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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과 금촛대 (출 25: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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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과 금촛대 (출 25:31~40)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가지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는 십계명입니다. 또 하나는 성막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심은 성막에 임재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 40년간을 함께 하셨습니다. 성막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막에 대한 그림 몇 개를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들라고 명령하신 성막의 전체 모형입니다.
(그림1) 성막 주위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성막의 성소 부분입니다.
(그림2) 이 성소를 만들 때는 네 겹으로 덮게 했습니다.
(그림3) 출애굽기 26장에 보면 처음에는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은 휘장으로 덮었습니다. 두 번째는 염소의 털로 짠 휘장으로 덮었습니다. 세 번째는 수양의 가죽으로 만들어 덮었습니다. 네 번째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어 덮었습니다. 

성소의 구조를 옆에서 보면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었습니다.
(그림4) 성소와 지성소 사이는 휘장으로 나뉘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법궤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에는 금촛대와 분향단, 그리고 진설병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성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소 안에 이 네 가지를 놓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네 가지의 성물에는 매우 귀중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구약에 나오는 성막에 나오는 네 가지 성물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를 지난 주에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에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신약 267면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니 우리의 몸은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의 몸과 삶이 거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면 하나님께서 성소 안에 두라고 명령하신 네 가지의 성물 즉, 법궤, 금촛대, 분향단, 진설병이 우리 생활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의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금촛대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금촛대를 만들어 성막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촛대를 순금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시고 모양까지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금촛대의 모양을 설명하시는데 그 말씀을 제가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31절부터 37절입니다.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이 있게 하고 저쪽 자기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금촛대가 어떤 모양인지를 사진을 통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금촛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양에 따라 한 달란트의 금덩어리를 이리 치고 저리 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양을 따라 금촛대를 만들었습니다. 어느 곳은 두드려 폈습니다. 어느 곳은 두드려 동그랗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부분은 들어가게 만들고 어느 부분은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금촛대를 만드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들을 이렇게 치고, 저렇게 치셔서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새롭게 변화되는 우리들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성막은 네 겹으로 덮혔습니다. 네 겹으로 덮었다는 것은 성소 안에 밖으로부터 빛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했다는 말입니다. 성소 안은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성소는 세상의 빛으로는 밝힐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세계, 뜻은 세상의 어느 빛으로도 밝힐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등불 즉 하나님의 말씀만을 통해서 밝힐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두운 성막에 금촛대를 만들어 세워 빛을 밝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은 세상의 그 어떤 빛으로도 밝게 비췰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만이 밝게 비췰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빛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한번 읽어봅시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빛, 즉 착한 행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우리교회가 성소에 세워진 금촛대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듬어지고 세워져서 하나님을 닮은 우리의 선한 마음과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 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소에 있는 금촛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촛대 등잔의 불을 밝히는 연료인 감람유입니다. 감람유에는 여러 등급의 감람유가 있습니다. 등급이 낮을수록 그으름과 매캐한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최고의 등급인 감람유는 타면서 감람유 특유의 향기를 풍깁니다. 

하나님은 밀폐된 성소의 금촛대의 등잔을 밝히기 위해 감람유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순전한 감람유를 사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 27장 20-21절에 보면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순전한 감람유를 항상 채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 스가랴서 4장에 보면 성소에 있는 금촛대와 관련된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원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가운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전 재건이 중단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 재건을 위해 애를 쓰며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환상 가운데 하나가 금촛대 환상입니다. 

스가랴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는데 금촛대가 보이고 그 양 옆에 감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스가랴가 하나님께 ‘주여, 이 두 그루의 감람나무는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스가랴는 ‘예,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금촛대의 환상은 성전의 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 재건이 사람의 힘으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금촛대 좌우에 있는 감람나무는 금촛대의 등불을 밝히는 감람유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서에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 순수한 감람유라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에 빛을 비취게 하는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게 영광 돌리게 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를 세우실 때 머리에 감람유를 부으시며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감람유를 머리에 붓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과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폭발적인 복음의 역사는 제자들의 열정과 다짐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신 후에 복음의 역사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신약에서 성령님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모두가 명령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을 기다리라’ ‘성령을 받으라’ ‘성령 충만하라’ 등 성령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명령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금촛대의 등불은 일곱 개입니다. 촛대의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에 세 개씩을 세웠습니다. 기둥이 되는 촛대를 빼면 여섯 개입니다. 성경에서 6의 숫자는 사람의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 째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입니다. 불완전한 사람이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을 중심으로 세워질 때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주시는 능력을 덧입을 때입니다. 기둥이 되는 촛대를 통해 공급하는 감람유가 있을 때 금촛대는 등불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금촛대를 자신의 지식, 재물, 명예, 사회적 직위, 건강을 가지고 태우는 사람은 그으름이 납니다. 매캐한 악취가 납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으로 금촛대를 태우는 사람은 예수님의 향기를 풍깁니다. 어두운 세상의 빛이됩니다.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은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명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워져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능력 있고 순결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처럼 성령님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을 사모하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께서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금촛대의 등불을 밝혀 주위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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