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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위 하나님의 구원 역사 (롬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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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 하나님의 구원 역사 (롬 5:1-5)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남을 당하였고 하나님과 원수지간으로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비참한 상태에서 화평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화목 제물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써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목케 하는 역할을 감당하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고 계속해서 성령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며 영생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에게 화평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불복종함으로써 인간에게 범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죽음과 불안과 공포와 온갖 고통이 왔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범죄는 그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었습니다

(창 3:8-10)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벨을 쳐 죽인 가인의 심령에도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습니다

(창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범죄한 인간의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롬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롬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은 실낙원 하여 멸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때로는 그 낙원을 찾아 하나님께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인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엡 2:14-15)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죄로 말미암은 심판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인간이 그 전에는 하나님께 대한 원수로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주로 모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전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참 화평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미워하는 마음, 원수 된 마음은 사람에게 엄청난 갈등과 내적 고통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중재로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인간은 참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화평은 휴전 상태와 같은 일시적이고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화평이 아닙니다.
영원한 화평입니다. 우리도  화평을 이루며 누린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사업 때문에 언제나 분주했지만 자기 고향에 있는 멘스필드라고 하는 친구 백작의 가정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가서 권면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루터의 나이 예순 세 살이었습니다. 노구를 무릅쓰고 고향까지 가서 밤새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말을 듣고 형제간에 화해를 했습니다. 하루 저녁 더 자고 이튿날 떠날 계획으로 잠들었다가 그날 저녁 병들어 그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각하면 섭섭합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시키려고 많은 애를 썼을 뿐더러 거기에서 자기의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에. 불화, 불목, 분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러한 사회에서 살 때에 어디 가든지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형제간에도 직장에서도 관청에서도 정계에서도 어떤 곳에서든지 이 화해자가 필요합니다. 세계 정세를 보아도 이 같은 화해자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세계 인구가 이 땅에 남아 있을는지 의문되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2대의 승용차가 접촉사고를 일으킵니다. 한 사람은 변호사였고 또 한 사람은 아들의 양육권 문제로 법원에 가던 흑인이었습니다. 시간에 쫓긴 변호사는 적법하게 교통사고 처리를 하지 못한 채 태워달라는 흑인을 뒤로 하고 법원에 도착합니다. 와보니 재판 서류를 사고 현장에서 분실한 것을 깨닫습니다. 한편 흑인남자는 차를 잡지 못해 지체하는 통에 재판에 20분이나 늦어 양육권을 빼앗깁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꼬이고 급기야 서로를 파괴시키려 합니다. 서로를 괴롭히던 두 사람은 극적으로 화해하고 서로를 도와줍니다. 거기서부터 꼬였던 문제가 풀려갑니다. 흑인남자는 변호사의 도움으로 가족과 다시 결합합니다. 영화 ‘체인징 레인스’의 줄거리입니다.

꼬이고 비틀어진 인생이 다시 회복되는 길은 바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화평을 주십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돌립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고 은혜에 들어가게 하시고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화평'이란 진노 아래 있던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음을 말합니다.

'화평'은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이 회복의 관계로 진전된 점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된 인간과 의로우신 하나님 간에 화평의 관계를 맺게 해주는 주체이십니다.

'화평'(에이레네)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노의 문제가 해결 되었음을 보여 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칭의를 얻게 된 결과를 설명합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엡2:14-17)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고 합니다

'은혜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그 은혜 속으로 우리가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감을 얻는' 것입니다

'들어감'(프로사고겐)은 '접근'(access), '인도', '채용' 등으로 번역될 수 있으나 '인도'의 의미이기도 하니 들어감(프로사고겐)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신 앞에 인도되거나 소개되는 특권을 함축합니다(F.F. Bruce).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를 구원주로 믿고 그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분에 의해 존귀하심과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의 화평이 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에 의해서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이스라엘의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 앞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행 4;12)라고 하면서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뿐이라고 역설한 말씀에도 나타납니다. 

나이 많은 한 할머니가 임종을 맞고 있었습니다. 교회 목사가 그 소식을 듣고서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자매님께서 임종을 맞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매님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셨습니까?” 
“아니오!” 
“그러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그분을 만나기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노파의 대답에 목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목사는 아주 진지해졌습니다. 
“자매님, 이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고, 곧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예,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다구요?” 
“예, 절대로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않으셨다는 것도 사실이구요?” 
“예, 그렇습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목사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이 죽어가는 여인의 얼굴에 미소가 살며시 지나갔습니다. 
“제가 하나님과 화평하려 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2000여 년 전에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골 1:20). 
그러니 저는 그저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주신 화평 가운데서 쉬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화평 가운데서 안식하기를 배운 사람은 정말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셔서 그의 죄가 용서받은 것으로 인정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이 은총에 감사하며 영광돌립시다

성령님은 우리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십니다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소망이 실망시키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NASB) 

환난과 인내와 연단을 통하여 얻게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실망 시키지 아니 합니다.
부끄럽게는 여호와의 심판의 의미로 악을 행하는 자가 파멸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시 40:14)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그런데 부끄럽게 하지 않는  근거를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이 미쁘시고(딤후2:13) 변함이 없(약1:17)으시기에 때문에 확실하고 견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곧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이 견고 하여 부끄럽게 되거나 실망케 되지 아니합니다.
부은바는 이미 쏟아진 상태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 말이 쓰임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도 모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물론이요 그를 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인정 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쏟아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을 통하여 부어졌기 때문에 거듭난 성도들은 이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동시에 주위 사람들도 그 사람의 삶을 통하여 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소망은 항상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것만을 바라고 기대 하게 하는 것으로 종극적으로는 구원의 즐거움입니다

(롬 5:8-1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이 독생자 예수까지 보내게 하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은 영속적인 삶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와 함께 시작된 사랑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갑니다. 사랑은 기쁨과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풍성한 사랑이 자리 잡으면 그곳에서 기쁨이 충만하고 견고하고 보장된 기쁨으로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옵니다.

결혼한 후 폭군같이 변한 남편과 30년을 살아왔던 한 여자의 고백이라 합니다. 출근하기 전에 남편이 아내의 입술에 사랑의 키스를 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 여자의 남편은 키스 대신에 자기가 돌아오기 전에 아내가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적힌 쪽지를 주었다합니다. 만약에 쪽지에 적힌 사항을 하나라도 빼 먹으면 남편은 폭군으로 변하여 엄청난 폭력을 사용했기에,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가고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녹초가 되고 말았다합니다. 

30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까 집이 감옥과 같았다합니다. 팔자 타령을 하며 하루하루 지겨운 삶을 살아오던 중에 갑자기 남편이 암에 걸려 죽었다합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녀는 자기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한 남자를 만나서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재혼을 하게 되었다합니다. 

살던 집에다 신혼살림을 꾸몄는데, 하루는 청소하다가 쿠션 사이에서 구겨진 종이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쪽지를 펴서 읽던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자신의 30년 인생을 빼앗은 전 남편의 지겨운 쪽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읽어 내려가다 보니까 조목조목 적어 놓은 항목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그 쪽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적힌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을 하고 있단 말이야. 이런 쪽지에 적힌 목록이 없이도 말이야.” 

사랑이 왜 중요한지, 사랑이 없는 율법이 왜 이처럼 위험한 것인지 잘 말해 주는 이야기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다시는 그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는 은총을 누리며 안식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원수가 된 우리를 구원하사 화평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희생하시고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도록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십니다. 이 은총에 감사하며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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