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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손(1) : 기묘자 (삿 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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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1) : 기묘자 (삿 13:1~25)


I. 과연 실패담일까? 

인류 역사상 가장 힘쎈 사람이 누구일까? 제가 아는 한 삼손입니다. 삼손이 만약 우리시대에 살아있다면 힘과 주먹으로 하는 모든 올림픽 게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을 것입니다. 역도, 레슬링, 권투 뿐만 아니라 프로권투와 격투기에서 적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삼손이라고 했을 때 여러분의 머리엔 어떤 그림이 지나갑니까? 머리를 길게 기른 힘쎈 장수, 여자들의 치마폭에 빠져 인생을 망친 플레이 보이, 힘의 상징 머리가 깎이고 두 눈이 뽑힌 채 맷돌이나 돌리다 죽은 사람.

주일학교 때 부터 자주 듣던 인물이요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도 삼손 정도는 기억을 할 만큼 유명한 인물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소설가, 음악가, 미술가 그리고 영화 제작인들의 재미있는 소재거리였습니다. 

삼손을 소개로 한 소설이나 희곡으로는 
① 밀턴의 「고뇌하는 삼손」
② 니콜라예비치 (L. Nikolaevich)의 「사슬에 매인 삼손」
③ 페릭스살텐의 「삼손과 드릴라」 등이 있습니다. 

미술로서는 렘브란트의 「삼손의 결혼」 「장인을 위협하는 삼손」이 있고 
루커스 카르낙과 루벤스 등이 삼손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음악가로는 헨델, 루빈 골드마크, 니콜라스 나보코프가 삼손을 주제로 한 곡을 남겼습니다. 그 외에도 삼손은 영화, 연극, 뮤지컬, 발레 등 모든 예술 분약의 관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삼손은 이만큼 잘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삼손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복음적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삼손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해석해 놓은 책도 많지가 않습니다. 

사사기 저자는 삼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넉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로 본 것입니다. 삼손의 사건을 통하여 하고 싶은 얘기, 보여줄 메시지가 많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사로, 나실인으로 불러주셨는데 그는 구제불능 바람둥이로 살다 죽었다. 너희는 그러지 말아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 삼손과 함께 그 엄청난 사건들을 일으키실 것일까요? 

삼손은 포도 열매도 먹지 말아야 하고 시체 등 부정한 것도 만지지 말아야 하고 머리도 깎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조리 어기다가 망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사사기 저자는 무려 성경 넉 장을 할애하신 것일까요? 

분명 삼손은 끊임없이 실패의 삶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기대와 계획을 생각하지 않고 천방지축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사사기를 공부할 때 인간의 영웅적인 기질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실수와 실패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주시고 인내하시며 언젠가는 승리하고 일어설 것을 믿어 주시고 바라봐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삼손 드보라의 연출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힘쎈 영웅의 실패담이 아니라 가장 큰 자가 쓰러질 때 넘어지는 소리도 컸지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얼마나 큰 것인가를 성경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인내하고 사사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죽음으로 원수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원수를 무찌르기 시작하는 삼손의 마지막 미션 수행을 보여줍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역사가 흐른 다음 하늘의 눈으로 하나님의 미션으로 지나간 시대의 믿음의 영웅들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신약의 책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입니다. 거기 믿음의 전당에 오른 하늘의 영웅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당당히 삼손이 그 반열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다윗, 기드온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너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라. 하나님의 사랑은 너의 실수보다 크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의 실패보다 크시다." "하나님은 나같이 못난 자, 실수투성이도 한번 선택하셨으면 버리시지 않았다." "네가 한번 넘어졌다고 신앙의 걸음을 포기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다시 너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약점까지도 품어 주신다. 하나님의 손만은 절대 놓치지 말아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해라." 삼손은 오늘 우리에게 승리의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이제 여러분을 이스라엘이 가장 약해져 있을 때에 가장 강력한 사사를 보내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안내합니다. 그 첫시간 「삼손 ① - 기묘자」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II. 신음소리도 낼 수 없는 중환자

오늘 본문 사사기 13:1 말씀은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익숙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기 "다시"라는 말은 "계속 또 다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선을 행할 능력이 없나 봅니다. 하는 것이라곤 다시 악을 행하는 것 뿐입니다. 

"악을 행했다"고 했을 때 우리말 번역엔 생략이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엔 정관사가 붙어 "그 악을 행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그랬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바알을 섬긴 바로 그 악을 말합니다. 

악을 행하면 그 다음 반드시 따라오는 단계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40년동안 블레셋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겼다" 여기 40년은 이스라엘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이방을 섬긴 고통의 기간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압제와 고통의 기간 중 가장 긴 기간, 가장 불어난 수 입니다. 

입다 때에 고통의 기간을 18년, 사사로 일한 기간을 6년 - 고통과 사사의 사역 기간이 역전되더니 압제와 고통의 기간이 사몬이 나타날 무렵엔 40년으로 팽창되어 버렸습니다. 

사사기 싸이클에서 ① 범죄 ② 고통 
그 다음 세 번째 단계가 무엇입니까? ③ 회개와 부르짖음이 나타나야지요. 

그러나 삼손시대에는 "백성이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 아무리 고통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만큼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겁니다. 범죄와 고통 다음엔 이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애처롭게 나타나겠구나 라는 기대를 가지고 사사기를 읽는 독자는 큰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전쟁터 한 기지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군의관들과 간호사들이 도착해 보니 팔이 달아난 사람, 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 눈을 잃은 사람, 얼굴이 깨진 사람... 저마다 나를 살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하나 없이 아예 피범벅이 되어 부르짖지도 못하고 겨우 코 끝에 가녀린 숨만 할딱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인 모습입니다. 

맥박이 멈추어져 가고 있고 체온이 떨어지고 호흡이 멈추어져 가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어찌 부르짖을 수가 있습니까. 

언제나 그렇습니다. 기도할 힘이 남아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부르짖기 시작할 때 구원의 길은 이미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앞길이 꽉 막혀 있고 좌우에 태산이 버티어 서 있고 뒤로 도망조차 갈 수 없어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소리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달려와 살려 주십니다. 이때 하늘마져 막혀버린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나타납니다. 인간은 완전 부패, 전적타락으로 하나님을 찾을 힘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 구원이 어디 있을까요? 날 좀 구원해 주세요." 부르짖지도 않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나를 일방적으로 찾아와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요 삼손의 이야기 또한 나의 얘기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사사가 바로 삼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군대를 모아 블레셋을 대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스라엘(유다지파)이 자기들 손으로 사사를 붙잡아 원수 블레셋에 넘겨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전투를 혼자 싸워야 하는 독불장군을 보내신 것입니다. 

삼손은 한 번도 군대를 이끌고 싸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의 압제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픈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약속의 땅이 짓밟히고 민족 신앙과 인격이 짓눌린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쩌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 꼴이 되었느냐고 탄식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싸이클 네 번째 단계는 무엇입니까? 사사가 나타나면 이스라엘이 평온하더라. 몇 년간은 태평했다는 기록이 나타나야 합니다. 입다 때에 이 기록이 나타나지 않더니 삼손 이야기 속에서도 샬롬의 기록이 없습니다. "삼손이 20년동안 사사로 있었다"라고만 합니다. 안식을 잃어버린 안식의 땅, 약속을 잃어버린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III. 안식없는 안식(마노아)의 땅에서 

절망의 시대, 절망의 땅에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도 들리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준비하십니다. 2절입니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소라 땅에 단 지파" 단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땅을 이곳에 분배받고 보니 당시 가장 강력한 원수 블레셋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너무 갇힌 상대를 상대하다 보니 좋은 땅 평지엔 내려와 보지도 못하고 험한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소라 땅에 단 지파가 살았다는 것은 이 얘기가 사사기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을 암시합니다. 단 지파가 북쪽으로 이사를 가기 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사기 저자는 영적인 의미에 따라 사사기를 기록하다 보니 초기 사건이 가장 나중에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마노아 나이가 몇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형제가 몇이나 되는지 사사기 저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마노아가 있는데"라고 하지 않고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마노아의 이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손의 아버지 이름이 "마노아"입니다. 본문 13장에서 마노아란 이름이 원문상 17번 정도 등장합니다. 대명사를 쓸만도 하고 생략해도 좋은 문맥에서도 고집스럽게 "마노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노아는 "노아"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리라 약속한 바로 그 땅에 안식과 평화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임신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했다. 아니 본래부터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다고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불임은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저주로 생명의 생산능력을 잃어버리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3절 후반 절입니다.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하나님의 간섭으로 이스라엘 땅에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사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때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삼손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수태고지 - 임신을 미리 알려주는 사건은 그렇게 흔한 일도 간단한 사건도 아닙니다. 수태고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을 나타내는 사건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수태고지는 불임의 여성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었습니다. 수태고지는 100%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를 구원한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늙어 임신할 수 없을 때에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정녀로 있을 때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노아 아내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여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갖게 되리라고 알려줍니다. 이처럼 삼손은 성경 상 몇 안되는 수태고지와 함께 이 땅에 태어납니다. 


IV. 나실인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나실인이란 하나님이 특별히 쓰기 위해 구별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나실인에겐 평생 지켜야 할 규정이 있었습니다. 

① 포도주나 독주 심지어는 포도열매나 건포도도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엡 5:18에 보면 "술취하지 말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술과 성령은 모두 충만과 관계가 있습니다. 충만이란 장악한다. 통치한다는 의미입니다. 너는 술에게 장악되지 말고 성령에 의해 장악되어 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은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너를 장악할 수 있는 그 무엇에게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으로 술을 가까이 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② 두 번째로 나실인은 죽은 시체나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어도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나실인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만 쓰임 받도록 100% 구별된 존재라는 것이지요. 

③ 셋째 나실인은 머리를 깎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머리가 나를 덮고 있듯이 내 생각, 내 삶을 온전히 덮고 계신 나의 주인이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의 수하에 있다. 나는 하나님께 붙잡혀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 그 무엇도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구별된 존재이기 때문에 삼손의 어머니도 삼손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보통 임신을 하면 특별한 영양요법이 처방되어야 하는데 삼손의 어머니에겐 식이요법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오늘 본문 5절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는 말씀 다음에 퍽 재미있는 말슴이 붙어나옵니다.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능력의 사사 삼손조차도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완전히 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다만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구원의 작은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사가 삼손입니다. 

이 구원의 완성은 사무엘과 다윗 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친 것은 다윗 왕이 블레셋의 본거지를 완전히 멸하는 사무엘하 8장에 가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삼손의 등장은 블레셋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의 손에 넘겨 고통을 겪게 하지요. 그러면 하나님께 돌아와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살려줍니다. 이게 정상적 싸이클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응급환자실, 혹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숨만 할딱거리는 상태로 죽어있습니다. 그때 삼손이라는 한 나실인을 통해 범죄하고 이방인의 손에 묶여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쓰시는 이 싸이클을 겪게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 그의 은혜와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삼손의 일생입니다. 


V. 기묘자

절망의 시대, 절망의 땅, 불임의 가정에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에게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감격하여 염소새끼를 잡아 대접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는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정히 번제후 드리려면 오직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드렸더니 불꽃이 반석 제단에서 나와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사자가 그 불꽃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한 이적을 체험합니다. 

이 과정에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묻습니다. 당신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행하시려고 날 찾아오셨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지요.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내 이름은 기묘자"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펠리(phely)라는 말인데 공동번역에서는 "비밀(secre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엔 wonderful, secret 혹은 beyond understanding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엔 "기묘자"라고 기묘하게 번역했습니다. 

beyond understanding -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럽고 기묘한 역사를 삼손을 통해 이루어 갈 것입니다. 여기 기묘란 강력한 능력의 신비라기보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사랑, 은혜의 신비를 말합니다. 버려야 할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왜 그토록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그것이 하나님 사랑의 비밀입니다. 기묘입니다. 

하나님의 그 엄청난 영이, 여호와의 영이 범죄하고 타락한 삼손에게 임하여 함께 하시고 기어이 하나님의 계획, 사명을 완수케 하시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사명을 완수케 하시는지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입니다. 기묘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힘센 영웅의 이야기도 약점과 실수로 쓰러지는 한 사사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 허물 많고 실패를 반복하는 삼손 곁에서 그의 손을 잡고 동행해 주시고 기다리고 인내하시다 기어이 성공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이야기입니다. 그것이 기묘입니다. 

언제나 역사의 최후 승리자는 하나님이시다. 끝까지 가보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이긴다. 이것이 beyond understanding 기묘입니다.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왜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 살려 당신의 자녀 삼으셨는지? 
갚지 못했고 갚지 않을 줄 알면서 왜 또 무조건 복 주시고 은총 주시는지?
왜 실수와 범죄로 얼룩진 나를 버리시지 않았는지?
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고 능력을 주시는지? 
그분의 역사는 비밀입니다. 기묘입니다. 
삼손을 버리시지 않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시지 않은 것은 
beyond understanding 이해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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