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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뱀과 놋뱀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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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뱀과 놋뱀 (민 21:4-9)

  민수기는 죽음의 땅 애굽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말한다. 광야의 길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에나,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성도들의 삶의 이이야기다. 광야 길은 우리의 인생 길을 말하는데, 그 속에는 불평과 반역의 이야기로 얼룩져 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예들을 불러내어, 구원해 주시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여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흘러나게 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승리하게 하셨다. 이쯤 되면 매일같이,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들은 눈만 뜨면 불평이요, 입만 열면 원망이었다. 민10장 이후에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넘쳐난다.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행진하는 끝에, 큰불이 떨어진다(11장).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자가 된다(12장). 10명의 정탐꾼의 원망이 나온다(13-14장).

  고라 일당이 모세를 원망하고 반역하다가, 지진을 만나 몰사하고,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염병으로 14,700명이 죽는다(16장). 20장은 모세 일생의 최악의 시간을 맞는다. 미리암이 죽고,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자, 모세는 화를 내며 반석을 친다.

  그 일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같은 혈족 에돔에게, 그 땅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형 아론도 죽는다. 아주 힘들고 절망적인 체험을 했지만, 모세는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전진했다.

  드디어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름길인,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오자 또 불평한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5)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6) 했다. 불평과 원망이 계속되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뱀들에게 물려죽게 되자, 당황한 백성들은 모세를 찾아와 죄를 뉘우치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다.

  이 불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하자(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8)고 하셨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자는 모두 살았다는 말씀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죄인 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 놀라워하며, 참 감사하며 기쁘게,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나요? 아니면 근심하며 염려하며, 불평하며 원망하며 살아가나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1. 언제 불뱀에게 물리는가?

(1)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하면, 불평의 원인이 되어 불뱀에게 물린다.

(1-3)을 보면, 아랏 왕과 전쟁이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심신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전쟁은 모조리 죽이는 헤렘(ם󰙠󰖒)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호르마(ה󰗪󰙣󰖎)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이 승리로 끝나자,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 심리적인 불안 상태에서 벗어나, 거의 탈진되었다. 마치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대 1로 싸운 엘리야와 같았다.

  엘리야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고, 하나님께 죽기를 호소했다. 따라서 인간은 쉴 때는 쉬어야 한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짐을 지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가게 한, 에돔 사람들이 정말 미웠다.

  지치고 피곤한 마음은, 미움이 차 오르게 하니, 그런 상태에서는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휴식은 일하는 것 못지 않게, 꼭 필요하다. 에너지를 방출했으면, 쉬면서 다시 충전을 시켜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2) 상한 마음이 치유 받지 못하면, 불뱀에게 물린다(4下).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마음이 상했으나 치유 받지 못하여, 속상하여 치료를 받지 못했을 때, 고침 받지 못했을 때, 바로 불뱀에게 물렸다.

  살다보면 속상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부부간에도 속상한 일들도 있고, 아이들 때문에 속상하고, 사업 때문에, 직장 때문에, 이웃 때문에, 교인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치유되지 않은 마음은, 악한 마귀가 불평하게 만들고, 결국 불뱀들이 날뛰어 죽게 만든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않자, 마음이 몹시 분했다. 동생 아벨이 들에 있을 때, 돌로 아벨을 쳐죽였다(창4장).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하였다. 그래서 사울의 마음은 심히 노했다.

  그 날 이후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이처럼 상한 마음을 치료받지 못하면, 불뱀에게 물릴 수 있다. 마음이 상했나요?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예수님의 보혈로 고침 받기 바란다. 말씀을 듣는 중에 치료하는 광선이 떠올라서, 치료받고, 성령의 위로함이 있기를 원한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왜 이들은 돌아가게 되었는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을 키우시려고, 훈련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순종하지 않음을 회개하면, 속히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창조하시고,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는 분이다. 우리 인생 길을 잘 알고 계시기에, 좋은 길로 이끄신다. 그런데 그 길이 못마땅해서, 너무 멀고 험하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 길을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만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동행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길이 못마땅하다고, 불평한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달려가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걸어오라고 하신다. 넓은 길로 가고 싶은데,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다. 달려가고 싶은데, 기다리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자.

(3) 원망하면 불뱀에게 물린다(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라고 했다.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진” 사실, 구원해 준 사실을 원망하고 있다.

  애굽의 노예들이었던 그들을 꺼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게 해준 것이 못마땅했다. 지옥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던 인생들을 꺼내서, 천국백성 삼아준 것이 못마땅했다. 땅의 백성들을, 하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심이 못마땅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불평과 원망하면, 멸망으로 가게 된다. 감사하는 사람은, 인생이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할 수 있다. 불평과 원망이 체질화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하며 원망한다. 늘 불평하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불평하고, 늘 감사하는 사람은 지옥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원망거리가 왜 없겠는가? 세상이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불평거리가 있다. 그러나 원망을 처리하는 기술이, 그 사람의 인격이요, 신앙의 수준이다. 불평에는 승리로 가는 해답이 없다. 망하는 지름길이 된다.

  어떤 장군이 전쟁 준비를 완료하고, 이제 돌격하면 승리하게 될 즈음에, 비가 쏟아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장군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면서, 부하들을 향하여 명령했다. “얘들아,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망하게 생겼다. 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활을 쏴라.”

  그 명령을 들었던 부하들은, 하늘을 향하여 활을 쐈다. 그런데 화살이 바람에 날려, 장군의 머리에 박혀 즉사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예정해 놓았다가도 거두어 가신다. 원망은 곧 자기 머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5절을 보면, (한)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그런데 (6下)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 지라”고 하였다. 많은 백성이 죽은 이유는, 불평은 전염되어, 함께 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다고 모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7).

  이와 같이 불평과 원망은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는 못된 성질이 있음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4) 세상을 다시 그리워 하면, 불뱀에게 물린다(5下).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나님이 제공하는 음식에 대하여 실증을 느꼈다. 권태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은, 신비한 음식이었다.

  하늘의 천사들이나 먹고사는 만나다. 그렇지만 이런 신비한 음식을 먹고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불만을 품었다. 이런 유사한 불만이 11장에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못 먹어 정력이 쇠하여 졌다”고 아우성이었다. 애굽의 과일,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습관적으로 불평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세상에서 놀던 것들, 세상에서 좋아하던 일들이, 아직도 신나게 느껴지나요? 세상의 못된 습관들을, 아직도 자르지 못했나요? 세상을 사랑할 때, 불뱀에게 물릴 수 있다. 이 불뱀에게 물리면, 신앙의 향상을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세상에 있을 때, 재미있게 여겨지던 것들이 시시하게 여겨져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신나고, 찬양하는 시간이 영광스럽고,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행복해져야 한다.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행이다. 신앙에 권태가 찾아와 세상을 그리워하면, 불뱀에 물리게 된다.

  코프라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물려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몸에 독이 퍼져 싸늘한 시체로 변해 버린 사람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죄와 더불어 놀지 말라는 말아야 한다. 불뱀과 놀다가 독뱀에게 물리면 죽게 된다.


2. 그 치유의 길은, 장대에 달린 뱀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죽음의 벌을 내리자, 백성들이 회개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회개하는 것만으로, 징벌을 끝내신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회개하면 용서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와서, 뱀을 제거해 달라는 중보 기도를 요청한다.

  이처럼 무서운 뱀에게 물린 사람,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어졌다. (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본즉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리라.”

  뱀은 히브리어로 ‘나하쉬’(שׁ󰖎󰗺)이고, 놋과 구리는 붉은 색을 가진 ‘네호쉐트(ת󰚆󰖓󰘁)다. 히브리어로 볼 때, 같은 어원을 가졌다. 이는 예수님의 모형이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장대에 높이 달려야 한다고 하셨다.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살게 된다는 말이다.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내가 죽어야 될 죽음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

  불뱀에 물렸어도,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살았던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 앙망하는 자는 구원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믿음에는 2가지가 있다. 신념과 신앙이다. 신념은 내 믿음이고, 신앙은 하나님의 믿음이다. 말씀으로 약속한 믿음이다.

  광야의 뱀은 참 무섭다. 독뱀이라도 햇빛을 받지 못하면, 독이 빠지는데, 여기는 광야요 사막이다. 계속 햇빛을 받은 뱀이라, 독이 아주 무섭다. 뱀에 물리면 불처럼 뜨거워지고, 고통 중에 죽게 된다. 이 뱀에 물리면, 약을 발라도 소용없고, 살을 도려내도 소용없었다. 목놓아 울어도 소용없다.

  그런데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려주셨다. 어떤 사람은 걸어와서, 그 뱀을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은 걸어올 수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서 왔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등에 업혀서 왔다. 어떤 사람은 질질 끌려왔다.

  이처럼 장대에 높이 달린 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죄의 결과를 똑똑히 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이처럼 불뱀에 물린 사람, 마귀에게 걸린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에 어떤 길도 없다. 지식도 선행도 철학도, 도덕도 저들을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도 분명히,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불뱀”에게서 상처받은 심령들을 향한, 구원의 소식이 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9).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본다고, 무슨 치유의 효과가 있겠는가? 독뱀에 물려서 고통과 비명가운데 죽어 가는 사람을 향하여, 장대 끝을 쳐다보라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그러나 여기에 능력이 있다. 여기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그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여기에 있다.  놋뱀 자체에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쳐다보면 살리라는 말씀에, 하나님의 약속이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살펴보면,

(1) 장대에 달린 놋뱀은, 독소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불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장대에 달린 그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그분을 바라보면, 구원을 얻는다.

(2) 백성을 상하게 만든 뱀은 “불뱀들” 복수로 되어있다.

그러나 저들을 구원하는 놋뱀은, 단수로 되었다. 죄는 많고 다양하지만, 치유의 길은 놋뱀 하나이지, 여럿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장대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유사한 뱀을 만들어 곳곳에 세워두었다 해도,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천하 인간의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 어떻게 오셨든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 믿으시기 바란다.


  결론이다. 불만이 찾아올 때 해결하는 10계명을 말씀드리면서 마치겠다.

1. 불평이나 문제 거리를 즉시 말하라. (오래 품고 있으면, 오히려 해칠 가능성이 커진다.)

2. 불만은 단둘이만 있을 때 말하라. (체면을 공개적으로, 손상당하면 좋은 사람은 없다.)

3. 불만을 말하기 전에, 이전에 감사했던 것을 몇 가지 말하라.

4. 말할 때는 1인칭으로 말하라. (그를 탓하기보다는, 나의 느낌을 말하라.)

5. 마음에 거리는 것을, 정확히 지적해서 말하라.

6. 그 사람의 행동을, 다른 사람의 결점과 덧붙여 말하지 말라.

7. 한 가지 불평만 털어놓아라. (한꺼번에 수많은 것을 말할 때, 기분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8. 과거의 것은 말하지 말고, 현재 문제만 이야기하라.

9.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화내지 말고, 요구하지 않는 태도로 제시하라.

10. 상대방의 견해와 감정을 꼭 듣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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