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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에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드니라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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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마귀는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드니라 (마 4:1-11)
 
이제 오늘로 1월의 세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날짜로는 20일이니까 하순의 시간에 접어들었다 생각이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올해 신년예배 때 마음정하고 기도하신 것, 또 신년주일에 마음먹고 행하시려 계획하였던 모든 것들이 은혜가운데 진행되고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벌써 이제 조금 지나면 1월이 지나게 되고 한 해의 1/12이 지나게 됩니다. 단순한 12개로 나눈 한 달이 아니라 1월이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연초부터 시작해서 방향이 결정되고 거기서부터 좌절되면 우리는 또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쯤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험에 대해서 혹시 쟁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새롭게 마음먹고, 또 새롭게 계획하고 이루다보면 반드시 어려움도 있고 소위 말하는 시험이 우리에게 닥쳐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확인하고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의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즉 역사의 전면, 십자가 사역을 위한 본격적인 행로에 이르시기 전에 몇 가지 준비의 과정을 거치시게 됩니다.
즉, 때를 기다리셨다가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하시게 됩니다. 40일간을 금식하며 기도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금식기도를 마친 후에는 사단에게 시험을 받게 되는데 그것도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아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그것을 승리하십니다.
그 이후에 본격적인 제자의 선택과 예수님의 사역의 일정으로 들어가시게 됩니다.
제자선택, 그리고 산상수훈,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기적과 능력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천국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그의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는 은혜의 사역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은 그와 같은 과정 속에서 예수님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사단에게 시험을 받고 그것을 승리하는 모습을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주님의 사역과 삶에 있어서 우리에게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시험의 경우를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이루었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우리 성도님들이 많이 읽고 또 설교말씀도 들었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한 후에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할까?’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시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험의 순간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공생의 사역을 위해서 시험을 통과하심으로 그 어떤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는 것과 또 반드시 통과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4장 1절>을 보니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을 보니 때로는 우리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에게 어려운 시험이 닥칠 때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삶의 순간을 만났을 때 이것은 반드시 내게 있는 혼자만의 고통은 아니다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 예수님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있는-그와 같은 상태에서도 시험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고 있지만 시험도 당할 수 있고, 어려운 장면에 노출될 수도 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연단되고 강하게 만들어져 우리의 사역을 이루게 된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는 순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은 이 순간에도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은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겪는 것이며 그들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극복하고 해결할 것이고 나도 역시 그럴 것이다 라는 마음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나는 이 어려운 시험을 능히 감당하고 시험을 면하게 될 것이다 라는 확신 또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청년들과 선교를 가면서 마음에 상당히 든든한 면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성도님들이 무엇보다도 열심히 기도해주셔서 마음에 큰 평안함과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일사분란하게 어떤 일이든지 마음속에 주저하지 않고 계획된 대로 모든 일을 이루게 됨을 또한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 생명구원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영혼에 대한 순수한 사랑, 어려운 이들에 대한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의 심정들이 너무나도 절절히 흘러나와 마음에 충분한 감사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선교지이다보니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늘 있기 마련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약속을 해도 또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는 것도 아니고, 이러저러한 상황들이 항상 수시적으로 바뀌어서 늘 그 일들을 수습해야 하는 전투적인 상황임을 늘 느끼게는 됩니다.
그리고 또 아무래도 낯도 설고, 물도 설고, 밥도 설고, 모든 면에 있어서 또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다 보니 또 혹시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참 마음이 편했던 것은 의료선교 위원회에서 의료 선교팀을 보내주셔서 청년들과 더불어서 같이 의료선교사역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서 마음이 참 편안했습니다.
가서 현지에서 의료선교사역을 펼칠 뿐만 아니라 우리 청년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즉각적으로 모든 일을 처치해서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볼 때 참 마음에 평안함을 가졌습니다.
그야말로 집에서는 그러지 않을 텐데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배가 아프다고 해서 달려와도 우리 집사님들이 우루루 일어나서 진단도 하고, 또 처방도 하고, 투약도 하고, 모든 일을 금방 처치를 해서 모두가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보니까 저는 목사로서 그저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항상 어디 가서 중요한 것은 유사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사시에 대처할 길과 방법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평안함 가운데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어서 참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고, 나에게 함께 하시니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시험을 받아도 결국 성령의 이끌림 가운데 진행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하게 성령께서 결국 나에게 기쁨과 은혜와 승리로 결말을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주 극적인 순간에는 나에게 은혜주시고 도와주시고 은총을 주신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감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떠한 고통의 상황에도 주의 성령은 나와 함께 하시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나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마음속에 확신으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운 시험은 순간 우리들에게 가장 약한 면이나 힘들어하는 일, 또는 우리에게 있어서 버릴 수없는 가장 애틋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4장2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한 후에 주리신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십일을 금식하셨는데 인성의 모습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힘도 약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지고 또 기력도 쇄하여져서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사람이 모든 컨디션이 좋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감도 생기고 또 대처할 능력도 커지겠지요. 그런데 이런 가장 약한 때 시험이 온다는 것은 엎친데 겹치는 격으로 그야말로 가장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시험을 당한다는 것이 어느 때죠?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때 아니잖습니까?
가장 약한 때 아닙니까?
가장 우리에게 있어서 약점으로 있는 부분에 시험이 다가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우리의 약점을 미리 파악하여 보완하고 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정리정돈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늘 대처한다면 상대적으로 시험도 적어질 수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을 집중적으로 방어하여 해결할 수 있겠지요.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나 약한 부분으로 시험이 온다 해도 결국 그것은 또한 나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 내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극복시켜 다음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여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시험이 약한 부분으로 오니 우리는 그 약한 부분을 미리 보완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강한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가끔가다 자리를 비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꼭 하는 것이 있는데 어디 선교를 나간다든지, 어디 다녀 올 때 되든지 하면 제가 꼭 하는 것이 있는데 서랍을 정리해요.
방정맞은 생각이 아니라 당연히 위기에 대한 관리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나쁜 생각이 아니라 정당한 생각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늘 어디 갈 때 되면 책상을 정리해두고 갑니다. 그래야 나중에 만약에 제가 못 돌아올 상황이 된다고 해도 언젠가 어떤 처리를 해야 되잖아요. 거기에 제가 딱 써서 붙여놔요.
혹시 이것을 열어보는 순간,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이런 문제들이 대두되겠지요.
그래서 이건 이렇게 하고... 몇 가지 늘 이렇게 써 붙여놔서 누구든지 혹시 저 없을 때 책상을 열게 되면 그 다음 일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것은 어디든지 지도자라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위기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때때로는 우리가 어려운 부분이다. 또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들을 미리 정돈해 두면 우리는 때대로 어려움을 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 우리 한 번 따라서 합시다.
"철저하게 준비해두면 준비한 것이 필요 없게 되고 준비해두지 않으면 어려움을 당하여 후회하게 됩니다."
저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준비를 하면 준비한 것이 필요 없게 됩니다. 왜 그렇죠?
준비하는 사이에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상 괜히 준비했네. 괜히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준비하는 과정 속에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준비한 것이 필요 없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준비를 안 하게 되면 늘 그 부분으로 어려움이 다가오게 되고 늘 왜 준비 안했을까하고 후회하게 되는 겁니다.
준비해서 필요 없게 만들어야지 준비 안 해서 후회하게 만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있어서 어떤 부분이 약점인가, 또 내게 있어서 어떤 부분이 어려움인가를 미리 파악하여 그 부분을 우리가 미리 보완해 놓는다면 비교적 우리들에게 넘어가도 될 어려움들을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시험과 어려움과 고통의 기회로 방치해 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어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그것을 극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시험을 받으니 우리가 시험받는 순간에도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일들을 진행하고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통과하신 시험은 세 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첫 번째는 의식주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사십일을 금식을 한 후에 주리게 되셨을 때 바로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와서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사십일을 금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예수님이 배고프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겠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로 너는 돌들을 떡덩이 되게 하라. 너의 배고픔을 면하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가끔가다 삶이 지루하다 생각되면 금식을 해보면 삶이 갑자기 활기가 돌게 됩니다.
삶이 좀 지루하고 권태롭다고 생각하면 금식을 한 번 해 보세요. 그러면 인생이 갑자기 재미있어집니다. 안 믿는가 본데 한 번 해 보세요.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금식을 하면 금식기도 끝나면 하여간 무조건 기뻐요.
기도제목이 응답받고 안 응답받고를 떠나서 금식을 작정했던 시간이 지나면 하여간 일단은 기뻐요.
제가 이 금식기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데 금식기도를 하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간절해지더라고요. 금식까지 하는데 다른 것 뭘 하겠습니까? 기도하는데 집중하고.

두 번째는 뭐냐고 하면 금식기도를 하다보면 정말 사람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식사 좀 며칠 못한다고 해서 조금 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사람의 그 본 모습이 그렇게 연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문제가 어려워서 금식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금식하는 것이 힘들다보니까 문제가 아주 작아 보여요. (지금 이해가 되세요?)
그러니까 내가 이걸 가지고 금식을 했나? 별것 아닌데 금식할 필요도 없는 걸.
이렇게 마음이 되어버릴 정도로 기도의 제목에 대해서 내가 괜한 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고 근심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금식을 하는 과정 가운데 사건의 중심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금식을 하다보면 깨닫는 것이 많아요. 이것 정말 내가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될 것인데 이걸 가지고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다니 하는 문제의 해결도 이루어지고, 또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도 있고, 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또 금식이 끝나면 ‘삶이라는 것은 참 살만하다.’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이 말이 이해가 잘 안되면 금식을 한 번 해 보세요. 그럼 목사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 금식을 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마치 먹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때가 있겠지요. 사단은 오늘 그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자,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신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금식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사역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관심은 십자가의 사역에 가 있으면서 금식을 한 겁니다.
그런데 사단은 눈에 보이는 가장 큰 현상으로 예수님의 배고픔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배고픔을 지적해서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때 예수님은 거기에 서서 일언지하에 그 시험을 피하셨던 겁니다. 뭐냐 하면 나는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서 지금 금식을 하고 이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은 뭐냐 하면 본질이 있는데 본질에서 다른 눈에 보이는 현상 한 가지를 붙들어서 본질을 흔드는 겁니다.

우리가 가끔가다 보면 정말 해야 될 중요한 일이 있는데 눈앞에 있는 작은 일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다보니까 우리는 그 문제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다보니까 정말 중요한 본질의 문제를 놓쳐 버리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저는 오늘 문제에 있어서 사단의 시험은 결국 우리의 본질을 흩트리게 하는 혼란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먹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배고픈 것이 아니냐?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마음을 쏟거나 시간을 쏟아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끔가다 우리에게 사단이 하는 가장 대표적인 전술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일 가운데 어려움을 극대화시켜서 거기에 우리를 매달리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 걸 필요가 없습니다.
기분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좋게 한다 나쁘게 한다 사실 그거 별것 아니거든요. 별거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될 내 삶의 사명, 내가 가야 될 길, 가야 할 목표에 따라 보면 그런 것 별로 그렇게 큰 것 아니란 말입니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에 따라서 일을 하고 안하고 결정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를 좋게 한다 나쁘게 한다에 따라서 내가 일을 하고 안하고 결정한단 말입니다.
이것은 아주 지업적인 문제란 말입니다.
내 기분이 좋고 나쁘고는 별 문제 아니란 말입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작은 문제에 걸려서 결국 저기까지 가지도 못해요. 그 문제를 가지고 이리저리 어려워서 해결하다보니까 벌써 우리가 가야 할 목표는 저기 떠내려가 있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은 정확히 파악하셨습니다.
네가 나에게 그 문제를 가지고 해결하고 결판을 보자고 하는데 그것은 내가 봐야 할 결판이 아니야.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거야.
그러니까 사단은 엉뚱한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시험을 건 겁니다. 엉뚱한 것을 가지고 시험을 건 거라고요. 예수님은 그것을 파악하신 겁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기분 좋고 나쁘고 거기에 너무 좌우되지 마세요.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그것을 가지고 너무 좌우되지 마세요. 그런 거 의연히 떠나보내고 우리의 가야 할 길을 향하여 뚜벅뚜벅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은혜란 말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시험에 든다라는 것이 뭐냐면 너무 사소한 것에 집중한 겁니다.
여러분 시장해도 슬퍼도 목사는 목사고, 성도는 성도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에 들어도, 안 들어도, 나는 그 길 가는 겁니다. 내 마음에 기뻐도, 안 기뻐도, 나는 그 길 가는 겁니다. 시간 지나면 그 순간 조금 기뻤다, 나빴다, 그렇게 큰 일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한 순간에 좋고, 나쁘고, 우리의 감정이 어떻고에 따라서 “에이” 하고 우리가 치워버린다면 아주 작은 순간 때문에 우리는 전체를 놓쳐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가 해야 될 사역에 비하면 지금 잠시 배가 고프다, 안 고프다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내 본질을 추구함을 놓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성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럼 내게 있어서 그렇게 시험이라고 느껴졌던 것들이 우스워지는 겁니다.
아니 내가 이걸 시험이라고 생각했나? 내가 이걸 어려움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기도하는 것 보세요. 사람들에게 어려움당하고, 또 어떤 사람이 내 마음 상하게 하고, 누가 나에게 엉뚱한 얘기하고... 뭐 이런 것 가지고 기도하고, 이런 것 가지고 마음 상하고 내 마음 치유해 주십시오. 라고 하다보면 나중에 조금 지나가 보면 ‘아휴, 내가 왜 그런 것을 가지고 그렇게 했나? 별것 아닌 것을. 그냥 주님 보고 몇 걸음 뚜벅뚜벅 갔으면 그냥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했던 것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극복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국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셨던 것이지요.

두 번째 믿음에 관한 확신에 대한 시험입니다.
이제 그 시험을 통과하니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갔죠.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라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려라 천사가 와서 너를 받아줘서 너는 안 다칠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죠.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 하셨냐면
“또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닌 겁니다.
내가 뛰어내려서 나를 받아줘서 하나님이고 안 받아줘서 하나님이 아닌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받아주시나 안 받아주시나 한 번 시험해 볼까?
하나님은 그런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해 줬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는 분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 기도를 응답 안 해줘도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최고의 길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원했는데 해결이 안 되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하나님의 또 다른 해결이 있는가하고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게 진정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시험해야 될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보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신, 사람에 대한 불신도 습관인 것 같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습관인 것 같더라고요.
사람도 늘 믿어주는 사람은 사람을 보면 신뢰의 마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늘 사람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의심의 관점에서 늘 사람을 대합니다.

여러분 사람도 의심의 관점으로 대하면 한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설교하는데 우리 성도들이 차마 지금 고개 떨구고 눈감으면 목사에게 실망을 줄까봐 지금 고개 들고 있지만 사실 딴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렇게 제가 설교해보세요. 그러면 제가 설교하는데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제 생각에는 우리 성도들이 얼굴 하얗게 들고 (숙이면 까맣게 보이지만 들면 하얗게 보이잖아요. 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얼굴 하얗게 들고 앞을 바라보는 것은 그래도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어떻게 내 마음의 양식을 삼을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마음이 드니까 제가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지요.
아, 지금 얼굴은 저렇게 들어도 생각은 딴 생각.... 그러면 제가 말을 자꾸 더듬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딴 얘기 헛 나올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성도들이 집중해서 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정교하게 듣기 위해서 애를 쓴다라고 생각하니까 집중도가 더해지는 것이겠지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이와 같은 확신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람에 대해서도 신뢰하게 되면 결국 사람은 믿어준 대로 한다고 하잖아요.

여러분 사람이 의심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불안해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죠? 마음의 평안입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뒤에선 또 딴 생각할거야. 그 순간 우리 인생이 얼마나 초라해집니까?
우리는 바로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를 가진다는 것은 믿고 나가면 됩니다. 설사 내 마음대로 안 되어도 결국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겠다라는 거지요.

오늘 성경을 보면 사단은 성전 꼭대기로 데려 갔어요. 저는 이것이 사단의 교란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그럴듯해요. 성전 꼭대기로 가서 거기서 가장 믿음이 있는, 가장 신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원 갔다가 시험받은 사람 많습니다. 교회 봉사하다 시험받는 사람 많다고요.
거룩한 일을 하고 있으니 내가 여기서 무슨 시험을 받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전꼭대기에 올라가서 시험받잖아요.
때때로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은 미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예배시간에 와서도 예배시간에 앉아있는 것 때문에 시험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은 자칫 생각하면 시험은 우리 마음에 거룩히 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시험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방심하지 말고 사단의 교란전술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야, 너 이게 정말 믿음이야! 하고 그럴듯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 가운데 우리하곤 딴 길로 가게 하는 겁니다.
믿음은 미신과는 달라요. 믿음은 미신이 아닙니다.
내가 뛰어내려서 하나님이 받아주니까 하나님이고, 안 받아줘서 내가 죽으면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말 있다면 나를 한 번 받아주십시오. 하고 뛰어내린다면 이것은 미신이지 믿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가서 확신이 있어요.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내려가다 호수가 있으니까 그냥 뛰어들었습니다. 물위를 걸을 것 같아서요. 그럼 그 사람 빠졌겠어요? 걸어갔겠어요?
뭘 생각해요? 당연히 빠져야죠.
왜 빠져야 돼요? 그 사람이 물위를 걸어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그 사람이 물위를 걸어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예요.
하다못해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물에 빠진 사람 구하러 걸어들어 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어떻게 의미가 있겠지만 그 사람이 물위를 걸어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럼 그것은 뭐죠? 그것은 미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해야 될 분명한 목적이 있어요.
기적이 왜 일어나야 됩니까? 주님을 위해서 일어나야 됩니다.
제가 요즘 기도하는데 이런 기도의 문구를 많이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정말 마음에 준비가 되고 삶에 분명한 헌신의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을 축복해 주셔서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거든요.
그 말을 생각해 보면 좀 야속하다고요. 그렇죠.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축복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야속한 것이 아니라 그게 바른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축복을 받을 그릇이 안 되어 있을 때 축복을 주셨다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축복을 받을 그릇이 안 돼 있는데 축복이 온다면 그것은 재앙이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그릇이 준비된 다음에 그리고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늘 그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먼저 마음에 은혜를 주시고, 준비할 구조를 갖추게 하셔서 그 다음에 하나님 축복 하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용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요즘 <잡석이 보석되자> 라고 올해 표어를 세운 것도 우리가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 자체가 마련이 돼야 합니다.
보석과 같은 이가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 앞에 천명을 돕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의 모습이겠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생각을 가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겠지요.
결국 보니까 믿음은 결국 우리들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우리에게 인내하는 것이더라고요.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폭풍우속에서 고개 숙여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폭풍우가 평생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언제나 폭풍우 불고나면 다음 날 밝은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 다시 고개 들고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가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를 낮추실 때 안 낮아지겠다고 버둥거려서 저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면 하나님이 높이실 때 올라올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삶에 오르고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거든요.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는 내려가고 다시 기회가 주어질 때 우리에게 다시 반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믿음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말씀했지만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매를 순히 감당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때 하나님의 은혜의 빛 가운데 서게 되는 것이 믿음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시험의 내용은 명예와 권세욕에 대한 시험입니다.
마귀가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그렇죠. 내가 섬겨야 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다 경배하고 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또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건데 잘 봅시다.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는 하나님만 경배합니다.
또 한 가지는 뭐죠? 사단이 보여준 것은 세상만국의 모든 영화와 권세와 명예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보고 나에게 절하면 저걸 너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예수님께 적용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이 성경을 보면 사단이 미련한 것 같아요.
얘기가 안 되거든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세계의 모든 명예와 권세와 영광이 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경배하면 그것을 주겠다니 예수님이 경배해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이미 예수님 것인데.(이게 이해가 안 되면 점심 먹고 졸린 거고요, 여러분 이해가 되시지요?) 생각해 보세요. 아니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 아닙니까?
온 세상 만물을 만드신 분이고 온 세상 만물이 예수님 겁니다. 그런데 나에게 경배해라 이것을 다 너에게 주겠다. 이게 얘기가 돼요, 안 돼요.
사단은 엉뚱한 시험을 한 겁니다. 여기 나온 시험이 다 그런 종류잖아요. 얘기가 안 되는 시험을 한 겁니다. 이거 어떻게 보면 시험에 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에 걸려든 겁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는 상대를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경배 받을 자는 하나님 한 분이시니 우리는 하나님께만 경배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경배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것은 이미 내 것이고 나는 그것을 다 소유했는데 내가 너에게 경배할 이유가 있겠느냐?

여러분 이 내용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끔가다 우리에게 비굴하게, 또 비겁하게 또 우리의 영적 자존심을 깨뜨리며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의하게 사단에게 절하며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우리에게 제의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그 순간 깨달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난 누군가? 내가 누군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저한테 절한다고 저가 나에게 그것을 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면 우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늘 믿음의 백성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자신 있음과 당당함입니다.
내가 남에게 비굴하게 절하고, 내가 남에게 굽실거리고, 남에게 내가 마음에 없는 웃음 웃으며 내가 남에게 정말 거짓으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정정당당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여건 가지고 평가받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누리는 것이지 사단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준다 해도 하나님이 막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 자녀에게 베풀어주신 것인데 내가 이미 가진 것을 위해서 뭐 하러 또 절을 하겠습니까?
저는 믿음의 백성은 당당하고 자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우리는 말씀드렸지요. 탁월하지만 겸손합니다. 우리는 그 겸손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 비굴하게 살아가거나 비겁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당당하기를 바랍니다.
어디가도 자신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도 괜히 가련하게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는 가련하게 보여도 긍휼히 여김을 입어도 사람에게는 가련하고 긍휼히 여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당당한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영광된 족속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디가든지 자신 있고, 기개 있고, 당당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의연할 수 있어야 됩니다.
믿음의 백성은 동정 받으면 안 됩니다. 믿음의 백성은 동정거리 되면 안 됩니다.
어디 가서든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어도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고 마음의 소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나가야 됩니다.
사람이 언제 자신 있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거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자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언제 자신 있죠? 내가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을 능히 내가 감당할 수 있겠다 생각하면 자신 있는 겁니다.

자, 우리 한 번 따라서 합시다.
뭐 이런 말씀 쓴다고 비속하다 생각하지 말고 따라서 합시다.
"까짓것 뭐.“ 다시 한 번.
“까짓것 뭐. 어려움 오면 당하면 되지 뭐."
어려움 오면 당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어려움 오면 당하면 되는 것이고 힘든 일 있으면 힘들고 그러다 보면 힘든 일 지나가겠지요.
까짓것 어려움 오면 당하는 것이고, 또 힘들라고 하시면 힘든 거고, 그러나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으니까 또 다시 하나님께서 은혜의 빛을 주시리라 하는 생각가지면 그저 어려울 때 고개 숙이고 있고, 또 기쁨주시면 일어나 달려가는 것이고, 그게 우리 삶이 아니겠습니까?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나대고 하다보면 우리는 너무 누추해지는 겁니다.
믿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인내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강화시켜주신다는 것이 뭐냐면 호흡을 점점 길게 가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금방 이게 안 되면 마음이 바상거려서 이걸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믿음이 커지면 그다음 점점 더 우리가 보다 더 멀리 호흡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 지금 안 될 수도 있겠지. 그래 지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 조금 더 기다리면 돼. 제가 늘 말씀드렸지요. 어려운 일 있을 때 우린 힘을 더 쏟고, 시간을 더 쏟고, 방법을 개선해 보고, 더 기도하고, 그래도 안 될 때 마지막으로 뭐라고 했지요?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기다림처럼 우리를 강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끝끝내 기다리겠다는데 뭘 어떻게 합니까? 끝끝내 인내하며 기다리겠다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와 같은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이잖아요. 문제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을 많이 움키느냐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더 중요한 요소가 이거더라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겁니다.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해 보니까 가진 게 너무 많아요.
내가 이렇게 슬프게 살아야 될 이유가 없다고요. 우리는 너무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너무 많으니 그것을 생각하고 누리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삶입니다.
그런데 내가 뭐 사단에게 절하고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뭐가 이렇게 갈급할까? 그럴 필요 없단 말입니다.
그런 생각하면 우리는 의연해지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 오면 난 겪을 자신 있어. 내게 어떤 기쁨 있으면 나는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또 살아가면 돼.’ 라고 생각하면 우린 결코 비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자신 있고 당당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세 번째, 시험을 극복하고 나니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가 수종을 들게 됐습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을 드니라
결국 시험이라는 것은 순간입니다. 평생 동안 시험 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일정기간 당하면 또다시 없어지는 제한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시험을 극복하면 마귀는 우리를 떠납니다. 시험이란 분명한 때와 기간이 있습니다. 평생 동안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시험을 통하여 다가오는 은혜도 제한되어 있다는 뜻 아닙니까?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항상 무슨 생각을 하지요? 어려움 당할 때마다 이런 생각 들잖아요.
야, 내가 이것을 극복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황무지에 떨어졌을 때 어떻게 생각하자구요? 나를 죽이려고 여기 떨어뜨려놨나보다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은 모두가 다 포기할 텐데 나는 이 가운데 정말 장미꽃을 피우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날까 생각하고 그때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지요?
우리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이것을 극복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우리는 시험이 제한되어 있다면 그와 같은 은혜의 기간도 제한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려움의 기회에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시험이 극복되니 마귀가 떠나고 천사가 수종을 들었습니다.
지금의 고난의 때가 지나면 천사가 수종을 드는 것 같은 은혜의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어려움은 잠깐이고 기쁨과 은혜의 때는 오래입니다.
제가 어제 밤에 도착했는데 굉장히 추웠다면서요? 지난주가.
영하10도까지 내려가 한강이 얼었다면서요. 제가 아주 고소했어요. 안 춥다가 제가 딱 가니까 저는 거기서 땀이 뻘뻘 나는 뜨듯한데서 지냈거든요. 사우나탕 같은 데서 뜨듯하게 지냈는데 여러분들 그렇게 추웠다니까 참 고소했습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한 순간에 끝나지는 않습니다.
벌써 1월20일이지요? 무슨 생각 들어요?
‘아무리 추워도 한 달 지나면 꽃소식 들릴 거야.’ 하는 생각 가지게 될 겁니다.
그야말로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 겨울이 오면 그 겨울 뒤 끝에 봄을 달고 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당할 때마다 이게 정말 내게 있어서 최후인가보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나 그 말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따라서 합시다.
“이에 마귀는 떠나고 천사가 수종 드느니라.”
시험을 극복하면 마귀는 떠나고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마귀는 떠나고 천사가 우리의 수종을 드는 이와 같은 은혜의 때가 온단 말입니다.
언제나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말씀에 의지하여 시험을 극복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을 파악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시험은 전혀 지업적인 겁니다. 거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당하는 시험을 작은 일로 보는 겁니다. 작은 일로 보면 별것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면 된단 말입니다.

지금 성도님들은 어떤 때입니까?
시험의 때입니까? 반드시 승리하셔야 합니다.
천사가 수종을 드는 때입니까? 더 큰 은혜의 사역을 위해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순간 한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주의 영광을 이루는 은총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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