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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시는 하나님 (눅 15: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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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시는 하나님 (눅 15:18~24)
  

‘ Cast Away’ 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아주 명화입니다. 그 내용 중에 보면 두 남녀가 열렬히 사랑해 약혼을 하고 결혼 날짜까지 정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놀랜드라는 주인공 남자는 자기가 나가는 회사 일로 인해서 잠깐 출장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비행기 사고로 인하여 비행기가 추락되면서 비행기에 탄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놀랜드라는 사람이 남태평양 어느 무인도에 표류됩니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 감격합니다. 그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과일을 따먹고 바위틈에 은신하면서 어렵게 4년을 살았습니다. 그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약혼자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그로 하여금 이 많은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이었고, 살아야 할 희망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뗏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헤쳐 나가던 중에 다행히 지나가던 상선에게 발견되어서 구출이 됩니다. 놀랜드는 자기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망처리가 되었고 장례식까지 치러진 상태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사모했던 애인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그리워하며 자신의 생명줄과 같았던 약혼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 살고 있었습니다. 놀랜드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괴롭지만 사랑하는 사람, 모처럼 안정을 얻은 그 사람, 그 가정을 파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물러섭니다. 

그리고 넓은 광야를 앞에 놓고 갈 방향을 정하지를 못합니다. ‘앞으로 가야하나? 뒤로 가야하나? 옆으로 가야하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가 광야를 바라보며 방황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여러분, 주인공 놀랜드라는 청년이 무인도에서 4년을 고독과 온갖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약혼녀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잃어버린 순간 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사랑은 곧 생명입니다.

여러분, 동물적 사랑과 인간적 사랑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동물이라는 것은 본능적 욕구가 충족되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동물적 사랑이고, 행복입니다. 케냐의 사파리에 가보면 넓은 벌판에 많은 짐승들이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동물들은 대체적으로 배만 부르면 만족합니다. 

동물의 왕이라고 말하는 사자를 보면 짐승을 잡아먹고 배가 부르면 나무 밑에 누워서 낮잠을 잡니다. 그 사자들 옆에는 커다란 수컷 사자 떡 버티고 앉아 있습니다. 숫컷 사자는 굉장히 힘이 센 놈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수컷들을 물리치고 자신이 그 사자 무리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그런 숫컷 사자의 얼굴을 보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수컷들의 도전을 받아 싸우며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가정을 지키는 가운데 얻게 된 상처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고작 2년 남짓 됩니다. 조금만 힘이 약해지면 젊은 숫컷 사자가 그를 공격해 그를 쫓아내고 무리를 점령해 버린답니다. 힘의 지배에서 쫓겨나면 그때부터 천대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힘의 논리 가운데서 추구하는 행복의 결론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이러한 힘의 논리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은 사랑의 논리를 통해서 얻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가운데서 얻게 됩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사랑하면서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나눠 달라고 해서 도시로 나가 방탕한 삶을 살다가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 뉘우치고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본문에 아버지와 작은 아들, 큰 아들, 종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행복해 하는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이야기를 읽어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된 작은 아들이 느끼는 기쁨보다 돌아온 작은 아들에게 베푸는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주에 대림절 첫째 주간을 맞이해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묵상하며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사랑하는 종아, 너희가 나를 기다림보다 내가 너희들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더 간절함을 너는 아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제 마음 속에 들렸습니다. 대림절을 맞아 ‘기다림’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묵상할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다리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대림절과 관련된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기다림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20절을 보면 아버지가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를 보면서 하나님의 기다림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라는 말씀을 통해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을 기다렸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이 밝으면 동구 밖에 나가 작은 아들이 이제나 저제나 돌아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먼 길목에 사람이 보이면 혹시 작은 아들이 아닌가 하여 눈여겨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거리가 멀어 사람을 분명히 구별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작은 아들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다림은 사랑이었습니다. 

기다리는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면서 성경 안에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오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오라’고 간절히 부르시는 말씀이 여러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오라고 부르시는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기다림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이사야 1장 18절의 말씀입니다. 한번 찾아서 함께 읽어봅시다. 구약 967면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오라’ 즉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돌아와서 우리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말씀하십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너희의 잘못이 드러나고 혹시 그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내가 다 용서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오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에게서 오늘 본문에서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을 매일 동구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은 ‘오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함께 찾아 읽어봅니다. 신약 18면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은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 ‘다 내게로 오라’로 초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초대하는 대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모두’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쉼과 평안을 얻기를 원합니다. 쉼과 평안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쉼과 평안을 기다리는 간절함 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를 쉼과 평안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대림절은 우리에게 구원과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에게 구원과 평안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절기입니다. 

이번 대림절을 보내면서 우리를 향해 ‘오라’ 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참 평안과 기쁨은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다른 하나의 단어는 ‘골방’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의 말씀입니다. 신약 8면에 있습니다. 함께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골방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에게서 우리와 깊은 만남을 갖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골방으로 부르십니다. 골방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큰 방 뒤쪽에 있는 작은 방’이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단 둘이 만날 수 있는 작은 뒤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왜 골방을 좋아하실까요?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골방에서 기다리시고 계실까요? 여기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골방에서 다른 어떤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사건을 대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너무나 바쁘게 살다보니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우리를 골방으로 부르십니다. 어느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골방은 단순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그곳은 우리의 골방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란한 곳을 피해 하나님과 단 둘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을 찾아 가셨습니다. 산으로 가셨고, 들판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에게는 산이 골방이었고, 들판이 골방이었습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골방이 있고 그 골방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을 가만히 주목해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힘든 것 같고, 그의 어깨에 지워진 십자가는 몹시 무거운 것 같지만,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기쁨이 잔잔히 흐르는 것을 봅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깊이 나누는 골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방에서 자신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나누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감사와 희망과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골방은 신기한 곳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삶은 세상의 어떤 즐거움 보다도 더 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웃지 못하는 환경에도 그 사람은 웃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자기가 겪은 이야기 한 토막을 써 놓은 것을 읽었습니다. 기상이 좋지 않아서 비행기가 계속 흔들리고 사람들은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벨트를 매라는 신호가 나옵니다. 그런데 뒤에서 자꾸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가 자꾸 웃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돌아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귀에 리시버를 끼고 있더랍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들으니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웃는데 자기 혼자 웃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긴장하고 있는데도 자기는 즐거운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목사님이 깨달았답니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다른 점이 무엇인가? 저 사람은 듣는 것이 있고 나는 듣지를 못한다. 그것이 틀리구나.’ 여기에 큰 진리가 있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웃음을 잃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소식에 모두가 긴장합니다. 미래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불확실합니다. 곳곳에 자연 재해와 전쟁과 테러로 인해 지구촌이 불안합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며 충격을 줍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를 생각하면 근심과 불안함이 밀려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초대하시는 곳이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초대하는 골방입니다.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 앞에 있는 문제가 산더미처럼 크게 보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낙담하고 슬픔을 가지게 되지만 골방에 들어가면 그 슬픔과 아픔을 통해 정금과 같은 믿음의 모습으로 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을 보게 됩니다. 골방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공급해 주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선하신 계획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곳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을 비춰주시는 곳입니다. 그 골방으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부르시고 기다리십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의 만남을 위해 ‘골방’으로 향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고 계신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는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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