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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삼상 3:1~10, 마 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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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삼상 3:1~10, 마 4:8~10)

‘프리메이슨’(Freemason)이란 단체가 있습니다. ‘자유석공조합’이란 뜻인데 이 단체는 ‘사탄숭배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최고의 인간 우두머리를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라고 합니다. 컴퍼스와 삼각자는 중요한 상징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이집트의 신 호루스의 눈도 중요한 상징입니다. 

또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피라미드입니다. 이 단체에는 상당한 역사적 위인들까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인물들까지 이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거명되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교황청 안의 인물로부터 상당수의 대주교들까지 연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외에 숭배의 대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미국 풀러신학대학교의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박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남미에 강의 차 가던 길이었습니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옆 좌석 사람이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신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그래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10분이 되도 그 기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도가 끝났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비행기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옆 좌석의 승객은 “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놀라서 
“그럼 방금 당신이 뭘 했습니까?”라고 했더니 “기도했지요”라고 합니다. 
“누구에게 기도했습니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태연하게 
“사탄에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사탄숭배자들이 다 함께 한 달 동안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동네의 모든 교회가 다 망하고, 목사들이 다 망하도록 기도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와그너박사님은 “사탄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교회를 멸망시켜 달라고 기도하는데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교회를 멸망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 서신 전체에 예수님이란 단어가 219회 나옵니다. 주님이라는 단어가 272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389회 언급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사탄이란 단어는 10회 나타납니다. 마귀라는 단어는 6회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탄은 상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결구도를 유지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나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현재도 사탄숭배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높게 시작해서 낮게 끝이 납니다. 천상의 천사장으로 시작하여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전락합니다. 먼지를 먹고 파리들의 대왕이란 이름의 바알세불이 되었고 이제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 안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합니다. 둘째는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2계명은 1계명의 부속계명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역대상 16:26에는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고 합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신도 없습니다. 모든 신은 헛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를 만났을 때에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모세가 지팡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모세 자신의 경험, 미디안의 범신적인 사고, 광야의 미신을 다 버리라고 하십니다. 다시 하나님께서는 뱀이 된 지팡이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소유권까지 다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전까지 그 지팡이는 내가 의지할 힘입니다. 내가 겨우 지탱할 지팡이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의지할 힘입니다. 이전에는 내 지팡이이지만 이 후에는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할 때 지팡이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은 신령한 지혜입니다. 가장 큰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만을 섬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이 지혜의 길잡이입니다. 이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첫째, 세상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8절을 보세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라고 합니다. 사탄은 천하만국을 보여주었습니다. 9절입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경배하면 다 주겠다고 합니다. 천하만국이 사탄의 것이 아닌데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다 주겠다고 하는 것이 사탄적입니다.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라면 욕심나지요. 엎드려 경배만 하면 주겠다는데 욕심나지요. 여러 번 평생이 아니라 한 번만 하면 주겠다는데 욕심나지요. 세상을 한꺼번에 얻겠다는 욕심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개인의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은 세상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꺼번에 일확천금을 얻겠다는 욕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1억 원을 투자해서 100억 원을 벌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만일에 벌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수법은 하나님과 어긋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인간의 탐욕을 충족하기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칼빈은 스스로를 야심의 권세 아래 굴복시키는 사람은 머지않아 혼돈의 미로를 헤매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혼돈의 미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음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알면 절대 혼돈이 없습니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서는 4미터 급 미얀마 산 비단뱀이 길이가 1.8미터나 되는 악어를 통째로 삼키다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세상에도 자기보다 큰 것을 삼키다 배가 터져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 예수님을 꼬이는 사탄의 수법은 변치 않습니다. 

첫째는 물질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아담에게는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는 “떡으로 돌을 만들라”고 합니다. 

둘째는 명예심으로 유혹합니다. 아담에게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는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셋째는 영적 유혹입니다. 아담에게는 “하나님 같이 될 줄을 아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는 “절하면 모든 것을 주리라”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면서 하나님이 아닌 사탄을 섬기라고 하는 유혹은 지금도 끊임없이 인간에게 도전해 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기지 못합니다. 옛말에도 충신에게 군주는 오직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에게 주인은 하나이지 않겠습니까? 물질이 주인이 되면 그리스도는 자연히 주인의 자리에서 물러갑니다. 물질의 욕심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왔던 젊은 관원입니다. 이 사람은 재물이 많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삭개오를 보세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재물을 모두 버렸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세리들은 많이 빼앗았으므로 그것을 다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빈털터리가 되었을 이 때 완벽하게 채워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면 물질을 채우십니다. 이 순서를 절대로 바꾸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국 때문에 살인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 때문에 핍박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과학이나, 지식이나, 율법을 벗어나야 참 하나님을 만납니다.
  
락탄티우스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보다 나쁜 것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아는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하나님과 버금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치할 수 없습니다. 지은 자와 지음 받는 것이 어찌 같을 수 있습니까? 세상 것에 마음을 두지 마세요.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세요. 이것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비결입니다.
  
세상을 다 얻으려는 욕심은 하나님을 잃게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성경을 모조리 다 외우고 있다 할지라도 은혜와 사랑이 없다면 그게 무슨 유익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이 없는 지식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별들을 관찰하고 우주선을 띠우면서 자신의 영혼을 무시하는 오만한 학자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미천한 농부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하는 법입니다.


둘째, 사탄에게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10절에는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경배의 대상입니다. 아무 것에나 경배하려는 인간의 심리가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신을 만들고, 미신을 믿고, 무속이 발달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시대에도 얼마나 우상숭배가 심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도망칠 때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옵니다. 이 드라빔이라는 것이 집안에 보셔두는 작은 우상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호렙산에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우리를 이끌 신을 만들자”고 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습득한 우상숭배의 모습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농경신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는 번영의 신을 경배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깊이 숨어 있습니다. 우상이란 오랜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태백산에 가면 신 내림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와글거립니다. 미국 애리조나 세도나에 가면 레드락이라는 붉은 돌들로 이루어진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영감을 얻고 기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엔가 기대보려고 우상을 만들고 자연의 영기를 얻으려고 합니다.
  
케이블 TV에도 보세요. ‘엑소시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귀신을 불러 죽은 사람이 다시 말하게 하고 죽은 이유, 원한, 부탁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신이나 점이나 궁합이나 작명 같은 것들이 버젓이 공중 매체를 통하여 소개됩니다.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엉뚱한 것에 의지하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상은 우리 우상숭배의 원인이 아닙니다. 우상 그 자체는 그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예배는 우상숭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우상숭배를 하게 되고 우상을 만듭니다. 예배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하며 사람이 드러나면 우상숭배가 되고 맙니다.
  
사람 숭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마음이 식어져 갈 때에 우리는 더욱더 인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기를 얻은 사람들을 숭배합니다. 인기 연예인을 그래서 좋아합니다. 연예인을 보면 환호하고,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습니다. 인기를 얻은 사람들은 동시에 자신의 팬을 숭배하는데 열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기인들이 인기가 떨어지면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자기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다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터지면 그 때부터 죽고 싶답니다. 사람을 숭배하는 것도 인간에게 깊은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율법적 우상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 중생했나?”, “방언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 중생했는지 모르고 중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사실은 나도 잘 모릅니다. 뒤에 알고 보니 태어날 때 이미 선택되고 구원받았습디다. 율법에 신앙을 맞추려는 율법주의는 우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것에나 절하고 싶은 우리의 심성이 있습니다. 큰 나무를 봐도 절하고 싶고, 큰 바위를 봐도 절하고 싶고, 바다를 보고도 절하고 싶고, 심지어 이상하게 생긴 돌을 봐도 절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혼합주의적인 의식이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비빔밥, 국밥이 발달하여 말아먹고, 비벼먹는 습관 때문에 모든 것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무속인이 약 200만 명이라고 합니다. 무속인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일 년에 약 2조 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약 30%가 기독교인들이 가져다주는 돈이라고 합니다. 한국 기독교인의 의식구조를 보면 어디든지 가야하고, 줘야 적성이 풀린다고 합니다.
  
저의 선친이 목회하시던 교회 이전 예배당의 종탑을 봉헌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아주 옛날에 돈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봉헌하여 종탑을 세웠는데 대구 근교에 절에 가면 법당에도 그 분의 이름이 크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분은 기독교 천당에 못가면 불교 극락에라도 가야한다고 했답니다. “골라, 골라”는 시장에서나 하는 말이지요.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숭배하고, 섬기고, 예배하는 하나님 제일주의가 우리 믿음의 핵심이며 관건입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조승희씨는 그의 미니 홈페이지에 ‘Ismail Ax’ 즉 ‘이스마엘의 도끼’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이브라힘 즉 아브라함이 유일신 알라를 믿었다고 합니다. 이브라힘의 아들 이스마엘은 이슬람교도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이브라힘이 우상숭배를 타파하기 위하여 도끼로 예배소의 작은 우상들을 죄다 파괴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장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우상을 모두 도끼로 찍어 없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긴 사람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성경의 다니엘은 당시에 왕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서머나의 폴리캅은 당시에 로마 황제 숭배가 심했지만 하나님만을 섬기다가 화형을 당했습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천황숭배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숭배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3:1에는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합니다. 아이 사무엘은 어렸지만 누굴 섬길 것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섬길 자를 분명히 아는 것은 놀라운 지혜입니다. 흔히 일반 사람들은 사람을 섬깁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외에 누구도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보러 왔던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습니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세상에 오시는 왕이라는 사실을 아는 신령한 지혜를 가진 것입니다.


결론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한 마지막 말을 들어보세요. ‘여호와만 섬기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여호수아 24:14에는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합니다. 

15절에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합니다. 24장은 온통 여호와 섬김의 장입니다. 이 때 백성들은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나이다”, “여호와만을 섬기겠나이다”라고 합니다.
  
“저는 우주를 보고 싶지만 저는 못 갑니다. 영어도 가야하고, 피아노도 가야하고, 미술도 가야돼요.” 어느 초등학교 아이의 고민입니다. 가장 가야 할 곳을 못가면 아무리 많은 곳을 가도 선하지 못합니다. 최우선을 빼놓고 하는 그 무엇도 선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예배가 가장 소중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제일입니다. 아무리 있어도 믿음이 제일입니다. 아무리 섬겨도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여호와만 섬기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신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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