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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금 같은 믿음 (롬 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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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 같은 믿음 (롬 4:13-18)

주일예배 어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흐린 날씨에 날이 어두워지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허우적대며 구르다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꽉 잡았습니다. 절벽 틈에서 자란 작은 나뭇가지를 잡은 것입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소리를 쳤습니다. “위에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한 밤중 깊은 산중에 누가 있을리 없습니다.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순간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간절히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일에 교회 빠지고 등산 온 것을 회개했습니다. 앞으로 신앙생활 잘하고 착하게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 좀 어떻게 살려주세요. 구조대를 보내주세요.” 눈물이 범벅이 되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놔라.” “예? 놓으라니요? 살려달라는데 가지를 붙잡고 있는 것을 놓으란 겁니까?” 이 사람은 약이 올라 더 바짝 움켜쥐었습니다. 무심한 하나님은 구조대도 보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악물고 새벽이 되도록 버텼습니다. 주변이 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버틴 것도 기적입니다. 아득한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 보았습니다. 그런데이게 웬일입니까? 천 길 낭떠러지 인 줄 알았는데 바닥이 고작 30 센티 아래였습니다. 진작 하나님이 놓으라고 하셨을 때 놨으면 밤새도록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 손을 놓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놓으라고 응답이 왔으면 놓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방법이 있기 때문에 붙들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합니다. 놓아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내 것을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은 일을 못하십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면 그가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하려는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기 때문에 둘 다 위험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은 100%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일부분만 믿으면 안 됩니다. 부분으로 믿는 것을 양다리 신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안 되면 다른 방법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차하면 대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간절하지 않습니다. 절실하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믿음은 액세서리입니다. 응답해 주시면 좋고 안 돼도 그만입니다. 100% 순도의 믿음을 정금 같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금광에서 금을 캐냈다고 정금은 아닙니다. 금광석을 제련해야 합니다. 금 외에 다른 성분을 가려서 제거하는 기술은 아주 고급 기술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제련 기술자도 100% 순금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각종 화학처리를 해서 가장 정금에 가깝게 만든 것을 99.9%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비유할 때는 조금이라도 불순물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온전한 100% 정금 같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성경에서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결국 100 세가 넘어서 약속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는 26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아브라함을 지킨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26 년 동안 믿음이 흔들릴 모든 조건을 다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환경은 믿음을 방해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아 긴 세월을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도 역시 한 살 아래 할머니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늙어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습니다. 자식 얻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100세까지 긴 세월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무모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거기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바로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17 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무엇을 어떻게 믿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을 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황금성목사란 사람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한 일을 믿는 것입니다. 이 둘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을 믿으십니까? 한 번 헤아려보십시오.

저는 어떤 것을 더좋아할까요? 제가 한 여러 가지 일을 믿는 것보다 제 자체를 믿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과 하실 일들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천 가지 만 가지를 믿는 것보다, 하나님 자체를 믿는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체를 믿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체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아브라함은 우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없는 것이지만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국에 유명한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찰스 브론디’입니다. 그는 긴 장대를 하나 들고 외줄을 타는 명수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지상 최대의 쇼를 기획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가라 폭포에 외줄을 걸고 건너는 것입니다. 별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이 쇼는 신문에 크게 났습니다. 많은 도박사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나이야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에 있습니다. 철도청에서는 임시 열차를 증편해서 구경꾼들을 나를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1858년 6월30일 폭포 양쪽에는 구경꾼들로 가득찼습니다. 나이야가라 폭포는 세계적인 폭포입니다. 폭포 마루의 길이가 790 미터이고, 직선 너비만도 300 미터가 넘습니다. 폭포 가운데서는 늘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갈매기 떼가 날라 다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합니다. 더구나 길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줄을 아무리 팽팽하게 당겨도 너무 크게 흔들렸습니다. 줄이 젖어 미끄럽고, 가운데는 물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지상 최대의 쇼, 찰스 브론디의 나이아가라 폭포 건너기에 집중했습니다.

그 때 찰스 브론디가 크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곡예를 성공할 줄로 믿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습니다. 그 환호는 믿는다는 뜻입니다. 드디어 찰스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갔습니다. 가운데 물안개 속으로 들어간 그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 그가 모습을 드러내고 무사히 건너편으로 건너갔습니다. 사람들은 큰 박수로 성공적인 쇼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쇼는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려는 순간. 찰스가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이번에는 다시 사람 한명을 목말을 태우고 건너가 보겠습니다. 내친 김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지상 최대의 쇼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모두 흥분했습니다. 다시 찰스를 연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찰스가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이번에도 제가 성공할 줄로 믿습니까?” 사람들은 “아멘!” 하면서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

그럼 여러분 가운데 한 분만 나오시기 바랍니다. 제가 목말을 태우고 건너가겠습니다” 시끄럽던 군중의 자리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믿는다면서요. 한 분 나오세요. 아무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서로 눈치만 봤습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자, 찰스는 어린 소년을 불렀습니다. 그 소년은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찰스의 아들은 냉큼 나와서 아버지의 목말을 탔습니다. 이 군중의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이 군중이 믿은 것은 찰스가 아니라 찰스의 쇼 구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찰스의 아들이 믿은 것은 아버지입니다. 이 아들은 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합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하는 기도가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그 기도에서 믿는 것은 자신이 기도한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정성을 들인 자신의 공력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 나타나는 기적을 쇼를 믿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 가운데 하나가 자기 공력을 믿는 것입니다. 기도를 오래하고 많이 했다고 응답될 줄 믿는 것입니다. 금식하고 철야하고 작정 기도했다고 응답이 잘 될 줄로 아는 것입니다. 크게 부르짖었다고, 힘차게 기도했다고, 더 세게 기도했다고 효험이 있을 줄 아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력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를 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광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믿지 마세요. 믿음이란 내 기도를 받으시고 들으시는 하나님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이 구절이 그 증거입니다. 그는 끝까지 쇼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늙은이가 아이를 낳는 쇼!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수하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 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100% 순전한 믿음입니다.

이제 찰스가 어린 아들을 목말 태웠습니다. 그리고 줄을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기에 앞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중간에 휘청거리고, 위험해도 너는 꼼짝하지 마라. 무섭다고 움직이면 안 된다. 흔들릴 때 네가 이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지 마라. 균형은 아빠가 잡는다. 만약 네가 균형을 잡는다고 움직이면 아빠도 떨어지고 너도 떨어진다.”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100% 하나님을 믿고, 다맡기는 것입니다 100%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금 같은 믿음입니다.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위대한 일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번째로 맞닥뜨린 일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견고한 성을 점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줄을 지어 매일 성 주변을 돌았습니다. 그렇게 6일을 돌았습니다. 마지막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 주변을 돌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떠들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왜 이런 황당한 원칙을 지키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믿음으로 돌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불순물도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을 공격하지는 않고 성 주변을 돌게만 하니 이런 저런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때 떠들면 불평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일을 망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들레지 말라는 원칙을 잘 지켰습니다. 마지막 일곱 바퀴를 다 돌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 때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주 쉽게 여리고를 정복했습니다.

성을 무너뜨린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은 기도하면서 믿고 기다리면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을 얻은 후에 그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했어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제물로 받으실리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제물로 잡아 죽여도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거침없이 이삭을 묶어 제단에 뉘였습니다. 칼을 들어 치려고 한 것은 정말로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급하게 아브라함의 손을 막으셨습니다.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부활의 신앙이었습니다.

다음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없다는 것은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 현실에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것은 비전이고 꿈이라고 합니다. 단지 소망으로 마음에 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으로 본 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소망을 불러내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믿으면 소망이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소망을 품게 하십니다.

다음 그 소망을 이뤄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끝까지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틀림없이 지키십니다. 그래서 현재 그것이 없지만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으면 꿈이 현실이 됩니다. 소망을 품지 않는 것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원을 두게 하십니다.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 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틀림없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사랑의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나의 생명이시고 구원이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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