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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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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 (눅12:13-21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세웠느냐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본문 첫 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형제사이의 상속문제를 가지고 와서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라고 청했습니다.

신 21:15-17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규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그러니까 당시 유산을 분배할 때 장자는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를 받을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혹 그 장자의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아내인 경우라 할지라도 이 규례는 반드시 지켜져야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나아와 문제해결을 부탁한 사람은 형제 중 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이 자기 몫의 두 배를 받자 거기서 불만이 생겼고 형만큼 유산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일어났지만 형은 자기의 요구를 들어줄 뜻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권위를 빌어서 자기의 뜻을 이루어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이나 동생 모두에게 있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이미 보신 것 같습니다. 형은 율법의 규정을 내세워 동생의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재물욕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동생은 율법을 무시하고라도 더 가지려는 재물욕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14절) 하시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기회에 사람들이 가져야 할 물질관이 어떤 것인지를 어떤 한 부자에 관한 비유말씀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본문 16절 하반 절에 보면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했다."고 비유를 들려줍습니다. 이미 부자인 사람이 예년에 비해 유달리 많은 수확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좋으면서도 잠시 걱정을 하며 17절절에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라고 걱정했습니다. 그리고는 18절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렇게 작정을 하자 마음이 정리가 되고 편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야, 아무개, 너 참 잘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이제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냐?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자." 하며 만족해하고 흐뭇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로 여기신다고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셨습니다.

본문 20-21절의 말씀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서의 부자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런 줄 알고 무엇이 그의 어리석음인지를 분명히 교훈을 삼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입니다. 여기서 "어리석다."고 한 것은 단순히 어리석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다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리석다.'는 것이며, 이는 곧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53:1)."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근본적으로 부패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부자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부자처럼 어리석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하고 자신은 부자자라고 착각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부르실 때 가장 어리석은 주인공이 된 부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리석은 부자의 잘못은?

1)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우선 본문 17-19절에서 그가 스스로에게 한 말을 보면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한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그의 말이 자기 자신의 재물과 소유와 평안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관심으로 꽉 차 있음을 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나 계획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곳간도 부족한데 남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더 큰 곳간, 더 많은 곳간을 지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대부호 ‘캐리’씨에게는 ‘죠지’와 ‘윌리암’이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으며 장래가 크게 촉망되어 가문의 자랑이 되었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형 '죠지'는 돈도 많이 벌었고 국회의원까지 되어 부자로서 정치가로도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출세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모두 마다하고 난데없이 인도의 선교사로 지망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놀라서 강력하게 만류했고, 심지어 영국 교회 교단에서도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주님이 친히 구원하신다."며 '예정'의 교리를 앞세워 윌리암의 선교사 지망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으며, 옥스퍼드 대학의 친구들은 '굴러 들어온 행운과 명예를 저버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비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대영 백과사전에 두 사람을 나란히 소개하고 있는데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무려 1페이지 반을 할애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나 죠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윌리엄 케리의 형'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2) 향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자로 살았습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기로 생각을 정리합니다. 즉 그에게서는 재물을 많이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밖에는 다른 관심사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하는 천박한 사고가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의 풍족함을 곧 평안과 행복의 보증으로 여기는 사고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1977년도는 미국의 최대 부호였던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던 해입니다. 그들은 석유의 제왕으로 불리었던 '폴 게티'라는 사람과 한 사람은 '하워드 휴즈'였습니다.

'하워드 휴즈'는 20억불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기 전 10년간은 가장 고독한 생활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었던 그가 죽음의 원인이 어이없게도 영양실조였습니다. 정신적인 고독과 공허감을 달래려고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로 얻은 병 때문에 외롭게 몸져누웠을 때 그의 주위에는 그의 재산을 탐하고 노리는 자들이 몰려들었고 그 결과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어 홀로 유폐된 생활 속에 지내다 보니 결국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된 것이었습니다.

'석유의 재왕'이라고 불리웠던 '폴 게티'는 어떤 생활을 하였는가하면 그는 무려 30-40억불의 재산이 있었지만 일생동안 다섯 번 결혼했다가 다섯 번 다 이혼했으며 59년에는 그의 막내아들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73년에는 장남이 과음으로 모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당대 세계 최대의 부호였던 '하워드 휴즈'와 '폴게티'의 죽음이 주는 교훈은 ‘두 사람은 소유했던 재산만큼이나 똑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재산만 가지고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산이 없으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풍요, 더 나아가 영적인 풍요가 곧 행복의 분량을 나타내는 수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의식도 전혀 없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이릅니다.

"저 지렁이는 낚시 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잘못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그 물고기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옥과 천국을 말할 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사람이 있으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줘. 그러면 믿을 테니까."

이런 사람들은 끝내 하늘을 보지 못합니다. 지렁이를 삼킨 물고기처럼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에서 싹튼 교만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그 많은 곡식을 어디다 쌓을 것인가만 생각하지 그 많은 수확이 어디로부터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심중에 없고 따라서 그의 은혜에 감사할 줄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수확이 하나님으로부터 왜 그에게 주어졌는지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많은 재물에 따르는 그의 책임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 재물을 어떻게 쓰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실까 하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4) 그는 '생명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본문 20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에게 재물은 한없이 많이 있지만 그 재물을 다 누릴 만큼 생명의 연장을 그 재물이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으며 누가 얼마 동안 살 수 있는지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불러 가시면 그가 쌓아놓은 그 많은 재물은 다 남의 것이 되며 그 재물을 즐기지 못할 사람은 오직 자기뿐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5) 그래서 최후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본문 21절을 먼저 다시 읽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 부자는 세상에 썩어지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았기에 영원한 것을 위한 준비가 없었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부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세상에 쌓아논 부를 가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재산을 쌓아놓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지혜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부르있없는 사람를 말합니다. 외국에 여행하러 나가서 거기에 전 재산을 가지고 가는 사람ㅂ은 없습니다. 귀국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큰 부자라고 많은 돈을 가지고 가지는 않고, 여행에 필요한 경비만 가지고 가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본 고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 재산을 쌓아놓을 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어야 합니다. 어리석게 돈을 거꾸로 사용하며 살아간다면 그는 인생을 거꾸로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거꾸로 산 사람은 마지막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 25:31-46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떤 광경이 벌어지며 어떤 대화가 오갈 것임을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고 모든 사람을 그 앞에 모으신 후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오른편과 왼편에 두시고는 오른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하시면 그 사람들이 여쭙기를 "주여, 우리가 언제 주님을 위해 그런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할 것이고 주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만을 위해 쌓지 않고, 하난의 선한 사업에 사용하거나 하나님께 헌신하고 드리는 물질이나 수고와 헌신 심지어 남과 나누면 부지중에 하늘나라에 부를 축적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재물이나 재물의 축적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재산과 그 축적의 목적과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재물을 두고 그것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를 생각할 줄 알고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 자체를 너무 좋아하거나 재물을 너무 믿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의 의미를 왜곡시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돈만 많으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없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는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그 본질이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음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한 채 소유하고 있는 부는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돈은 잔뜩 벌어놓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무슨 평안이 있겠습니까? 돈이 없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돈이 많아지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도둑놈 같아 보이기 쉽습니다. 누가 와서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어떻게 해서든 뜯어먹으려는 수작들로만 여겨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늘 불안해지고 웅크리게 됩니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아내의 애교나 자식들의 효도조차도 다 돈을 보고 그러는 것으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있는데 자기 혼자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그 친구 돈 좀 벌더니 사람 이상해졌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돈은 가득 쌓아놓았는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과 업신여김을 받는다면 그 인생이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나는 돈만 있으면 친구도 필요 없고 친척도 필요 없어. 나 혼자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들 그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일 모든 사람이 상대를 안 해주고 거래도 안 해준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라 할지라도 휴지조각에 불과해지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선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돈은 하나님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전적 헌신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잘못된 물질관을 버려야 합니다.


2. 탐심(貪心, avarice-??부당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님과의 재산의 분배를 요구하고 나온 사람에게 책망하시고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15a)고 하였습니다.

형제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 근본 원인이 탐심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아신 예수님께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남을 변화시켜 주기를 바라는 탐심 자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탐심도 용납치 않으셨습니다.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그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탐심이 있습니다.??탐심은 문자적으로 "더 많이, 더욱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더 많이, 더 좋은 것, 하여튼 "더"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탐심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 아내보다 이웃의 아내가 더 예뻐 보입니다. 또, 자기 남편보다 이웃의 남편이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래서 "남의 밥의 콩이 더 커 보인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말이 생겨난 것 같은데 탐심이 죄인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탐심을 말라 했는데... 왜, 사람들은 자꾸만 탐심을 가지며 탐심을 부립니까? "탐심을 물리치라."고 엄히 계명에 명령을 했는데, 왜 자꾸 탐심을 가집니까? 그 이유가 15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을 자꾸 끌어 모으고자 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이 소유 넉넉한데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돈만 많이 벌면 얼마든지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일고 있고, 세금 포탈 사건과 보험금을 노리는 가족 살인 상해사건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 세상 살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가장 큰 착각은 '돈을 많이 벌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게서는 '사람의 생명과 행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며 '자족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빌4:11)

우리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본문의 어리석은 부자는 수단과 목적을 혼돈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곡식과 곳간이 필요합니다. 물질도, 사업 확장도, 저축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내가 모아놓은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재물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은 재물의 풍성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외적 증거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공적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근거로 신28:1-14절을 들었습니다. 교독해 봅시다.

신 28장 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절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절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절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절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절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10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절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12절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절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절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축복 받고, 인정받은 사람으로 과시하기 위해서 재물을 쌓는 데 열중하고 그것을 삶의 제일의 목표로 삼았다는 데 신앙적으로 잘못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바리세인과 랍비 등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도 강조되었습니다. 눅 16장 14절 에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탐심은 재물만을 추구하다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고, 죄악으로 달려 가게하기 때문입니다.

1) 그러므로 탐심은 인간관계가 단절시키고, 이웃에 대한 착취와 불의를 행하게 되기 때문에 물리쳐야 합니다.

약 5장 1~6절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에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약1;14,15). 탐심을 물리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불효도, 살인도, 도적질도, 간음도, 거짓 증거도 모두 탐심을 물리치지 못한데서 비롯됩니다.

2) 탐심으로 하나님과도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딤전 6장 9절~11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권합니다.

골로새서 3:5절 탐심은 우상 숭배라 했습니다. 사람이 탐욕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고 물질과 육신의 노예가 됩니다. 결국 썩어 없어질 사람과 금수와 벌레 형상의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롬1:23)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탐심은 문자적으로 더 많이, 더욱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더 가지려고 하다 보니 온갖 욕심과 사단의 유혹에 빠져 믿음을 떠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실제로 탐심 하나 물리치지 못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이 성경에는 많습니다. 아간은 외투 한 벌 숨겼다가 저주를 받아서 죽었습니다.(수7;21)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물질에 대한 탐심과 명예심에 성령을 속이다가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행5:5,10)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탐심은 이처럼 하나님이 보실 때, 무서운 죄악입니다. 가롯 유다도 물질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지 못하여 망하게 되었습니다.(요12:6)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려면 모든 종류의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3) 탐심을 버리지 못한 부자는 천국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마 19장 24절절에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주님의 음성을 깊이 받아들여 신앙의 교훈을 삼을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돈은 종종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게 만드는 주범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진짜 재산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가장 크고 가장 확실한 재산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아주 좋은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는 우리에게 있는 것,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선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1) 재물에 대한 올바른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① 재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아야 합니다.

전 5장 19절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눅 6:38입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면서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② 재물을 맡은 청지기로 잘 관리하고 사용하여야 합니다.

엡 2:10절에 보면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하였습니까?

시37:21-26에 보면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 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고 하였습니다.

행10장에 보면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 늘 경건하게 살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특별히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 되는데 그 기억되는 일들 중에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만한 일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개의 구제를 기억하노라!"라고 하는 일들이 있다면 그는 복 받을 일을 만든 사람일 것입니다.

③ 장래를 위해 좋은 터를 쌓아야 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기억합시다. 딤전 6장 17~19절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막 10: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무엇인가 희생하면서 바치면 우리 주님께서 심은 것은 반드시 백배나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금세에 백배나 주시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드리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한번 살아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의 행함의 근거를 보시고 안심하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① 주님께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마 6장 20절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②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고후 9장 13절 "...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라고 하였고,

고후 8장 2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으며,

고후 8장 3절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렸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돌려드릴 준비에 게을렀습니다. ‘어리석은 자’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농사가 잘될 것을 예측, 미리 곳간도 넓히는 등 대비도 착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준비에 게을렀습니다. 인간의 존재가 영혼의 유무에 있고 물질은 그 뒤에 따르는 것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유물사관, 물질 중심의 세계관이 바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발견하여 그 목적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참으로 부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물, 재능,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발견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카네기는 “웃음을 가진 부자는 거의 없다. 재물은 웃음을 몰아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인색한 삶을 살지 맙시다. 십일조를 비롯한 모든 헌금은 감사와 기쁨으로 합시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요하십니까? 우리 모두 올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며 내 영혼을 하나님 앞에 드릴 준비를 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힘쓰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재물을 하늘에 쌓기 위해 구제도 해야 합니다.

눅 12장 33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내 이웃과 다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따라 언제든지 필요한대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와 삶을 모르고 자기 혼자만을 위해 긁어모으고 쌓아놓고 움켜쥐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이고 자기에게만 부요한 자이며, 사실은 가장 가난한 자이고 어리석고 불쌍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부자라는 것은 많이 가진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에 많이 쓰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재물을 사용하는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물 사용에 대하여??"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12장 29절~31절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식량도 다 떨어졌습니다. 강렬한 태양빛에 사흘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그는 살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끝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사막 한가운데서 작은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급히 물을 마시고 나니 주위에 몇 개의 천막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혹시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 조각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른 그것을 만져보니 손에 작은 알맹이들이 만져졌습니다.

‘치즈나 초콜릿이나 빵 부스러기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그는 정신없이 주머니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속에 있는 것을 한 움큼 꺼내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값비싼 진주알이었습니다. 그는 손에 한 움큼 쥐었던 진주들을 사방에 던져 뿌리며 절규했습니다. “이것이 빵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겨우 진주란 말인가?” 그리고 그 사람은 사막에 누워 죽어갔습니다. 사막에서 목숨이 다급할 때는 아무리 값진 보석도 필요 없습니다. 500원짜리 생수 한 병만 살 수 있다면 모든 재산을 다 주어도 살 것 입니다. 당신에게 아무리 불행과 재난이 연속되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생명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감사할 조건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에 진짜 감격해 보셨습니까? 그 구원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습니까? 골짜기에 가시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정원사가 오더니 그 가시나무 주위를 팠습니다. ' 이 사람이 내가 쓸모없는 가시나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원사는 정성스럽게 그 가시나무를 파내더니 장미꽃나무 사이에 심는 것이 아닌가!

' 어이쿠 이 사람이 대단한 실수를 하고 있구나! 나같이 아무 쓸모도 없는 가시나무를 이렇게 아름답고 값이 비싼 장미나무들 사이에 심어놓다니.... 머지않아 내가 쓸모없는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면 뽑아서 불에 던지겠지?' 그런데 정원사가 이번에는 예리한 칼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 어이쿠 이제야 이 양반이 내가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았구나! 그러면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그 정원사는 그 가시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어? '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다시 장미의 원 줄기에 접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아! 나 같은 쓸모없는 나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아! 저 정원사는 정말 고마운 분이야.'

여름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 그 나무에도 피었다. 그것을 보면서 정원사가 말했습니다.
"본래 너는 가시나무였으나 고귀한 장미를 접붙여 이제 장미나무가 되었으니 아무도 너를 가시나무라 부르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 된 가시나무와 같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당해 영생과 구원을 얻었으니 하나님을 위해 우리 자신 모두를 드려도 그 값비싼 희생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여광을 위해 사용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돈만이 재산은 아닙니다. 요즈음은 돈보다 지식이 재산입니다. 신용도 재산이고 아이디어도 재산이고 명예도 재산이고 인격도 재산이고 봉사심과 봉사할 수 있는 건강도 재산이고 인심을 얻어놓은 것도 재산이고 존경받는 것도 재산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돈은 충분히 있는데도 되지 않던 일이 그 일에 나서는 사람이나 보증인의 인격과 신망과 명예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돈 하나만 움켜쥐느라고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니 그것은 그 많은 돈을 짊어지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자살행위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최근 심리학자들은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장수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줄 줄 아는 사람들이 고통과 아픔도 적게 느끼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며 스트레스도 적고 질병에도 덜 걸린다는 것입니다. 금연이나 주 4회 이상의 운동보다도 구제하는 일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합니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학자들이 5년간 400명의 노인부부들을 조사한 후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수명이 훨씬 더 길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 연구의 책임자인 브라운 교수는 단언하기를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말했답니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와 연구는 두 개 이상의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향후 5년간 죽을 확률이 63%나 줄어든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사는 우리가 됩시다.
피터 라이브스가 쓴 "갑옷"이란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옛날에 레오나드라는 훌륭한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의 왕들이 그의 나라를 탐내어 자주 쳐들어왔기 때문에 왕의 목숨은 언제나 위태로웠습니다. 어느 날 신하들이 왕에게 건의했습니다. "국왕 폐하! 폐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강철로 갑옷을 만들어 입으시옵소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갑옷으로 둘러싸면 폐하의 몸이 온전히 보존 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레오나드 임금님은 그 말에 좋게 여겨 갑옷을 짓도록 허락했습니다.

얼마 후 임금님은 아주 튼튼하고 안전한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처음 입은 갑옷 이라 보행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갑옷의 가치는 곧 입증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총알이나 칼 혹은 화살도 그 갑옷을 뚫지 못하고 퉁겨나갔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드 임금님은 적군을 향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외쳤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들 눈에 이 갑옷이 보이지 않느냐? 이제는 그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으하하하! 이제 나는 불사신이다.!"

불사신이 된 것은 그 갑옷 때문이라 생각한 레오나드 임금님은 그 갑옷을 한시도 벗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밤이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 말하면서 갑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습니다. 갑옷은 그에게 제2의 피부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갑옷은 위험에서 임금을 지켜주었지만 갑옷이 그를 뻣뻣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갑옷 속에 갇힌 임금님은 갑옷 감옥에 갇힌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왕은 심한 외로움을 느꼈니다. 어느 누구도 임금님의 몸에 손을 대거나 껴안을 수 없었고 임금님 역시 다른 사람들을 만지거나 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수 없었습니다. 임금님의 친구들은 커다란 슬픔을 느꼈습니다. 다정다감했던 사랑스런 친구가 이제 죽은 시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친구들은 어느 날 밤 왕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사랑의 작전'을 세웠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그를 잔뜩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둠을 틈타 조심스럽게 임금님의 침실로 들어가 깊이 잠든 임금님의 갑옷을 벗겨 갑옷이란 감옥에서 임금님을 해방시켜주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궁궐을 빠져나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임금님의 친구들은 실로 오랜만에 사랑하는 임금님의 모습을 보며 손으로 만지며 껴안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궁궐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궁궐에 도착했을 때, 레오나드 임금님은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갑옷이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다 해서 그 몸의 일부가 되어서는 되지 않습니다. 재물이 우리를 곤궁에서 벗어나게 했다 해서 재물을 탐하거나 재물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재물이나 권력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그 재물이나 권력을 잃을 때 그의 목숨까지 잃게 될 것입니다. 레오나드 임금의 갑옷이 내게도 있지 않는지 두려워합시다.

자기를 위하여 이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되는 어리석은 성도가 우리 교회에는 한 사람도 없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나 세상의 것이 우리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크든 적든 상관없이 그것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선용하고, 최선을 다해 우선순위를 바로 알아 하난의 선한 청지기로 물질을 잘 관리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잘 사용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모든 달란트 재산이나 어떤 것이라도 악하게 사용한 어리석은 부자철 되지 않도록 경계로 삼으시고, 지혜롭게 처신하여 복 되고 지혜로운 하나님 자녀로서 후회없는 삶을 사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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