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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므비보셋이 받은 은총 (삼하 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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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이 받은 은총 (삼하 9:1~13)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운의 권자를 역사의 창을 통해 자주 보게 됩니다. 조선조 제 16대 임금인 인조 때 인조반정의 중심세력들이 세검정에서 피 묻은 칼을 씻으며 꿈꿨던 태평성대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치욕의 역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조반정 4년 뒤인 1627년에 후금(청나라)이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이 난을 가리켜 정묘호란이라고 합니다. 후금은 9년 뒤인 1636년에 청이란 국호를 공식적으로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이 난을 가리켜 병자호란이라고 합니다. 이때 인조는 남한산성에 피신했으나 40여일 만에 항복했습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은 1636년에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1644년 11월 26일 볼모에서 풀려나 이듬해 2월 18일 꿈에 그리던 한양 땅으로 8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에게 벼루를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인조는 청나라 황실에서 선물로 받아온 벼루를 받아들고 그것을 세자에게 던져버렸습니다.

소현세자는 그 벼루에 맞아 죽었습니다. 비록 야사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복동생들과 처남들을 죽인 태종 이방원의 정치적 야망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비운에 죽은 어머니의 한을 이기지 못하고 패주가 된 성종의 아들 연산군이 있었는가 하면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둬 질식사 시킨 조선조 제 21대 왕 영조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오른 수나라의 양재가 있었는가 하면 삼촌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 참담했던 현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극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비운의 세자 요나단과 세손 므비보셋은 사울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채 그 화려했던 왕가는 남가지몽(南柯之夢)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가의 종말과 함께 그의 뒤를 이은 다윗 왕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사울 왕의 왕자이자 자기의 친구였던 요나단이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당시의 신분상 위치로는 상극이어야 했으나 요나단과 다윗은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악신에 들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요나단은 다윗을 향하여 부왕 사울로부터 보호해 주겠노라고 맹세하고 자기 생명을 사랑한 것같이 다윗을 사랑했습니다(삼상 20:12-17). 마침내 다윗에게 사울로부터 결정적인 위험의 날이 온 것은 이스라엘 월삭인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통하여 사울의 의중을 살피게 되었습니다(삼상 20:4-11). 다윗은 자기 집안의 장형의 명령에 따른 제사를 이유로 사울의 식사 초대를 이틀씩이나 불참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어떤 제사를 어디에서 드리느냐에 따라 주(主)가 누구인가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다윗은 사울 왕의 신하가 아니라 다윗가의 권속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행위는 사울을 향한 정면 도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불참 사유를 자기의 아들 요나단으로부터 듣고 있던 사울은 크게 노하여 오히려 요나단을 질책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30-31절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고 했습니다.
요나단이 사울 왕에게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32절에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아들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지려 하는 것을 보고 요나단은 에셀바위 밑에 숨어 있던 다윗에게 이미 두 사람이 약속했던 활로써 사울의 뜻을 알려 주었습니다(삼상 20:35-40). 이때 다윗이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하고 서로의 입을 맞추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울 왕조의 패망과 다윗 왕조의 도래를 바라보며 우정어린 눈물을 흘릴 때 다윗이 더욱 심했습니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 전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자손들을 두고 맹세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41-42절에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고 했습니다.
므비보셋이 받은 은총은

Ⅰ.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약속에 기초한 것입니다.

본문 9장 1절에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1)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찾았습니다.
본문 9장 3절에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그의 생애 마지막을 장식할 블레셋과의 운명적인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수넴에 진치고 있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길보아산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은 패전하여 전사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둘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중심한 유다 사람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습니다(삼하 2:1-7). 또 하나는 군대 장관이었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울의 다른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습니다(삼하 2:8-10). 그 후에 백성들의 마음은 다윗에게로 기울고 아브넬이 자기가 세운 왕 이스보셋을 배신하고 다윗에게로 돌아갔으나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에 의해 죽었습니다(삼하 3:27). 이스보셋은 자신의 군대 장관 바아나와 레갑에 의하여 배가 찔려 죽었습니다(삼하 4:5-6). 이러한 사울 왕가의 비운의 종말에 요나단의 다섯 살 된 아들 므비보셋을 유모가 안고 도망치다가 땅에 떨어뜨려서 두 발이 절게 되었습니다(삼하 4:4). 그래서 그는 철모르는 어린아이 때부터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2) 로드발에 있는 므비보셋을 찾았습니다.
본문 9장 4절에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로드발이란 목초가 없는 황무지란 뜻입니다. 이 곳은 왕자가 살 곳이 못되는 왕궁과는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왕궁의 화려함과 위엄을 찾아볼 수 없는 황무한 곳입니다.
본문 9장 5절에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라고 했습니다.
다윗 왕이 므비보셋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사망의 곡성이 진동하는 세상과 짝하여 살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Ⅱ. 하나님 앞에서 므비보셋이 받은 은총은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약속의 실천입니다.

본문 9장 1절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9장 3절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다윗 왕은 자기의 은총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본주의 신앙과 겸손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므비보셋을 찾지 아니했습니다. 다윗 왕은 자기의 의리의 친구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진정 행복을 주고 싶었습니다.

1) 인격을 회복시켜 주는 은총입니다.
본문 9장 6절에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왕이 백성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인격적인 예우를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므비보셋으로서는 차마 감당치 못할 파격적인 예우입니다.

2) 구원의 은총입니다.
본문 9장 7절에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라고 했습니다.
왕위에 오르면 누구나 정적(政敵)과 그의 친인척을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주석가 랑게는 특별히 이 구절에 대하여 주석하기를 자기를 죽일까봐 떨고 있는 므비보셋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려는 다윗의 애정 어린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3) 기업의 은총입니다.
본문 9장 7절에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밭은 기브아에 있던 그의 사유지를 의미합니다.
다윗 왕은 그 조상의 사유지가 당연히 그 후손에게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9장 9-10절에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고 했습니다.

4) 왕과 교제하는 은총입니다.
본문 9장 10절에 『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3절에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왕과 함께 식사하는 영광의 축복이며 왕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5) 예루살렘으로 환궁하는 은총입니다.
본문 9장 13절에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므비보셋이 본래 것을 찾았다는 의미에서의 축복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자신이 왕자로서 요람을 펼쳤던 그 예루살렘에서 왕자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Ⅲ. 하나님 앞에서 받은 구원의 은총에 대해 보은하는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이 구원의 은총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1) 그는 감사했습니다.
본문 9장 6절에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라고 했습니다.
본문 8절에도 『저가 절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입은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하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구원받은 므비보셋이 구원받았다는 증표가 절하는 것입니다.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았기 때문에 절하는 것입니다. 엎드려 절하는 것을 보고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명의 문둥이를 고쳐주었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예수님께 나와서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자 가 없느냐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르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눅 17:11-19).여기서 사례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언행이나 물품으로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2) 그는 겸손했습니다.
본문 9장 8절에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가리켜 죽은 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전적 무능력을 고백하는 겸손의 말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지는 겸손입니다.

3) 그는 의리를 지켰습니다.
의리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일 때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다윗과 므비보셋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도망할 때 므비보셋은 자기의 종 시바가 그를 배신했기 때문에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바는 다윗에게 므비보셋이 아비의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1-4절에 『다윗이 마루 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 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다윗 가문의 부자간 싸움으로 엄청난 비극의 참상이 일어난 것을 보고 다윗이 환궁할 때까지 그 발을 맵시내지 아니하고 수염을 깍지 아니하고 옷을 빨지 아니하고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다윗 왕을 맞이했습니다.
사무엘하 19장 24-30절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바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므비보셋의 의리 있는 충성심을 알아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현대판 므비보셋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떨어져서 두 발을 사용 못하는 절름발이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 영생에서 떨어져서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축복에서 떨어져서 저주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아담이 지은 원죄로 인하여 날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8장 8절에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날 때부터 영적인 불구가 되었던 우리를 찾아오시는 은총입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계약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구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기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같이 먹고 즐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죽은 개 같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리고 감사하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예배하는 피조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사례하는 피조물입니다. 주를 위한 겸손과 그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충성된 의리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의무입니다. 이제 우리는 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5절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므비보셋의 보은은 다윗을 배반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지킬 의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각자의 육체에 채우는 일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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