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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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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눅 12:13~21)


본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늘 아침도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단풍이 들어 가는 나무들을 보고 아 감사하다 했습니다. 본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어둠속에 살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감아 보세요. 온 세상이 캄캄합니다. 온 세상이 검은색입니다. 그러니 본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본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본다는 것이 축복인데 그런데 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눈이 아무리 좋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은 너무 작아서 보지 못하고 어느 것은 너무 커서 보지 못합니다. 더욱 나아가 우리는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많이 있는데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에는 관심이 많은데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땅에는 투자하는 것을 아까와 하지 않는데 하늘에 투자하는 것은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보이는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원한 것처럼 자꾸 착각을 하고 사는 거예요. 자신은 영원히 청년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사는 거예요. 자신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늙는다는 것을 상상을 못합니다. 그러나 잠깐이예요. 제가 청북교회 처음 부임할 때가 30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60대입니다. 거짓말 같아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먹었나? 상상이 가질 않아요. 그때 청년이었던 사람들, 중고등부 하던 학생들, 지금은 40대가 넘어서 50대로 달리고 있어요. 보이는 세상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15분이라는 연극이 있어요. 유망한 청년이 30세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논문을 마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약속하고 부모님 허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러는 사이 병이 들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로부터 15분 후면 죽는다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는 불안과 초조에 떨며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15분, 14분, 13분 흘러갑니다. 그때 "편지요." 하는 소리와 함께 편지가 배달됩니다. 내용은 억만장자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으로 그 삼촌의 재산 상속자가 청년이라고 하는 변호사의 통보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또 흘러 시계는 이제 청년의 생명이 10분, 9분, 8분이 남았음을 가리킵니다. 그때 다시 "편지요." 하면서 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내용은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시간은 생명이 7분, 6분, 5분이 남았음을 가리킵니다. 그때 또 "편지요." 하면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됩니다. 부모님이 결혼을 승낙 했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 였습니다. 그러나 시계는 멈추지 않고 3분, 2분, 1분이 지나면서 마침내 청 년이 숨을 멈추고 연극은 끝이 납니다. 여러분, 죽은 자에게 억만장자의 유산 상속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가 받은 박사학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결혼 승낙 편지 생명이 없는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 요.

여기서 15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15개월이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느 사람에게는 15년이 될 수도 있고 어느 사람에게는 30 40년 또는 100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축소하면 15분 아닌가요? 하루살이를 보고 우리는 짧다고 합니다. 허지만 하루 살이 입장에서는 평생을 산 것입니다. 그것이 100년일 수도 있고 천년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살이가 아니기에 모르는 것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 쟎아요.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제대로 살지 못했다면 우리가 천년을 산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33년밖에 살지 않았어요. 

미국의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와서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하고 간일이 있습니다. 해비타트(Habitat) 운동인데 이것은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분이 30년 전에 시작한 운동입니다. 풀러는 가난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등 많은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고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많은 돈을 벌었고 호화로운 대 저택에 살면서 날마다 아내에게 돈다발을 안겨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 린다(Linda)가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는 쪽지 한 장을 남겨놓고 이혼을 선언하고 가출을 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고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집 한 채만을 남겨놓고 모든 재산을 복지재단에 기부하고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3년간 선교사로 봉사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자 해서 해비타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거의 10만 채의 집을 지어 무주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앞으로 5년 안에 10만 채를 더 짓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꿈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도저히 따라 갈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일을 하고 많은 일을 한 사람만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의이름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든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쫓아 사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그 일이 하나님 앞에 귀하고 삶의 의미가 주어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로 들어 가보겠습니다. 한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형으로부터 유산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께 왔으면 진리를 찾았어야 할 것입니다. 헌데 진리는 없고 물질입니다. 예수님께 왔으나 보이는 것이 물질뿐입니다. 그리고 형으로부터 물질을 받아내야겠다는 그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없습니다. 형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요 나눔의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관계요, 대립의 관계입니다. 그럼으로 소중 한 것, 사랑이나 우애나 나눔이 없습니다. 물질 때문에 귀한 것을 잃은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주님의 대답은 난 그런 것 판단해 주는 재판관이 아니다. 는 것입니다. 네가 보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15절에는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탐심 때문에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탐심을 물리 치라시는 것이지요. 탐심이 앞서면 부모도 안보이고 친구도 안보이고 하나님도 안 보이지요. 그래서 제 욕심만 나옵니다. 제고집만 나옵니다. 제 생각만 주장합니다. 

어떤 호기심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백만 년의 세월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되나요?" 내게는 1분과 같다." "그럼 백만 달러는 당신께 얼마나 되나요?" "백만 달러라 할지라도 내게는 동전 한 닢에 불과하지." 이 사람이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씨 넓으신 하나님, 그럼 제게 동전 한 닢만 꾸어 주시겠습니까?" 했습니다. 아 그게 필요하니 그럼 1분만 기다려라." 

부자가 있었습니다.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을 만큼 풍성하게 거두었습니다. 그는 곳간을 크게 짓고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쌓아 두었습니다. 그는 걱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내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 하나님이 쌓아 둘 곳이 없도록 부어주었는데 겨우 생각이 다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그의 육체를 위해 먹고 쉬고 마시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해 동안 먹고 쉬고 마시자 하는 그 영혼을 그날 밤 데려 갑니다. 왜요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놔두어 봐야 일도 하지 않고 양식만 축낼 인생입니다. 더 두어서 무엇 하겠어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정말 귀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 말씀입니다. 정말 귀한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그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에게 재물을 맡겨 주신 이도 하나님입니다. 그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그에게 영혼을 주신 이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자기 인생과 자기 영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낚시질을 하다가 금빛 찬란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았습니다. 물고기가 말을 합니다. "나는 용왕의 아들입니다. 나를 살려 주십시요. 나를 살려주면 당신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릴 것입니다." 낚시꾼은 은근히 욕심이 생겼습니다. "다섯 가지 소원을 들어주면 살려주지!" "안됩니다. 저는 용왕이 아니라 세 가지 소원만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세 가지반..." 이러고 욕심을 부리는 사이에 그 물고기가 죽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 사람 다 죽고 자기 집 식구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 제일 좋은 차를 자기들이 다 탈 수 있어요. 보석이란 보석은 다 가져다가 열 손가락 열 발가락에 다 끼고 살지요. 그런데 농사짓는 사람 몇 사람 있어야 밥을 먹을 것 아닙니까?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려면 학교선생님 몇 사람은 있어야 고, 그것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전공따라 교수들까지 몇 사람 있어야 만이 아이들 공부를 할 것 아닙니까? 

이 아이들이 아프면 큰일나지요. 그래서 의사도 있어야 되고 간호사도 있어야 되고. 자동차를 몰다 고장 나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주유소 사람도 있어야 되겠고 고치는 사람도 있어야 되겠고 부속품 파는 사람도 있어야 겠지요.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세상에 없어야 될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네요. 그래서 창문을 열고 새롭게 크게 외쳤습니다. "그래 니네들 다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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