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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앞에 잠잠하라 (시 37:37~39, 눅 4: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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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잠잠하라 (시 37:37~39, 눅 4:33~35)

  
수도원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침묵의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종일 말하지 않고 수도사들이 서로 만나도 눈인사만 나누는 날입니다. 말을 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과의 대화가 깊어집니다. 평소에 너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날을 만든 것입니다. 사막 은자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영성가인 아가도는 침묵을 배우기 위하여 3년 동안 입에 돌을 물고 지냈다고 합니다.
  
저도 여러 해 전에 성대수술을 하고 두 달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두 달 동안 목을 쓰지 않아야 성대가 바르게 보존된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 달 동안 말을 하지 않았으니 말을 많이 하던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더냐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영이 맑아지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깊어지는지 모릅니다. 다음에라도 또 그런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성대가 못 쓰게 되어 억지로가 아닌 자의로 그렇게 해 보고 싶습니다.
  
말을 하고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가장 어렵게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잠잠함입니다. 말을 하는 것은 쉽게 배우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항상 약점이 잡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지 못하는 자는 첫째는 자신의 교만이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께 삶의 고삐를 맡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무지가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조급함이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께 우리를 변호해주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넷째는 성화되지 못한 불신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잠잠함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기억하세요!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입니다.
  
신앙의 삶에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한 가지 사실 즉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떠들고, 조급하고, 앞서고, 담아두지 못하는 것은 이미 불행의 시작입니다. 스코틀랜드 속담에는 “현명함은 열 가지로 만들어진다. 그 중 아홉 가지는 침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잠잠함은 그 자체가 지혜입니다.
  
우리가 할 말이 없는 것과, 할 말이 있지만 잠잠한 것은 다릅니다. 할 말이 없을 만큼 잘 못 살지는 마세요. 대신 할 말이 있어도 잠잠할 만큼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세요. 마태복음 22:12에는 혼인잔치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사람은 주인이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고 했을 때에 성경은 이 사람이 ‘유구무언’이었다고 합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로 이런 잘못은 범치 맙시다.
  
노자는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子不知)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함이 얼마나 큰 지혜이며 믿음인가를 보면서 여호와 앞에서 잠잠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왜 여호와 앞에서 잠잠해야 하는가를 보며 여호와 앞에서 잠잠함을 배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이루시므로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7절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9절에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고 합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세상이 교회를 지배할 때에도 불평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악인의 번영은 일시적이며, 악인의 형통은 잠시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더라도 여호와께서 이루시므로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잠잠하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돔’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앞서지 말고, 조급하게 떠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왜 잠잠해야 합니까? 인간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 그 분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62:1에는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라고 합니다. 이사야 30:15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이라고 합니다. 시끄럽게 떠들면 구원이 멀어집니다. 힘을 얻지 못합니다. 떠드는 것은 결국 불평밖에 되지 않고, 따지는 것이 되고, 삐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자기 길이 형통한 것처럼 보입니다. 악한 꾀를 이루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자기 목적이 수행된 것처럼 좋아합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우리의 편이 되시고 악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란 말의 ‘기대하다’는 단어는 ‘카와’라는 말입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잠하며 기다리는 자를 의미합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욥기 13:5에는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한 것이 지혜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잠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잠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운행하시고 아침에는 해가 뜨게 하시고 계절이 바뀌게 하시는데 시끄러운 소리 한번 나지 않습니다. 고요하게, 잠잠하게 그 크신 일을 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잠잠함이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잠잠한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42:2에는 예수님을 예언하면서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7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잠잠하며 참으며 기다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재판정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답합니다. 다시 빌라도 앞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 “네 말이 옳도다”라고 답합니다. 헤롯 앞에서는 “아무 말도 대답지 않으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시기 않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온유한 자는 말이 없는 자입니다. 말 많은 온유한 자를 보셨습니까? 이런 자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종살이하고 옥살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이런 그의 마음은 땅을 차지하기에 넉넉합니다. 욥은 당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이었고, 가장 부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렸습니다. 그 많던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육체의 건강도 상하여 온 몸이 아팠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보다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이 더 힘들어요. 그런데 욥은 주신 자도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였습니다.
  
‘유능승강’(柔能勝强)이란 말이 있습니다. 유한 것이 강한 것을 능히 이긴다는 말입니다. 잠잠한 자가 말 잘하는 자를 이긴다는 법칙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설교도, 회의도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말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이기는 방법이고, 지혜입니다. 잠잠함의 힘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행악자들은 끊어질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잠잠할 줄 아는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하였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평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중의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불평하지 않은 자들, 잠잠한 자들, 그 후대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분할 받았습니다. 잠잠한 자가 되어 땅을 차지하기를 바랍니다. 요즘 세상에 땅을 차지한다면 제일 좋아하지 않습니까? 잠잠한 자가 되어 여러분이 좋아하는 땅을 많이 차지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악한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7절에는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고 합니다. 8절에는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합니다. 불평은 가장 어리석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사람은 걸핏하면 불평거리를 찾습니다. 그리고 잘도 찾아냅니다.
  
악인들이 악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을 때, 분노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께 중얼거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순간만 악인의 번영과 성공을 허락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은 악을 만들 뿐이기 때문에 분을 품고 노하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끝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악인의 번영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하시는 모든 일은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입장에서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자기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입장에서 하나님을 판단하면 항상 불평이 생기고, 항상 만족하지 못합니다. 비교는 불평을 낳고, 불평은 죄를 잉태합니다.
  
수도사 베네딕토는 수도원 생활 규율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특히 불평하는 나쁜 습관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투덜거리지 말고 못 마땅해 하는 기미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하는 것은 군소리를 말합니다. 이 말은 투덜거린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것이 나쁜 습관으로 분류된 것입니다. 어떤 집 문에는 ‘불평하는 사람은 우리 집에 환영하지 않습니다’라는 글귀를 붙였다고 합니다.
  
‘입은 마음의 하수구이고 말은 배설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하루에 6만 단어를 말하고 남자는 2만 5천 단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말을 더 잘 할 뿐만 아니라 거짓말도 더 능숙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말하는 도중에 말이 끊기거나 머뭇거리면 거짓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100단어마다 3번 정도 말을 중단하는데 여성들은 이보다 2배 이상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부부가 나와서 서로 자신의 불평을 털어놓고 공개 상담을 받은 경우를 보세요. 부부 클리닉에서는 거의 대부분 남자들이 말을 잘 못해요. 그래서 프로그램에 나온 남자들마다 혼납니다. 여자들이 말을 잘 하기 때문에 훨씬 당당합니다. 남자들은 그 프로에 나가나 마나입니다. 그런데 또 안 나가면 집에서 더 혼나지요? 요즘 남자들 참 불쌍해요. 남자들은 말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정보를 교환합니다. 여자들은 말을 통해 느낌과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회의 시간에는 조용하다가 회의가 끝나면 그 때부터 시끄럽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불평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말이 쉬어야 불평이 잦아집니다. 마음의 평정을 얻어 잠잠하여 하나님을 기다리고 여호와의 은총을 기대합시다.
  
지옥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껄’이라는 말이랍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수 잘 믿을껄’, ‘남을 미워하지 말껄’, ‘전도할 때 잘 받아들일껄’. 항상 껄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한 이들은 역시 지옥에서도 불평만 늘어놓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세요. 일이 끝나기 전 마지막 1시간 전에 들어온 품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 비유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품꾼은 끈기가 있어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품삯을 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인공이지만 전혀 대사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잠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온 자들은 불평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되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먼저 왔어도 불평하게 되면 꼴찌가 된다는 말입니다.
  
악한 자 때문에, 악한 나라 때문에, 악한 세상 때문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미국 때문에 우리가 금융위기를 당했다고 불평하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위기는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시편 2편에는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고, 다른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2:4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비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비웃고 계십니다. 그들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알아서 손을 보십니다.
  
찬송가에도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 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라고 합니다. 주님의 한 목소리는 천하를 평정합니다. 하나님이 한번만 소리치시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시편 46:10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 알지어다”라고 합니다. 잠잠하여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결론

허만 멜빌의 ‘백경’(Moby Dick)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오래 전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바다의 괴물 백경 ‘모비 딕’을 잡기 위해 모두 분주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잠잠합니다. 그는 노를 잡지도 않고, 땀도 흘리지도 않고 기다리기만 합니다. 바로 이 사람은 작살을 맡은 선원입니다. 이 선원은 고요하고, 침착하고, 잠잠히 기다립니다. 작살을 가장 정확하게 날리기 위해 이 선원은 분주한 일이 아닌 잠잠함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분주함, 시끄러움, 요란함이 아닙니다. 고요하고, 잠잠하고, 침착한 일입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해야 하나님의 잠잠하심을 인정합니다. 잠언 17:28에는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고 합니다. 금융위기가 세계를 공포에 휘몰아 넣고 있는 즈음에 여호와께서 다 이루실 줄을 믿으십시오. 잠잠히 기다려 이 세상에서 승리하십시오. 여호와를 소망하여 땅을 차지하는 지혜로운 자가 다 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잠잠함을 배우는 신앙인의 지혜입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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