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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물며 하나님께서…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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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하나님께서… (눅 18:1~8)

"당신은 기도를 운전대로 아는가 아니면 스페어(spare) 타이어로 아는가."라고 한 '존 번연'의 말은 기독교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A.링컨'은 "아무데도 갈 곳이 없어 막연할 때 나는 여러 번 무릎을 꿇게 된다. 나의 지혜가 주위의 모든 것을 감당하기가 너무 벅찰 때 나는 기도에 의지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기도의 사람 'E. M 바운즈'는 그의 저서인 '기도의 능력' 이라는 책에서 "오늘 현대교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보다 나은 기계문명이나 새로운 조직이나 신기하고 기발한 방법도 아니다. 지금 현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성령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 즉, 기도에 능한 사람,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기도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온 종일 분주합니다. 조금도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기도에 관한 교훈입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 인내하고 낙심치 말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얼마나 급하게 기도의 응답을 기다립니까. 한국 사람들의 급한 성격이 기도생활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기도응답이 오지 아니할 때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급기야 기도하는 것을 멀리하기까지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어떤 억울함을 당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기의 일을 해결해 달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입니다. 이 여자의 신분은 과부입니다. 돈 없고, 힘없고, 아무 배경이 없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재판관도 또한 특별한 재판관입니다.
성경은 그를 소개할 때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하는 명재판관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불의한(Unjust Judge)재판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재판관은 예나 지금이나 이름이 있는 직업입니다. 명함만 내밀어도 교환가치가 있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무신론자, 그리고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지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까지 무시하는 못 말리는 재판관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며 법, 정의 사회 구현, 도덕, 양심, 자유, 평등, 인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란 말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돈을 좋아하고, 뇌물 받는 것을 좋아하고, 뒷거래를 좋아하는 재판관입니다. 돈을 주는 사람에게 특별한 법적 면죄부를 파는 재판관이었습니다. 아마 이 재판관은 예수님 당시 헤롯이 임명하였거나 아니면 로마정부에 의하여 임명된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법관이 우리사회에 없지 아니합니다. 권력과 야합한 불의한 재판관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재판관에게 여기 과부는 집요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먼저 원한이 있는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Ⅰ.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1) 자주 찾아갔습니다.
본문 18장 3절에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찾아갔다』는 말은 간청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한번 찾아가서 실망했지만 낙심하지 아니하고 몇 번이고 찾아갔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찾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과부는 계속해서 찾아갔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하면서 자주 찾아갔습니다. 원한 맺힌 과부는 그 사람의 형편, 성격, 지위 모두를 접어 두고 자주 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 비유의 의도는 기도생활의 끈기와 인내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끈기 있게, 그리고 인내하는 기도의 용사가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26절에 야곱은 말하기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사무엘상 12장 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존 낙스'는 "하나님이여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아니면 나에게 죽음을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몽테뉴 어거스터'는 "우리는 일어서도 걸어가면서도 누워서도 기도할 것 밖에 없다. 우리의 기도는 물이 계속하여 위에서 흐르듯이 아래로 계속되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자주 찾아가야 합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시간에도 심지어 한 밤 중에도 찾아가야 합니다.

2)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8장 3절에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라고 했습니다.
지금 과부의 기도 목적은 자신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기도가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목적이 있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부의 기도는 한 맺힌 원한의 기도였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한 가지 목적을 두고 계속해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녀의 목적은 자신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녀는 한 목적을 향해 달리는 집념의 여인이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할 때는 일백년을 살 것처럼 왕성하게 일하고 기도할 때는 내일 죽을 것처럼 진지하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예수를 보러왔습니다. 그녀는 온갖 수모를 참고 마침내 딸을 귀신으로부터 구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8장 5절에 이러한 저돌적인 여인의 방문에 대하여 불의한 재판관은 얼마동안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다가 재판관은 만약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아니하면 자신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판관은 자신의 뜻을 바꾸어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했습니다.
'컬비스톤'은 말하기를 "계속 기도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당신의 기도보다 더 지혜로움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3) 응답하시되 속히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장 7절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기도의 응답이 영원히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자들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속히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드십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한 과부가 당한 일보다 더 어렵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불가능의 실체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우리에게 불가능의 삶을 살라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삶을 가능한 삶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참으로 성공적인 크리스챤의 삶의 비결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받기까지 밤낮 부르짖는 것입니다.
'타튜사'는 말하기를 "밤에 기도를 많이 한 자는 낮에 얼굴에 광채가 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햇빛이 비췰 때 기도하지 않는 자는 구름이 몰려와도 기도할 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4) 믿음의 기도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장 8절 하반부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 조건은 믿음입니다. 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과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음이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도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희망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인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듯이 믿음이 없는 기도 역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신다. 절대로 나의 소리를 멀리 하지 않으신다."라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Ⅱ.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자들 의 원한을 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구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슨 목적으로 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 목적대로 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것인가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합니다.
본문 18장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은 분명히 있지만 그 기도의 응답의 시기(때)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기도 응답의 시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절망이라고 하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마귀의 도구요, 수단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성을 아신 주님은 오늘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응답이 속히 오지 않아서 답답하십니까?
우리가 하는 기도가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맞춰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휘스릭'은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도 기도생활 하다가 쉽게 낙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과부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제일 무서운 시험은 낙심이라는 황마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조그마한 일에만 부딪혀도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지 아니합니까? 낙심을 이기는 비결은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빠지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응답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분이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열리고, 기도할 때 답답한 것이 터지고 기도할 때 어려운 문제가 사라집니다.

2) 밤낮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본문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했습니다.
『밤낮 부르짖는다』는 말은 온종일 하루내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2절에 다윗은 밤낮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일은 하지 아니하고 기도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는 자세로 하라는 말입니다.

3) 택자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장 7절에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많은 문제를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기도하지만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는 과부의 열심을 보십시오. 원 맺히고 한 맺힌 기도는 쉽게 포기하고 쉽게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칼빈'은 '기도는 신앙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강하게 보일지 몰라도 인간은 그 누구도 근본적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주 자주 넘어집니다. 오늘 이 악한 세상에 우리가 사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만사가 형통합니다. 기도할 때 자신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거창한 웅변이 아닙니다. '키케가드'는 말하기를 "기도는 하나님께 이야기 하므로 시작되지만 더 조용하게 들어가 보면 결국에 기도는 하나님께 듣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뮤레이'는 "기도는 생명의 맥박이다."라고 했습니다. '보든'은 "기도는 무력(無力)이 전능(全能)에 기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퍼스취'는 "기도는 언어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성취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변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성도가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성도는 자기가 있는 곳을 변화시킵니다. '브룩스'는 말하기를 "기도 없이 사는 것은 가장 저주스러운 일이요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기도하는 구역은 늘어납니다. 기도하는 교사는 그 반이 부흥합니다. 기도하는 직분자는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교회에 죽도록 충성합니다. 결국 기도하는 자가 축복을 받습니다.
'투니어'는 말하기를 "대부분의 기도가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를 바꾸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슬라비 격언에 "기도가 한쪽으로 올라가면 두레박처럼 축복은 내려온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에 힘없고 나약하고 아무 배경이 없는 한 연약한 과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여기 과부는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자신의 문제 아니면 가족의 문제, 이웃의 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 장래 문제, 자녀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업문제, 건강문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제 등등 수많은 문제들을 기도함으로 해결 받아야 합니다. 부르짖어 강청할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8절에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기도하다가 낙심 중에 있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낙심을 이기고 항상 기도합시다. 기도는 우리의 문제가 우리가 기도하는 무릎 위로 오르지 못하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자주 자주 하나님께 찾아 갑시다. 우리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을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밤낮으로 귀찮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속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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