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 (마 2:1~12)

  • 잡초 잡초
  • 702
  • 0

첨부 1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 (마 2:1~12)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의 탄생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예언의 성취로서 이루어졌습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에는 이미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사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이 보내실 아기의 정체는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위대한 분입니다.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ternal Father, Prince of Peace
이분은 이렇게 위대한 분이시지만,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이분 가장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습니다. 

6절 -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사실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고을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그런 마을입니다. 
크기는 작은 곳이었지만 결코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작지 않은 마을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태어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반기문UN사무총장이 태어난 곳은 음성이라는 산골짜기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이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 동안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작은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관심을 집중하는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난 그분은 누구십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와서 질문을 합니다.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이에 대한 헤롯의 반응은 3절 -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내가 왕인데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유대인의 왕이라니’
그러나 왕은 금방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묻습니다. 
4절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헤롯왕과 그 당시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가 정치적인 의미에서 왕이라고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자기 자리를 빼앗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그를 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씌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쓸 것을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쓸 것을 썼노라고 하면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십니다. 
더 분명한 사실을 말하자면 ‘유대인의 왕’만 아니라, 
‘온 세계 모든 인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욕심만 채우는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모든 왕 중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동방의 박사들은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멀리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메시아의 별을 보고 경배하기 위해 왔습니다. 
비록 그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구유에 누워있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만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았기에 경배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해서 경배를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분의 이름과 그 신분에 맞는 존귀와 영광을 돌리길 바랍니다. 
그분은 가장 위대한 왕이시기에 우리가 최선의 것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분에게는 부족한 것입니다. 
최고의 영광을 주님께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만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영국 출신 맥도널드 목사님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가 되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있었습니다. 
전시의 포로는 죽은 목숨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맥도널드의 친구 중에 함께 포로 된 전기 기술자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라디오를 조립하여 비밀리에 BBC 영국 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 상황을 파악하여 수용소 포로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그 친구가 맥도널드를 깨우며 다급히 말했습니다. 

“여보게 그들이 왔어”
이 말은 드디어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왔다는 소식이 포로수용소에 퍼지자 
포로들은 마당으로 뛰어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왔다, 그들이 왔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기쁜 순간입니까? 
자기들을 포로에서 구출해 줄 연합군이 왔다는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모르는 독일병사들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도 그랬습니다. 
그가 오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소식이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아니, 헤롯과 같은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위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감동입니다.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소식입니까?
기쁨과 감격의 소식이길 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한 탄생의 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우리 주님께 돌리길 원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 우리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희생은 곧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이를 믿을 때 우리는 죄악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마땅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풍성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요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삶의 가치인지, 어떤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분은 진정 왕 중의 왕이십니다. 
여기서 왕이란 통치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점검해야 할 정말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의 왕도 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나의 마음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나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까? 
역사는 결코 우연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하나님의 손길이 이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여러분은 그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조심스럽지만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에 대한 간증을 드리려 합니다. 
이 집사님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교회생활을 시작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도 아들이 신앙생활 하기를 원했지만
고집을 피우다가 정작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장례를 치르면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회를 나오면서 은혜를 받았지만, 믿음이 그렇게 잘 자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확신반, 성장반, 제자반에 들어와서 훈련을 받으면서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으며, 알파코스를 통해서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매주 하는 과제물 가운데 생활숙제나 큐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지난주간에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이 쓰신 대로 전하겠습니다. 
25년의 샐러리맨 생활을 마감하고 오파상 사장, 스포츠센터 사장, 호프집 사장, 
놀고먹고 사장 등 두루 경험하며 철저히 모든 것을 없애주셨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놀고먹고 사장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힘들어도 봉급쟁이는 안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부터 한 달쯤 전에, 
과거에 다녔던 회사의 회장님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자회사인 골프장 관리임원을 맡아달라는 제의였습니다. 

연봉으로 하면 억대에 해당되는 아주 괜찮은 자리입니다. 
마음껏 골프를 칠 수도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맡으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곳이 지방인데다가, 주말에는 더 바쁘기 때문입니다. 
제자반을 계속할 수 없고, 목사님과도 헤어질 수 없는 상황 등을 고민하다가
정말 아까운 자리지만 정중히 사양을 했습니다. 

다음날 생각하니, 현재의 형편으로 그런 좋은 여건을 물리친 자신이 
정신 나간 놈 같았습니다.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욕이라도 할 일이었습니다. 
무엇에 홀렸나 후회스럽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이제 돈이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삶의 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 예수님이 다스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생각지도 않게 
제법 괜찮은 중견업체의 간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난번에 거절한 직장에 비하면 연봉은 턱없이 적은 곳이지만
그래도 50대 중반의 나이에 써준 것도 고마운데 
게다가 정년 걱정없이 건강이 허락하면 칠십 넘게까지 도와달라고 한답니다.
지난번 거절한 직장은 몇 년 다니다가 그만 둘 수도 있는 곳인데 말입니다. 

더 잘 된 것이죠. 
무엇보다도 신앙생활 특히 제자훈련을 계속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무슨 꿈속을 다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집과 직장과 교회가 전부 30분내 거리에 있습니다. 
기가 막히다고 썼습니다. 

그 동안 많은 응답과 체험의 발표를 했지만 
이 취업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면 기적이라 할 만큼 드라마틱하다고 합니다. 
무식할 정도로 순종하고 모든 것을 잊고 
열심히 제자반 공부하는데 집중하며 때를 기다려온 결과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간증을 들으면서 이분이야 말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분이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제자반 숙제하고 성경 암송하느라고 밤2시, 3시까지 공부한답니다. 
이분에게는 기가 막힌 간증들이 많습니다. 
내년에 11남선교회 회장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에 참여하면 이런 간증의 주인공이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입니다. 
이 삶이 바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의 삶입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했던 
바울의 고백이 바로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스리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온전히 우리의 왕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찬송 102장에도 “영원한 문아 열려라 새 임금 들어가신다. 
만왕의 왕이 오시니. 만민의 구주시로다.”
123장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126장 “영광 받을 왕의 왕 베들레헴에 나신 주” 
예수님은 The King of the kings(왕 중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통치하고 계십니까? 

그분이 진정 여러분의 주인이십니까?
Kingship은 Lordship과 통하는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시기에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