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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엡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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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엡 1:3-14)


예수를 믿었다면 어떤 복을 받았는지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예수 믿고 무슨 복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정확하게 대답을 하시는 분이 드뭅니다. 자기가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또 어떤 복을 받게 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도 예수 믿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는 성도가 많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 채 부모님 때문에 예수 믿었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이 언뜻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이고 내용 파악도 힘들 것입니다. 읽다가 주무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우리와 함께 나누는 시간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에베소서입니다. 

그런데 오늘 3절부터 14절까지 사실은 한 문장입니다. 우리나라 번역 성경으로는 문단을 나누었지만, 원문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라고 시작돼서 말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14절까지 계속 갑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찬송합니다.”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해서 고백을 하고 감사를 드리면서 14절까지 계속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 “또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라고 끝납니다. 

원문에 보면 3절에서 “찬송하리로다.” 하고 시작된 문장이 14절까지 한 문장입니다. 읽기도 숨이 찹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너무나 감격에 벅차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찬송이 터지니 거침없이 쉬지 않고 써내려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가기도 숨이 가쁠 정도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14절까지를 읽으시면 잠이 오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잠이 온다더니 수면제가 맞구나.’ 무슨 말인지 잘 따라가지지도 않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예수님 안에서 주신 복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차디찬 로마 감옥에서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정말 놀랍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격스러워서, 무엇이 그렇게 놀랍길래 그가 하나님 앞에 찬송을 올려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 모두가 다 누리는 복인데 그 비밀의 말씀을 오늘 하나 하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너무나 불행하게 여겨야 할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가슴 벅찬 감격에 살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3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누구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를 믿었다면 어떤 복을 받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의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에서는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피흘려 주셔서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13절에 보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으면 받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사도 바울 뿐만이 아니고,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복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자녀 삼으신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주셔서 속죄함 받은 것,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오신 것. 여러분이 이제 어떤 사람들에게서 “예수 믿고 도대체 무슨 복을 받았느냐?” 하는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이 대답하실 정답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 가지를 대답하실 수 있다면 정답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복이 깨달아지고 누려지게 하면서 여러분은 평생 찬송하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정말 감사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것이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편으로 오셨든지 간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면 예수님 앞으로 올 자가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이 여러분이 알든지 모르든지 여러분을 택하여 주목하시고 주님께로 계속 부르시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시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엇을 보고 택하셨을까? 내가 무슨 택할만한 조건이 있길래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이지? 잘 믿어지지 않으시는 분. 하나님이 무슨 기준으로 여러분을 택하셨는지를 또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 보면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안심이 되십니까? ‘하나님이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을 택하면 나는 자격이 없는데, 깨끗한 사람, 성실한 사람 이런 사람 택하면 나는 아닐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느라고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아요? 우리가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자이기에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이 말씀을 믿을 때 모든 두려움, 염려, 열등감이 다 사라집니다.

지금 한국은 고아 수출국으로 유명합니다. 우리 땅에서 태어난 우리 핏줄인데도 많은 아이들이 외국으로 입양을 나갑니다. 그런데 입양하는 가정들을 보면 참 대단한 것이 아이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리고 또 건강한 아이, 똑똑해 보이는 아이를 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러 장애인 아이들, 뇌성마비 아이들을 입양하는 가정도 많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일부러 그렇게 약한 아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택하여 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약한 자를 택하시는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택했다는 사실을 정말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은혜를 알고 나면 사람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엇도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열등감,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내 약한 것 때문에 택하셨다니까. 감사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해주셨다는 것 너무 귀한 일이지만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왜? 약해서 택함 받았으니까 그냥 감사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이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사해주셨습니다. 죄사함의 복이 우리가 세상 사는 동안에 받은 가장 놀라운 복입니다. 
속죄함 보다 귀한 복은 없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이들이 하버드 랜드크리프 대학에서 강연을 끝내고 질문을 받을 때, 한 학생이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잉꼬 부부가 되었느냐?"고 묻자 카터가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결혼에서는 사랑이 30%이고 나머지 70%는 용서였습니다." 
그러자 아내 로잘린이 일어나서 카터의 대답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결혼에서 사랑은 10%이었고, 90%는 용서였습니다." 
이 말을 하자 모든 이들이 크게 웃으며 박수쳤다고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행복의 조건은 용서에 있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 사함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어떤 관계입니까? 용서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신 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질병의 짐, 환란의 짐, 번민의 짐, 빈곤의 짐, 실패의 짐, 고독의 짐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무거운 짐이 무슨 짐인 줄 압니까? 죄의 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짐에 눌려 삽니다. 이것이 가장 우리를 비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받은 가장 큰 복,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음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흘려주신 것 때문에.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여러분, 죽는데 복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 죽는 것을 불길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을 사(死)자가 있는 것을 꺼립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도 보통 4층은 없습니다. F라고 하고. 죽는 것이 싫어서 4자라고 쓰는 것 자체를 금기시합니다. 그런데 죽어도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면 죽을 때 복이 될까요? 

여기서 말하는 죽어도 복된 이 복이 무엇입니까?  
성공입니까? 죽을 때 성공이 무엇입니까?

어느 장로님이 수필에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친구가 공군 장성이었다가 퇴역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병실에 들어서자 그 친구가 다짜고짜 소리를 치더랍니다“야! 빨리 가서 먹고 죽는 약 가져와. 나 장군이야. 그런데 똥 오줌도 못 가리고 이렇게 기저귀 차고 누워있어서 되겠어? 먹고 죽는 약 가져와!”세상 복만 알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르는 자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죽을 때 무슨 도움이 됩니까? 

돈 돈 하지만 죽을 때 돈이 무엇입니까?
 
사막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 사람들이 머물던 흔적을 찾아 마실 물이 있을까 뒤지다가 가죽 주머니를 발견하고 기대를 갖고 열어보니 보석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무 것도 아니잖아!”죽는 순간에 이르르면 보석,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죽을 때 무엇이 그 죽음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까? 속죄함을 받은 것입니다. 천국 들어갈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복입니다. 죽음의 문제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죽음 조차 복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죽어도 복된 자는 오직 하나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은 자입니다. 천국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복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 안에는 엄청난 변혁이 일어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의 인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약속받은 모든 축복,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은 것과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 받은 것이 정말 우리의 것임을 보증해주기 위해서입니다. 
14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우리는 이런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자녀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정말 알고 나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 염려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복을 받는데, 우리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특별히 먼저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럴만한 무슨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깨끗하게 살았던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복을 언급할 때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 복을 다 받게 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 자격, 출신, 행위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중에 이 은혜를 못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남 보다 부족하게 받은 사람 누가 있습니까? 여기 강단에 서있는 저는 많이 받았고 여러분은 적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 똑같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다 받았습니다. 차별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 복의 기준으로만 보면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중에도 어떻게 공평하십니까?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백년도 못 삽니다. 하늘의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복은 예외없이 모두 다 공평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감사와 찬송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찬송으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끝난 것입니다. 찬송한다는 말이 네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알고 나면 사도 바울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저 감사하고 찬송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해 보면 가슴 속에서부터 감사와 찬송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의 신령한 복을 예수 안에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감사와 찬송 밖에 안 나옵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찬송으로 성도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이 왜 만드셨을까? 왜 태어나게 하셨을까? 왜 나는 지금 살게 하셨는가? 궁금하시면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비밀을 깨닫고 실제로 그렇게 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찬송하며 사는 삶,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 인도자가 찬양을 인도할 때 조금 지나면 서서 찬양하자고 하는데, 힘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왜 일어나라고 하는지 몰라. 다리가 아프게.’ 일어나서 찬양 하는 것 이유가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아는 사람에게는 앉아서 찬송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그렇게 찬송을 불렀던 그 심정 가지고 어떻게 앉아서 부릅니까? 그런데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르는 사람은 10분 일어나서 찬송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이제 앉으십시오.‘ 그러면 복음을 듣는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신령한 복을 깨달은 사람은 30분을 찬양을 해도 부족합니다. 그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부산제일교회 부흥회에서 찬양단으로 섬겼던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이번 부흥회 때 찬양을 섬겨달라는 부탁을 받고 속으로는 많이 기뻤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그 날부터 “주님, 사람들이 절 보게 마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주세요. 오직 주님께 기뻐 찬양하는 나를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찬양을 섬기려고 시간 시간 미친 듯이 뛰어 달려 왔습니다. 

마지막 집회 저녁 말씀이 끝난 후‘나팔불 때 나의 이름’ 찬양을 하는데 정말 하늘 나라에 입성하는 무수한 영혼들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은혜 받고 기뻐하다가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향한 성령님의 애통해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동안 가족을 사랑하지 못했고 교우들과 교회를 사랑하지 못했고 이 땅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애통해 하며 절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가슴이 찢기고 아파 죽을 만큼 신음하시는 성령님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 사는 자리에서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몰랐느냐?’ 그때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성통곡했습니다. 정말 애통해 하며 죽을 것 같이 울었습니다. 이제 저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 이제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내 가진 것 모든 것 바울과 같이 배설물로 버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았으니 주님께 갈 때까지 사랑만 하겠습니다. 가족들을 사랑하고 교회 사랑하고 주님 사랑하겠습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믿음이 곧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알고 나면 정말 속에서부터 막 찬양이 나옵니다. 

지난 주간에 수요일 목요일 남성부흥회 강사로 오신 김하중 장로님을 보면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는 최장수 대사였고 통일부 장관이었지만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인 분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행복해하였습니다. 이유는 그가 바라는 복이 세상 성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허전해 하고 허탈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런데 김하중 장로님은 공직에서 물러난 지금 오히려 더 즐거워하며 만족해 하였습니다, 그가 누리는 기쁨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사로 있을 때보다 장관으로 있을 때 보다 지금이 더 기쁘십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기쁨 때문입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주님과 만나 기도하고 말씀 듣는 것이 너무너무 기쁘시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소유가 부족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받고 누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하여 눈이 뜨이지 않았고, 세상만 바라보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는 믿었지만 별로 복은 받지 못하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늘의 신령한 복을 다 받았지만 그 복이 귀한 것을 모르면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르면 그 엄청난 복을 세상 것과 바꾸게 됩니다. 
두, 세살 아이들이 만원짜리 돈을 가지고 있을 때, 과자를 주면 돈을 내어 놓습니다. 돈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지만 그 복이 복인 줄 모르면 세상 것과 금방 바꾸어 버리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받고도 모르면 다 잃어버리고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택하심의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 뿐만 아니고 아예 목사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저는 목사로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한 동안 부담스럽기만 하였지 좋은 줄 몰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게 큰 굴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팔자에 매였다고 마음대로 살 수 없는 불행한 자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큰 아들로 태어나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진, 정말 팔자가 목사인 그런 느낌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가를 몰랐으니까 그게 오히려 제게는 슬픈 조건이 되었습니다. 목사 안수 받기 전날 저는 슬퍼서 울었습니다. 복을 받아도 복을 모르면 다 잃어버립니다. 

죄사함을 받은 것도 천국 뿐 아니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제가 겉으로만 모범생이지 실제로는 지옥에 갈 죄인임을 깨닫기 전에는 감격을 몰랐습니다. 속죄에 대한 메시지를 들어도 고난주간을 지나도 제 마음 속에 특별한 뜨거운 감동, 감격, 눈물이 없었습니다. 

성령님이 제 안에 오신 것도 성령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교리적인 지식이었지 제 삶에 실제가 아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제 안에 계시다는 것 자체가 제 삶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이 젊어서는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성령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신 것이 어떤 때는 영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엄청난 신령한 복을 다 받고도 그 복이 복인 줄 모르면 전혀 찬송, 감사가 없습니다.  

학생 때, 아버님 서재에서 설교집이나 신학책을 호기심으로 잠깐 들여다 볼 때마다 이런 내용을 본 기억은 있었지만 감격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성령 체험 후 말씀을 보는 눈이 뜨이면서 제가 엄청난 복을 받고 있었음을 비로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형편, 처지 상관 없습니다. ‘어쩌면 하나님 제게 이런 복을 주십니까?’형편을 떠나 환경을 떠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런 찬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도 예수를 믿지만 그저 교회만 다닐 뿐이지 사도 바울처럼 그런 감격을 모르고 찬송을 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런 감격을 감사를 아직도 전혀 모르는 분이 있으십니까? 오히려 불평, 불만이 많고 마음에 상처도 많고 슬픔도 많고 우울하기도 한 분들은 오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이 지금 받아 누리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면 여러분이 그렇게 슬퍼하고 좌절하는 모든 조건이 다 의미가 바뀌어져 버립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 믿어지지 않는 분들은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이들에게 주시려는 약속입니다. 
 
부산제일교회 부흥회 이후 보내온 간증 중에 제가 두 분 것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부흥회를 많이 기대했고 간절하게 사모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보고 싶었고 이번에는 방언의 은사를 받고 싶었습니다. 부흥회 첫 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말씀이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믿어지지는 않았거든요. 목사님께서 앞으로 나와 기도 하실 분 나오라고 하실 때 저도 모르게 강단으로 올라갔습니다. 평소 제 성격으로는 절대 그럴 수 없는데, 갑자기 제 마음에 은혜 받는데 앞장서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제가 하고자 하는 기도는 안 나오고 회개 기도가 통곡이 되어 나왔습니다. 

둘째 날, 늘 주님과 대화하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묻고 매 순간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그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요. 이 날도 제가 원하는 기도는 제대로 못하고 제 안에 말할 수 없는 감사가 나오면서 통곡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 십자가의 복음이 저에게 실제가 되었고 구원의 확신과 넘치는 감사를 주셨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답임을 깨달았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답을 얻었습니다. 

마지막 저녁 집회 때 방언을 뜨겁게 사모하면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혀가 이상해지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다시 기도를 하는데 방언이 나오며 온 몸이 땀에 젖고 손이 하늘로 향하여 달달 떨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시원하고 평안했습니다. 제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게 유익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노라”하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주일 예배 드리면 신앙 생활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머지 시간들은 세상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예수님의 존재는 안개처럼 희미해지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분간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인생의 가치 기준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가족들 편안하게 생활하고, 좀 큰 집을 마련하고, 좋은 차도 타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하고 조금 남는 것이 있으면 인심도 좀 쓰고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서「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찔려왔습니다. 안개처럼 희미하여 어디 계신지 분간도 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존재가 언제나 제 마음에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흥회 마지막 날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하는 말씀이 제 마음을 쳤습니다. 

작년 겨울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평생 과학자로 살아오신 아버님께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셨는데, 돌아가시기 두달 전 꿈 속에서 황금 옷을 입은 예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평생 읽었던 서적들과 알고 있었던 모든 지식들이 다 쓰레기임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아버님의 말씀처럼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지식이나 가치관을 내려놓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지금도 저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무지한 저에게 소리도 없이 모양도 없이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제 마음에 거하시길 소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기쁨을 모르고 지냅니까? 그래도 바울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찬송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이 찬송할 수 있습니까? “내가 복을 받은 자구나!” 확신이 생긴 자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어요! 여기서 은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으로부터 찬송이 나오십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하늘의 복이 너무 가슴에 넘쳐서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든 마음으로부터 찬송이 터져 나오십니까? 오늘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모든 이들에게 다 그 복을 받는 눈을 열리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하므로 주님을 붙들면 그렇게 됩니다. 

주님! 세상의 박자에 이끌려 살지 말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은혜에 이끌려 살게 하옵소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상의 노래를 영혼으로 부르게 하옵소서!

이제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제 눈을 열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보게 해주옵소서. 세상의 복에 눈이 어두워서 진짜 복을 놓지고 사는 답답하고 어리석은 삶, 주님 이제는 완전히 바꾸어 주옵소서.” (유가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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