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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옷을 입을 지어다! (사 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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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옷을 입을 지어다! (사 52:1-12) 
 

1. 패션이 가장 빛나는 계절은?

오늘은 성경이 말씀하는 옷에 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상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옷이 뭡니까? 옷이란 사람이 천이나 가죽 따위로 만들어 입는 것을 말하지요. 이 옷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는 추위나 더위, 그리고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해 줍니다. 두 번째로 옷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민족, 신분, 직업 등을 나타냅니다. 입은 옷에 따라 그의 민족을 알 수 있고, 또 그의 나이라든지, 그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으며, 교복이나 군복이나 의사 가운 등은 그의 직업을 알게 해 줍니다. 목욕탕에서 어쩌다가 두 젊은이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싸움이 점점 격렬해지자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가서 제대로 한판 붙자”고 했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옷을 입고보니 한 사람은 장교, 한 사람은 사병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세 번째로, 옷은 그 사람의 개성과 인격적인 특성을 나타냅니다. 10대 소녀처럼 아주 짧은 치마에 레깅스 바지 만 입고 다니는 40대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10대나 20대 초반 소녀들의 옷을 입고 다니는 40대 아저씨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특정한 색깔의 옷이나 특정 스타일의 옷만 고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맨날 그 옷이 그 옷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패션이란 각자 나름대로 독특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 독특함 때문에 멀리서나 뒤에서라도 그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런 패션이 가장 빛나는 계절은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옷 입기에 가장 좋고 옷태도 살아나는 계절은 ‘가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패션이 제대로 빛나는 계절은 여름이 아닐까요? 여름은 더위 때문에 여러 가지 아이템으로 덕지덕지 치장할 수 없고, 아주 심플하게 옷을 입습니다. 요즘 TV에서 다이어트와 함께 사람들을 몸짱으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유명한 ‘숀 리’라는 사람은 “육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말해서 갈채를 받았습니다. 즉 사람의 최고의 의상은 그의 몸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몸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옷을 입을 때가 패션이 가장 빛나는 때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이 가장 빛나는 계절은 여름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옷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옷은 어떤 것일까요? 

2. 성도의 패션

1) 좋은 소식

본문이 말하는 옷에 관한 것을 살피기 전에 먼저 7절의 “좋은 소식 …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한다는 말씀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하면, 오늘 본문의 현재 상황이 어떠하냐는 것과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가 깊이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심판과 멸망이 선포된 가운데 있었고, 머지않아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포로 신세가 될 것이 이미 예고된 가운데 있었습니다. 즉 본문의 상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더불어 그 백성들이 포로로 흩어질 것이 이사야 선지자 등을 통하여 예언된 시기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본문이 이스라엘이 그렇게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7절에 나오는 “좋은 소식, 평화의 소식, 복된 소식, 구원의 소식”은 어떤 소식입니까?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와 타향 땅에서 수 십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진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은 어떤 소식이겠습니까? 이제 포로 기간이 끝나고, 포로로 끌려와 있던 사람들이 해방되어 고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티끌을 털어 버리고 … 일어나 앉을지어다”라고 합니다. 과거 개역성경은 “앉을지어다”를 “보좌에 앉으라”고 번역했었는데, 그렇게 보좌에 앉기 위해서는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목이나 손이나 발이 쇠사슬에 감긴 채로 끌려가는 포로들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묶인 채로 티끌과 더러운 곳에 뒹굴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제 포로의 사슬을 풀어버리고, 먼지와 더러운 것을 다 털고 ‘보좌에 앉으라’고 말합니다. 3절부터 6절에는 ‘값없이 속량된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것을 팔려갔다고 표현한 말과 연결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팔려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 죄 값으로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 값이 다 치러져서 석방의 때가 되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그들에게 전해진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포로요, 노예로서 살고 있었기에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좋은 소식, 해방과 자유과 구원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죄수의 옷, 노예의 옷, 슬픈 자의 옷, 외로운 자의 옷을 입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당장 벗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할 때가 된 것이죠.

그러면, 성도 여러분! 포로로 끌려와 노예신세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었을까요? ‘죄수의 옷’ 혹은 ‘포로의 옷’하면 어떤 옷이 떠오르시는지요?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줄무늬 죄수복이 떠오르십니까? 아니면, 요즘은 뜸합니다만, 이슬람 무장게릴라에게 납치된 사람들이 입는 오렌지 색 죄수복이 떠오르시는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나라 죄수들이 입는 파랑색 옷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죄수복의 색깔을 파랑색 하나로만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죄수복의 색깔은 4종류입니다. 형이 확정된 사람들이 입는 파랑색 옷,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구속 조치된 사람들이 입는 황색 옷, 그리고 구치소에 있는 미결 수용자들이 돈을 내고 사 입는 비취색 죄수복, 네 번째는 파랑과 하늘색의 줄무늬 죄수복으로서 교도소 내의 환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물론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죄수의 옷이나 특정한 옷을 입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겉으로 입는 노예의 옷보다 더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시편 137편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1~4)” 무슨 말입니까? 나라가 망한 뒤 바벨론 여러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나 한스럽고, 언제 고향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그의 나라가 회복될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슬퍼하면서 지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슬픔의 옷, 절망의 옷, 괴로움의 옷이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좌에 앉히신다’ 하시면서 그에 맞는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고 하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옷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영혼이 포로와 노예의 옷을 입은 자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좋은 소식이 선포되었습니다. ‘포로의 옷, 노예의 옷을 벗어라!’ 더 이상 죄수가 아니고, 포로도 아니며, 자유자요, 보좌에 앉을 영화로운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 아름다운 옷은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옷”은 구체적으로 어떤 옷일까요?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느 날, 유명한 장관이 친구들과 친지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었습니다. 검소하기로 유명한 학자 한 분도 그 장관과 동창이었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학자는 평소대로 옷을 입고 파티 장에 들어가려고 했는데요. 문을 지키던 사람들이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그 학자는 초대장을 보여주며 장관의 친구라는 확인 절차를 거쳐서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파티 장소는 정말 어리어리했고, 불빛도 휘황찬란했으며, 참석한 사람들은 정말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옷을 입은 이 학자에게 아는 체하는 사람이나 인사하는 사람이나 음식을 권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자는 조용히 빠져나와 어렵게 값비싼 옷을 구하여 갈아입고 다시 파티장소로 갔습니다. 그러자 문 지키는 사람들은 확인 절차를 밟기는커녕 그 앞에 다가와 허리를 굽히면서 정중하게 안내를 했습니다. 사람들도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했으며, 음식도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자는 그들이 준 음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옷아, 이 음식은 네가 먹어라. 날 보고 주는 음식이 아니라 너를 보고 주는 음식이니 이것은 네 몫이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운 옷은 ‘유명 디자이너의 옷’이나, ‘고가품 브랜드 옷’이나, 소위 ‘명품’ 어쩌고 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입으라고 하시는 “아름다운 옷”은 이렇게 세상적인 가치와 사람들의 눈높이의 잣대가 반영된 옷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입히시는 옷은 어떤 것입니까? 

그 전에 여러분에게 물어야 될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최초의 옷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1번 아담과 하와이다, 2번 하나님이시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창세기 3장 7절에 보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옷은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입은 ‘나뭇잎 옷’이라는 것이지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상 철학의 저자 ‘T. 칼라일’이라는 사람이 “의복의 처음 목적은 보온도 예의도 아니고 장식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갈 장소나 혹은 할 일에 어울리도록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만들어 입은 옷은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최초의 옷이 만들어진 목적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혹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내면도 그 겉모양도 너무나 부끄럽게 되어 그것을 가리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최선을 다하여 만들어 입은 무화과 나뭇잎 옷이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신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창3:21). 사람의 옷은 그 사람을 완전하게 가려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시고 직접 만드셔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옷은 그들의 몸만 가려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치와 죄, 즉 내면까지 완전히 가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입으라고 하시는 “아름다운 옷” 역시 그들의 ‘내면, 마음, 인격, 영혼을 가리는 옷’입니다. 나아가서 그들의 ‘내면, 마음, 인격,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옷’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아름다운 옷은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 걸치는 것, 즉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내면과 영혼을 새롭게 하는 옷입니다. 이런 옷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은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명품 옷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 주신 내면의 옷 영혼의 옷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 옷을 입고 계십니까? 곁에 앉은 분들을 한 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옷을 한 번 보시죠? 명품, 값나가는 브랜드 옷을 입고 있습니까? 패션 감각이 좀 있어 보입니까? 그러나 그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여러분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 오늘 성도가 입어야 하는 옷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도가 입어야 하는 아름다운 옷은 어떤 옷일까요? 성경에는 옷에 대한 말씀이 정말 많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지어 입히신 아담과 하와의 ‘가죽옷’은 그들의 죄를 대신하는 짐승의 희생이 전제로 된 옷이었습니다. 요셉이 입었던 채색 옷, 보디발 여사에게 맡겨놓고 아직도 찾지 못한 노예의 겉옷. 출애굽기 39장에 나오는 ‘대제사장이 입었던 거룩한 의복’, 다니엘서 5장에 나오는 총리 다니엘의 “자주색 옷”에 긴 금목걸이 액세서리를 한 것! 

그리고 신약성경에 오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세례 요한의 “낙타 털옷”입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이 가죽 옷을 입었다고 말합니다만, 요한의 옷은 낙타의 가죽 옷이 아니라 낙타털로 거칠게 짠 옷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빛의 갑옷(로마서 13장 12절)”, “전신갑주(에베소서 6장 13절)”, “세마포(요한계시록 19장 8절)”, “흰 옷(요한계시록 3장, 7장)”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사실 오늘 본문은 제사장과 관련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39장과 연결되는 분문이라는 말입니다. 1절,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1).” 이 말씀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본다는 뜻이 있고, 거기 거주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거룩한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1).”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로와 노예의 옷을 벗고 온 세상과 만민 가운데서 구별된 제사장의 옷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제사장들만 입을 수 있는 특별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출39). 만약 그 옷을 입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사장에게 구별된 옷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 구별된 자, 그의 사랑을 입어 구원받고 사랑을 받은 성도들 역시 마땅히 입어야 할 옷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옷은 어떤 옷일까요?

➊ 오늘 본문이 말하는 “아름다운 옷”은 ‘포로에서 회복된 자’,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의 옷’을 입어라는 말입니다. 이것의 신약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을 입으라’입니다. 여러분이 입어야 할 옷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옷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옷, 하나님의 사랑의 옷, 하나님의 자녀의 옷을 입어라’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을 보면,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마치 T-shirts에 예수님의 모습을 커다랗게 프린팅을 해서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보여주는 옷이 성도가 입어야 할 옷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계십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옷을 입고 계십니까? 구원의 옷을 입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옷을 입지 않고 성소에 들어와 있는 자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로 충만하고, 그 예수를 보여주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➋ 두 번째로 여러분이 입어야 할 옷은 ‘변화의 옷’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었다면, 여러분의 겉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것,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까지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변화에는 물리적인 변화가 있고 화학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변화는 겉과 모양만 변하는 것이고, 화학적인 변화는 속과 내용까지 변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속까지 변하는 화학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된 성도는 그의 속사람만이 아니라 겉사람과 삶의 모든 것이 변합니다. 그렇게 변화된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이 오늘 여러분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옷에 관한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서 에베소서만큼 옷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성경도 없을 것입니다. 4장 22절부터 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본문은 성도가 “벗어야 할 옷”과 “입어야 할 옷”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벗어야 할 옷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입니다. 그리고 입어야 할 옷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입니다. 마치 봄옷을 벗고 여름옷을 입는 것처럼 성도 역시 주님을 믿기 전에 입었던 옷을 벗어야 주 안에서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도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그 마음에 입은 사람은 겉으로도 변화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옷을 입은 사람은 내면이 변하고, 인격이 달라지고, 눈빛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며, 태도가 달라지며, 생활이 변화됩니다. 마치 제복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면, 여러분 속에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다면, 그리고 여러분 속에 성령님이 거하신다면, 여러분은 변화된 겉모습 즉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과 말 그대로 옷에서까지도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겉으로 입은 옷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벌거벗은 것과 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지은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를 다 아시죠? 

‘식탐’이 아니라 ‘옷탐’이 심한 한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임금님으로서 옷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낭비가 아주 심한 왕이었지요. 무엇이든지 지나친 것은 화를 부릅니다. 어느 날 그 임금님을 골탕 먹이려는 사기꾼들이 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으로 가장 멋있는 옷을 해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만드려는 옷은 정말 아름다운 옷인데, 너무 가벼워서 입고 있어도 입은 느낌이 전혀 안 나는 옷입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옷은 바보나 쓸모없는 사람, 거짓말쟁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라고 말 했습니다. 왕은 자신이 그 옷을 입으면 의롭고 착한 왕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또 그 옷을 입고 있으면 무능하고 정직하지 못한 신하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빨리 옷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으로 가장 멋있는 옷이 완성된 날, 임금님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고서 백성들에게 자랑하기 위하여 궁 밖으로 나갔습니다. 

임금님을 본 백성들은 ‘마음씨가 착한 사람에게는 옷이 보이고 나쁜 사람에게는 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라, 임금님을 향해 한결같이 “옷이 정말 멋있군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의 눈에는 임금님의 옷은 보이지 않고 벌거벗은 것만 보였습니다만,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남들 눈에 나쁜 사람으로 보여질까봐, 또 임금님이 벗었다고 하여 어떤 벌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중에 임금님의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어린이가 깔깔깔 웃으면서 외쳤습니다. “어, 임금님이 아무 것도 안 입었잖아!”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이 입고 계신 옷이 사람들 눈에는 보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벌거벗은 것은 아닐까요?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없다면,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다면, 성령의 은혜와 은사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주님으로 인하여 변화된 삶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하나님 보실 때에 입지 않은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계십니까?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옷,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셨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고 그에 걸맞는 삶이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입지 않고 벌거벗은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가장 아름다운 옷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패션’이나 ‘여름철 옷맵씨내기’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겉으로 입는 옷’이 아니라, ‘마음의 옷 내면의 옷 영혼의 옷’에 대한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죄로 인하여 징벌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 고통과 슬픔의 옷을 입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 복역의 때가 끝났고 자유와 회복과 영광이 이르렀으니 그의 맞는 옷을 입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예의 옷, 포로의 옷을 입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로운 옷,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가서 그들의 모든 수치와 죄악을 가리는 옷을 입히신 것처럼,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복역하던 자들에게 해방과 자유와 회복과 영광의 옷을 입히신 것처럼, 이제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옷, 하나님의 자녀의 옷을 입혀 주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옷 입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명품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나가는 옷이며, 최고의 옷이며, 영원히 그 가치가 변치 않는 옷을 입고 계신 것이지요. 그 옷 때문에 여러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곳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입은 옷이야 말로 얼마나 귀하며,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가치가 있는 옷인지요!

설교 중간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곁에 있는 분을 한 번 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곁에 있는 분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옆에 있는 분을 보실까요? 지금은 무엇을 보아야 되겠습니까? 옆에 있는 성도에게서 그리스도가 보이십니까? 그가 십자가로 옷 입고 있음이 보이시는가요? 구원의 옷, 은혜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옷,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입니까? 예,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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