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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려면 (눅 9: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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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려면 (눅 9:18~27)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고, 인정받기 위해 힘씁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인정을 받을 때 기뻐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인정을 받을 때 수고한 보람을 느낍니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인정받고자 최선을 다하고, 상인들은 고객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힘씁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인정을 바라고, 선생님들은 학생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어찌 보면, 인정받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반면에,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우리 마음은 상처를 입고 실의에 잠깁니다. 더구나 자기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방을 받게 된다면 그 심적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정받는 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해야만 하나님이 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정과 상관없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우상들을 숭배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성경에 계시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조물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대신 지음 받은 것들을 신으로 알고 섬깁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장에 이르기를 “21)…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지시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무려 120년에 걸쳐서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을 때 노아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이는 노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가하면,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를 온전히 인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노아를 택하셔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22절에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증언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노아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토대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것 역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주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묻고 답하는 내용은, 누가복음 9장 뿐 아니라 마태복음 16장과 마가복음 8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내용이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장소가 나와 있지 않지만, 다른 두 복음서에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때는 공생애의 후반기로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한적한 지방으로 여행을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당할 십자가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평소에 많이 듣던 대로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물으십니다.

“아무개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는 저마다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솔직하게 진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각 사람은 오직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던 중에 “혹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제 아내가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가 주님을 잘 섬긴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이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부모의 믿음으로 자식이 구원받지도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어야 주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여기서, 인정을 받는 것은 곧 구원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란 헬라말이고, 히브리말로는 메시야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구세주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그리스도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비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라고 주장하는 기독교를 가리켜 독선적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어느 종교든지 진실하게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지, 왜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하느냐고 항의합니다. 

만일 성경이 사람들의 생각을 기록한 책이라면 그들의 항변은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들의 항변은 근거가 없는 것이 됩니다. 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기초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세주이신 사실을 명백하게 증거합니다. 

사도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이 신약성경인데, 신약이 증거하는 핵심 내용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도들은 구세주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예수님에게서 다 성취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증언이 진실한 것임을 자기들의 목숨을 바쳐서 입증했습니다. 누구나 거짓말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예수님을 위해 순교의 제물로 바침으로써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진실 됨을 증거했습니다. 

한번은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가는데 미문 곁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걸인이 보고 구걸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 걸인을 주목하고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걸인이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두 사도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두 사도를 체포하고 심문하였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자기의 능력으로 앉은뱅이 걸인을 일으켰다고 말하지 않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의 이름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병자를 일으킬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권세가 있어서 이보다 더 큰 기적도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그 분을 구새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주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대신하여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귀하신 목숨을 희생하셨기에 저와 성도님들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자원하여 죽는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목숨을 희생하셨기에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양이 목자를 따라 가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시록 14장 4절에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들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가려면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3)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의 욕망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내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을 버리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를 살펴보면,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욕구를 해결하려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욕망을 버리고 주님의 열망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 믿는 일로 손해를 보게 될지라도 변함없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대속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핍박과 고난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당시부터 기독교 신앙은 많은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유대교를 신봉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죽다니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기독교인들이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핍박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처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이라고 하는 원형경기장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로마 시민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맹수들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보면서 즐겼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비할 때 오늘 우리는 너무나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국가의 헌법에 의해서 신앙의 자유가 보장 받기 때문에 노골적인 핍박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암암리에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과 핍박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고난을 두려워말고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아낀다고 해서 보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안전하게 목숨을 보전할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영생을 얻게 되므로 그것이야말로 제 목숨을 구원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주님의 인정을 받으려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에게 자랑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누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 믿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가리키면서 “내가 이 사람을 압니다. 이 사람은 나를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면에, “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처음 교회로 인도 받은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고, 아직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신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를 꺼려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에도 성경찬송가를 품속에 감추어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점점 신앙생활을 해 나감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믿음이 생기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더 이상 성경찬송가를 감추지 않을 뿐 아니라, 어디서든지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사실을 떳떳하게 밝힙니다. 이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전도를 의미합니다. 전도를 어렵게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실은 전도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려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설화 중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라 경문왕은 임금이 되고 나서 귀가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두건장이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건장이는 이 사실을 발설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설했다가는 당장 처형을 당할 것이니까요. 그 비밀을 혼자 간직하려니 속병이 생겨서 죽게 되었습니다. 

두건장이는 기왕 죽게 되었으니 죽기 전에 한번 속 시원하게 외치리라 하고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더니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 설화는 우리 인간이란 비밀을 가슴에 품고 언제까지나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긴 것을 알고서 그것을 발설하지 못해 죽을병에 걸렸다면, 천국의 비밀을 알고 있는 우리가 입을 봉하고 아무에게도 그 비밀을 말해 주지 않고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사실과, 그를 믿으면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다면, 이 복음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욕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을 발설하면 죽임을 당하지만, 복음의 비밀은 온 천하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허락을 받은 비밀입니다. 우리가 먼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할지라도, 한 집에 사는 가족에게, 자주 만나는 친척들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이웃에게는 얼마든지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전하는 것이 곧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직하게 살지 않는 기독교인들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자기들보다 정직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게 행동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에게서 그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때 저들은 실망하고 “예수 믿는 사람도 우리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고 기독교를 비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만 주님을 시인할 것이 아니라, 착한 행실로서 주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무리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더라도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주님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가장 성공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먼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사람들 앞에서 말과 행실로서 주님을 시인하고 전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설교를 경청하신 성도님 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의 인정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귀한 일군으로 쓰임 받게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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