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죄를 다스리라 (창 4:1-15)

  • 잡초 잡초
  • 565
  • 0

첨부 1


죄를 다스리라 (창 4:1-15)

1. 요즈음 우리 사회는 학력 위조 사건이 연예, 예술계, 방송, 학계, 그리고 심지어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증받지 못한 학위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거나, 대학졸업 학력이 아닌데도 졸업한 양 속이거나, 소위 명문 학교 졸업이 아닌데도 졸업한 것처럼 속이거나, 역으로 울산에서는 대학졸업자인데도 취업을 위해 고졸 학력으로 속이는 행위 등 다양한 가짜 학력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학술진흥재단에 신고된 박사 중 약 1천여 명이 문제의 학력 위조에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미국 등지에 비인가 “학위 공장(degree mill)”이 750~1,000여개가 있는데 이곳에 신용카드 결제하면 일주일 내에 학위증을 받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학사와 석사 학위증은 각각 45만원, 박사는 55만원인데 세 가지 학위를 패키지로 한꺼번에 주문하면 할인 혜택을 주어 100만원에 학위증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이 “학위 공장”의 주요 고객들은 학위가 없어 승진이나 전직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들인데, 이곳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 중에는 전,현직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그리고 상당수의 대학교수들과 유명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 “학위 공장”의 1년 매출액이 약 5천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까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가짜 학력 소지자가 활개치는 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가짜 학력이 드러난 사람들의 태도 또한 다양합니다. 솔직하게 잘못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은 학력을 위조 발언한 적이 없는데도 주변에서 왜곡한 것이라며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기도 하고, 대책없이 해외로 도피하기도 하며, 어느 공연 예술계 학력 위조 관련자는 자신의 학력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까 두려워 친구도 만나지 못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잔다, 모든 게 너무 무서우니까 보통 사람은 일할 때 다 선후배 관계가 있는데 누가 선후배라고 말을 하면 정말 도망가고 싶고 죽고 싶었다며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학력 위조가 드러난 사람들은 파면당하기도 하고, 검찰에 입건되어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공소시효가 지난 사람들은 다행히 사법처리는 면할 수 있을지라도 공인의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등, 상당수가 그간 가짜 학력으로 쌓아올렸던 공든 탑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느 젊은 밴드 그룹 리더는 방송 사회자가 몇 학번이시냐고 묻자 우리사회가 사람을 학번으로 평가하느냐고 꼬집으며 자신은 고졸이라 학번이 없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위조된 학력이 들통날까봐 조마조마 불안과 두려움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자신의 학력을 위조, 속이는 행위는 분명한 죄악입니다. 자신을 속이거나 남을 속이는 행위는 죄악입니다.

에덴동산에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가 뱀에게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하자 뱀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며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며, 오히려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등 거짓말로 하와를 속였습니다.

결국 하와는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어 함께 죄를 범하게 만들었습니다.(창3:1-6) 사탄에게 속아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거짓말로 속여 죄를 범하게 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사탄을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라 부르고 거짓말하는 자, 남을 속이는 자를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자신을 속였든, 남을 속였든가, 아니면 남에게 속았든가 죄를 범하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학력을 위조하여 살아온 위조된 삶을 깨끗이 청산하고 남은 생애를 밝고 유쾌하게 살고자 하면 자신의 삶에 대해 정직하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뿐입니다. 성경을 보겠습니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깨끗이 할 수가 없습니다. “죄 없이 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만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 사함을 받아 유쾌하게 되는 날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뉴욕의 컬럼비아 프레스비터리언 병원 현관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치유는 지극히 높은 자로부터 온다.(For of the most high cometh healing.)” 이것은 육신의 병뿐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관계, 사회와 단체와 국가의 문제 해결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개인과 나라 민족이 병들었을 때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회개하면 치유는 위로부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실과 정직함으로 회개할 때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치유되어 유쾌한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1: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중병이 들기 전에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므로 “유쾌하게 되는 날”을 맞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명한 작곡가 리스트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리스트가 어느 날 독일에 조그마한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피아니스트 아가씨 하나가 피아노 독주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 광고를 붙이고 신문에도 “○ ○ ○ 피아노 독주회. 유명한 작곡가 리스트의 수제자” 이런 식으로 광고를 실었습니다. 리스트의 수제자라고 광고하므로 자신의 주가를 높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주회하기 바로 전날 리스트가 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 여자는 리스트의 얼굴도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여자가 이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리스트가 여기 왔으니 이제 난 죽었다, 망했다.’ 그래서 이 아가씨는 리스트의 숙소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빌었습니다. “저는 고아출신으로 혼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제 독주회를 가지려고 하는 타임에 선생님의 고귀한 이름을 도용하고 선생님의 제자라고 광고를 했는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리스트가 껄껄 웃으면서 “큰 실수를 했구먼요.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한답니다. 이리 오세요. 피아노에 앉아서 한 곡을 치세요.” 그래서 잠깐 피아노를 쳤습니다. 리스트는 말했습니다. “여기 이렇게, 이렇게 조금 달리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가 하는 말이 “분명히 내가 당신을 가르쳤습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떳떳하게 나는 리스트의 제자라고 말할 뿐 아니라 연주회에 내가 참석하겠는데, ‘마지막 곡은 제 스승 되시는 리스트 선생께서 하시겠습니다.’ 라고 하세요. 제가 한 곡 쳐드리겠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아가씨는 다시 한 번 진심어린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감사드렸습니다. 지혜자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잠12:22)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23: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진실되고 정직한 입술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마음이 유쾌하게 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의 삶에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가 예배(제사)제도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동물을 희생시켜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동물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 지은 인간이 깨끗하고 흠없는 동물을 성전에 끌고 가서 그 동물 머리에 손을 얹고(안수) 지은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면 고백된 인간의 죄가 동물에게 전가되고 죄를 뒤집어 쓰게 된 동물은 그 죄값을 치루기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된 동물을 가리켜 “희생양”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모든 인류가 죄 사함을 받도록 십자가에 희생하신 희생양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므로 지금은 “유쾌한 날”이 되는 복을 받고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죄 사함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면, 진실하고 정직한 회개가 없이 드리는 예배는 열납되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가인은 성장하여 농사하는 자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 즉 곡물을 제물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즉 양 무리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최상의 정성과 겸손히 회개하는 깨끗한 심령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온전한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도 하나님 앞에 땅의 소산을 드렸지만 가인의 제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지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제물에는 자신의 정성어린 마음과 회개하는 깨끗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 담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믿음의 장>으로 불리우는 히브리서 11:4에 의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또한 가인의 악함과 아벨의 의로움은 요한 일서 3:12에서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이렇게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들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깨끗하고 의로운 마음, 회개하는 마음과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예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와 믿음으로 드리는 의로운 제사였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의로운 제사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바리새인의 회개할 줄 모르는 교만한 기도”가 아니라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며 다만 가슴을 치는 세리의 겸손한 회개의 기도를 말합니다.(눅18:9-14) 참으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십니다.(시51:17) 자신의 지은 죄를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며 믿음으로 예배(제사)를 드려 의롭다하심을 인정받으시며 삶이 유쾌하게 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는지 여부는 여러분 삶에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열납은 죄사함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납되지 아니한 제사는 죄가 그냥 남아있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아니하므로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아니하면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의로운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당연함에도 도리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는 것은 그의 악한 마음이 탄로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다시 말하면 “네가 왜 얼굴을 들지 못하느냐? 그것은 네가 바르게 제물을 드리지 않았음을 네가 잘 알기 때문이 아니냐? 네가 옳은 것을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없이 드린 제사에 대해 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롭지 못한 행위를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권고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악행을 회개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으로 가인의 범죄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 범죄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마음의 죄를 잘 다스리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몹시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고 들로 나가 아우를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우려대로 가인은 마음의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거침없이 아우 아벨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회개하기는커녕 뻔뻔스러운 항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완강하게 끝까지 범행일체를 부인하고 은폐하려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그래도 뻔뻔한 가인에게 결국 형벌이 떨어졌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같은 죄벌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가인은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합니다.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어 살해당하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러나 살인자 가인은 죄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 속에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이란 땅으로 가 살았습니다. “놋”이란 “방랑”이란 뜻입니다. 가인은 “방랑자”가 되어 방랑자의 땅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가인은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으며, 그의 첫 아들을 “에녹”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성을 쌓고 그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린 형벌은 “유리하는 자” 즉 방랑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만 이 역시 거역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성을 쌓은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살인죄를 은폐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가인이 세상에 처음으로 세운 에녹성은 결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도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살인죄를 은폐한다고 해서 마음에 남은 죄가 씻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악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인성에는 나름대로의 문화와 문명이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죄가 머물러 있는 죄악의 도성 가인성의 문화와 문명은 가인처럼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어서 죄악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번성한 예술과 문화, 문명은 세상을 온통 죄악으로 채워 결국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노아 시대에 내린 홍수심판으로 깨끗이 수장(水葬)되고 말았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을 제외한 문화와 문명은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 이전에 문화는 죄인의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타락 이후의 문화는 한 마디로 죄인들의 문화,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문화까지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가인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드리지 아니한 가인의 예배는 열납되지 않았고, 마음에 남아 있는 죄악을 다스리지 못함으로 죄가 그 자신을 지배하여 결국 사망과 저주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죄가 지배하는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씻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야말로 인간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화, 번영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다스릴 수 있는 기독교 문화와 예술, 문명이야말로 참된 기쁨과 생명, 평화와 번영을 꽃피우고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세상 죄악의 문화와 문명을 분별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통해 죄를 회개하므로 죄를 다스릴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미국 서부지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청년이 카드놀이를 하다가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며 다투다가 권총을 빼들고 덤벼드는 상대편을 쏴 죽였습니다. 그 결과로 성실한 생활을 했던 청년은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청년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진정서를 준비했습니다. 이 사실이 다른 마을과 도시에도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 진정서에 동조하여 서명하였습니다. 이 진정서는 주지사에게까지 전달됐는데 그분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주지사는 바구니에 가득히 들어있는 진정서를 읽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 청년을 용서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사면장을 써서 주머니에 넣고 성직자 가운을 입고 교도소에 갔습니다.

그가 사형수 감방에 다가서자 그 청년은 벌떡 일어나 주지사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보시오 성직자 나리, 여기서 나가시오. 보기도 싫소. 나는 이곳에서 당신 같은 성직자를 일곱 번이나 만났소. 나도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요.”

그러나 주지사는 말을 막으며 타일렀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당신을 위해 가지고 온 것이 있으니 나에게 말 좀 할 기회를 주구료.”
“듣기 싫습니다. 만일 당장에 나가지 않으면 간수를 불러서 당신을 끌어내게 하겠소.”
“그러나 젊은이! 제발 내 말 좀 단 한 번만 들어주시오! 내가 당신을 위해 가장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소. 한 번만 말 좀 하게 해주시오.”

화가 난 청년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소? 당장 나가지 않으면 간수를 부르겠소!”

도무지 주지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주지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았소. 좋습니다.” 하고 주지사는 슬픈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간수가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청년, 지금 주지사님이 방문하고 갔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사면장을 가지고 왔으나 당신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다급하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경애하는 주지사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것 대단히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지사는 편지를 받아보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 사건에 흥미가 없소.”

드디어 청년의 사형 집행일이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청년들에게 이 말 좀 전해 주십시오. 내가 죽는 것은 살인죄 때문이 아니라구요. 주지사는 나를 용서해 주셨으나 내가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모든 죄인들을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이미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므로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죄를 회개하지 못하도록 역사합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찾아옵니다. 죄를 다스리면 영혼이 맑아집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에 어두워집니다. 죄를 다스리면 생활이 깨끗해지고 삶이 밝아집니다. 죄를 다스리면 신앙생활이 성숙되고 참된 기쁨이 찾아옵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의 노예가 되어 인격이 파멸되고 성품이 파괴되고 생활이 파괴되어 결국 인생이 파멸하게 됩니다. 능력이 많아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지식이 뛰어나도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한 순간에 인생이 무너집니다. 누구나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예수 믿어도 죄를 회개하는 생활이 없으면 죄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통해 죄를 다스리게 되면 영원한 기쁨과 생명의 복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거짓과 죄악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죄를 다스리는 생활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