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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왜 야베스의 기도인가?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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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야베스의 기도인가? (대상 4:9-10)

<다시 생각하는 '야베스의 기도'>
아마 목사님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절기 설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년주일 설교도 마찬가지이지요. 뭔가 새해 첫 주일에 걸맞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1주일 내내 고민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씀으로 한 해를 열까, 고민하다가 야베스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야베스의 기도는 제가 미국에 있을 때인 2001년도에 설교했던 내용입니다. 그 때 브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목사님이 쓰신「야베스의 기도」가 베스트 셀러가 되어서 수백만 부 팔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즉각 번역이 되어서 많이 팔렸을 것입니다. 저자인 윌킨슨 박사님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 본래 성품이 우리를 넘치도록 축복하시는데 있기에 우리가 열심히 구하면 넘치도록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구해서 넘치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야베스라는 것이지요.

「야베스의 기도」의 기도가 유명해졌을 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윌킨슨의 책「야베스의 기도」가 지나치게 상업주의적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또한 그가 그려낸 야베스의 기도가 지나치게 이기주의적이고 기복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야베스의 기도는 기독교적 기도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아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즉 '주기도문'이 우리 기도의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틀린 주장이 아닙니다.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새삼 왜 신년 첫 주일에 야베스의 기도를 끄집어냈을까요? 우리 성도들의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사는 것이 녹녹치 않습니다. 어깨가 쭉 쳐진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듯이 보입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듯이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빈 그물을 씻는 제자들처럼 실패를 자주 하는 분들도 많은 듯이 보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과 또한 다수의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신년주일 설교는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고통'이라면>
여러분, 야베스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가 드렸다는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가 기도한 뒤 어떤 응답을 받았을까요? 먼저 야베스는 성경에서 가장 지루한 책으로 유명한 역대기 상에 등장합니다. 특히 역대상 1-9장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말로 연결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족보입니다. 아담에서 이스라엘 12지파까지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에는 장장 오백명 이상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 야베스는 다윗왕의 혈통인 유다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이 별로 뼈대있는 집안이 아니었던지 3장에 나오는 왕족의 족보에 들어가지 못하고 4장에 비로소 반짝하고 잠깐 비쳤습니다.

여러분, 혹시 카메오(cameo)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 잠시 출연하여 반짝하고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단역 출연자를 카메오라고 부릅니다. 인기 배우나 유명 인사가 극중 예기치 않은 순간에 등장하여 아주 잠시 동안만 반짝 연기를 하지만 내용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출연자이지요. 서스펜스 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앨프렛 힛치콕이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던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깜짝 출연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유다 지파의 후손들을 소개하는 족보에서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500여명의 이름들이 지루하게 언급되는 한 가운데 갑자기 야베스가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하는 매우 단순한 내용만 언급하는데 반하여 야베스의 경우 두 절이나 할애해서 보다 구체적인 내력을 소개합니다. 그야말로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들이는 카메오인 셈이지요!

그러나 야베스의 이름은 좋은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9절 후반부를 보세요.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새번역은 그의 어머니가 고통을 겪으면서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그의 이름을 '야베스', 즉 '고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벌써 야베스의 출신 성분이 심상치 않음을 암시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야베스'라는 이름은 '괴롭게 하다' 혹은 '슬프게 하다'의 뜻을 가지는데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이름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 운명 등을 암시했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혹은 '빼앗는 자', '속이는 자'였는데 그는 이름 그대로 형 에서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또한 나오미가 그 두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말론은 '병약한'(puny)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기룐은 '수척해지다'(pining)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름 그대로 두 사람 모두 젊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룻 1: 1-5). 또한 솔로몬의 뜻은 '평화'(peace)인데 그는 이름처럼 전쟁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합니다. 누가 자식에게 '나발'이나 '밧세바'나 '가룟 유다'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겠습니까? 이처럼 이름이 한 사람의 운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개 좋은 뜻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할 때 '고통'을 뜻하는 야베스라는 이름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지어주었다는 사실은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사실 야베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대상 4: 9-10절의 두 구절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의 출생 배경에 대해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먼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에서 야베스가 사생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이지요. 오다가다 만난 사람과 정을 통해서 떳떳치 못한 가운데 태어난 사생아가 야베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유복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야베스를 임신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요.

아니면 야베스라는 이름이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뜻을 가진다면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난산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이와 같은 난산으로 야베스가 기형아나 불구자로 출생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났거나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유복자로 야베스를 낳았을 때 장차 이 자식을 어떻게 먹여 살릴까 경제적인 문제로 근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적어도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으로 보건대 야베스는 어머니로 하여금 "이제 너는 고생문이 훤하겠구나!"하는 탄식 한 가운데 태어난, 대단히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9절 전반부에 보면 이와 같이 서글픈 출생 배경과 상처투성이의 과거를 지닌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가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더 존귀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야베스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축복과 존귀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바로 그의 담대한 기도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야베스는 도대체 어떤 내용의 기도를 드렸기에 축복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야베스의 기도>
첫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복을 달라고 하는 기도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근본 성품은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복받을 자격이 있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신 까닭에 그냥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을 베풀기 원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여러분이 가진 신관(神觀)이 중요하지요.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불의를 보면 참지 않으시고 마구잡이로 심판하시는 진노의 하나님? 법률과 질서를 엄격하게 적용해서 항상 우리를 감시하시고 벌하시는 우주적 경찰관으로서의 하나님? 아니면 항상 우리의 윤리 도덕적 완전무결성을 요구하시는 거룩한 완전주의자로서의 하나님? 그리하여 우리가 조금만 실수하고 불완전해도 금방 실망하시는 그런 하나님? 오늘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의 신관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오류입니다!

출 34: 6절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자비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해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열심히 구하여서 기왕이면 더 잘살고 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를 축복해주시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건강하고 잘살고 성공하고 승리하길 원하십니다.

잠 10: 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구해야 합니다. 약 4: 2절에 보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약 4: 3절은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 축복을 어떻게 누리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자세에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정욕만 위하여 축복을 구한다면 그런 축복은 의미가 없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영화롭게 하는 축복은 우리가 반드시 누리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야베스는 자기가 어떤 축복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받게될 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채 그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하는데 자기의 책임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 7: 7-8절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은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복을 채워주시길 원하시는 분인 까닭에 열심히 구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힘써 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야베스는 이제 이와 같은 축복을 놓고 보다 더 구체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둘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기의 지경을 더욱 넓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영토를 넓혀 달라고 기도한 것이지요. 야베스가 살던 시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12지파에 골고루 땅의 지분을 나누어주었던 시대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땅 한 조각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숨을 건 전쟁을 수없이 치러야 했으며 땅을 넓힌다는 것은 무한히 생육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는 단순히 이기적인 복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책임을 달라고 하는 큰 비전을 품은 기도인 것입니다. 

만일 야베스가 아프리카 땅에 선교사로 갔었다면 "하나님, 저의 선교구를 더 넓혀주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만일 기업체의 CEO였었다면 "주님, 저에게 더 많은 고객들과 시장 점유율을 허락하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가에서 일했었다면 "하나님, 제가 투자한 주식세가 오르게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의사였었다면 "주님, 더 많은 환자들을 허락하소서!" 하고 기도했겠지요. 목사였었더라면 "주님, 더 많은 성도들과 더 많은 목회 사역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자기 집을 갖지 못하고 남의 집을 세내어 사는 사람이었을 경우, "하나님 이왕이면 좋은 저택을 주셔서 더욱 안락한 삶을 살게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실패하는 것보다는 성공하는 것이, 못사는 것보다는 잘사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좋고 이웃에게도 좋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윌킨슨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할 때 흔히 다음과 같은 인간적인 계산방식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즉 "내 능력 + 내 경험 + 내 인격과 외모 + 내 과거 + 다른 사람들의 기대 = 나에게 할당된 지경"이라는 계산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윌킨슨은 슥 4: 6절에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계산 방식을 말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약점 + 하나님의 의지와 초자연적 능력 = 나의 지경을 넓혀나감." 우리의 부족함과 약점을 그대로 지닌 채 간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순전히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과 물자와 지혜를 허락하셔서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야베스는 주님의 손으로 자기를 도와 불행을 막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달라고 간구한 뒤 그 목적을 향하여 열심히 나가다 보면 어려운 장애물이 하나 둘 출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한 축복은 그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기적적인 선물이 아니라 우리가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한 뒤 어려운 장애물들을 잘 통과한 뒤에 주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심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시는 능력을 상징합니다(수 4: 24; 사 59: 1 참조). 또한 사도행전 11: 21은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말함으로서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다고 말씀합니다. 야베스는 자기의 지경을 넓혀나가는데 있어서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야베스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산다고 해도 환난과 시련이 때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수없이 많은 근심이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우리의 지경이 크게 넓어져 엄청난 축복을 받게되었을 때 우리는 실수해서 죄악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건실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뒤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저버림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축복이 근심 없는 축복,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 받는 축복이 되어야지 추한 이기심으로 일그러진 축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축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을 경우 빼앗아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고전 10: 12절 말씀처럼 환난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우리는 우리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써 끝까지 아름답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세요>
한 남자가 한 밤중에 사막에서 길을 걷다가 음성을 들었습니다. "밑을 보고 돌멩이를 주어 네 주머니 속에 채워 넣어라. 내일 아침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경험할 것이다." 사나이는 지시대로 했습니다. 이튿날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던 돌멩이를 꺼내 본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돌멩이는 모두 다이아몬드였던 것입니다. 그는 기쁘면서도 슬펐습니다. 호주머니 속에 넣은 돌멩이들이 모조리 다이아몬드였기 때문에 기뻤지만 그럴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넣지 못했던 것이 슬펐습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이 왜 야베스의 기도를 힘써 드려야만 합니까? 야베스는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특별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근본 성품이 넘치는 축복을 쏟아 부으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과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사람이 되어서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당대의 가장 유명한 율법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난 중에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비참하게 일생을 마쳤을 야베스가 그의 가족들 중에서 가장 큰 존영을 얻었던 것이지요. 열등감과 상처로 괴로워하다가 불평만 하다가 비극적인 인생을 마쳤을 그가 그 누구보다도 큰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축복 달라고 기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모두 야베스의 기도를 힘써 드려보십시오. 야베스가 구한 것을 다 이루어주신 주님께서 여러분이 구하는 것도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2008년도에는 여러분들 가운데 야베스와 같이 풍성한 은총과 축복을 받는 분들이 넘쳐 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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