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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돕는 배필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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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창 2:18~25)


우리는 오늘 참으로 마음 아픈 가운데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받고, 우리네 가정에 대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가정의 달, 오월은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한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이 있고, 금년부터는 ‘부부의 날’이 들어 있습니다.  이 부부의 날은 5월 21일입니다.  이 부부의 날은 지난 2003년에 민간단체인 “세계 부부의 날 위원회”가 국가 기념일로 제정해달라고 국회에 청원하였는데, 오랜 시일을 끌다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었고, 작년2008년 5월 2일에 대통령령(제200045)으로 공포되어, 2009년 올해부터 처음 시행된 기념일입니다. 

5월의 여러 날 중에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한 것은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어린이집 전화번호를 선택할 때에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2242번으로 골랐는데, 둘이 하나 되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날은 공휴일은 아니지만, 가정의 달에 부부의 날도 지키게 된 것은 귀한 일입니다. 

이 부부의 날은 1995년 권재도목사님(부부의 날 위원회 사무총장)에 의하여 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무려 13년만의 성과라고 합니다.  권목사님이 부부의 날을 제정하려고 한 것은 10년 전 어린이날의 한 방송에 출연한 아이에게 어린이날에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더니, “내 소원은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부부 사랑 캠페인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부부의 날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키고 의미있는 날로 보낼 수 있습니까?  이제는 매년 5월이 될 때마다 잘못 생각하면,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날이 될 수도 있을 터인데, 부담이 아니라 정말 기다려지고 새로워질 수 있는 부부의 날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남성들은 아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투르고 어색하게 생각하는데, 먼저 장미꽃을 선물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정열의 표시로 붉은 장미를,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과 존중의 표시로 분홍 장미를 선물하며 연애시절의 따뜻한 마음을 되살려보라는 합니다.  

가정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요, 다음으로 미룰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가정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편과 아내의 부부 두 사람입니다.  부부가 화목해야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으며, 자녀교육이나 고부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이혼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가화만사성이란 교훈 대신에 부부화만사성이라고 고쳐 말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요 질서입니다.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시고 명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이 지나갈 때에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모든 생물은 아담이 부르는 것으로 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혼자 하고 있는 아담은 자기를 도와주는 배필이 없으므로 힘들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아담이 깊은 잠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습니다.  그 때 마침 잠에서 깨어난 아담이 외치는 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는즉 여자라 부르리라”(창2:23)고 하였습니다.  

고대 유대의 랍비들은 남성이 여성을 그리워하고, 여성이 남성을 사모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전에 잃어버린 갈비뼈를 되찾고, 여자는 태어난 남자의 가슴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잃은 것을 찾으려는 힘과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두 힘이 끌어당김으로 남녀가 부부로서 맺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아주 귀한 뜻이 있습니다.  가슴 깊이 사랑할 존재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머리뼈나 다리뼈로 만들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히브리어를 깊이 연구하다보면 깜짝 놀랄만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말씀드린 여성 하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돕는다는 말은 “강하게 돕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 곁에서 단순히 돕는 정도가 아니라, 강하게 도와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능력 있게 지으신 것이었습니다.  

“돕는”  “돕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Ezer”라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거들다”고 했습니다.    돕는 배필이란 말은 “거들 짝”이라고 했습니다. “거들어 준다”는 말도 재미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알맞은 짝”이라고 했습니다.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의미라고 봅니다.   NIV 성경에는 Helper Suitable 이라고 하여 “합당한 협력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의 “에제르”라는 말은 돕는다, 원조하다, 지원하다, 구조하다는 말로, 군사적인 지원을 나타내는 강력한 도움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섬세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정말로 값지게 창조하셨지만,  여성들은 창조주의 최후의 작품으로, 먼저 지으신 남성에게 미쳐 담아주지 못한 그런 세밀한 부분까지도 보완하고 채워줄 수 있는 성품과 속성을 담아 지으셨습니다.  

오늘 부부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데, 돕는 배필이라는 말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엿새 동안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시는데, 아담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는 일을 보니, 사람은 혼자 사는 것, 독처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말에 부족과 모자람이 전제된 말입니다.  남자 혼자는 아무래도 부족하고 모자라고, 의미가 없습니다.   가정의 행복이란 서로의 부족과 모자람을 알고 그 부족과 모자람을 채워주고 돕는데서 행복을 느끼도록 하신 것입니다.  서로의 부족과 모자람이 드러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에 부부가 되게 하셨고, 나로 짝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부부는 천생연분이 아니라, 원수처럼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계 3대 악처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나 지금 숙제 중 인데, 선생님이 인류 역사상 유명한 악처 3명의 이름을 써오래요.”  “그런데” “첫째는 소크라테스의 아내, 두 번째는 성경에 나오는 욥의 아내 이 두 명은 알겠는데 나머지 한 명은 모르겠어요.”  그러자 아빠가 말합니다.  “야 이놈아 넌, 니 엄마 이름도 모르냐 ?”고 했답니다.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감리교회를 이루신 죤 웨슬리 목사님의 부인 ‘몰리 골드호크 바제일’이라는 부인입니다. 이 부인에 대하여 전해오는 것은 정말 악처였습니다.   악처가 있어 신령한 목사, 성자가 된 것 같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말에는 차이를 전제하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남녀 간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차이는 성의 차이입니다.    서로의 차이,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가정은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지으실 때에, 차이 나게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남녀의 차이를 살펴보면 남성은 남성호르몬이 분비되고, 여성은 여성호르몬이 분비되게 하셨습니다. 남성은 그래서 남성답게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합니다.  그런데 반하여 여성은 섬세하고 자상하고, 인정이 많고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육체적인 차이도 있습니다.  남성은 우람하고, 여성은 아담합니다.  아담하다는 말은 모기에 좋고 아름답고, 곱다는 말입니다.  남성은 시각과 후각이 발달되어 보는 것과 냄새 맡은 것에 민감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청각과 촉각에 예민합니다.  그래서 듣는 것과 피부접촉에 민감한 것을 보게 됩니다.  심리적으로도 차이가 있습니다.  남성은 성공 지향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안정 지향적입니다.  남성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데 반하여 여성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입니다.   

배필이란 대등한 존재라고 합니다.  부속물이 아닙니다. 이혼하는 것을 보면 대개 주도권을 잡으려는 데서 시작됩니다.  헤게모니싸움이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배필이란 대등한 존재요, 어울리는 사람이요, 상대편이라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지내면서 헤게모니 싸움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남성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일에 몰두하고,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남자들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동굴심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혼자 있을 때 심심하여 뱀하고 어울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얌전하고 정숙한 여자라고 해서 혼자 두면 꽃뱀하고 어울릴 수 있습니다.  

“가정”이란 단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람이나 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막론하고, 자기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독일 시인 괴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왕이나 백성을 막론하고,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가정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토마스 무어’ (Moore)는 “사람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기 위하여 온 세상을 여행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와 그것을 찾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의 행복에 있어 가정을 대신할만한 것은 전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시128:3)라고 하셨습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나 결실한 포도나무를 보려면 가을에 가보아야 합니다.  지금 결혼하는 이 순간은 이른 봄과 같아요, 이제부터 더운 여름을 견디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아내라는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게 됩니다.   결혼하자마자 아름다운 결실이 이루어지는 가정이 없습니다.  

잠19:14에서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고 했습니다.  슬기로운 아내를 원하고, 믿음직한 신랑을 원한다고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아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즈음 세상에서 아내를 얻고 장가가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18:22)라고 했습니다.   잠5:18-19에서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결혼하는 것 같은데, 이 결혼은 하나님의 신비하신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짝지어주셨습니다.  만세 전부터 예비하시고 있다가 두 사람은 부부로서 맺어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은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을 될지니라 하신 것을 알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한 몸이다, 하나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가 되라는 말은 ‘함께 하라’는 말이라고 봅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는 말이 있습니다. 신랑에게 약속을 받아놓습니다. 밥은 딴데 가서 먹어도 평생 잠은 한자리에서 잔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회사에서 회식하고, 친구들과 먹고 들어올 수 있으나, 잠자리는 한 자리, 마누라 옆에 자야만 합니다.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여나갑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함께 하고, 쓰는 것도 함께 하는데, 상의해야 하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잠자리에 들고, 함께 자식을 키우고,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 자기의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  자기의 것을 내버리고 상대의 것을 받아들일 때에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절반의 두 개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좋은 일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목사도 아내의 숨은 내조로 인하여 목회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저의 아내가 감상선암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이제는 재발을 막기 위하여 정기검진을 받고, 평생 감상선 호르몬 약과 칼슘 약을 먹고 있습니다. 

 제 집사람이 갑상선 암 수술한 후에 세 번째 방사능 동이원소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집 사람이 옥소 동이원소 캡슐을 먹고 한 주간 집에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몸에서 방사능이 나오기에, 일주일이 지나야 사람을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챙겨준 옷을 가지고 교회에서 생활하고 저녁에는 서울역 앞에서 있는 24시간 찜질방에 가서 잤습니다.  우선 잠자는 것도 불편하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사 먹는 것도 한 두 번이지요, 아내의 내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혼자서 바깥출입도 못하고 갇혀 있는 아내를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일전에 홍콩에 평양노회원 선교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목사가 환갑이 되었다고 여전도회원들이 여행비를 모아주었습니다.  감사하지만, 전액 엘리베이터 헌금으로 드리고, 이번 여행은 교회에서 부담해주어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 마카오 한인교회를 들어가는데, 6층에 교회가 있기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1호가 올라가고, 2호가 올라가는데, 그만 인원이 초과되었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니, 잘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그만 3층을 올라가던 중에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중간에 멈추었습니다.   인원을 세어보니 13명이었습니다.  9인승인데, 13명이 탄 것입니다.  인원초과라는 ‘삐’ 소리가 나지 않으니 아무런 의식도 없이 타는 대로 탄 것입니다.  계속해서  비상벨을 울렸는데, 전혀 밖에서 반응이 없습니다.  이러기를 25분이 지나갑니다.  그래도 전등이 들어오니 다행이었고, 에어컨은 아니지만 바람이 들어와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점점 더워집니다.  땀이 온 몸을 적셔옵니다.  마침 저의 아내는 그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1호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올라갔습니다.  계속해서 비상벨을 울리니까 25분이 지나서야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또 소식이 전혀 없습니다.  권사님들이 몇 4분이 계셨는데, 조금 앉으시라고 하였는데, 비좁아서 앉을 수도 없습니다.  괜찮다고 하십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장로님의 부인 권사님들이 있었는데, 만약의 사고를 생각하면서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엘리베이터를 자세히 보니, 구형이지만 일본에서 수입한 미시비시 제품인데, 만약의 사고를 위하여 완충장치가 아래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걱정하지 말라, 수십 층 높은 곳도 아니고, 3층에 멈춘 것이니,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구조해주시는 분들에게 나가면서 꼭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말자고 일러주었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는 먼저 아내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선교수련회에 참여한다고 하더니, 사고를 당했다는 것도 덕스럽지 않고, 별의별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갑니다.   이제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아내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밖에서 얼마나 동동거리면서 빨리 구조해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집사람은 좁은 데 들어가면 답답하여 들어가지 못하는데 함께 갇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집 사람이 갇혔다면, 참기야 하겠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 제가 갇힌 것이 한편 다행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갇히지 않아서 감사하였습니다.  수련회는 정말 저를 위한 수련회가 되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으로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우리로 수련회가 지장 받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통화권 이탈로 전혀 전화가 되지 않습니다.  40분이 지나서야 밖에서 강제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불이 꺼지니, 권사님들이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금 있더니, 119 소방서에서 와서 강제로 문을 열고, 구조해주었습니다.  3층에서 조금 떨어져 큰 계단이 되었습니다.   권사님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나와 보니, 사색이 되어 있는 아내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아내가 있어 고마운지, 얼싸 안았습니다. 수련회는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아내의 생일이 되었는데,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아내가 있어 고맙고, 아내가 있어 행복한 사람인데, 아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화원에 전화를 하여, 아내의 생일인데, 붉은 색 장미와 백합, 그리고 각종 꽃으로 꽃바구니를 주문하고 집에 가지고 와서 생일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한 주간 꽃바구니를 쳐다보면서 감사하였고, 행복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추수감사절의 헌금이 1억이 넘게 나옵니다.  최고로 1억 2천만 원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헌금일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헌금하시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들의 부인을 생각해봅니다.  아내가 헌금하라고 하니 하지요.  안에서 안 된다고 하면 남편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아내의 믿음의 결과가 남편의 헌신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즘에 최선을 다하여 몸 바쳐 시간을 내고, 열심을 다하는 남성들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여성의 협력과 뜨거운 기도의 결실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가정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남편과 아내입니다.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강력한 원군으로 주신 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구원의 주님으로 당신의 아들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으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아내와 남편으로 짝지어주신 것은 무한한 은혜입니다.  

우리 서로의 차이와 부족을 인정하면서 절반의 두 사람이 하나 되어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복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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