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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마음의 고향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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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마음의 고향 (시 84:1~12)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8년 12월 9일 영국의 LSE 대학 <로버트 우스트> 객원교수가 
54개국 대상으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1위가 벵글라데시, 2위 아제르바이잔, 3위 나이지리아, 한국은 23위입니다.  
그러니 행복이 GNP 가 높다고 해서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쥐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만 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인들은 미인이 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성형수술을 하고 미용 마사지를 합니다.
정말 부가 권력이 건강이 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요?
오늘 행복한 삶이 떤 삶인가를 바로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리 복을 짊어지고 태어나도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백그라운드도 없어도 
       살아가면서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이란 그 복을 누리기 전까지는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시84편은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된 삶을 누릴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경은 행복한 삶이 어떤 삶이라고 말합니까?

1. 나는 복된 삶이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1-4절)

1절 [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
풀핏 주석에는 
[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의 측도를 재는 말씀이다 ] 라고 합니다. 
아무나 주의 장막 즉 교회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고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꼭 내 입술에서 고백이 나옵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이 고백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는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 교회가 그렇게 사랑스럽습니까?
교회는 하나님 백성에게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교회는 어머니 품과 같다]고 합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시기 바로 직전에                          
사모님이 면회를 갔는데 그랬다지요. [ 엄마 얼굴 보고 싶다 ]고 하더랍니다.

저도 이 말이 실감이 나요.
공주 요양소에서 투병생활 할 때였는데 어느 날은 이제 죽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가 보고 싶은 것 있지요. 엄마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요.
이게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람에게는 회귀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이지요.
사실은 그 본능은 엄마 품이 아니고 하나님의 품입니다.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품과 같은 곳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를 사랑하고 나아가 사모합니다. 
2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
얼마나 사모했으면 영혼이 쇠약할 정도로 사모하겠습니까?

증권하는 사람 보니 
눈만 뜨면 증권, 입만 벙긋하면 증권, 밥 먹다가도 증권, 잠자리 누어서도 증권
온통 마음이 그기에 쏠려있습니다. 하기야 증권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증권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으보세요.
증권은 때론 사람을 실망시키지마는 하나님은 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시122:6절 [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  
이때에 예루살렘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바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평안을 구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그 행사가 형통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3절에 사실적이면서도 아주 인상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3절 [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나이다 ]

시인은 여기서 참새와 제비를 비유로 들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새와 제비 세계 어디를 가든지 보게 되는 가장 평범한 새입니다. 
      몸집도 작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겁이 많은 새입니다.
공작처럼 우아함도 없고 칠면조처럼 먹기도 좋은 새가 아닙니다. 
참새와 제비는 별로 가치가 없는 새들입니다.
그런데 참새와 제비같이 별로 보잘 것 없는 새들도
       주의 전에서 보금자리를 얻어 사는데

하물며 하나님 백성들이 어찌 주의 전에서 보금자리를 얻을 수 없단 말인가?
시인의 눈으로 볼 때에 주의 성전 곳곳에 참새나 제비들이 집을 짓고 사는데
       하나님 백성인 내가 여기서 위로를 받을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인 줄 믿습니다. 

참새나 제비도 성전에서 보금자리를 얻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진정한 행복한 삶이 어떤 삶인가? 를 깨닫고 찬양합니다.

4절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복된 삶이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가장 많이 사는 곳이 집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잠을 자고 생활하는 집을 주택이라고 하고
      배우는 집을 학교라 하고 일하는 집을 직장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집에서 살다가 집에서 그 인생을 마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집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집을 건물로 생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건물이 집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품이 나의 집이 됩니다.
그래서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없으면 집이 텅 빈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집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집이 되고 아내가 집이 됩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할지라도
       의지할 수 있는 품이 되어 주지 못하면 아내의 마음은 떠납니다. 
아무리 미모가 뛰어나더라도 
       아내가 남편에게 집이 되어 주시 못하면 남편이 떠납니다. 
그런데 세상 집은 변합니다. 부모도 떠납니다. 남편도 아내도 언젠가 떠납니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의 집이 되고 안식처가 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시편 기자는 
4절 [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 라고 고백합니다.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 자의 특징입니다.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까?


2.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합니까?(5절)

5절 [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교회 왔다고 해서 다 하나님 앞에 나아온 것 아닙니다. 
교회 왔다고 해서 다 하나님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가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거기서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온의 대로 누가 열수 있습니까?
은혜 받은 자가 열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왕들에게는 왕권을 상징하는 막대기 즉 홀이 손에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왕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왕의 손에서 홀이 들려져야만 하지 
만약 홀이 들려지지 아니하였는데 왕 앞으로 나아가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에스더가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아닥사스다 왕 앞에 나아갈 때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 앞에 나아오면서 
       하나님 허락 없이는 감히 누구도 나아올 수 없습니다.
단 왕의 손에서 홀이 들리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면 나아갈 길이 열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는 주께 힘을 얻어야 합니다.        
                                   주의 긍휼을 입어야 합니다.

누가 주의 긍휼을 입을 수 있습니까?   
히4:6절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는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입니다.
왜? 그 피는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찬254장 1절
[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하심 주 날 오라 하신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흘리신 보혈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여렸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교회 와서 주께 힘을 얻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줄 믿습니다. 

저는 교회 와서 은혜 받는 모습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시집 간 딸이 친정에 와서 시집살이 고달픈 이야기
시어머니 구박 이야기, 시누이 미운 이야기 시동생 말성 피우는 이야기
  고주알, 미주알 밤새도록 친정 엄마에게 일러바칩니다.
그러면 엄마가 딸을 위로합니다. 시집살이 다 그런거야, 참고 살아야지
딸은 다시는 시집에 안 갈 것 같이 흉을 보고는
그 다음날 보따리, 보따리 챙겨서 헤헤 하며 시집으로 떠나갑니다.
   그래야 시댁가서 어깨펴며 살거든요.

그래요, 교회는 신앙의 친정집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살이 가정생활 고달팠던 것 다 주님께 일러바치세요.
그리고 이 보따리 저 보따리 많은 은혜의 보따리 담아 웃으며 일어서세요.
교회 와서 은혜의 봇따리 잔뜩 담아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당당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도가 교회 와서 은혜를 받아 복된 삶을 누리는데
       하나의 관문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3. 성도가 교회 와서 은혜 받아 복된 삶을 누리는데 하나의 관문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6-8절)

6절 [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시84편은 가만히 앉아서 아니면 누워서 떠오른 시상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생생한 체험에서 나은 시입니다.

눈물 골짜기는 <바카~> 골짜기라 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려고 하면 
    지형적으로 이 메마르고 건조한 골짜기를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이 바카 골자기 지나야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뵈올 수 있듯이 
성도들도 이 눈물의 골짜기 거쳐야만이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려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업과 시험의 실패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질병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병상에서 누워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자식이 속을 썩여 눈물 골짜기가 되는 때도 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가 말하는 눈물 골짜기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기도의 눈물의 골짜기를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만이 
      그 곳이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고 이른 비도 은택을 입게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고난 가운데서도 눈물로 기도하면
도리어 그 고난 때문에 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이른비의 은택을 입게 됩니다. 

이른 비의 은택이 무엇입니까? 
이른 비는 팔레스틴 지방에 10-11월에 내리는 비로써 파종하게 하는 비입니다.            
결실을 위하여 씨를 뿌릴 수 있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기도의 골짜기 통과하지 아니하면
         가정과 자녀들을 위하여 시를 뿌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가운데 
고난당하여, 신앙생활 하기 힘든다고 여기시는 분 있습니까?  
눈물 골짜기 즉 눈물의 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그 고난이 되려 내게 축복이 되고 
많은 것을 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른비의 은택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눈물의 골짜기 이 관문을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려 하나님이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7절 [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절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물의 기도를 통해 힘을 얻고 더 얻기를 원한십니까?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귀울이소서 라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의 골짜기를 통과한 자만이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려질 줄 믿습니다. 

그럼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의 최고의 복된 삶을 누리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9-10절)

복된 삶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문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9절 [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란 
      우리의 보호하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주의 기름부으신 자는 이스라엘 왕을 의미합니다.
왕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란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형통케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보답으로서 주의 전에서 봉사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아 누리는 성도의 간구요 고백입니다.  
10절 [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
하나님 문지기란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를 의미합니다. 

감리교 광림교회 김 선도 원로 목사의 간증입니다.
공군 군목으로 계실 때 그 부대 제일 높은 지휘관을 전도했습니다.
그 장군은 세례를 받던 날 스스로 양주병을 쓰레기통에 쳐 넣어 버렸습니다.
세례 받은 후 목사님께
“ 이제 세례 교인이 되었으니 제가 봉사할 일거리를 맡겨 주십시오” 하니
목사님은 그 장군에게 주일 날 예배 전 예배당 앞에서 
         예배 순서지를 나눠 주며 안내하는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군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주일날 장군이 정장을 하고 꾸뻑 꾸뻑 인사를 하고 주보를 나눠주니
부하 장병들이 쳐다보고 기절할 정도로 놀랍니다.
부대에서 제일 높은 분이 제일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을 보고
         그 부대 전체가 복음화 되더라는 간증입니다. 

교역자 여러분!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순장, 교사, 성가대원, 직원 여러분!   
우리 모두 은혜 받아 하나님 교회의 성실한 문지기가 되도록 하십시다.   

지금은 문지기 하니깐 별로이지만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할 수 없었던 직분입니다. 

삼하6:에 보면 
다윗이 법궤를 옮겨 가다가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넘어지는 법궤를 
       바로 하려고 손을 데었다가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두려워하여 잠시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게 합니다. 
그런데 법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법궤를 집에 모시고 복을 받은 오벧에돔

대상26:8절에 보면 오벧에돔의 자손 62명이 하나님 전의 문지기로서 
         그 직무를 잘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전의 문지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의 천 날 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문지기 정신이 있어야 겠습니다. 

문지기 정신은 바로 봉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누리는 증거가 무엇이겠읍니까? 
세상 사람들은 지배하고 섬김을 받는 삶이 최고의 복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섬김의 삶이요 봉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 하나님 문지기 정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인 교회를 지키려고 하는 문지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전의 문지기가 되어서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진정한 은혜 받은 자가 희박해져 갑니다. 
한국교회 안에 사람도 많고 돈도 많은데 하나님의 역사는 희미해져 갑니다. 
왜일까요? 문지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초대 교회는 새벽마다 교회 종을 치는 종지기 장로가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재단 뿔 붙들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기도의 청지기 권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문지기 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골1:24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교회를 위하여 몸이라도 바치겠다는 바울의 고백 
바로 하나님 문지기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이러한 문지기 정신을 가지고 
    교회에 봉사하는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된 삶이란 바로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려 교회에서 은혜 받는 삶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삶이 바로 복된 삶인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연구진은 <테레사 효과> 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연구진에 의하면 테레사 수녀처럼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
   실제로 봉사하지 않더라도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착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몸까지도 이에 영향을 받아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물질이 생긴다는 보고입니다.

하루는 영국의 작가 버나드 쇼가 
   스스로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의사에게 왕진진료를 청했습니다.
의사는 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병이 걸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쇼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부러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쇼가 깜짝 놀라서 의사에게 무슨 일이냐? 고 물으니 
아무래도 급히 오느라 심장 발짝이 생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쇼가 얼른 따끈한 차를 끓이고 응급약을 챙겨 왔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벌떡 일어서더니
      쇼에게 진료비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 아니 진료비라니 내게 언제 진료했느냐?” 고 하니
“ 당신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에 당신 병이 낫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쇼는 자신의 아픈 곳이 없어졌더라는 일화입니다.

남을 위해 움직이며 봉사할 때 우리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해집니다.
성도는 영육 간에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건강의 비결은 운동입니다. 교회 봉사는 영적인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하는 건강한 일군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렇게 우리에게 복된 삶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 우리에게 복된 삶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1-12절)

11절 [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
12절 [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우리에게 교회를 통하여 은혜 베푸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
         내게 은혜 베풀어 하나님 문지기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해요 방패가 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빛을 비춰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분이시오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태양되시고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그 분은 우리에게 은혜와 영화를 주시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밤이 되면 이렇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 하나님 이게 제 세상입니까? 하나님 세상입니까?
  제 교회입니까? 하나님 교회입니까?
 하나님 세상이고 하나님 교회라면 하나님이 돌보십시오.
 저는 피곤해 자야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다시 뵐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해요 나의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바로 알면
하나님의 집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삶의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기도할 것이고
은혜 받아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봉사할 줄 믿습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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