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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울이 바울이 된 이유 (행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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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바울이 된 이유 (행 9:1~9) 
  

인간이 변화되는 게 참 어렵습니다. 반대로 변질되는 건 참 쉽습니다. 여러분, 변화와 변질의 차이를 잘 아실 겁니다. ‘변화’는 긍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고, 반면 ‘변질’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변화는 어렵고 변질은 쉬울까요? 인간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악해지기는 쉬워도 선량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지식으로 인간이 변화된다면 벌써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었을 겁니다.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사악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배운 사람들이 큰 도둑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법과 제도로도 인간이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간교한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잖아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배운 게 없어서 돈을 못 번다며 좀도둑 노릇을 하다 교도소에 갔습니다. 교도소에서 이것저것 잘 가르쳐서 출소시켰습니다. 나와서 잘 하면 좋으련만 재범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죄목이 바뀌었습니다. 공문서 위조 및 사기! 배우든 못 배우든 인간의 근본이 변화되기가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인간이 철저히 변화된 케이스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사울! 나중에 그의 이름이 바뀌죠. 바울! 이름만 달라진 게 아닙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새사람이 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가 부활주일을 지켰습니다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부활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기념식 하듯이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이런 저런 행사 해치우고 1년 동안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기념일이 아닙니다. 사실은 매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언제이죠? 안식 후 첫날, 그러니까 토요일 지나고 일요일입니다. 우리는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일(主日 The Lord's Day)이라 부르죠. 그러므로 매 주일이 부활절이고, 주일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예배하는 것입니다. 아니, 매일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며 동행하는 게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주신 약속의 말씀이죠.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 부활의 몸으로는 떠나시지만, 성령을 보내심으로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또한 십자가 지시기 전부터 미리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14:18~19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여기서 다시 오신다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 성령 강림을 가리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이 오셔서 함께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성령을 통해 오시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거듭나 새생명을 얻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안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인간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변화됩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만일 변화되지 않았다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는 것을 가리켜 ‘회심’(回心 Conversion)이라 합니다.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인데, ‘방향전환’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180도 변화된다는 겁니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회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마치 이런 겁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앞에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있죠. 과거에는 이게 뭐였죠? 난지도! 쓰레기장입니다. 온갖 쓰레기를 갖다 메웠던 곳 아닙니까? 그런데 생태공원이 됐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죠?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력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의 능력으로 인간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수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용광로(melting pot)이다! 새 창조의 역사입니다! 예를 들어, 고철을 수집해서 어떻게 하죠? 용광로에 집어넣고 고열로 녹입니다. 거기서 쇳물이 나오면 그것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듭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이 고물 인생에서 신품 인생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세계도 다 변화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 인간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이 썩었다고 세상을 바꾸어야 된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자신이 변화되기 전까지 세상은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있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데올로기들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인간 자신이 변화되지 않고 큰소리만 치다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인간도 세상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연호가 뭐죠? B.C.와 A.D.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서력기원전’ ‘서력기원후(서기)’ 이렇게 변역하는데 틀렸어요. 본래는 이런 겁니다. B.C.는 ‘주전’(主前 Before Christ), A.D.는 ‘주후’(主後 Anno Domini ‘주님의 해에’)로 번역해야 맞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개개인 인생도 이런 변화를 경험해야 됩니다. B.C.와 A.D.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인생의 소망입니다. 만일 인간이 예수님 만나서 변화되지 않으면 죄인으로 살다 죄인으로 허무한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 후에는 심판받고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습니까? 이미 만나셨으면 매일 만나시기 바랍니다. 아직 만나지 못하신 분이 혹 있다면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더 나아가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킴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회심 이전과 이후 : 사울 vs. 바울 

그러면 이제 사울이 어떻게 바울로 변화됐는지 살펴봅니다. 회심 이전의 사울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본문 1절~2절을 보세요.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죠. 살기등등하고 흉악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스데반 순교 현장(사도행전 7장)에서 죽이는 데 찬성표를 던지고 씩씩거렸던 사울! 이제는 본격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해서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려고 발 벗고 나섰습니다. 다메섹에는 당시 30~40개의 유대인 회당이 있었고, 약 4만 명의 유대인 교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 여행에 나섰던 겁니다. 어떤 인간인지 상상이 되시죠.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에 들어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행9:20~21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 ”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 간 그가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하고 증거합니다. 박해자가 전도자가 된 겁니다. 그의 소문을 미리 듣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그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신바람이 난 사울이 더욱 힘을 내서 전도합니다. 행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당황한 반대자들이 세를 규합해서 그를 처치하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자 하는 수 없이 다메섹을 빠져나가는 사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행9: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이방인의 사도(선교사)로 세움 받아 전 세계를 누비며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을 돌보기 위해 기록한 서신들은 신약성경으로 공인되었는데, 신약 전체 가운데 무려 3분지 1 가량 됩니다. 오늘의 서구 문명과 세계선교의 기초가 바로 그의 변화로 인해 시작된 겁니다. 그는 이렇게 복음 전도자로 살다가 마지막 네로 황제의 박해 때인 AD 67년 참수형으로 순교합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변화를 경함한 바울을 가리켜 역사가 A. 토인비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바울을 싣고 가는 배는 유럽을 싣고 가는 배였다.” 그가 복음을 증거하다 죄수의 모습으로 로마에 압송된 것 같지만, 사실은 로마를 통해 유럽 전지역으로 복음이 확산됨으로 유럽을 기독교 문명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2] 회심 이후 변화된 모습 : 인격, 가치관, 인생 목적의 변화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것은 한 마디로 전인적 변화였습니다. 인격도, 가치관도, 그리고 인생의 목적도 달라졌습니다. 

① 인격 :

그는 본문에서 보는 대로 살기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심은 있었는데, 늘 좌충우돌하고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거칠게 대하던 사람입니다. 자기가 배운 율법을 갖고 남을 비판하고 책r망하는 데 몰두했던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변화됩니까? 사도행전 뒷부분과 바울 서신들을 읽어보면, 여유있고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온유와 겸손의 인격자가 된 겁니다. 자신의 마음도 평안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꼭 닮은 겁니다. 그 자신이 말하는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자신이 이런 인격을 갖지 않고는 감히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갈5:22~23 보면 성령의 열매가 나오죠.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9가지 열매는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성령과 항상 교제하면 변화된 그의 인격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과 180도 달라진 그의 인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살전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gentle)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유순한 사람 즉 젠틀맨(Gentleman)이 됐습니다. 젖먹이 어미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됐습니다. 

② 가치관 :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즉 종교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특권층에 해당하는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물론 세속적 가치 기준으로 그랬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와 권세와 명예 등을 추구하였습니다.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것도 보다 나은 권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후 무엇이 좋고 나쁜지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그렇게 집착하던 것들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50세에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자였지만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50세에 비로소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55세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비로소 예수님을 믿게 됐다. 전에 원하던 것을 지금은 원치 않고, 전에 원치 않던 것을 지금 원한다.” 이게 바로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바울은 골3: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세상의 가치관이 하늘나라의 가치관으로 바뀐 겁니다. 또 빌3:7~8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 ” 과거에 그렇게 귀중히 여기던 것들조차 예수님을 아는 신앙과 비교해 보면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③ 인생 목적 :

회심 이전의 사울은 세상의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계속 늘여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아무리 추구하고 성취해도 만족이 없고 어쩐지 허무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을 냈습니다.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 체포하러 간 것도 다 그런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어떻게 달라졌죠?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인간이 사명을 확신하지 못하면 허무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유가 행복인 줄 압니다. 착각이죠. 금세 사라져버립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유에 목숨을 걸면 반드시 허무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를 얻되 무엇을 위해서(For What) 얻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사명이죠. 바울은 회심 이후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밀레도 고별 설교 가운데 이렇게 고백합니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그 길로 예루살렘에 간 바울은 즉시 체포됩니다. 그리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갑니다. 그는 순교 직전 감옥에서 기록한 디모데후서에서 최후 진술과 같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딤후4:7~8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인생의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게 진짜 영웅의 모습입니다. 안중근 의사도 그랬죠. 요즘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그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사명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던져서라도 대한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이루려 했던 그 사명이 있었기에 그는 위대한 생애를 마칠 수 있었던 겁니다. 

  
[3]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이유 :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건

이렇게 살펴볼 때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것은 정말 엄청납니다. 그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나요? 한 마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본문 3절 이하를 보면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그 광경을 간증한 기록이 사도행전 22장과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생 가는 곳곳마다 그 감격스런 순간을 간증했을 겁니다. 특별히 행26:13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정오의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빛 외에 뭐가 있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입니다. 그 앞에 사울이 고꾸라진 겁니다. 

사울과 예수님의 대화 내용이 뭡니까? 4절~5절.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부활하신 에수님을 만나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겁니다. “아니, 예수가 살아 있단 말인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인가!” 그는 충격으로 눈도 멀어버리고, 부축 받아 다메섹 성에 들어간 후 사흘간 식음을 전폐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제자 아나니아를 보냈고, 아나니아의 안수기도로 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어진 것은 멀었던 육안이 치유 받고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영안이 떠진 것을 암시합니다. 영혼의 눈이 열리자 이제 사울은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새 사람으로 변화됐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간이 변화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12제자가 모두 변화됐습니다. 역사 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랬습니다. 고대 신학자 어거스틴의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그는 젊은 날에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 만나 큰 변화를 경험합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과거 방탕하던 시절 교제하던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여자가 알아보고 말을 겁니다. “아, 어거스틴! 당신 아냐? 어디 가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 ” 그러자 어거스틴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저는 새 어거스틴입니다. 더 이상 어거스틴을 찾지 마십시오!” 

우리도 이렇게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주변 사람들도 변화될 수 잇도록 기도하고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자녀들이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 자녀들이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일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변화가 불가능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No one is impossible case to God.)

여러분,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 아시죠. 그 작사자는 존 뉴우튼(John Newton) 목사인데 노예상인 출신입니다. 그는 15세에 홀어머니를 두고 가출했습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다 노예상인이 됐는데, 나중에는 선장이 되어 수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아메리카로 실어 날랐습니다. 어느 날 항해 중이었는데 꿈속에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음이 이상했지만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그 다음 날 배가 난파를 당했습니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떠밀려 해변에 닿았습니다. 홀로 서서 인생을 회고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 후 그는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영국의 크리스천 지성인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는 노예복을 입은 채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의 이런 변화가 후일 링컨의 노예해방 운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 어머니가 포기하지 않고 눈물의 기도를 했을 때 한 인생에 변화될 뿐 아니라 역사가 변화된 겁니다.   

아무쪼록 부활하셔서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그래서 변화됨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고, 이 세상도 변화시키는 승리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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