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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셀 지파의 복 (신 3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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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셀 지파의 복 (신 33:24-25)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이 꼭 받아야할 복된 말씀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아셀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본 분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었나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셀은 야곱의 8번째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셀의 출생에 대해서는 창세기 30:9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아와 라헬은 서로 야곱의 사랑을 얻기를 경쟁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레아와 레헬은 심지어 자신을 대신하여 하녀를 통해 야곱의 자식을 남으로서 야곱의 사랑을 확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형제였지만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연적들이며, 경쟁자들이었습니다.

레아에게는 충성스러운 하녀 실바가 있었습니다. 레아는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야곱의 사랑이 자신을 떠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때문에 하녀 실바를 자신의 대리자로 내세워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기를 원했습니다. 레아의 하녀 실바는 야곱을 통해 두 자녀를 낳았는데 그 첫째가 갓이고, 둘째가 바로 아셀입니다. 갓이라는 뜻은 복이라는 뜻입니다. 갓 지파는 활과 검술에 능한 지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갓에 이어서 8번째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아셀입니다. 아셀이 태어났을 때 레아는 너무나도 기뻐서 소리치면서 외치기를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고 했습니다.

아셀이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또는 행복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기쁘다는 의미보다는 내가 축복을 받았기에 기쁘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레아가 아셀을 낳고 외친 기쁘다는 말은 “ 내가 참 복되도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복된 사람이라고 하리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셀 지파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기쁨은 내 인생의 문제가 해결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기쁨은 내 마음의 소원이 해결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셀 지파처럼 기쁨의 지파가 되어야 하고, 복을 받는 지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셀 지파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은 무엇입니까?

1. 형제들 중에서 더 복을 받는 사람이 되라.

본문 25절 말씀에 보면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아셀은 그 형제들 중에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의 말씀입니까? 아셀은 형제들 중에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이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나가서 믿지 않는 친척이나 형제들을 만날 때 체면이 서야합니다. 예수 믿어서 복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복만 받아서는 안 됩니다. 물질의 복도 받고 건강의 복도 받고, 오늘 말씀처럼 형제들 중에서 더 많은 복을 받고, 형제들에게 사랑을 받고, 기쁨이 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아무리 잘 믿어도 형제들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끼치고, 예수를 자랑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아셀처럼 복을 받아 형제들 중에 어떤 사람보다 더 큰 복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끔 가족 행사를 하다보면 체면이 서지 못하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저도 과거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가난한 전도사가 가족들 앞에 얼마나 불쌍해 보였겠습니까? 요즘은 그렇지가 않지만, 한 때 저희 장모는 “먹고 살만하냐?”가 인사였습니다. 참 사위체면도 서지 않고, 예수 믿는 목사로서 체면이 서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경험을 해서 압니다. 한 때 저도 가슴이 아파서 아셀처럼 형제들 중에 더 복을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로 꼭 형제들 중에 더 많은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체면을 세워 주는 시원한 여름날의 냉수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힘없고 연약할 때 형제들에게 얼마나 핍박을 받았습니까? 그는 11번째 태어난 거의 막내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지만 형제들은 그를 벌레나 뱀을 보듯 아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형제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형제들은 그를 죽이려고 우물에 던져 넣기도 했습니다. 다행이 물이 없는 우물이라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그는 이집트의 노예로 은 20개에 팔려갔습니다. 그는 형제들보다 힘도 없었고, 뛰어난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에서 견고하게 믿음을 지키고, 여인의 성적인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집트이 총리가 되었을 때 모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제들 중에 가장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제들의 장자가 되어 권세를 가지고 모든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형제들은 그에게 머리를 숙이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 안됩니다. 그들보다 더 복을 받아 형통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아셀의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가 받은 복도 크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도 크지만 아셀처럼 형제들 중에서 더 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형제들의 머리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형제들 앞에서 그동안 들 수 없었던 머리를 들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 앞에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내가 복을 받게 되었다고 간증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형제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고 위신을 세워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형제들 앞에서 과거에 내 자신이 머리를 들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아셀 지파가 되어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회복되고 형제들보다 더 복을 받아 형통해야 합니다.

진실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 형제들 중에 더 많은 복을 받아,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형제들의 기쁨이 되는 복을 받으라

하나님이 이렇게 형제들보다 복을 주시는 것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교만함을 위해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셀지파의 사명은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기 위함입니다. 요셉이 성공함으로 70명의 가문이 복을 받고, 형통한 것처럼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가문이 일어서고 축복을 받으며,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교만함으로 다가 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는 창세기 50:20-21절을 통해 말하기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자신의 독점적인 축복으로 여기지 않고, 형제들과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은혜의 말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물질의 복과 자녀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얍복강을 건너 하란 땅으로 갈 때 그는 수중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란에서 출발하여 얍복강을 다시 건너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는 엄청난 부유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선한 뜻은 아니었지만 그는 기꺼이 자신의 부를 그 형 에서와 나눠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들보다 뛰어나게 하시는 것은 자신을 자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형제들을 돌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형제들에게 사랑받고 형제들의 기쁨이 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5:8절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 형제들과 가족들을 잘 돌아 봐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형제들 중에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셀이 받은 축복은 이처럼 형제들 중에 뛰어난 자가 될 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의 기쁨이 되는 축복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돈을 많이 벌기만 해봐라 내가 출세만 해 봐라 그 동안 나를 무시한 형제들에게 복수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형제의 인연을 돈 때문에 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의 인연까지도 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형제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들 중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 서로를 돌아보는 제직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연결하신 분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고, 화목하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분명히 이사야 53:5절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고 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피 흘려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5:9절에도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로 인해 가는 곳마다 평화가 임하고, 화평함이 만들어 지고, 기쁨이 넘치며 형제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바로 아셀이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3. 발에 기름이 잠기는 축복을 받자

아셀이 받은 축복은 그 발이 기름에 잠기는 축복이었습니다. 창세기 49:20절에는 아셀의 아버지 야곱이 아셀을 축복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아셀은 일생동안 평안과 물질의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축복한 대로 그리고 모세가 축복한 대로 아셀은 가나안 땅 중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가 경작하는 땅에서 나는 식물들이 얼마나 귀하고 풍성하고 기름졌으면 왕의 수라상을 차리는 지파가 되었겠습니까? 얼마나 복을 받았으면 그 발에 기름이 잠길 정도의 복을 받았겠습니까?

아셀 지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남쪽이 아닌 오늘날의 레바논 가까운 북쪽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갈릴리 호수와 아주 풍부한 삼림이 우거진 지역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농사지었고, 말씀대로 그들의 발은 비옥한 땅에서 기름에 젖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생산한 곡물은 수라상에 올라가는 존귀한 식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셀 지파를 부를 때 “곡물지파”라고 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릴 때 아셀 지파는 늘 수확이 풍성한, 그리고 곡식이 쌓여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도는 더 좋은 것으로 풍족하게 응답되는 것입니다.

오늘 왜 많은 말씀 중에 아셀의 축복을 받으라고 하셨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형제들 중에 더 복을 받아야 하고, 이웃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기쁨의 교회가 되고, 나가서 우리들이 삶이 풍족해 지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발도 기름에 잠기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생산해 내는 복음과 비전과 꿈이 세상을 먹이는 질 좋은 양식이 되고, 풍요로운 영적인 양식이 되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4.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능력을 받자

오늘 우리는 25절에서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철과 놋으로 된 문빗장이 있는 집은 아주 견고한 집입니다. 이것은 보통 집이 아니라 아주 강한 성과 같은 집이요 쉽게 무너지지 않은 집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형제들 보다 더 복을 주시고,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고, 발에 기름이 잠기는 물질의 복을 주었어도 지키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축복은 한 번의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는 날 동안 일생동안 그 힘과 능력과 부어 주신 복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듣기만 해도 기쁜 말씀입니까? 그러나, 말씀은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말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는 각 지파를 상징하는 12 가지의 보석이 나옵니다. 12가지의 보석 중에 아셀 지파는 호마노라는 보석입니다. 호마노는 일종의 옥돌입니다. 호마노의 뜻은 불꽃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히브리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호마노라는 보석의 색상은 아주 진하게 붉은 색상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고대 히브리인과 중동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보석은 두 가지의 상징을 가지고 사용되었습니다. 그 첫째는“영광”이고, 둘째는“축복”입니다. 그들은 이 보석을 가지게 되면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가문과 자신에게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셀 지파는 복을 받은 지파입니다. 아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말로 옮기면“앗쉐레”라고 합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 45번 등장하는데, 27번은 축복이라는 의미로, 18번은 기쁘다는 뜻으로 쓰여 졌습니다. 이 앗쉐레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시편 1:1절입니다. 시편 1:1절에는 “복 있는 사람은....”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사용된 복이라는 말이 바로 “앗쉐레”라는 말입니다.

나는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모두가 “복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리에도 앉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열매 맺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앗쉐레가 있는 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오늘 아셀 지파에게 주셨던 그 복을 주실 것입니다. 형제들 보다 더 뛰어난 복을 주실 것이고, 형제들을 기쁨으로 돌아보는 장자의 권세도 주실 것이고, 여러분들의 인생이 복을 받아 그 발이 기름에 잠기게 될 것이며, 문빗장이 철과 놋으로 견고해지고 살아가는 날 동안 쇠하거나 무너지지 않는 강한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보혈 안에서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가인처럼 에서처럼 롯처럼, 이스마엘처럼 하나님을 떠나 복을 받으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 여러분들의 인생에 올무가 되고, 죄 덩어리가 되어 결국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망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셀의 복을 받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런 복을 하나님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들이 이런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 되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피의 권세로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셔 들이고, 영접함으로서 아셀의 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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