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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히 6: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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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히 6:13~15)
    

우리 교회가 2008년도 경상 회계년도를 풍성하게 마감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디 금년뿐이겠습니까? 지금까지 20년 동안 우리 교회가 예산 목표보다 결산이 부족한 해는 한 해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받은 교회적 사명을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성실히 감당해 왔다고 자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복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에 복을 더하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의 필연적인 약속입니다. 

본문 6장 14절에 『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70인 역의 인용 구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거짓 없이 선언하는 맹세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필연적인 선포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말씀은 위대한 말씀인 동시에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필연성에 의하여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실 때 맹세할 대상이 하나님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켜 맹세했다고 했습니다(히 6:13). 

요한복음 8장 58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6-17절에 『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본문은 이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언급할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 25절에 『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13절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세했다는 말은 약속을 이행하시겠다는 선언적 확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워 맹세한 곳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3절에 『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5장 23절에 『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 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2장 5절에 『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선언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시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맹세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자신의 맹세에 대해 책임 있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 약속에 대하여 다시 물어 보거나 다시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다음 순서는 그대로 믿는 순서 밖에는 없습니다. 


Ⅱ. 약속의 대상은 아브라함입니다. 

본문 6장 13절에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 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라고 했습니다. 

본문 6장 14절에 『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받을 대상이 아브라함, 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지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곳은 불신앙과 우상의 세계였습니다. 그 곳 본토 아비 집에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자신의 삶의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경륜은 그 후손들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4절에 『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시편 1편 3절에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모든 성도들의 대표격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든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9-10절에 『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즐거워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불신앙의 죄와 우상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로 복 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복을 뜻하는 의미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라크' 입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가 '아솨르'입니다. 이 말의 뜻은 바르게 쳐다보고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가 '야타브'인데 이 말의 뜻은 즐겁고 기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복이란 말을 종합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그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곧 복은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의 의의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복은 하나님의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것입니다. 
대요리문답 제 1문에도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Ⅲ.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과 번성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모두 말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 씨 』는 다윗의 뿌리에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운동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 받을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 『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복음이 전파되어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는 구원의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명예의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했습니다. 
이름은 인격의 대명사입니다.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하는 명예로운 축복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물질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에게 허락하신 물질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물질의 축복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많은 말을 생략하고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부요의 은택을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의 약속입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 『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마치 수풀 중에 사자 같고 양떼들 중의 젊은 사자 같은 승리의 삶의 기쁨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미가서 5장 7-8절에 『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오늘의 지상 교회는 승리하는 무리들의 모임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온갖 대적들과 싸워 승리한 개선장군들의 축제가 계속되는 곳입니다. 


Ⅳ. 그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본문 6장 15절에 『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냉혹하리만큼 아픈 시험을 통해서 약속의 보증을 받은 것입니다(창 22:15-18). 하나님의 약속이 이삭으로 성취의 장이 마감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마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것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풀무불 속에 있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도 이와 같은 동질의 것입니다. 

다니엘 3장 16-18절에 『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다는 말은 자신의 육적인 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택자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축복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약속하신 것을 소홀히 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상대로 하신 자신의 약속의 진실성을 유감없이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6장 18절에 『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과 번성을 아브라함은 마침내 받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은 늘 긍정적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늘 소망적이십니다. 
그 분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그 분에게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필연성에 의한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 필요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23편 3절에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 『 너희가 악한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망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의 연약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고 했습니다. 얼마나 풍성하고 한량없으신 자비의 개념입니까? 이쯤 되면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면서 오래토록 참고 그 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연약보다 우리의 실수보다 우리의 죄보다도 크고 넓고 깊고 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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