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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신앙인의 자기발전 (딤전 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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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신앙인의 자기발전 (딤전 4:12~16)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유산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물려주려고 애를 씁니다. 유산 중에 문화의 유산이 있습니다. 이태리, 이스라엘, 터키 같은 나라들은 거리에 돌이 천지입니다. 그것들은 최하 2천 년 전 것들입니다. 전국이 문화유산들인 셈입니다. 그것들을 보려고 세계 각 곳에서 옵니다. 그 관광객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연간 수백억 달러씩이나 된다고 합니다. 가문의 유산도 있습니다. 

엊그제 신문에 미국의 최대 가문은 1위가 케네디 가이고 2위가 록펠러 가를 꼽았습니다. 케네디가 젊은 나이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도 자신의 능력도 있었지만 가문의 명성의 영향도 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산이라고 말합니다. 또 물질의 유산도 좋은 것입니다. 이런 유산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유산은 다 물려주고 받고 쌓아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지성과 인격과 지식은 물려주지를 못합니다. 그 사람이 사망하면 그 즉시로 그 좋은 지식과 인격은 아깝게 사라집니다. 어려서 우리 집안에 한학에 아주 깊은 분이 있었습니다. 온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유학을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그분이 돌아가자 사람들이 “그 지식을 물려주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아깝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다른 것은 다 물려주게 하시고 지성이나 지식이나 인격은 물려줄 수 없게 하셨을까요. 만일 물려줄 수 있게 하셨다면 아마 이 세상은 매사를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력도 공부도 수양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연구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얻도록 하셨습니다.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첼로 연주자인 파블로 카잘스는 나이가 95세가 되었는데도 날마다 6시간씩 연습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젊은 리포터가 와서 인터뷰하며 “당신은 이제껏 살아왔던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한 첼로 연주자인데 지금 연세가 95세인데도 여전히 하루에 6시간씩 연습을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제가 지금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리더나 지도자들은 모두 자기개발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모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신앙인들은 일반인들 보다 영적으로 생각이나 의식이나 책임감에 앞서가는 사람들입니다. 고로 신앙인들은 그 시대를 늘 배우며 자신을 더 성숙시키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사도바울과 디모데의 이야기입니다. 디모데는 사도바울의 애제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과 같이 여겼습니다. 디모데는 3대 신앙자의 가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명한 로이스라는 신앙인입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유니게는 경건한 유대인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경건의 훈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거기다 디모데는 사도바울이라는 좋은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스승으로서 계속해서 자기훈련을 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그리고 읽는 일에 전념하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그 시대의 경건한 신앙인이고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디모데는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이가 어리다고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합니다. 그 일이 영적 실력을 쌓는 일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꾸준히 실력을 쌓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계발하여 실력을 쌓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철저하게 자기관리 속에 날마다 진보해야 합니다. 발전하지 않는 지도자나 신앙인은 퇴보합니다. 신앙인은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그를 사용하십니다. 그 훈련의 덕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자기 훈련 

발전하는 신앙인은 자기훈련에 최선을 다합니다. 미래에 주어진 비전과 목표를 향해 자기 자신을 꾸준히 계발하고 훈련합니다.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전 9:27)”고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이 자기 훈련입니다. 교회생활을 그냥 편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안하는 것 보다는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생활은 신앙이 자라지 않고 더 이상 구체적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자기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영적으로 더 자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훈련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4:7)”, “너는 명하고 가르치라(11)”, “네 나이 어리다고 업신여기지 않도록 말에 주의하라(12)”,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보여주라(15)”고 무섭게 자기훈련을 강조했습니다. 지도자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은 자기를 훈련하고 무섭게 절제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내 안에 영적 잡초들이 돋아나게 됩니다.     


영성 개발 

영성은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을 말합니다. 누군가가 영성이 깊다는 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41장8절을 보면 “하나님과 친한 아브라함”이라고 말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친밀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으로 훈련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친밀하여지고 그분과 동역하고 그분과 연합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자기를 무섭게 통제하고 훈련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녹슬게 되어 있습니다. 쇠는 그냥 놔두면 녹이 슬게 되어 있습니다. 밭도 갈아엎고 그냥 놔두면 잡초가 우거지게 됩니다. 지식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내 영적생활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내 마음과 내 심령에 잡초가 우거지고 영성이 무디어지고 영적안목이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엘리는 늙어 몸이 비대해졌습니다. 그러자 영적으로 무디어지고 나태해졌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옆방에 있는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뛰어나오는데 비대해진 엘리는 듣지를 못했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듣지 못하면 그 생명이 끝난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가장 큰 불행한 일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과 친밀하여야 영적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들은 늘 공부해야 합니다. 아니면 녹이 슬게 됩니다. 그러면 10년 전의 누렇게 바랜 강의 노트를 그냥 들고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퇴출당하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실업인도 늘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합니까. 오늘의 5분이 이집트 시대의 12년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옛날 사고를 가지고 사업하는 사업가도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퇴출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영성을 계발하고 깊은 영성으로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인성 개발 

인격은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사람들의 헌신을 이끌어 내는 힘입니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인격의 수준 그 이상을 따르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이기적이라면 아무리 똑똑하고 기도 많이 해도 존경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이나 지도자는 인격개발을 위해서 매일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22-23절에는 우리가 맺어야 할 영적 그리고 인격적 열매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열매가 모두 9가지입니다. 마음에 3가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이웃을 위하여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가,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과 절제와 온유의 열매가 맺힙니다. 

신앙인이 신앙 안에서 살면 이런 열매들이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열매를 성령의 열매 또는 인성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성령이 내안에 내재하고 말씀이 내안에 내재하면 이런 열매가 맺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열매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제도가 아닙니다. 힘도 아닙니다. 개혁도 아니고 혁명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성의 열매로 가능합니다. 그 열매에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고 협력하여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안수 받을 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하라(딤후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을 사장시키지 말고 활용하라는 말입니다. 그때 각종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는 나로 하여금 힘과 능력을 공급합니다. 그 힘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영성과 인성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자아상 개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지 분명한 이유는 나의 자아상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4:7)”, 

“너는 안수 받을 때에 주어진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딤후1:6)”,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6:12), 

“너는...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고 했습니다. 

나이 어린 디모데가 사도바울 같은 분명한 신앙을 가진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탄생한 것입니다. 사도바울 자신도 이 자아상을 아주 분명히 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만 알기로 작정하노라(고전2:2).”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유혹하지 말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갈6:17)”,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빌1:20)”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 자아상입니까.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자화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목적도 가는 방향도 하는 일도 살아가는 자세도 분명해지게 됩니다. 

얼마 전에 말씀드린 송명희 시인은 외모로는 너무나 불행한 모습입니다. 온 몸이 뒤틀린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어느 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자 정색을 하며 “나는 이대로가 좋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철저하게 신뢰하고 믿고 수용하고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볼 때는 내 모습이 안타깝게 보일지 모르나 나는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고 주님을 사랑해야 나의 자화상이 분명해집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회성 개발 

우리 신앙인은 영적 리더로서 사회성도 개발해야 합니다. 무슨 일에 성공한 사람은 20%는 자기 능력 때문이고 80%는 대인관계 때문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오늘 사람들이 선호하는 IQ, EQ 도 중요하지만 NQ (Network Quotient) 즉 대인관계 지수가 더 중요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승리의 비결은 다른 사람을 성공시키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성공시켜야 결국 내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미인대칭 즉 미소 인사 대화 칭찬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타인에 미소와 인사와 대화와 칭찬이 있으면 다른 사람도 내게 그렇게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미인대칭의 사회성 개발하는 방법을 예수께서 마태복음 7장12절에서 이미 오래전에 지적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장14절에서 “너는 이단들과 거짓 증언자들과 핍박자들과 말다툼을 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 엄히 말하노니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를 망하게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1절에서는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버지에게 하듯 하고 젊은이에게 형제에게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모두 사회성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 사회성의 부족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상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불필요하게 고집이 세다, 자기주장이 강하다, 말을 많이 한다고 지적을 합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이 많고 고집이 세고 불평도 많이 하고 관계도 원만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번 불화가 야기되면 좀처럼 화해가 어렵습니다. 분열은 쉬운데 합하는 데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 지적들은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1절에서 “무릇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고 공경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 받지 않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는 상전을 둔 종들은 상전이 믿음의 형제라고 가볍게 소홀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겨라, 그것이 믿는 자의 할 일이요 네가 사랑을 받는 비결(딤전6:2)”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할 수 있는 한 이 세상에서 누구와도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을 줄여야 합니다. 누구의 부족한 부분을 말하기 전에 내 모습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단 진리가 왜곡되고 주께서 욕을 당하고 구원의 길이 막힐 때에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그때에는 강하게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체력 개발 

신앙인이 체력이 약해지면 영성개발이나 신앙 유지가 어려워집니다. 몸이 건강할 때 우리들이 영적인 힘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위탁하신 몸입니다. 그래서 잘 관리해야 합니다. 만일 몸이 병들면 신앙도 쇠하게 됩니다. 몸이 건강할 때 마음도 정신도 생각도 신앙도 건강해지게 됩니다. 아니면 좋던 신앙도 병들고 쇠하고 메말라지게 됩니다. 몸이 좋지 않아 예배를 누워서 집에서 TV로 드리고 사무실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날 내 발로 걸어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 발로 걸어옴, 와서 예배당에 앉아있음, 그리고 함께 기도함, 영적 공간 안에 내가 지금 참여하고 있음, 내 손으로 헌금을 드림, 두 손 모아 기도함, 말씀을 새김, 입을 열어 찬송을 부름” 이것들이 집에서 누워 TV로 드리는 예배와 같을 수가 있습니까.  

 신앙인은 건강해야 합니다. 특히 노년을 조심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살며 예배드리다가 3일만 아프고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 문제도 생각해 보면 죽을 준비가 미흡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준비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삶을 진심으로 정리정돈 할 시간이 3일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달려갈 길을 다 달렸으니” 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그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하는 청지기들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매일 훈련하고 연단해야 합니다. 아니면 내안에 영적 잡초들이 돋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훈련과 영성과 인성의 개발과 분명한 자아상과 사회성을 기르고 체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전인적 건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그 시대 우리는 가장 강력한 자질을 가진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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