을 찾아 볼 것입니다. 왜 갈등 해결방법이 네 가지냐? 첫째로, 갈등해결 방법이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대로 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오직 용서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용서가 안 될 때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더욱이 용서해도 문제가 해결 안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 오직 해결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보여준 대표적인 갈등해결 방법 네 가지를 상대방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잘 사용하면 거의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네 가지가 무엇인가?


갈등 해결방법 1 : 대면하기(Face)

갈등 해결의 첫 번째 방법은 '대면하기'입니다. 쉽게 말하면 맞붙어 싸우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정면으로 맞붙어 싸워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속은 정말 시원합니다. 기분 좋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위험한 방법입니다. 아무 때나 맞붙어 싸우려고 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갈등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보십시오.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로부터 시작해서 정치권들도, 심지어 유력한 두 대권주자까지도 무조건 붙어 싸우는 방법을 좋아합니다. 강하게 나가서 상대방을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정치권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정치란 라이벌끼리도 필요에 따라 서로 인정해 주고 협조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어디 정치권뿐이겠습니까? 이 사회 모두가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노사 간에도 강성투쟁으로 일관해서 문제가 커지고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갈등이 생기면 패거리를 딱 지어서 네 편이 이기냐, 내 편이 이기냐 하는 식입니다. 뭔가 크게 잘 못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방법이 무조건 나쁘냐? 아닙니다. 때에 따라 반드시 맞서 싸우지 않으면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싸워 이겨야 하는데 피해가거나 참거나 용서하면 아예 문제가 해결 안 됩니다. 그래서 아무 때나 맞붙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잘 살펴서 이런 때는 정면으로 맞붙어 이겨야 하겠구나 판단되면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고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다윗이 언제 이 방법을 썼습니까? 골리앗과 싸울 때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나오자 그 엄청난 키(여섯 규빗 한 뼘=최소한 270cm가 넘음)와 무기에 기가 질려 다윗의 세 형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은 감히 맞서 싸울 생각도 못하고 두려워 피합니다. 심지어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 전체와 하나님을 모욕하는데도 아무도 나설 생각을 못합니다. 겁나거든요. 나가면 틀림없이 죽을 것 같아 아예 맞서볼 생각도 못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보잘것없는 양치기 소년이 나선 것입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하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결과는 다 아시지요? 하나님이 도우시니 거인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 한 개에 쓰러지고 맙니다. 여기서 다윗의 세 형과 이스라엘 군대가 사용한 해결방법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볼 때 이 상황은 절대 피하거나 물러설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맞서 싸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피하지도 기다리지도 않고 즉시 골리앗에게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을 택한 것이고 결국 이겨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갈등이 생길 때 이 정면 돌파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선, 골리앗처럼 상대방이 분명히 하나님을 적대하는 편에 설 때입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고, 교회 공동체가 깨지고, 내 신앙이 완전히 무너질 것으로 판단되면 기다리거나 피하면 안 됩니다.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십시오. 하지만 이 정면 돌파 방법을 써야 할 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도저히 그냥 두어서는 안 될 때만 예외적으로 사용하십시오. 이 방법을 아무 때나, 너무 자주 사용하면 일이 커집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이 방법을 거의 안 씁니다만 교회 전체의 질서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일이 커지겠다 싶을 때만 사용합니다. 제가 문제를 정면 돌파로 싸워 해결하는 모습을 보신다면 바로 이런 때입니다.


갈등 해결방법 2 : 수용하기(Accept)

갈등 해결의 두 번째 방법은 '수용하기'입니다.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접어 두고 내 주장을 굽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방법만큼 좋은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받아들여 주고 "네가 옳다"라고 인정해 주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의 단점은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내 주장을 굽히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자존심도 많이 상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꼭 나중에 보면 수용을 잘 하는 사람이 이기더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흐른 후 보면 반드시 수용한 사람이 이깁니다. 왜냐? 사람들이 알고 상대방이 알기 때문입니다. "아, 저 사람이 못나서 지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양보하는 거로구나. 충분히 싸워 이길 수 있는데 받아주는 것이로구나." 하고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정하고 무엇보다 갈등을 일으킨 상대방이 알게 되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여서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따라와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방법입니다.

다윗이 언제 이 방법을 씁니까? 사울의 가족과 자손들을 받아들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들었는데도 다윗은 그 아들인 요나단, 어찌 보면 가장 큰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요나단을 친구로, 아니 그 이상의 생명보다 귀한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사울의 딸 미갈도 아내로 받아들입니다. 무엇보다 왕위 경쟁에서 이긴 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기 왕궁으로 불러 왕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해줍니다(삼하 9:10). 자칫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사울 집안사람들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수용해주니 사람들이 다윗을 인정하게 되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다윗의 진심을 알고 높이 세워주십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목회하면서 가급적 제 주장이나 의견보다 남의 말을 더 듣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받아들이면 언젠가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 것이라고 기대하며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도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하기 바랍니다. 절대 약한 방법이 아닙니다. 결코 내가 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히 높은 고단수의 방법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분들이 있습니다. 늘 남의 말은 다 무시하고 무조건 내 주장만 앞세우고 안 받아들여지면 화내고 붙어 싸우는 분들 말입니다. 이런 경우 무조건 수용하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받아들여줄 수록 그런 분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더 의기양양해져서 더 주장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갈등 해결방법 3 : 피하기(Flotation)

그래서 나온 방법이 세 번째, '피하기' 방법입니다. 무관심한 듯 상대방을 슬슬 피해가는 것입니다. 이 '피해가기'는 대면도 수용도 어려울 때 쓰는 방법으로 대면해서 맞붙어 싸우자니 문제가 커지겠고 그렇다고 수용하자니 더 어려워질 때 말입니다.

다윗은 이 방법을 사울을 피해 다닐 때 사용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광야로 피해갑니다. 굴에 숨었다가 황무지로 갔다가 하면서 이리저리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다닙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대면도 수용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면해서 싸우자니 사울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내가 해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삼상 24:6, 10). 그러니 대면해서 싸우거나 죽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울을 수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피하는 것입니다. 일단 안 만나려고 노력하고 만나서 죽일 기회가 있어도 사울의 겉옷 자락을 살짝 베어 사울에게 보여주거나 그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을 살짝 가져와 보여주는 정도로만 끝납니다. 이것은 약간의 경고를 하는 행위입니다. 겉옷 자락이나 물병과 창을 보여주면서 "저는 당신을 해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제 진심을 알아주세요."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대면해서 싸우면 상처도 입겠고 내 손에 피 묻히는 꼴이 되기에 피해야 합니다. 수용하자니 내가 죽게 생겼거나 도저히 해결이 안 되겠다 싶을 때 피하십시오. 참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안 보고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때때로 "나는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하고 진심을 보여주세요. 언젠가 그 사람의 태도가 바뀔 것입니다. 정 안 바뀌면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지 내 손으로 해결하려 들면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피해가는 방법이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모든 일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무조건 피해 다니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려고 하고 갈등이 너무 커져서 폭발할지 모르는 그 때만 잠시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주거나 정 안 되면 하나님이 직접 해결하실 것입니다. 부부싸움 하다가도 너무 심해져서 수습이 안 되면 잠시 피하십시오. 아주 잠깐만요. 어떤 분은 너무 화가 나면 잠깐 밖에 나가 한 바퀴 돌고 온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새 분노가 많이 사그라지고 이성을 되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누군가 싸우자고 달려들면 잠시 피해보십시오. 내가 분노가 치밀어 견딜 수 없으면 잠시 피해보십시오.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갈등 해결방법 4 : 기다리기(Waiting)

마지막 네 번째 갈등 해결방법은 세 번째와 비슷하지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들과 싸우지 않고 왕궁을 떠나 피난을 갑니다. 대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수용도 안 되니 세 번째 방법인 피해가는 방법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피해가지만 않고 기다리는 방법을 택합니다. 사무엘하 15:16에 보면 다윗이 왕궁을 떠날 때 후궁 열 명을 남겨 왕궁을 지키게 합니다.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기다리니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서 결국 다윗의 왕권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도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추궁하시자 다윗은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결국 하나님이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난 아이를 쳐서 죽이시지만 이 현실을 다윗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 기다립니다(삼하 12:23).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새로운 아들 솔로몬을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웅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고 있는데, 작고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앞에 나타나 위협하자 헤라클레스가 쳐서 쫓아냅니다. 그러자 그 괴물은 점점 더 커져서 결국은 길을 꽉 막을 정도가 됩니다. 그 괴물의 이름은 '다툼'입니다. 다툼은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땐 못 본 척하고 그냥 놔두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씩 줄어들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충청도 사람인 제 친구가 대구에서 목회를 하는데 저에게 이런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장로님들이 당회를 할 때마다 서로 큰소리를 치고 다투는 통에 너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회장인 자신이 개입해서 중재하고 해결하려 들었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더 꼬이고 다툼이 커지는 통에 결국은 자기가 비난 받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지역에서 오래 목회하신 선배 목사님이 이렇게 충고하더랍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싸울 때 말리지 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냥 놔두면 된다." 그래서 가만 놔둬 보았더니 정말 실컷 다투고 나서 서로 악수하더니 웃고 헤어지더랍니다. 당회 시간도 짧아지고요. 이 이야기에서 제가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갈등과 다툼을 그냥 놔두는 것도 좋은 해결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굉장히 힘든 일이긴 하지만 잘 참고 견디고 기다리면 의외로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지기까지 참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참아야 합니다. 잘 참고 견딜 때 거의 모든 문제와 갈등은 해결됩니다. 왜냐? 하나님이 대신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기다리는 법을 배우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네 가지 방법을 다윗처럼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가능하다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사람은 부족한 존재인지라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긴다면 그 갈등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우리에게 주시고, 나아가 어떤 방법으로 이 갈등을 해결할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정확한 판단력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갈등해결에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붕어 두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마리의 붕어가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이겼습니다. 죽은 붕어는 물 위로 떠올라 썩었고, 그 썩은 붕어 때문에 연못물도 썩었고, 결국 썩은 물을 먹고 싸움에서 이긴 붕어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갈등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누가 이기든 너도 나도 다 씻을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습니다. 싸움은 우리 모두를 죽게 만듭니다. 특히 내 은혜의 통로를 막아 은혜 못 받게 하고 내 영혼을 죽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면 제일 좋아하는 자는 마귀사탄입니다.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이 갈등을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할 때 우리 신앙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갈등을 해결하고 내 마음의 짐을 벗으면 저절로 은혜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한 후 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마 5:23~24). 성도들 간의 관계가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혹시 여러분 마음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해결하여 하나님께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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