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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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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사 40:27-31)

(사40:27-31)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1. B.C.701년경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왕이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을 조롱하며 유다 왕 히스기야를 협박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곧장 성전에 가서 그 편지를 펴놓고 기도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천하만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어,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 서신을 보소서. 앗수르 왕들이 여러 나라들을 정복했을지라도 여전히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믿나이다. 우리를 택하사 주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이시어, 이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하사 온 세상 나라들이 주 여호와만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소서.’ 이 기도가 바로 응답되어 그 날 밤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군 185,000명을 진멸해버렸습니다. 산헤립 홀로 도망해서 자기들이 숭배하던 우상의 신전에서 자기 아들의 칼에 맞아 살해되었습니다.(사37장) 

그런데 이렇게 전혀 하나님의 은혜로 승전한 히스기야 왕이 뜻하지 않게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사38:1)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병에서 회복되지 못할 것이므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죽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죽는 것도 너무나 아쉽지만, 자신이 죽게 되면 앗수르의 재침략 뿐만 아니라 후계자가 없어 정치적으로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심히 걱정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제 오직 하나님 밖에는 구세주가 없다는 뜻으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간절히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를 성실하게 섬긴 일과 내가 주 앞에서 선하게 살려고 했던 것을 기억하소서.’ 

그때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히스기야에게 가서 일러 주라.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명을 15년 더 연장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에게서 구출하여 계속 보호하겠노라. 이에 대한 표적으로 내가 일영표에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겠노라.” 

이렇게 해서 히스기야 왕은 15년 생명을 연장받아 회복되었습니다. 해가 뒤로 물러간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히스기야 왕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에 바벨론 왕이 친서와 많은 예물을 사절단을 통해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뜻밖의 최강대국 사절단 방문에 크게 고무되어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왕궁 보물 창고를 열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주고 심지어 무기고까지 공개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이러한 행동은 약소(弱小) 국가인 유다가 당대 최고의 강대국 바벨론으로부터 군사동맹 상대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기뻐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벨론과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하는 강한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했던 믿음을 저버리고 군사 동맹을 통해 나라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일련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벨론 왕이 사절단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알고자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역대하 32:31을 보겠습니다. 

(대하32: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셔서 교만치 않고 겸손하게 만드시고자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빈궁할 때나 풍부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여전한가, 그 어떠한 형편 처지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 것인가,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결국 자기자랑과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보다는 점차 강한 군사력에 의존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더욱 더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 남김없이 그 모든 보물을 보여주며 자랑했던 것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약탈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이사야 39:5-7을 보겠습니다.

(사39:5-7)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히스기야 왕의 교만과 배은망덕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역대하32:25입니다. 
(대하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유다는 결국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여 70년 포로 생활이라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2. 오늘 본문은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기 약 90여년 전인 B.C.690년경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죄악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앙망하면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되리라고 위로하라는 말씀입니다. “앙망”(仰望)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는 것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소망이고, 죄 사함을 받아 참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0:1-2을 보겠습니다. 

(사40:1-2)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참조.렘50:20)

인생이나 나라 백성에게 가장 큰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여 그에 대한 형벌로 감옥생활로 형기를 다 마쳤다고 해서 지은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형기를 마침으로 석방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아니하면 여전히 죄인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죄 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형벌(刑罰)을 영원히 받는 벌, ‘영벌’(永罰)이라고 하는 이유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해서 영원히 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가서 그 형벌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죄 사함 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영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이 그냥 지옥이 아니라 영원히 죄 사함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간음죄가 점차 형법에서 그 처벌 규정이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세상 법에서 간음죄를 죄로 규정하는 조항이 사라진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까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골프의 황제로 불리는 타이거 우즈가 수 십명의 여인들과 간음한 것이 드러났음에도 고소 고발당하지 아니한 것은 이미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간음죄 조항을 삭제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두고 죄인으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돈이 많으니까, 황제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로 간과해버립니다. 오히려 그의 골프계 복귀를 열렬히 환영하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을 보면, 심각할 정도로 죄의식이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죄 정함을 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영원히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만 죄가 용서되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죄일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9:2)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므로 그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신 기적입니다.(마 9:6)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인간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의 형기를 다 마쳤다고 해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참된 위로와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70년 포로 생활이라는 형벌은 당연한 죄값이지만, 그 형기를 다 마쳤을지라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참된 위로와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형벌은 형벌대로 다 받고서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해 그냥 죄인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에게는 생명이 없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극심하여 멸망코자 하시는 뜻을 아브라함에게 알렸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습니다. “주께서 정말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시겠습니까? 만일 그 성에 50명의 의로운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그 성을 멸망시키시겠습니까? 아니면 50명의 그 의로운 사람을 생각해서 그 성을 용서하시겠습니까? 주께서는 의로운 사람을 악인들과 함께 죽일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의로운 사람을 악한 사람과 같이 취급할 수 있습니까?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만일 내가 소돔성에서 의로운 사람 50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들을 생각해서 그 성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티끌과 같은 내가 감히 주께 말씀드립니다. 만일 의로운 사람이 45명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5명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온 성을 멸망시키시겠습니까?” 라고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만일 의로운 사람 45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여쭙습니다. “만일 거기서 40명을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그 40명을 생각해서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3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기서 30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또 “내가 또 감히 주께 말씀드립니다. 거기서 20명을 찾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하자 “내가 그 20명을 생각해서 내가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또 “주여, 노하지 마소서. 내가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그 성에서 의로운 사람 10명을 찾으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간곡히 부탁드리자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내가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창18:23-32)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단 한 사람도 회개하는 자가 없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유황불로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단 한 사람일지라도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 소돔 성 전체가 멸망당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에스겔 선지자가 이렇게 전합니다. 

(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마치 황금 사슬이 하나하나 연결되듯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 진행되는 이 간절하고 끈질긴 용서를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속에서 소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타는 사랑과 그의 간청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파렴치한 인간일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봇물 같은 사랑을 부어 주시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마 18:22)가 항상 충만하여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복역의 때가 끝나고 죄 사함을 얻어 회복되리라는 약속을 본문 6-8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제국(B.C.559-530)의 자랑과 영광은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들어버리고, 결국 고레스 왕이 통치하는 바사 제국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막의 열풍(sirocco)에 마르고 시들어버리는 풀과 꽃처럼 열국의 자랑과 영광이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회복되기 시작하게 됩니다. B.C.440년경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바사 제국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려 온 땅에 공포하도록 합니다. 에스라1:2-4입니다. 

(스1:2-4)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라.’고 고백하게 만들고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고레스 왕에게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조서만 내린 것이 아니라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충분히 제공한 것입니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왔던 성전 용품, 은과 금으로 된 모두 성전 기구들을 되돌려 주었던 것입니다.(스1:5-11) 

또한 예루살렘까지 1천km가 넘는 그 머나 먼 길을 평안히 갈 수 있도록 필요한 호위병까지도 붙여주었습니다. 그 천리 길도 더 되는 길을 걸어 귀환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늘 본문29-30절, “(사40:29-31)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는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주시는 이같은 축복이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다음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28절)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지혜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루살렘 귀환은 B.C.538년 스룹바벨의 지휘 아래 1차 귀환이 이루어지고, B.C458년 에스라의 지휘 아래 2차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B.C.432년에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마지막 귀환이 이루어져 마침내 성전 재건 공사가 완성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귀환으로 성전 재건이 이루어질 때,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지역 총독 산발랏과 그의 심복 도비야가 느헤미야를 암살하여 성전 재건을 중단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성전 재건 책임자인 느헤미야 하나만 처치하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쉽게 무너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느헤미야를 암살하기 적당한 외진 곳으로 유인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자 했습니다. 성전 재건 공사가 완공 직전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랍 사람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오노 들판의 한 마을로 오시오. 거기서 좀 만납시다.’ 

산발랏 일당이 ‘오노’를 느헤미야와의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은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말 속에 자신을 해치려는 흉계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중차대한 성전 재건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협상을 위해 약속의 땅을 벗어나게 하려는 행위, 즉 말씀을 벗어나게 하려는 것은 분명 속임수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거부 의사를 분명히 전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네 번씩이나 협상면담을 요구해왔지만 그 때마다  똑같은 말로 거절했습니다.

산발랏 일당은 자신의 음모가 통하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느헤미야 진영에 있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스마야는 당시 성전 출입이 가능한 제사장으로 선지자 행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느헤미야로 하여금 스마야 자신을 찾아오도록 유도해서 자신처럼 은둔하지 않으면 느헤미야가 암살을 당할 위험이 있음을 암시하려는 거짓 술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두문불출하고 있는 스마야가 궁금해서 그를 방문했습니다. 스마야는 걸려들었다 생각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갑시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성소 출입문들을 닫읍시다. 산발랏 일당이 보낸 자객들이 그대를 죽이러 올 것이오. 그들이 밤에 와서,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오.’ 

거짓된 암살 협박으로 느헤미야를 공포로 몰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협박한 후 성전으로 피하여 안전을 도모하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음흉한 함정이 깔려 있었습니다. 성전은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지만, 그렇다고 성소에까지 들어갈 수 없습니다.(출21:13-14, 민18:7) 

느헤미야는 성소는 오직 제사장만 들어갈 있다는 하나님 말씀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성소에 제사장이 아닌 자신을 그곳으로 피하라고 하는 것은 스마야가 분명 거짓 선지자, 거짓 제사장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공포감을 조성해서 하나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을 보고 스마야가 거짓 선지자임을 알아낸 것입니다.(고후2:12-17) 그래서 느헤미야가 ‘나 같은 사람더러 도망이나 다니란 말이오? 나 같은 사람이 성소에 들어갔다가는 절대로 살아나올 수 없소. 나는 그렇게는 못하오.’라며 거절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가가 아니라, 산발랏에게 뇌물로 매수된 하수인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느헤미야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느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이(스마야와 더불어 느헤미야를 대적했던 거짓 무리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저들의 흉계를 하나님 말씀 안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직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느헤미야는 성전 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적들의 협박과 흉계에도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시리라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앙망하는 가운데 하나님 말씀 안에 주어지는 지혜로 모든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150여년 동안(B.C.586-432) 폐허였던 성전 재건이 기적적으로 52일만에 완공되자 “(느6:16)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했습니다. 그제서야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이 성전 재건 공사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위기 때에 더욱 빛을 발하는 지혜를 주시어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와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자에게 학식이 더 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잠1:5,7)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엡1:8-9) 그 뜻에 따라 살도록 하셔서 지혜로운 삶으로 축복하십니다.(마 7: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골 2:3)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생활로 세상을 능히 이기는 지혜와 지식이 충만하시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회복케 하시는 축복이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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