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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꾸어주는 돈 (잠 19:17, 잠 1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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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꾸어주는 돈 (잠 19:17,  잠 11:24~25)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한참 인기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중국까지도 떠들썩한 드라마인데 그것은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돈錢자를 강하게 발음하여 쩐이라 표현하면서 사채 대부업의 세상을 파헤치는 드라마입니다. 재테크가 유행처럼 번져버린 이 시대에 돈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 온 국민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은 돈 전쟁입니다. 옛날에는 국가 간의 전쟁이 무기 경쟁이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강력한 무기를 가졌느냐에 따라 전쟁의 성패가 달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전쟁의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나라가 경제력을 더 많이 가졌느냐에 따라 세상 주도권이 바뀌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미국과 소련의 무기 경쟁으로 세상의 패권이 흘러갔지만 이제는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미국과 EU의 경제 대결로 세력의 우위가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이 중국의 경제 성장력에 촉각을 모으고 있습니다. 13억의 인구가 만들어 낼 세계경제의 영향력,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경제예측가들은 2050년도에는 세계 1위 경제 대국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5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운데 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경제가 발전하여 지금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11위였는데 브라질이 우리나라를 앞질렀습니다. 미국이 1위, 일본이 2위 3위는 독일 4위는 영국 5위는 프랑스 6위는 중국 7위는 이탈리아 8위는 캐나다 9위는 스페인 10위는 인도 11위가 브라질 그다음 한국 그리고 13위가 멕시코 14위가 러시아입니다.

브릭스 BRICS = 앞으로 세계경제를 흔들 4나라 브라질(B) 러시아(R) 인도(I) 중국(C) 네 나라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이들 나라는 개개인 GNP 수준은 한참 떨어집니다. 그러나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세계 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그 외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는 일찍부터 남의 나라를 식민통치 하면서 약소국의 자원을 착취하여 강대국이 된 나라들입니다. 그런 요소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최고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원도 없습니다. 인적 자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다 전쟁의 소용돌이로 아무런 소망이 없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50년만에 세계 12위에 올랐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세계선교의 사명을 맡은 우리나라를 도우신 하나님의 특별 은혜라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경제 성장에 비해 참으로 안타까운 것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 즉, 29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OECD가 발표한 ‘개발협력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도 한국의 대외 원조액은 7억5200만 달러였습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0.1% 수준이었습니다. 유엔이 권고한 기준인 0.7%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고 OECD 회원국 평균인 0.33%의 3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권인 나라가 어려운 국가와 국민을 돕는 일에는 이토록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무역규모 6000억 달러의 나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과거 하루 한 끼를 때우기 힘들었던 시절, 국제사회의 엄청난 지원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남을 도울 형편이 된 지금의 우리에게 대외 원조는 미덕이 아니라 의무이고 도리입니다.

국가만이 아닙니다. 우리 가정과 개인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 재정 원칙”이라는 책을 쓴 크래그 힐이란 사람이 성경을 연구해 보니 성경에 재정과 관련된 구절이 2084절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총 1189장이기에 거의 1장에 한번이상 재정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거의 절반 이상이 돈과 관련된 가르침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교훈, 부자의 바늘귀 비유, 달란트 비유, 등등 대부분의 가르침이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떤 재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경제생활과 별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앙생활을 잘하는지를 보려면 그 사람의 재정 관리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우리의 믿음을 들어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성숙은 가치관의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돈을 어디다 쓰느냐는 나의 가치관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십일조와 구제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것을 빼먹거나 드리지 않음을 성경은 ‘도적’이라고 명시했기에 강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떼먹고 도적질하면서 복을 받으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십일조는 당연한 성도의 기본 믿음이요, 의무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것이 구제입니다. 힘없는 자, 과부, 병든 자, 어린아이, 가난한 자에 대한 주님의 관심은 아주 특별합니다. 그러기에 그런 도움이 필요한자를 우리 옆에 두시고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 성도/ 우리는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1. 돈을 신처럼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음을 믿으십니까?
사실 여러분에게 있는 것 중에 이것은 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진 것은 전부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 생명이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우리의 부모를 통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내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니 내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크게 ‘아멘’으로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도 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 여러분의 자녀, 여러분의 재산...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요? 천만에요. 하나님이 건강 주셨고 하나님이 일할 수 있게 하셨고 하나님이 여러분 가정을 지켜 주셨기에 얻어진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세요.

신8:16~18을 보세요.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실 재물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돈이 갖고 있는 그 힘을 신적인 힘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돈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알고 엄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6:24을 보세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듯 재물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섬긴다는 것은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은 될 수 있으나 돈의 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돈에 종이 되어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나자면 안 나와도 돈이 만나자고 하면 얼른 나갑니다. 왜 주일에 예배를 안 드리고 가계의 문을 엽니까? 돈님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도 다 날라 갈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조류 인프렌자로 양계장을 운영하던 분들은 그 몇만 마리의 닭들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반대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참 잘 법니다. 개그맨 유재석씨는 매주 출연료가 4000만원이랍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프로 ‘무한도전’의 한주 출연료가 900만원이랍니다. 그뿐입니까? 세계적인 프로 축구선수는 한게임 당 1억씩 번다고 하기도 합니다. 힘이 빠집니까?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약속하시는 말씀을 보세요. 
역대하1장12절입니다. 
12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이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약속하십니다. 부와 재물/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만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번다”, “내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재물을 주신 분이 기뻐하시는 일에 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오직 탐심을 채우는 일입니다. 탐심, 욕심은 만족하거나 채워지지 않는 그릇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탐심은 한도 끝도 없어 그것을 채우려다가 인간의 삶은 파괴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그 일이 여러분에게도 귀하게 여겨지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가치공유입니다. 하나님의 가치가 내가치가 된다면 그것은 복을 누리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1) 영혼구원 사역입니다.
왜 그 일이 그토록 소중한 일일까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고 그러기에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실존함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 영혼이 영생함을 믿습니까?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영원함을 믿는다면 영혼구원처럼 소중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가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일을 위해 그 무겁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 복음을 전하는 것, 여러분의 가정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 그리고 여러분의 주변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 주님이 정말 소중히 여기고 기뻐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 일에 여러분의 정성과 돈을 쏟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제 후배 목사님의 모친 칠순 감사예배가 안산에서 있어서 잠깐 다녀왔습니다. 어머님의 칠순 잔치를 해드리는데 큰아들이 목사인데도 어머님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아들 목사가 사회를 보면서 예배를 인도하다가 목이 메여 사회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칠순이 되셨으나 구원을 받지 못한 어머니를 위해 감사예배를 드리는데 그 심정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를 믿으시라고, 복음을 한번이라도 들으시라고 엄청난 돈을 드려 잔치를 준비하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효도 선물은 영혼 구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해드려도, 아무리 좋은 집을 사드려도 이 땅에서 그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선교에 생명을 걸고 헌신하는 이유가 뭡니까? 왜 선교사역에 그토록 많은 돈을 씁니까? 그곳이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저 j국의 수십억의 인구를 구원하는 사역에 기초를 놓는 일이 신학교 사역입니다. 그 일이 여러분의 상급이 될 것이고 여기 최 목사의 상급이 될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은 주님의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사업가는 자기평생에 교회를 500개 세우는 것이 꿈이랍니다. 그래서 돈만 벌면 여기 저기 예배당 세우는 일에 생명을 걸고 있습니다. 저 옆에 있는 건물이 50억짜리라는데 경매가 4번 유찰이 되어 26억까지 떨어졌답니다. 내가 요즘 고민을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손에는 돈이 없으니 기도하고 두드려 볼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일평생 여러분의 이름으로 교회를 한번 세워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단순히 보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몸입니다. 핏값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워간다는 말은 개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교회 되도록 성장시키고 교회가 영혼 구원사역에 온전하게 쓰임 받도록 역할을 다하는 것도 세워가는 것입니다. 

3)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복 받고 홀로 살라고 복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누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철저하게 나누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의 살과 피까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일은 드림과 나눔입니다. 여기에 시간도 물질도 마음도 쏟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리아의 옥합을 깨트린 사건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왜 예수님이 그 옥합을 아끼지 않고 받으셨을까요? 주님은 그 옥합이 발 씻기는 용도로 쓰기에 아깝다고 생각지 않으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도 아깝다고 생각은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마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롯 유다가 마리아를 야단칠 때 가만두어라 저가 네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며 칭찬하셨습니다. 그 드림이 귀했기 때문입니다. 
마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베풀고 나누고 돕고 먹이고 했던 사람들에게 칭찬하실 때 그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여러분의 돈을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봉독한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은 가난한 자를 어떤 시각으로 봅니까?
왜 사람이 가난한 것일까요? 남들은 다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서 부요를 누리는데 왜 그 사람은 가난할까요?
 
첫째는 제도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체계는 경쟁체제입니다. 그래서 약육강식이 적용되고 무한 경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잠깐 한 눈 팔면 한순간에 날라 갑니다. 사업을 하다가도 잠깐 판단을 잘못하면 다 날라 갑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가난해 집니다. 그러기에 가난한 자는 국가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부한 자와 넉넉한 자의 몫입니다. 그것이 행복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둘째는 능력의 문제입니다.
일부 가난한 자는 선천적으로 능력이 없이 태어납니다. 육체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든지 정신적인 연약함이 있어서 가난한 경우입니다. 자신의 생계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의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마세요.

잠14:31을 보세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무능력한 자의 가난, 그것은 그 사람 탓이 아닙니다. 그것 또한 공동체가 끌어 않아야 합니다. 능력이 없다고 죽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 보호하고 더 도와주어야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리하셨습니다. 오히려 건강한자 보다는 약한 자, 병든 자 힘 없는 자를 더 귀하게 대하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셋째는 게으름과 허랑방탕하는 낭비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게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복주시는 기회의 문제입니다.
가난은 사라져야 하지만 가난한 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들을 우리 곁에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누리라고 가난한자를 우리 주변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가난한자는 귀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가난한자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을 누리라고 주신 하나님의 복의 통로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다시 보세요.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가난한 자를 돕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에게 꾸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꾸어줄 수 있습니까?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내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꾸어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꾸어준다면 하나님이 갚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 도와주어서 좋고 하나님이 갚아주셔서 좋고 꿩 먹고 알 먹고입니다.
그냥 갚겠습니까? 30배, 60배, 100배를 갚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구제헌금 얼마나 하셨는지 모르지만 그 헌금에 30배는 얼마고 60배는 얼마입니까? 또 100배를 갚아주신다면 얼마 입니까?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잠언11:24~25을 보세요.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흩어도 부자 되게 하십니다. 구제를 좋아하면 더 풍족하게 하시도 윤택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제 원리입니다.
꼭꼭 숨겨두고 저축하여 안 먹고 안 쓰다가 써보지도 못하고 가지 마세요. 아무리 재벌이라도, 아무리 백만장자라도 내가 못쓰면 내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15:10~11을 보세요.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권재선 목사님 가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신실하고 그토록 헌신적인 종을 왜 그리 빨리 데려가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사모님과 그의 자녀들입니다. 섬에서 목회했고 선교사로 고생했고 부목사로, 개척교회로 목사로 고생만 하였습니다.
한번 부요하게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넉넉해서 한번 마음껏 입고 써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이 세상 경험이나 기술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진 재산도 없습니다. 제가 물어 보았더니 장례 때 들어온 조의금이 유일한 재산이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이 구제 사역에 동참키로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기회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헌신이 한 가정을 살리고 천국일꾼을 양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헌금을 꾸어주는 것으로 받으신다 하셨습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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