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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아 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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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아2:10~17) 
  

여러분, 인생의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가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하고 화려해 보여도 가정에 행복이 없다면 불행한 인생입니다. 이는 저 개인의 말이 아니라, 성경적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복을 주시되, 특별히 가정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러면 가정의 행복은 과연 무엇에 있습니까? 소유에 있습니까? 돈이 많으면 행복한 겁니까?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여기자가 늦은 밤 택시 타고 가면서 기사와 나눈 이야기를 칼럼에 썼습니다. 앞의 차들이 신호위반 하고, 불법주차 하고 위험하게 운전하고, 짜증이 날 텐데 다 양보하고 웃어넘기며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참 특이한 택시 기사가 있다 싶어 말을 건넸답니다. “기사님, 어디 이렇게 해서 돈 버시겠어요?” 그러자 “돈이 인생의 전부인가요?”하면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건설회사 상무였습니다. 강남의 40평대 아파트에 살았고, 아들도 공부를 잘 해서 늘 1등을 했고, ... 그런데 아들이 희귀병에 걸려 시력이 극도로 약화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구조조정으로 퇴직하게 됐습니다. 병원비로 아파트까지 날아가고 나니까 죽고 싶었답니다. 죽고 나면 보험금으로 아내와 아들이 살겠거니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붕대로 눈을 칭칭 감고 있는 아들을 어루만지는데,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손 참 크다. 따뜻해. 아빠, 내 손 잡아준 게 얼마만인 줄 아세요?” 그 말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택시를 몰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들의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아 두꺼운 안경을 쓰고 그럭저럭 지내게 되었고 성적도 예전보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온 식구가 행복하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인생 별 게 아니다 싶어 아옹다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무슨 이야기입니까? 풍파 많은 세상이지만 가정에 행복을 이루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려 동분서주하면서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상실하고 사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잠15:16~17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들끼리 서로 사랑하면, 설사 물질적으로 궁핍해도 그 가정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사랑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겁니다. 

잠17:1도 비슷한 말씀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진수성찬이 있어도 가족들끼리 다투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차라리 마른 떡 한 조각만 있어도 화목하면 훨씬 낫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가정의 산소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해서 죽는 것처럼 가정에 사랑이 결핍되면 온 가족이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아가서를 통해 그 비결을 함께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그 비결을 배워 꼭 행복한 가정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가(雅歌)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인데 영어 성경의 제목을 보면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라고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시로 술람미 여인과 사랑을 나눈 러브 스토리입니다. 물론 남녀 간의 사랑, 부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예수님과 성도(교회)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보면 예수님을 신랑, 성도(교회)를 신부로 비유하지 않습니까? 그걸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먼저 10절을 보시죠. “나의 사랑하는 자(=솔로몬)가 내(=술람미 여인)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초청하는 겁니다. 11절 이하를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얼마나 지극한 사랑을 갖고 있는지 구구절절 느낄 수 있습니다. 

11절~13절.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봄은 생명이 약동하며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계절입니다. 팔레스틴은 겨울에 바람이 불고 한기가 있는데다가 비가 내려서 외출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제 겨울이 지나고 비가 그쳤습니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합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자랍니다. 이런 봄의 풍경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 얼마나 기쁘고 풍성한지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이어서 술람미 여인을 얼른 보고 싶은 감정을 내비칩니다. 14절.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솔로몬의 사랑의 고백과 초청에 술람미 여인도 화답합니다. 16절~17절.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흔히 연인들끼리 하는 말대로 당신은 내 것, 나는 당신 것이라 말합니다. 앙떼를 먹인다는 것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란 뜻입니다. 해가 저물면 일을 마치고 노루와 사슴같이 빠른 걸음으로 어서 오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파괴하려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작은 여우! 술람미 여인은 작은 여우를 물리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팔레스틴에 봄이 오면 포도원의 포도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열매가 맺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때 작은 여우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 여우는 40cm 정도 크기로 작은 여우입니다. 야행성 잡식 동물로 은밀하게 포도원에 들어와 땅에 구멍을 파고 포도 줄기를 갉아먹으며 농사를 망칩니다. 여우가 포도원을 망치듯이 사랑을 망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우는 사랑의 파괴자입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예수님과 성도(교회)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가족 관계를 가리킵니다. 기본적으로는 부부관계이고, 더 나아가 부모 자식, 형제자매 관계까지 다 포함합니다. 오늘은 가정으로 국한시켜 생각해 보시죠. 

가정의 포도원에 은밀히 침투해서 가족 관계를 훼방하고 가정을 망쳐놓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마귀입니다. 이 작은 여우를 잡아야 가정에서 가족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으로 가득해집니다. 

마귀를 나타내는 단어가 성경 원어 헬라어로 ‘디아볼로스’(diavbolo")인데, ‘참소자’ 혹은 ‘이간질 하는 자’(slanderer)라는 뜻입니다. 마귀가 하는 대표적인 일이 이간질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은밀히 충동질 시키며 모든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하나님 관계, 인간 관계를 하나하나 끊어놓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마귀는 인류최초의 가정 파괴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가 1장~2장을 보면,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인간을 창조하시는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최초의 가정을 창조하십니다. 그 때 최초의 가정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 구절은 단순히 옷을 벗고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갈등이나 불화가 없이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창3: 보면, 안타깝게도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사랑의 관계가 깨져버립니다. 에덴 동산에 뱀이 있었죠. 실제 뱀이기도 하고, 그 속에 영적인 존재인 마귀가 들어가 역사했습니다. 여자에게 접근해서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 질까봐 경계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게 아니죠.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다만 하나님과 인간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기본 관계를 유지하는 약속으로 선악과만 따먹지 말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증표였죠. 그런데 마귀의 유혹에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줍니다. 여기까지는 사이좋게 오순도순 지냅니다. 그런데 마귀의 유혹으로 죄를 지은 후 달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인간의 마음속에 수치와 두려움이 밀려들어옵니다. 다음으로는 인간 관계가 끊어져 갈등과 불화가 생깁니다. 서로 핑계를 댑니다. 아담이 여자 탓을 합니다. 여자는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창3:16 보면, 범죄한 인간에게 저주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해산의 고통 외에 부부 관계가 원만치 못하고 갈등을 일으킴으로 가정불화가 생길 것을 경고하신 겁니다. 

이런 갈등은 자식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창세가 4장을 보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하다 돌로 쳐 죽입니다.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얼마니 큰 비극입니까? 부부 관계의 갈등, 형제들끼리 갈등을 일으키다 급기야 살인 사건까지 난 겁니다. 

오늘날도 이런 현상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해야만 하는 가족 관계가 파괴되고 가정이 불화 속에 신음합니다. 너 없으면 못 산다고 했던 부부가 너 때문에 못 산다며 다툽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식인데 원수처럼 야단합니다. 

얼마 전 KBS 방송문화연구소에서 결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질문은 다시 결혼하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 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안 하겠다는 대답이 기혼 남성은 46.9%, 기혼 여성은 71.9%, 남녀 통틀어서 59.2%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 결혼 기간이 길수록 안 하겠다는 답변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게 뭐죠? 세월이 갈수록 싫증이 난다는 건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귀가 하는 짓이 바로 이런 겁니다.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런 짓을 합니다. 앞으로 종말이 다가올수록 마귀가 극성을 부리면서 인간 관계를 파괴함으로 세상을 어지럽힐 겁니다. 특히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어 갈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른 방법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영적으로 해결하는 게 근본 대책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마귀의 은밀한 공격을 이겨내야 합니다. 엡4:27 “마귀에게 틈(foothold)을 주지 말라” 

여기서 틈이란 단어는 영어 성경 보니까 ‘발판’(foothold)이란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마귀가 활동할 찬스를 주지 말라는 겁니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살면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다가와서 남을 미워하게 하고 범죄하게 만듭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의 공격을 막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만일 방심하면 나도 모르게 작은 죄악 가운데 끌려가고 결국은 삶 전체를 망치게 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이 각자 조심하면서 마귀에게 넘어가지 말아야 되는데, 별 생각 없이 살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하면 가정 행복은 물건너 가는 겁니다. 갈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사소한 문제 같지만, 가족들끼리 사랑하지 못하고 관계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가정 전체가 불행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의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을 수 있을까요? 깨어 기도하면서 작은 실수를 줄이는 한편 작은 사랑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아가면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가정이 작은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말로는 사랑을 많이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방법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주 작은 것에만 신경을 써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몇 가지로 말씀드립니다. 

  
[1] 무관심에서 배려로 

무관심에서 배려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들끼리는 믿거라 해서 그런지 몰라도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족들 사이에 무심하다가 오히려 엉뚱한 데 간섭하면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집안에서 가사 노동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입니까? 그런데 전혀 배려도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 취급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한 통계를 보면 1년 간 가사 노동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싹 무시하면 정말로 만정이 떨어지는 겁니다. 

벤딩 머신 파파(Vending Machine Papa)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판기 아빠인데,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돈 기계’라는 말입니다.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남편이(아버지가) 돈을 찍어오는 것처럼 대하면 곤란하죠. 조폐공사 사장도 돈을 찍는 일을 해도 돈을 마음대로 가지고 오지 못합니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수고하는 것을 알아줘야 합니다. 

TV 동화 중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아들을 기르고 있습니다. 직장에 가도 늘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서 자주 전화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장으로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거리감이 있다 보니까 불안한 마음이 생겨 더욱 더 자주 전화를 걸었습니다. 밥 먹었니? 학교 잘 다녀왔니? 숙제는 했니?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오니까 이미 아이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피곤이 밀려와서 저고리만 벗어놓고 침대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런데 침대에 뭐가 있는 것 같아서 이불을 들춰봅니다. 그랬더니 그 속에 컵라면이 쓰러져 반쯤 쏟아졌습니다. 장난을 친 줄 알과 화가 났습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심하게 매질을 했습니다. 아내가 간 후 처음으로 매를 들었습니다. 한참 매를 맺은 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고 아빠, 라면을 2개 끓였는데, 아빠가 오시지 않아서 1개는 먹도 식지 말라고 이불 속에 넣어두었던 건데 ... ” 그 말을 듣는 순간 남자는 한 말을 잃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이를 끌어안고 실컷 울었습니다. 그리고 퉁퉁 불어터진 라면을 먹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 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습니다.
  

[2] 비난에서 격려로 

가족들이 가까운 것 같아도 서로 남의 탓하기 시작하면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가정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겁니다. 소통 부재, 대화 부족으로 이런 일 많이 생깁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고 비난 대신 격려할 때 가정의 분위기가 밝아집니다. 

요즘 아이들 교육이 참 어렵죠. 마음대로 잘 안 되면 비난과 책망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더 나빠집니다. 마귀는 옆에서 부추깁니다. 돈을 얼마나 썼는데 그 모양이야? 그런 생각에 화가 납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자제하고 아이들을 격려해야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 공부를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학교에 여러 번 불려 다녔는데 마침내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톰! 네가 너무 우수해서 학교 공부가 너를 따라오지 못하나보다. 낙심하지 마라!” 말도 안 되는 격려였지만, 아들을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부부 간에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아내의 격려는 남편에게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밖에서 아무리 잘 나가도 가정에서 격려 받지 못하면 쇠하게 됩니다. 칭찬은 귀로 듣는 보약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 사이에 형제자매 사이에 칭찬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가정이 천국으로 변할 줄로 믿습니다.
  

[3] 이기심에서 섬김으로 

인간이 죄인이고 이기적 존재라 가족들끼리도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 자기만 편해지려 하고, 이익을 많이 보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가족은 그런 게 아닌데 말입니다. 이기심이 발동하면 이미 마귀에게 지는 겁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가족들끼리 먼저 양보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희생하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아이가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기적을 사고 싶어요.” 어리둥절해진 의사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동생이 아프거든요.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기적이 없으면 살릴 수 없대요. 아빠는 돈이 없어서 기적을 살 수 없대요. 그래서 제가 돈을 가져왔어요. 기적을 사려고요.” 

너무 진지한 아이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의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얼마나 가져왔는데 ... ?” “1달러 11센트요. 만약 모자라면 나중에 더 갖고 올게요.” 의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네가 기적의 값만큼 꼭 맞게 가져왔구나. 선생님에 네 동생에게 기적을 줄게.” 그 의사는 그 아이의 동생에게 뇌수술을 해줬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세계적인 뇌수술 전문의 칼 암스트롱 박사입니다. 사랑의 섬김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서로 이기심으로 다투면 될 일도 안 됩니다. 

  
[4] 자존심에서 존중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을 먼저 세우다 보면 관계가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먼저 세워 줘야 합니다. 가까운 가족들끼리 더욱 조심하며 실천해야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 70주년이 된 90대 영국인 부부가 행복하게 해로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기자가 찾아가 행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저 세 가지 말을 자주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Thank you!” “Please” “Sorry” 무슨 말입니까? 무시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면 사랑이 풍성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겁니다. 자녀들도 인격을 존중해 줄 때 자존감이 높아지고 당당한 인격체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방법들이 가능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인간적인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금세 실패하고 맙니다. 영적인 싸움입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은 모든 인간 관계, 특히 가족 관계의 윤활유입니다.

엡5:22~6:4을 보면, 성령 충만을 받으면 가족 관계에서 화목하게 되고, 가정이 사랑으로 넘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가정 천국이 이뤄지는 겁니다. 

아무쪼록 가정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조심하십시오! 아무쪼록 늘 깨어 기도하시, 성령충만으로 작은 여우를 물리치고, 가정 천국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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