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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와 보라! (요 1: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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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보라! (요 1:35-42)

  한국기독교 100년사에 보면 초창기에 화려하게 등장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길선주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은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 중에 최초의 목사가 된 6인 중 한 사람입니다. 또한 한국인 목사로서 최초로 세례를 집례한 그런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길목사님은 시력이 아주 안 좋았답니다. 그래서 맹인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얼마나 성경을 열심히 읽었던지 요한계시록을 만번을 통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설교하면은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길목사님은 원래 장로님이셨는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1907년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의 창시자가 바로 길목사님으로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이분은 교회활동만 열심히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서명한 33인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67세가 되었을 때 그는 강단에서 열정을 품으며 설교하다가 뇌일혈로 쓰러져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이기도 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초대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길목사님 같은 분을 교회로 인도한 분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여러분 거의 모르실 겁니다. 그는 바로 29살의 김종석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한사람의 인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우리 한국초대교회의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목회자로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의도에 가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있습니다. 조용기목사님은 세계적인 목사님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조목사님이 어떻게 예수 믿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그분은 시골출신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폐결핵을 앓으니까 약도 제대로 못 썼습니다. 늘 가난에 시달리는 그런 집안 꼴에 희망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는 각혈을 하였습니다. 피를 쏟았습니다. 그 동네에 교회를 다니는 누님이 있었는데, 이 조용기 소년을 늘 가까이 했습니다. 와서는 '예수를 믿으라고, 예수 믿어야 너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어떻게 폐결핵이 낫겠냐고’,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나의 끈질긴 전도와 사랑으로 그 누나가 준 성경책을 읽어보면서 이 소년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 병을 치료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후에 세계적인 목사님으로 오늘날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들이 있음을 우린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위대한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신약성경에 소개되는 많은 인물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사도바울과 베드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많은 학문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는 직가라는 곳에서 아나니아에 안수를 받고 눈이 떠지게 되고 그의 인생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는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또 한 사람은 열두제자 중에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참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그 신앙고백이 너무나 기특해, 칭찬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네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반석이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위대하 베드로, 성령을 받고나서 한번 설교하니까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온 그 베드로도 그냥 키워진게 아닙니다. 그를 예수께로 인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에서 베드로를 누가 예수께로 인도했습니까?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동생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났고, 너무 좋아서 자기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더니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제 너의 이름을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란 말은 베드로란 말의 다른 의미입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시몬이란 말은 갈대라는 말입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너가 이제 반석같은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다. 주님의 그의 미래를 보고 이미 그의 이름을 바꿔주시는 겁니다.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결국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게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복음전다하가 X자 십자가에 메달려서 죽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X형 십자가를 안드레십자가라고 흔히 부르곤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대중적인 설교자라면 안드레는 개인전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큰 어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투망을 던지던가, 그물을 통해서 수천마리 고기를 잡는 사람이지만 안드레는 거기에 비하면 작은 어부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적이고 급한 성격이지만, 안드레는 그 반대로 차분하고 조용하고, 아주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그늘에 가려서 안드레는 그렇게 이름이 많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그저 몇 번 이름이 소개될 뿐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한번도 불평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예수를 만났고, 내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인도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더 크게 사용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12제가 가운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늘 가까이 두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수제자 그룹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드레는 거기에 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변모산에서 자신의 몸을 변화시킬 때에도 안드레는 거기 없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놓고 '이제 이잔을 내게서 멀리하소서' 하고 기도하실 때에도 안드레는 거기에 끼지 못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그를 위해 가까운 제자들만 데리고 가서 기도하실 때에도 안드레는 거기에 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불평했다는 흔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처럼 위대하고 큰 인물도 있어야 되지만, 안드레처럼 맡은 자리에서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들도 필요하다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드레는 주님의 필요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이나 공관복음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여러군데 소개가 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5000명의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하니까, 그들이 너무 허기지고, 너무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냥 두면 가다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실 수 없었습니다. 긍휼이 많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5000명이 넘는 무리가 어떻게 먹을 수 있습니까?’, 그 때 계산이 빠른 빌립이 말합니다. "선생님! 저들을 다 먹일 빵이 이 광야에 어디에 있습니까? 또 빵이 있다한들, 그 빵을 살 돈이 어디에 있습니까? 적어도 200데나리온 이상의 떡값이 필요할텐데 그런 돈이 어디 있습니까?" 200데나리온은 요즘 돈으로 말하면 천만원이 훨씬 넘는 돈입니다. 한 2000만원쯤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빌립은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고, 주님께 오히려 항의를 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치 못했고, 주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듣고 5000명의 무리를 휘젓고 다니면서, 참으로 예수님이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을까 찾았습니다. 그러다 오병이어를 든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다섯 개의 떡덩이와 두 마리 물고기, 가난한 시골소년의 도시락이었습니다. 그 소년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주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를 손에 드시고 축복하시고 나눠주라고 했더니 오천명이 다 나눠먹고 열두광주리가 남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안드레는 적어도 주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습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 사업을 하다보면 재정도 필요한 것이고, 물질도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실 때 “주님 우리는 그런 힘이 없어요." “그런 물질이 없어요.” “그런 재주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님,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주님이 능력주시면 우리는 그런 일 할 수 있을겁니다." 이 자세가 주님의 사랑받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주님의 요구에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니까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만나려고 찾아왔을 때, 안드레는 나가서 그들을 융숭히 대접하고 예수님께로 안내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예수님을 만나서 다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만약 안드레가 편협한 사람이라면 “아니, 이방인들이 유대인인 예수님을 왜 만나려고 하시오? 만날 수 없소.” 하고 돌려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한 영혼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전도자로서 안드레를 가장 훌륭한 신앙인으로 꼽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안드레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주님의 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분들이 많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안드레는 전도자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기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분입니다. 자. 그러면 이런 안드레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을까요?

  그는 먼저 결단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35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이틑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건너 뛰어서 40절 말씀도 읽어보겠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이 두 사람 중 한사람이 바로 안드레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요한이라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요한과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사명이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실 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야인처럼 살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고 생활한 검소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말합니다. “저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 때 세례요한이 뭐라고 말합니다. 질투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요한은 자신의 신분과 한계를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세례를 주면서 “나는 당신에게 세례 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내게 세례를 주어서 의를 이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바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로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피흘리실 그분이라고 세례요한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제자들에게 바로 저분이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라고 소개할 때 제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의리도 없지... 지금까지 모시던 스승을 버리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금방 예수님께 가서 붙을 수가 있을까? 여러분, 이것은 인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진리의 문제고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세례요한은 그것을 원하였고 안드레는 거침없이 결단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모릅니다. 여인이 난 자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 세례요한이라고 예수님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치없는 것을 붙들고 살았지만, 진정한 내 생명을 바칠만한 가치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위대한 스승이시오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그에게 전폭적으로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있어야 됩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얼마전 신문을 봤더니, 사람들이 신년이 되면 점을 많이 치는데, 점 치는 사람중에 대략 30%는 크리스찬이라고 합니다. 옆에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혹시 점 친 적 없으세요?” 없으시겠죠? 여러분 절대 점치지 마십시오! 쓸데 없는 일입니다. 저는 늘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의 팔자를 잘 알면 당신 팔자나 고치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걸 얻었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들을 포기할 줄 알아야합니다. 생명의 구주되신 예수님, 우리 인생의 메시아되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때로 좀 가난해도, 때로 병들고, 때로 실패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 얼굴에는 늘 웃음과 확신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 잘하는 분들은 얼굴에 미소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신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인들에게 묻습니다. “예수 믿으니 기쁘다면서요? 얼마나 기뻐요?” “뭐 기쁘기는, 그저 그래.” "어떻게 구원받으니 좋아요?" "아이고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죽어봐야 알지." 이렇게 대답하시면 곤란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모든 죄가 씻음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 우리가 죽더라도 천국갈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세상의 진정 가치있는 것, 생명이 있는 것, 진리된 것을 발견했을 때, 무가치한 것들을 결단하고 끝어버릴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지만, 생명이고, 진리이고, 구원이신 주님을 발견할 때 결단하고 돌아설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안드레는 간증이 있는 신앙이었습니다. 4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여러분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들으니까 너무 좋은겁니다. '아 이분이 진짜 메시아구나.' 메시야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자,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바꿔말하면 우리의 구원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뵈니 너무 좋습니다.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달려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할 때 가장 좋은 전도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간증하는 겁니다. “제가 예수님 몰라서 무지하게 살았는데, 예수님 만나고 구원받고 나니 너무 좋아요. 제가 예수믿고 이렇게 변화되었잖아요.” 이게 간증입니다. 간증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의 도구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화를 기대합니다. 예수 믿고 변한 나 자신의 이야기를 간증 할 때 가장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기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간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때나 중학교때 과학시간에 배우는 아르키메데스의 부력의 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과학자입니다. 나라의 왕이 금 500g을 주고 어떤 제련사에게 이것을 가지고 금왕관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련사가 믿을만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왕관을 만들어 왔는데 왕의 마음 속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준 금을 다 사용해서 이걸 만들었을까? 아니면 여기다가 은을 조금 섞고 금을 빼서 감추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에게 당신이 이것의 진위를 좀 밝히라고 했습니다. 아니 이걸 무슨 수로 밝힙니다. 아르키메데스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골치를 썩다가 한번은 공중목욕탕에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옷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가는 그 순간 그 물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력의 원리입니다. 어떤 물체를 물 속에 넣으면 그 부피만큼 물이 흘러넘치는 원리를 발견했어요. 그는 그것을 이용해서 그 금왕관이 진짜 금인지 거기에 불순물이 섞여있는지 진위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것은 가짜였습니다. 금을 빼돌리고 은을 섞어서 적당히 만든 왕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키메데스는 상을 받고 그 제련사는 큰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그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너무 좋아서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너무 좋아서 벗은 줄도 모르고...
  우리도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면 이런 감격, 이런 기쁨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간증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안드레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42절에 보니까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그랬습니다. 안드레가 누구를 데리고 예수께로 왔습니까? 베드로에게 가서 간증을 하고 베드로를 예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동이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몸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만 전도하면 안됩니다. 나가서 우리가 전도하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행위를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 이 요즘 시대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합니다. 말은 그럴듯 한데 행함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말고 가서 구체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만 진리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내가 믿는 이 진리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것이 있으면 나만 보기 아깝잖아요? 그러면 옆집에도 가서 “이것 좀 나랑 같이 보자. 이거 너무 좋다.” 너무 맛있는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고 싶지 않습니까?“ 너무 좋은 옷이 있으면 남에게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까? 내가 믿은 예수의 복음, 이것이 너무 좋아서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전도요, 행동하는 신앙인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전도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내 가족입니다. 믿지 않는 내 가족. 우리는 가족구원의 가장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사업가가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려고 들어가는데 레스토랑 밖에서 창문으로 레스토랑 안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한 걸인 소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얘야! 너 여기서 뭘 보고 있니? 너 배고프구나?” “그래요, 저 배고파요.” “그래 그럼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따라와!”그리고 소년을 데리고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서 풍성하게 음식을 시켰습니다. “자 이제 먹어라. 배고프지?” 그런데 이 소년이 먹지를 않습니다. 음식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왜 음식은 안 먹고 밖에만 바라보니?” “저 밖에서 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애가 있는데 그 애가 제 동생이예요. 걔도 굶고 있어요.” 내 동생이 밖에서 굶고 있는데 나만 풍성한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사업가는 “아, 내가 몰랐구나, 동생을 데리고 들어오렴, 우리 같이 먹자” 그제서야 이 두소년은 열심히 맛있게 음식을 먹더라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지금 밖에서 쫄쫄 굶고 있는데 여러분은 천국잔치에 우리가족을 초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굶어죽어가는 우리 영혼들이 있다면, 우리의 이웃과 가족들이 있다면, 이 복음, 우리만 누려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하는 것은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라고, 신사적이지 않다고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위급한 일을 당한 사람, 곧 위험에 처할 사람에게 그 위험을 알려주고, 그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때로 우리는 왜 전도하지 못합니다. 전도할 때 상대방이 거절할까봐 전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건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또한 신앙에 대한 확신, 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전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전도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 같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하는 것이고, 성령님이 그 사람의 마음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또한 전도는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전도하지 않으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마귀가 제일 좋아할 것입니다. 옆에 있는 교회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좋아합니다. 전도 안하면 졸개들이 늘어나니까. 빼앗길 염려가 없으니까. 우리가 마귀와 영적으로 싸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영혼들을 마귀의 종으로 넘겨주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너희가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 신년부흥회에 가족들 다 초청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 이웃의 불신자들, "와보세요! 한번 와서 말씀들어보세요!" 자신있게 권면해 보십시다. 저희가 강사로 모시는 곽선희 목사님은 한국에서 최고가는 목사님, 설교자가 아닙니까? 그런 훌륭한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의 불신자 이웃이나 우리 가족을 초청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뜨거운 관심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꼭 초청하기를 부탁드립니다.
 
  교회 잘 나가는 여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십년이 넘게 기도했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음에는 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 집사님은 너무나 정성을 다해서 남편을 섬깁니다. 어느날 남편이 밤 12시가 다되었는데 자기 직장 동료를 데리고 왔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여보! 나 저녁 못 먹었는데 저녁 좀 줘!” 여러분이시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요즘 집사님들이라면 안 줄겁니다. 밤 12시에 그것도 술 취해가지고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밥달라고 하면 없는 밥 해서 줄 부인이 거의 없습니다.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죠. 그런데 이 여자 집사님은 정성껏 밥상을 준비해서 대접했습니다. 두 분이 열심히 먹는데 이 친구가 생각해 보니까 ‘이런 아내가 어디 있는가?’. 자기 집에서는 제 시간에 안 오면 밥도 안 주고, 술 취해서 친구까지 데리고 오면 국물도 없는데,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니 아주머니, 어떻게 밤 12시가 넘어서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밥 달라고 하는데, 밥을 친절하게 주실 수가 있어요? 신경질나지 않으세요?” 이 여자 집사님,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다 그럴 이유가 있어요. 제가 우리 남편 10년동안 전도했는데요, 아직도 예수를 안 믿어요. 이제 우리가 이 땅에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저는 죽으면 천국가겠지만 우리 남편은 지옥 갈 게 뻔해요. 우리 남편 지옥 가면 엄청난 고통 당할 텐데 내가 같이 있을 때라도 잘 해드려야죠! 그래서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잘 해드리려고 이렇게 남편에게 잘 하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그 다음 주에 그 두 분은 교회에 나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려면 아내들은 남편에게 잘하셔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아내들이 남편을 주님처럼 섬기셔야 합니다. 그럴 때 남편들이 압니다. ‘예수 믿는 우리 아내는 뭔가 달라. 거기에는 뭔가 진리가 있어.’ 깨닫는 겁니다. 전도란 나의 훈련된 인격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서 전도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년부흥회가 열립니다. 우리 가족들을 꼭 초청합니다. 우리 이웃들을 초청합시다. 아니, 다른 교회 집사님들도 괜찮습니다. 주일날은 그 교회에 나가라고 하시고요, 부흥회만 와서 천국잔치에 와서 말씀 듣자고, 한번 권면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실 겁니다. 또 설교하시는 목사님도 1층, 2층이 가득차면 얼마나 신이 나시겠습니까? 절대로 혼자 오시면 안됩니다. 여러분도 꼭 오셔야 하고, 꼭 한분씩 모시고 오셔서 정말 풍성한 천국잔치, 은혜가 넘치는 천국잔치 만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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