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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음은 (시 84: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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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음은 (시 84:1 ~ 1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시작되는 본문의 말씀은 성전에 대한 최고 최귀의 예찬입니다.
왜 시편기자가 이토록 여호와의 궁정을 자신의 영혼이 쇠약할 정도로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는 본문에서 자신이 동원했던 성전에 대한 여러 수사(修辭) 속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시편기자가 사모하고 있는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집', '주의 제단'은 성막(Tabernacle)입니다. 이 성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짓게 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이 성막에 내가 머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이 성막을 중심하고 생활하였습니다. 성막이 이동하면 함께 이동하고 성막이 멈추면 함께 멈추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해서도 오랫동안 이 성막을 중심으로 생활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만났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가리켜 만남의 장소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자신들의 허물과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전을 사모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사람들의 집회장소가 아닙니다. 특별한 처소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이 성막이 성전으로 이어집니다.
솔로몬은 모리아 산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역대하 3장 1절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성전이 완성되고 여호와의 언약궤가 지성소로 운반되었을 때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낙이었습니다.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발전되어 갔습니다.
이사야 56장 7절에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2장 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성전은 이 세상의 돌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된다는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8절에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자들의 마음속에 세울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21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라고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계시록 21장 22절에서는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51절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성령강림과 함께 사도들에 의해 신약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성전에 대한 최고의 평가입니다.
여기 다른 곳이란 주의 궁정을 제외한 모든 곳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의 첫째 의미는 주의 궁정 외에는 모든 것이 가치론적으로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둘째 의미는 주의 궁정의 유일무이한 독보적 가치를 말합니다.

Ⅰ. 성전을 사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체론적 질문입니다).

1) 교회(주의 집)를 통해서만 참된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
본문 84편 3절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짐승도 주의 은혜 가운데 평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들도 주의 장막 안에서만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두 처소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육신의 평안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을 귀하게 여깁니다.

나를 받아 주는 곳도 가정입니다. 내 집이 없으면 세상을 방황하게 됩니다. 내 집이 없으면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집이 없으면 떠돌이가 되어 정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 안에서 가정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가정만으로 우리 인간은 참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참 평안은 영혼의 평안입니다. 따라서 참 평안은 바로 교회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요 14:7).

어거스틴(Augustine)은 말하기를 "인간은 주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결코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평안을 누리는 곳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걱정의 짐, 죄악의 짐, 물질의 짐, 고통의 짐을 벗는 곳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수고로운 짐을 맡아주는 곳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짐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참 사랑이 있는 곳에 우리의 짐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2) 교회(주의 집)에 거하는 자마다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84편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들었던 고라의 자손들이 참예했던 문지기를 뜻합니다. 역대상 23장 5절에 『사천은 문지기요 사천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모든 특권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복이 있다』에서 복은 문법상 복수적 의미로 행복하고 충만하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직분자들은 이미 복 받은 자들이요 행복한 자들입니다.

Ⅱ. 성전을 어떻게 사모해야 합니까?(방법 론적 질문입니다)

1)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84편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모한다』는 말은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그리워하며 함께 있고 싶은 열망을 의미합니다. 가슴이 타고 얼굴이 창백할 정도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징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나의 속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에 우리의 마음을 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교회 생활 잘하는 사람은 항상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간구하는 성도는 영적으로 병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이 세상의 불의한 자리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성경에 다윗은 늘 주의 장막에서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상의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수치나 멸시밖에 될 수 없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답답한 것을 해결하여 주시고, 채워주시고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2) 주의 전을 최우선 추구해야 합니다.
본문 84편 2절에서 여호와의 전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영혼이 쇠약할 때까지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여호와의 집에 머무를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사랑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단체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사랑이 넘칠 때 교회는 많은 영혼들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이슬람교 교도들은 죽을 때 사람의 시체를 세워서 묻는데 그 얼굴을 성지 곧 메카쪽으로 향하게 해서 묻는다고 합니다. 이교도의 풍습도 이 정도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주의 전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이라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어머니 품처럼 우리는 교회를 그리워하고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3) 주의 전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본문 84편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것은 충성을 의미합니다. 주의 집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충성이 아닙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곧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교회운동에 충성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기 자리를 굳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깊은 곳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증거입니다. 교회 사랑의 증거는 충성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전 곧 교회가 얼마나 좋았던지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싶은 열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생명까지 바쳐 충성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이 축복 받은 다음에 시험에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주의 성전을 멀리하고 교회의 일을 경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딘가에 매여야 되는데 하나님의 일에 매이지 아니하면 마귀의 일에 매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주의 교회를 멀리하면 안 됩니다.

Ⅲ. 성전을 사모한 결과론적 가치가 무엇 입니까?(가치론적 질문입니다)

1)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라고 했습니다.

2)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18편 1-2절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고유명사들은 주의 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3) 기쁨의 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6절에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4) 비의 은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6절에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5) 힘 위에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7절에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힘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말인데 타계에서 오는 계속되는 힘의 공급을 말합니다.

6)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8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라고 했습니다.

7) 방패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9절에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라고 했습니다.

8) 해와 방패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11절 상반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9)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84편 11절 하반절에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좋은 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최후의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최고로 성공한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보은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이 진정 사모해야 할 대상은 교회입니다. 주의 전을 제일로 여기고 교회운동이 나의 목적이 되고 수단으로서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은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갈보리교회는 주님이 자기 피 값을 지불하고 세우신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주의 궁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한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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