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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늪 (삼상 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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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늪 (삼상 27:1~7)

여러분, 혹시 밀림의 왕자「타잔」을 기억하십니까?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저도 어린 시절 TV에서「타잔」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타잔은 문자 그대로 밀림의 왕자입니다. 늘 승리합니다. 그런데 타잔도 이따금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밀림의 왕자라도 꼼짝 못합니다. 움직일수록 늪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게다가 악어 떼까지 등장하면 정말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죠.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되죠? 치타가 와서 도와줍니다. 로프를 던져주면 가까스로 늪에서 빠져나와서 승리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치 밀림과 같습니다. 무서운 늪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한번 빠지면 스스로 헤치고 나오기 힘든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이지만, 잘못해서 늪에 빠지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꼭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겁니다. 죽는 겁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니까, 인생의 늪에 빠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죠? 뜻밖에도 다윗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정말 대단하죠. 사울 왕에게 핍박을 받고 이러지리 쫓겨 다녔지만 믿음을 지키고 늘 승리합니다. 그러던 다윗이 안타깝게도 늪에 빠져버립니다. 그리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갑니다.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생각할수록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어느 순간 삐끗하면 인생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최대한 늪에 빠지지 말고, 만의 하나라도 늪에 빠지면 다윗처럼 늪에서 속히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밀림처럼 위험 많은 이 세상에서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상 27장이지만, 31장까지의 내용을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27장부터 31장까지 통독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다윗이 빠진 늪 : 죄와 고난의 늪

본문을 보니까 다윗이 늪에 빠지게 되는데, 이 일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기억하기 싫은 몇 가지 오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그동안 신앙을 잘 지켜왔는데, 그만 죄와 고난의 늪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십분 이해가 됩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혼자 몸도 아니고, 부하가 6백 명에다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이래저래 식솔이 3천명쯤 됐을 텐데, 도망 다니는 게 얼마나 힘겨웠겠습니까? 하도 어렵다 보니까 순간적으로 오판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쉬운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경 안에서는 사울 왕에게 늘 쫓겨 다니니까 국경을 넘어 블레셋 땅으로 망명한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범죄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더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윗의 인생은 그대로 끝장났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요.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 아무리 힘들어도 타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고난을 피하는 것 같지만, 더 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어쨌든 다윗이 이렇게 해서 늪에 빠지게 됐는데, 그게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살펴봅니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관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습니다. 개와 원숭이처럼 항상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는데, 다윗이 국경을 넘어 원수의 나라에 망명한 겁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며 도피 생활을 한 기간은 대략 10년쯤 되는데(B.C. 1020~

1010)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됩니다. 본문의 상황은 그 중에 8년쯤 지났을 때(B.C. 1012년경)의 일입니다. 그는 더 이상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블레셋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 투항합니다. 

본문 2절~3절을 보시죠. “2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 ” 한 마디로 말해서 ‘적과의 동침’입니다. 아마 아기스 왕은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서 다윗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사울 왕에게 핍박받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잘 이용하면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게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누굽니까? 과거 블레셋 군대를 쳐부순 장군입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 차기 왕으로 선택되어 이미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의 선택이 당장에는 괜찮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4절 보시죠.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 하니라” 다윗이 계산한 대로 사울이 더 이상 추적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처음에 수도에 머물었는데, 아기스 왕에게 넌지시 별도의 거주지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시글락(6절)을 얻어 부하들을 이끌고 그곳에 정착합니다. 이제는 안전 문제는 물론이고, 먹고 사는 문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 셈입니다. 

그러나 사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골치 아픈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점점 더 깊은 고난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제 다윗은 귀순한 사람이므로 아기스 왕에게 잘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아기스는 불신자인데다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죄를 짓게 됩니다. 코가 꿴 셈이죠. 삼상27:8~12을 보면 아기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가끔 외족을 정벌하러 출정하는데, 대개 이스라엘의 원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다 남방을 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기스 왕이 쾌재를 부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과 아주 원수가 되려고 작정을 했다고 판단하고 그를 영원히 자기 신하로 묶어 둘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더 악화되어 갑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출정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아기스 왕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참전을 요청합니다.(삼상28:1~2, 29:1~2)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장차 왕이 될 사람이 동족을 향해 칼을 들이댄다면 얼마나 기기 막힌 일입니까?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이제 그의 장래는 끝장날 판국입니다. 사울 왕에게 핍박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삼상29:2 보면, 마지못해 전쟁터로 끌려가는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그 꼬락서니가 가관입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그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지만, 승리한다고 해도 큰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심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시라도 이번에 사울 왕이 전사한다면 다윗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그러면 쿠데타를 일으킨 게 됩니다. 왕이 될 수도 없고, 설사 왕이 된다 하더라도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블레셋 장수들이 반대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참전이 취소됩니다.(삼상29:3~11 참조) 장수들이 왕에게 항의합니다. 도대체 무얼 믿고 다윗의 군대를 데리고 가느냐 이겁니다. 한참 싸우다가 이스라엘 군대와 한 패가 되면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에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철군을 명령합니다. 안 그런 척 했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가는 다윗의 쓸쓸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윗 일행이 시글락에 돌아갑니다. 자리를 비운 게 겨우 3일인데, 그 사이에 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침노한 겁니다.(삼상30:1~6 참조) 성읍을 불태우고 아녀자들과 아이들을 붙잡아 갔습니다. 그 참상이 삼상30:3~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망명 생활이 서럽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너무 기가 막혀 넋을 놓고 웁니다. 심지어는 부하들이 돌변해서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을 피하려고 타협하고 말씀을 어기면 더 큰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수록 오히려 원칙을 지키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십니다.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 이야기입니다. 로마의 바티칸에 가면 시스티나 성당이 있는데, 그 천장화를 미켈란젤로가 그렸습니다. 높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그 큰 그림을 그렸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주변에 지인들이 염려가 되어 충고했습니다. 그 꼭대기에 그린 그림 누가 자세히 보느냐 이겁니다. 시력이 좋아도 잘 보이지 않으니 대충 그리라는 겁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누가 보기는요? 내가 보죠!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죠!”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그렸습니다. 그의 판단이 옳았죠. 요즘 사진 기술이 얼마나 정교합니까? 대충 그렸다면 큰일 날 뻔한 겁니다.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는 없었겠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함부로 말씀을 어김으로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큰일납니다! 


[2] 다윗이 늪에 빠진 이유 : 불신앙, 인본주의 

다윗이 늪에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의 불신앙, 그리고 인본주의적 태도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시죠.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 ” 다윗은 자기 생각대로 계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친 채 인간적인 판단을 한 겁니다.

① 불신앙 :

다윗은 지금까지 도피 생활 중에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신앙을 잘 지켜왔습니다. 심지어 사울을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그 중에 삼상26:24을 보면, 사울을 살려주고 난 후 그가 한 말이 나옵니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그의 멋진 신앙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시선을 놓치면 이렇게 됩니다. 작은 고난에도 흔들립니다. 낙심합니다. 그래서 불신앙으로 떨어집니다. 

사40:27~31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 

신앙은 시선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스스로 낙심하고, 마치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참담하게 느낍니다. 현실의 문제를 보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보느냐 이것이 곧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태양 등지고 있으면 그림자만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태양이 나를 왜 비춰주지 않느냐고 불평하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죠.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는 저절로 사라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있으면서 참담해집니다.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② 인본주의 :

신앙이 흔들리고 불신앙 가운데 빠지면 인간적인 계산만 하게 됩니다. 이게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잔꾀가 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잠시 동안에는 인간적인 생각이 통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망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이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삼상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수년 전에 그가 국경을 넘어 블레셋에 피신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 국경 안으로 들어갈 것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른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국경을 넘고 말았습니다. 국경을 넘은 것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이동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곧 말씀의 선을 넘어간 겁니다. 힘들다고 말씀을 어겼는데, 이게 탈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말씀의 선 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고전4:6 “ ...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 ” 말씀의 선을 넘어가면 곤란합니다. 내 생각에는 잘 될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망하게 됩니다.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마치 이런 겁니다. 운동 경기를 할 때 선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한 마디로 아웃(out)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선 밖으로 나가면 우리 인생에서 아웃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지만 다윗처럼 실수를 함으로 늪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고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기다려도 그 약속이 이뤄지지 않자 그는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합니다. 좀 더 기다려야 했는데, 인간적으로 잘못 생각한 겁니다. 그 후 어떻게 됐나요? 아내 사라와 첩 하갈 사이에 다툼이 생깁니다. 나중에 태어난 적자 이삭과 먼저 태어난 서자 이스마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이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 지금까지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말씀의 선을 넘어가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에는 무조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말씀을 꼭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게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의 고난 아닙니까? 힘들다고 피해 가면 더 큰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오래 전 신학교에 다니다가 군대에 갔답니다. 훈련 받는 것도 힘들지만 내무 검사 받을 때 참 힘듭니다. 지급된 물품이 없어지면 옆의 중대에 가서 훔쳐서라도 채워놓고 내무검사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본인의 물품이 없어진 겁니다. 채워 놓으려면 남의 것을 훔쳐 와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계속 지적당하고 나중에는 욕설은 물론이고 발길질까지 당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중대장이 호출합니다. 

그때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했습니다. 전도사를 하다 군대에 왔는데 제대 후 학업을 마치면 목사가 될 사람으로, 자기 것을 도난당했더라도 남의 것을 훔치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데, 그런 짓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감동을 받은 중대장은 그 후로부터 전적으로 인정해 주었고, 남은 기간 내내 편하게 지냈다는 이야기 입니다. 

비록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 승리한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은 의로운 고난이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당해야 할 고난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말씀 지키면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선을 넘어가지 않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 

  
[3] 다윗이 늪에서 빠져나온 비결 : 하나님의 은혜, 신앙의 회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악한 세상을 살다 보면 다윗처럼 때때로 실수하고 범죄함으로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요? 

① 하나님의 은혜 : 

일단 늪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블레셋 장수들의 반대로 참전이 취소된 겁니다.(삼상29:3~11)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비상 섭리를 행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일입니다. 인간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구원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글락이 아말렉 족속에게 노략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삼상30:1~6) 극한 시험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생포되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살아남아 있었기에 나중에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건 것입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 덕분에 살아갑니다. 

② 신앙의 회복 :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어려운 시험에서 건져 주지만, 우리 편에서는 신앙을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윗은 부하들이 돌을 들어 죽이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했나요? 삼상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그는 다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삼상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갔던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승리합니다. 아말렉을 쳐부수고 포로로 끌려간 부녀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물건까지 전부 되찾아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세상이 내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인생 살다가 자칫 잘못하면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늪에 빠졌다면 다윗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반드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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