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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자람 >넘침 (출 16: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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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의 지혜에 관하여>
에스키모 사람들이 늑대를 잡는 방법은 특이합니다.
사냥꾼들이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묻혀 얼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늑대가 서식하는 곳으로 가서 칼날은
바깥으로 나오게 한 채 땅바닥에 파묻습니다.
이내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몰려와 피묻은 칼날을 핥기 시작합니다.
추운 날씨에 사방이 얼어붙어 먹잇감을 구하지 못해
허기진 늑대는 피묻은 칼날을 점점 더 세게 핥게 됩니다.

알래스카의 툰드라 기후는 얼마나 추운지 늑대는 자기가 열심히
핥고 있는 것이 날카로운 칼날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혓바닥조차 얼어붙어 감각이 없다는 말이지요!
미친 듯이 칼날을 핥고 또 핥던 늑대는 자기 피를 먹고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결국 늑대는 자기 피를 핥다가 탈진 상태에 빠져 죽고 맙니다.
칼날에 묻은 약간의 피를 탐내나가 자기의 목숨을 삼키고 마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의 욕심이 꼭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약 1: 15절은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참 옳고도 옳은 진리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래스카의 늑대가 예리한 칼날에 묻은 피를 탐내다가 마침내 자기 피를
열심히 빨다가 죽고 마는 것처럼 우리의 욕심 때문에 우리가 죽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왜 짓습니까?
욕심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까?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아지려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욕심이 점점 쌓이고 또 쌓이다 보니까 우리는
아무리 가져도 아무리 높아져도 만족함을 모릅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것을 갖고 싶고,
이 자리에 올라가면 또 더 높은 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합니다.
밑 빠진 독에다가 물을 붓듯이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욕심을 따라 살다 보면 우리의 인생이 행복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릴수록 우리 마음은 더 복잡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더 염려가 많아집니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Baggage Claim에 가서 짐을 찾을 때가 있지요.
어떤 때에는 짐 찾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제 때에 짐이 도착하지 않아서 며칠이 지난 다음에서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 운반대에 내 짐이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경우 어떤 사람이 더 초조해집니까?
해외에 나가서 비싼 선물을 샀다든지, 뭔가 가방 안에
중요한 물건들이 많은 사람이 더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가방 안에 옷가지나 세면도구 몇 개만 달랑 있는 사람은 그리 초조해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못 찾으면 언젠가 찾게 되겠지, 그리 큰 걱정을 안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누가 더 걱정이 많습니까?
물론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 차, 비싼 차,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염려가 많습니다.   
어디에다가 차를 잠시 세워두려고 해도 영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가진 것이 많을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염려와 불안도 증가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지혜가 생길수록 사납게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저것 숱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줄여나갈 수 있을까, 여기에 참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지요.
너무 넘쳐 나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딱 알맞은 상태, 즉 중용(中庸)의 삶을 사는 것이 제일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지나침을 경계하기 위해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알맞은 상태,
그것이 참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기는 참 어렵습니다. 
또 개인마다 알맞은 정도가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정확히 알맞은 상태로 욕심을 조절해
나가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꼭 알맞은 상태에서 약간 모자라게 사는 것, 그것이 지혜가 아닐까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자는 것도, 모든 것이 조금 모자란 상태로
사는 것이 넘치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닐까요?
음식도 과식하는 것보다 약간 아쉬움이 남을 때 수저를 놓는 것이 건강에 더 좋습니다.
옷도 너무 사치하고 값비싼 명품만 찾다보면 오히려 욕심 때문에 참 기쁨이 없습니다.
잠자는 것도 최고로 좋은 집, 최고로 값비싼 침대 위에서 잔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조금 모자라게 사는 것이 넘치게 사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그렇다면, 약간 모자라게 사는 것보다 약간 넘치게 사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 
어차피 과도한 것은 문제가 되기에, 지나치게 넘치는 것도,
지나치게 모자라는 것도 다 문제가 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모자라게 사는 것보다 조금 더 넘쳐나 약간이라도
여유가 있는 삶이 약간 모자란 삶보다 더 낫지 않을까?
아마 이렇게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약간 여유가 있어서 느긋하게 사는 것보다 약간 모자라서
그것을 채우려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더 좋으리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조금 넘쳐 나서 안심하고 만족하는 삶보다는 조금 모자라서
그 빈 것을 채우려고 애쓰는 삶이 더 건설적이고 희망적이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여러분이나 저나 지나친 것, 과도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 할 것입니다.
다만 약간 넘치는 삶이 더 좋은가, 아니면 약간 모자라는 삶이
더 좋은 가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둘 다 일리가 있기에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약간 모자라는 것이 지나친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이런 관점에서 본문 말씀을 풀이해보고 싶습니다.

<일용할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의 비밀>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허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을 떠나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바로 앞에, 즉 출 15장에 보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 동안
물을 찾지 못해 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 마라의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출애굽과 마라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먹을 것이 떨어지니까 또 한 차례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퍼붓습니다.

출 16: 3을 보세요.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당장 굶어죽게 되었을 때 본성이 튀어나왔습니다.
애굽에서 압박을 받았으나 배곯지 않았던 것이
지금 자유가 있으나 광야에서 굶어죽게 된 것보다 더 낫다고 푸념합니다.

이렇게 양식 때문에 불신앙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라는
새고기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장장 40년 동안 먹여주셨습니다.

만나는 시내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었는데 벌레가 나무의 열매에
구멍을 뚫어 액체 즙을 만들어 내서 생기는 깟씨처럼 생긴 파편 조각이었습니다.
이것은 노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했는데 낮에 더우면 녹았다가
아침에 서늘해지면 다시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탄수화물과 당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에 달콤한 맛이 있어서
오늘날도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 빵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만나는 쉽게 부패할 뿐 아니라 개미들이 많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한편 메추라기는 아프리카나 지중해 쪽에서 시내 광야쪽으로 날아든 철새의 일종인데
오랜 시간 날아왔기에 지쳐 있기에 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새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기적의 선물이 아니라
자연 세계속에서 일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평범한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나와 메추라기가 왜 중요합니까?
저는 앞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초자연적 기적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저 자연속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나와 메추라기가 기적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일상적인 신앙생활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만큼이나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여주는 증거물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여러분, 16절 말씀을 다 같이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 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아침에 만나를 거두되 각자 먹을 분량만큼, 각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을 거두라고 했습니다.
욕심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한 집안에서 두 배, 세 배, 네 배 거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만나를 식구 수대로 꼭 알맞은 정량만
거두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만나를 거두다 보니 어떤 사람은 더 많이
거두는 것처럼 보였고, 또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두는 것처럼 보였습니다(17절).

그런데 18절 말씀을 보세요.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남들 보기에 더 많이 거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적게 거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막상 재보면 제 각기 먹을 만큼씩만 거두어들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욕심이 지나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19절에 보면 모세가 만나를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이렇게 당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나는 쉽게 상할 뿐 아니라 개미와 같은 벌레가 생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신앙 훈련이 더 중요했습니다.

일용할 양식, 아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요!
예수님도 주기도문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 11) 이렇게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내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6: 25-34).
내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일 먹을 것 입을 것을 허락하시라는 믿음의 부족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랬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서 잠잘까
모든 것이 염려투성일 수밖에 없는 광야 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일상성의 훈련'(discipline of dailyness)을 시키기 위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꼭 하루치만 거두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광야 한 가운데에서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은 내일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시기 위하여 한 사람 당 꼭 하루치의 양식만 거두도록 명하셨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루치의 만나를 거둔 사람들은 18절 말씀을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아침까지 남겨두었습니다.
욕심이 생긴 탓도 있지만 믿음도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 내일 아침에도 저 만나가 그 자리에 또 있을까? 오늘 두 배로 거두어 놓으면
내일 아침에 혹 만나가 없다할지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와 같이 욕심 반, 불신앙 반 때문에 그 다음 날 아침까지
만나를 감추어 두었더니 그 남겨둔 것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났습니다.
지나친 것은 아무 쓸모도 없이 소멸되고 만다는 진리이지요!
꼭 먹을 분량 이상의, 여분으로 남은 만나는, 21절 말씀을 보면
해가 뜨겁게 쪼이면 다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꼭 필요한 분량 이상의 지나친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사라지고야 말 것이라는 교훈이 아닐까요?

그런데 일용할 양식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규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곱째 날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쉬는 날이 아닙니까?
그 날에는 들판에 나가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구할 수 없는 날입니다.
그랬기에 22-26절을 보면 모세가 엿샛날에 안식일에
먹을 분량까지 두 배씩을 거두라고 했습니다.
즉, 평일에는 한 오멜씩의 먹거리를 거두던 것을
두 오멜씩을 거두어서 안식일을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모세의 지시를 따랐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4절 말씀을 보세요.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평일에는 그 다음날 아침까지 먹거리를 두었다가는 반드시 탈이 났습니다.
다 썩어버리거나 벌레가 생겨서 못 먹고 버려야 했는데, 엿샛날 거둔 것은 달랐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안식일 아침까지 간수해도
악취도 나지 않고 구더기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개중에 또 욕심 반 불신앙 반,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모세의 지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27절을 보세요.
"제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이 사람들은 아마도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엿샛날, 일곱째 안식일에 먹을 먹거리를 두 배로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욕심 때문에 안식일에도 또 먹거리를 찾아 나간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엿새 동안 광야에 그렇게 즐비하던 먹거리,
만나와 메추라기가 안식일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신 8: 2-3절은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하나님께서 떡의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라도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해서
거룩한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인간적인 염려와 욕심과 불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보십시오.

엿샛날에 두 배의 먹거리를 준비시키신 하나님께서
토요일에 두 배의 수입을 허락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본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주일에도 정말 열심히 일을 했는데 여러분이 얻은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당장 얻은 것처럼 보였어도 지나놓고 보니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마치 제 칠 안식일에 들판에 나가 먹거리를 구하던 사람들이
허탕을 쳤듯이 결국 빈 그물만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우리에게는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욕심 때문에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가져도 또 가져도, 올라가도 또 올라가도 영 만족이 없습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조금 모자란 듯이 사는 것이 더 좋습니다.
조금 더 넘치듯이 사는 것이 좋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지나친 식욕, 지나친 물욕, 지나친 명예욕, 도에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자기도 불행해지고 이웃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용할 양식 그 이상은, 욕심 때문에
그 이튿날까지 숨겨둔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기고
햇빛에 다 녹아 없어지듯이,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삽시다.
공중에 나는 까마귀 한 마리도 먹이시는 하나님,
들에 핀 이름 없는 백합꽃 한 송이도 화려하게 옷 입혀 주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까마귀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백합꽃보다도 훨씬 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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