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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응답하시는 하나님 (삼상 21: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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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시는 하나님 (삼상 21:10~15 )  


지난 시간에 ‘화살 신호’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약속했습니다.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왕의 다윗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 알아본 후 화살로 그 뜻을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죽일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면 화살을 쏘고, 종에게 “화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사울 왕의 곁으로 돌아와도 됩니다. 
그러나 죽일 의사가 확고하다고 판단되면 종에게 “화살이 네 앞에 있으니 가져오라.”고 소리칠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도망가야 할 것입니다. 
요나단이 알아보니 다윗을 죽일 사울왕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요나단과 이별하여 정처 없는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삼상 20:41-42절을 보십시오.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피차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잠자리는 물속에 알을 낳습니다. 
그런데 잠자리 애벌레가 물속에서 살고 있을 때 물속에서 꺼내면 그 애벌레는 죽습니다. 
반면 애벌레가 등이 갈라져서 잠자리가 된 후 그 잠자리를 물속에 넣으면 잠자리는 죽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애벌레와 잠자리는 같은 몸이지만, 애벌레가 사는 세계와 잠자리가 사는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불신자로서 살았을 때와 신자로서 살 때의 삶의 세계는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숨이 가쁩니까? 
신앙생활하면서 가슴이 뻐근합니까? 신앙생활하면서 숨을 못 쉬어 죽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신자의 삶의 자리를 떠나 있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가드의 아기스 왕 영내로 피신했습니다.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요? 
삼상21:10절 “그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 대장군 골리앗을 죽인 이스라엘의 다윗이 분명합니다. 그 때 그 황당한 장면을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아마 다윗이 우리의 정세를 염탐하려고 잠입한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챘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위기를 모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미치광이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점 잃은 눈을 해가지고, 대문짝에 등을 대고 그적거리고, 침을 수염에 흘리고......... 
아기스 왕이 다윗을 가만히 보니까 골리앗 장군을 죽인 다윗이 아니라 사방을 떠도는 미치광이에 불과했습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을 미치광이로 판단하고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이런 사람을 데려왔느냐?”고 호통을 치고, 내쫓았습니다. 

다윗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 때 다윗의 심경이 어떠했을까요? 
다윗이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미친 짓을 해가면서 목숨을 구걸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그에게 무슨 의미를 주었으며, 또 사람은 그에게 무슨 의미를 주었을까요? 
그것이 저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때의 심경을 토로한 시편이 있습니다. 
시편 34편과 시편 56편입니다. 
이제 이 시편들을 묵상하면서 다윗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1.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먼저, 시편 56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56편의 제목은 ‘다윗이 가드에서 불레셋 인에게 잡힌 때에’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이 시편의 배경이 됩니다. 1-2절을 읽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다윗은 시간적으로‘종일’, 숫자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블레셋 원수들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 놈을 당장 죽여 버려야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저런 미치광이를 죽여서 뭐 하느냐고, 또 다른 사람은 우리 영내에서 내쫓아 버리면 그만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귀에 들려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다윗은 움찔거리면서 한껏 주눅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지요? 
그러나 시 56편은 반복하여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 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를 고백합니다. 
놀라운 고백이 아닙니까?  확인해보겠습니다. 

4절 “........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1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이 구절은 시56편의 주제입니다. 

사람의 힘이 셀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힘이 더 셀까요? 
사람이 지혜로울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더 지혜로울까요? 
하나님의 힘이 더 세고, 하나님이 더 지혜롭지요!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반대였습니다. 
다윗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사람은 내 머리카락 하나를 상하게 할 수 없다.’ 
“무단수가 고단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는 사람이 고단수가 아니라 단순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고단수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9절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움심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나를 도움심인 줄 아나이다.’의 영어 표현은 ‘God is on my side.’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놀 때 ‘내 편 네 편’하면서 편먹기를 하잖아요? 
원수들이 가만히 보니 하나님이 저사람 편이더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편먹은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래서 슬그머니 물러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편먹고 사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2.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그는 그렇게 담대한 고백을 했을까요? 
시편 34편을 묵상하면서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살펴봅시다. 
(조금 수고스럽지만 시편 34편을 펴시길 바랍니다.) 
시편 34편의 제목을 보십시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말씀이 있지요? 
여기서 ‘아비멜렉’은 블레셋 왕들을 통칭해서 사용한 말입니다. 
이 시편도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온 후 지은 시입니다.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저가 만난 하나님은‘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저가 하나님을 두렵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봉사일지라도 결코 잊지 않고  갚아주시기에 두렵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두렵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리 작을지라도 하나님을 섭섭하게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시기에 두렵습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두렵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개인적으로, 직접적으로 체험했습니까? 
다윗이 위기상황에서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1) 하나님은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셨습니다. 

4절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15절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7절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다윗은 거듭거듭 들으시는 하나님,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함정들이 유럽에서 고립된 영국군 3만 명을 구출하려고 단켈그 항구에 정박했습니다. 
5월 26일 구출작전을 실행하고자 했습니다. 
이 작전계획을 독일군이 알고, 단켈그 항구를 폭격하고자 했습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전 국민에 이날 하루를 ‘기도의 날’로 정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도록 했습니다. 
그날 독일공군이 출동했다가 단켈그 지방에 폭풍우를 동반한 악천후로 공습을 포기하고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 이튼 날 ‘데일리 스케치’신문은 ‘기적적인 탈출!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제목을 뽑아 사건을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곤고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곤고한 자’란 여러 가지 일과 환경에 눌려 비참하게 된 상태에 이른 자를 말합니다. 
2절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이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이 시편을 어떤 상황에서 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다윗은 사울 왕의 창끝을 피해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산과 광야를 헤맸습니다. 

그는 지쳤습니다. 곤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피난처로서 비록 적국이지만 아기스 왕이 다스리는 가드 성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오히려 더 두려운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살아남기 위하여 미친 짓을 했습니다. 
아기스왕은 그를 성내에서 내어 쫓았습니다. 
그 후 어느 동굴에 들어가서 쓴 시가 바로 시편 34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곤고함의 극치에 도달했을 때 이 시를 쓴 것이지요. 
그때 다윗은 하나님을 곤고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분으로 체험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곤고한 자가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은 여러분께 가까이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은 그를 찾은 자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9절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수요기도회 때 드린 말씀입니다. 
성경 중에서 가장 짧은 구절은 요11장 35절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영어로는 단 두 단어입니다. “Jesus wept."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눈물은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가장 신비로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우리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학교에 가는 자녀의 뒷모습을 마음이 짠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하늘 아버지도 그의 자녀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그를 찾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복음성가- 다 표현 못해도 
다 표현 못해도 나 표현 하리라 다 고백 못해도 나 고백하리라 
디 알 수 없어도 나 알아 가리라. 다 닮지 못해도 나 닮아 가리라.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 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 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케 하는지 

다윗은 미치광이 짓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다윗의 심경을 알아보았습니다. 
그의 시에는 기도는 있을지언정 어느 한 구절 우는 소리, 절망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시34:1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시34:3절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잖아요. 
여러분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불신자로서 살았을 때와 신자로서 살 때의 삶의 자세가 달라야 합니다. 
신자의 삶은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를 고백하십시오.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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