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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빛가운데 거하라 (요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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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빛가운데 거하라 (요일 1:5)


(요일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1. 인도의 유명한 썬다싱은 프랑스 파리의 휘황찬란한 거리를 걸어 다닌 후, 세상에 미혹되어 1시간을 어두움에서 지냈다고 고백했습니다. 화려한 세상에 살지라도, 그리고 자신의 삶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그 마음은 깊은 어두움에 잠겨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깊은 산골 초가에서 희미한 호롱불 아래 늦은 저녁식사를 정겹게 나눌지라도 밝은 마음으로 깊어가는 밤을 밝히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하루를 낮과 밤으로 지내야 하듯이 인생에도 빛과 어두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은 세상은 어두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창세기 1:1-5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어둠 가운데 빛을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어둠의 땅에 빛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이 땅에 빛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둠이 먼저 있었고 그 뒤에 빛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빛을 창조하시고 빛을 낮, 어둠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였습니다. 흔히 하루가 해뜨는 때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루의 시작을 저녁부터 시작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부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하나님은 저녁, 캄캄한 저녁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창조 넷째 날에 창조된 해와 달과 별이 있기 전부터 빛과 어둠이 나뉘었고 밤과 낮이 구분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해와 달, 별빛이라는 자연의 빛이 있기 전에 영적인 빛과 어둠이 나뉘었고 영적인 낮과 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빛이 창조되기 전 흑암, 어둠은 혼돈, 곧 무질서와 공허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혼돈과 공허“는 사탄이 주는 것들입니다. 어둠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 낙심과 좌절 등은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있기 마련입니다.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삶의 어둠에 빠져 고통과 좌절 속에 눈물로 지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부부관계가 어두운 사람, 어둠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 직장을 잃거나 얻지 못해 경제적 어둠에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 한 순간에 사업을 날려 절망의 늪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이 들어 아픔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 인간관계에 어둠이 찾아와 고독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던 인기가 하루아침에 폭락하여 한 뼘 거리의 사망을 기웃거리는 사람들 등, 누구에게나 어두운 구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께서 알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어둠가운데 빛을 창조하시고 캄캄한 저녁부터 하루를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로 슬픔에 빠져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밝혀 그 시로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려 부활의 아침을 맞게 하셨습니다.(눅24:13-36) 

슬픔과 절망 가운데 맞은 황혼의 발걸음을 영원한 부활의 아침으로 돌려  놓으신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보시기에 참 좋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비록 어둠에 빠졌다 해도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부활 생명이 넘치는 영원한 아침의 인생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좌절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아침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일하신다는 것, 어두움 가운데 사는 인생들에게 밝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일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삶의 어두움을 벗어버리고 밝고 영원한 아침을 맞이하는 인생이 되고자 하면 반드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어두움과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의 삶에 받아드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부활 생명의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둠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지난 날을 회고하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 왕의 손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감사드리며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사무엘하 22:29)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지만 인류 문명사에 지금까지 어두움이 빛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 무대에서 한 번도 진리와 정의, 진실과 사랑이 거짓과 불의, 미움과 증오에 진 적이 없습니다. 속성상 어두움이 빛을 대적해오고 있지만 누구든지 빛 가운데 거하면 자연히 어두움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두움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어두움의 인생이 되지 않고 빛의 아들이 되는 방법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2:44-46)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그러므로 인생의 명암이 나누이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두움에 거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 말씀으로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처럼 인생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그 삶의 명암이 나누이게 되는 것입니다.

(창1:3-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만 어두움에 거하지 않고, 어두움을 이기고 승리와 성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비겁하게도 이스라엘의 피곤함을 틈타 대열에서 뒤에 쳐진 약한 자들을 공격했던 아말렉 족속을 두고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25:17-19)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한 비겁한 공격을 기억하셔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 왕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아말렉을 쳐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모든 소유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삼상15:2-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가장 좋은 가축들과 모든 좋은 것들을 숨겨두고 가치없고 낮은 것들만 진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 것입니다. 이를 모르실 리 없으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추궁하자 하나님께 바치고자 남겨두었다며 예배를 구실로 구차하고 비겁하게 변명합니다. 이러한 사울 왕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상15:26-29)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 후로 사울 왕의 삶은 한 마디로 어두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 성령이 그에게 떠나고 악령에 사로잡혀 살게 된 것입니다.

(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어두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울 왕은 더 나아가 나라 민족을 위기에 건진 일등공신 다윗을 시기하여 기회만 있으면 죽이고자 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다는 것을 체험했으면서도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어두운 마음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 군대가 공격해오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다윗은 크고 작은 모든 일에 하나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는 고백으로 항상 담대하고 승리하는 삶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빛이 되시는 하나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블레셋의 공격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의 공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찾아간 곳이 박수무당이었습니다.

(삼상28:5-7)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그리고 사울 왕은 마침내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쟁에서 비참하게 아들과 함께 죽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시체가 머리는 베이고 몸체는 성벽에 못 박히는 참상을 당했습니다.(삼상31:1-13) 빛이 되는 하나님 말씀을 버린 어두움의 자식들의 말로를 확실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반면, 생명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생활로 범사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은 점점 강성해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삼하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빛의 자녀인 다윗 집과 어둠의 자식인 사울의 집 사이에 전쟁이 계속될 때마다 점점 다윗의 집은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이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대상 11: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삼하 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예수는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믿음의 고백 위에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신앙생활로 여러분의 삶이 점점 강성해지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욥처럼 삶에 엄청난 환난의 깊은 밤이 찾아올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광야같을지라도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보내는 삶이 1년을 사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민1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을 정탐군으로 보냈습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이들 12명이 40일 동안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그곳에서 가져온 온갖 좋은 과일들을 모세와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그 곳에 가 보니 정말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것이 거기서 가져온 과일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강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들은 아주 크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거인 아낙 자손까지 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보고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술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온 백성들이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갈렙이 일어나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자, 올라가서 그 땅을 점령합시다.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외쳤습니다. 

그러자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다른 10명의 정탐군들이 더욱 강하게 반박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탐지한 땅을 악평하며 “그 땅에는 힘 센 장사들이 수두룩하고 사람들의 키가 모두 컸으며 게다가 우리는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 아낙 자손들도 거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느껴졌는데 그들의 눈에도 우리가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라며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고 선동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악평”까지 해가며 온 백성들을 절망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악성 댓글로 군중들을 선동하여 좌절과 원망 불평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10명의 정탐군들의 ‘악성 댓글’에 내몰린 백성들이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이렇게 불만을 쏟아냅니다.

(민14:1-3) 우리가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칼날에 죽게 하려는가? 우리 아내와 자식들이 다 잡혀갈 바에야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죽을 바에는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다른 지도자를 세우고 선동합니다.

(민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러자 그때 땅을 탐지하러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모든 백성을 설득합니다. 

(민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러나 이미 악성 댓글로 물든 군중들은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성막 위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 사람들이 나를 멸시할 작정이냐? 내가 그들 가운데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도 언제까지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을 작정이냐? 내가 무서운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죽이고 너를 통하여 그들보다 더 크고 강한 나라를 세우겠다.”며 믿음이 없는 자들에 대한 분명한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엎드려 하나님께 간곡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원망불평을 일삼았던 사람들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민14:27-35)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게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 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그리고 모세의 지시를 받아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 허위 보고로 백성들을 충동하여 모세를 원망하게 만든 그 정탐군들은 재앙을 받아 죽었습니다. 오직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살아 남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로 보았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어둡게 본 것입니다. 스스로 어두움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좌절, 절망, 원망 불평으로 일관하며 허위 보고로 백성들을 충동질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무리 기골이 장대같은 적들일지라도 그들을 ‘밥’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속에 미래를 밝게 본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과 절망에 통곡하는 백성들을 안심시키며 믿음을 가지라고 설득합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어두움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오직 빛 가운데 있을 때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약속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믿음을 지켜 빛을 잃지 않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대로 사는 신앙생활로 여러분의 삶에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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