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낙심을 극복하라 (시 42:1~11)

  • 잡초 잡초
  • 620
  • 0

첨부 1


낙심을 극복하라 (시 42:1~11)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군의관으로서 포로생활을 했던 쿠쉬너 소령의 회고담 가운데 <절망과 죽음>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는 1967년 월맹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지독한 학대와 영양실조로 체중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와 함께 27명의 미군포로들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 중에 10명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죽은 병사들 가운데 로버트라는 하사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해병특공대 출신으로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쿠쉬너 소령이 로버트 하사를 처음 보았을 때, 체중은 40kg도 안 되는 체구였지만 눈은 빛나고 중노동을 잘 견뎌냈습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월맹군측은 포로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하여 말 잘 듣는 미군 포로 몇 명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번 석방자는 로버트가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로버트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 희망은 그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희망은 육체적, 생물학적 한계마저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6개월이 되었지만 월맹군측은 그를 석방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1개월을 더 기다렸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월맹군 장교의 그를 대하는 태도는 더욱 냉담해졌습니다. “다 틀렸구나!” 생각한 로버트 하사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쿠쉬너 소령의 품에 안겨 죽었습니다. 로버트의 죽음을 본 쿠쉬너 소령은 “로버트는 질병 때문이 아니고 낙심 때문에 죽었다”말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낙심이 존재합니다. 이놈의 낙심은 일상적인 모든 삶의 영역 혹은 신앙생활까지 존재하면서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괴물입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낙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 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망(落-떨어질 락 望-바랄 망)이란 “희망을 잃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 솨하흐입니다. 이 뜻은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의 몸이 풀이 죽고 누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도 싫습니다. 온갖 아픔에 사로잡힙니다. 

이 시편을 기록한 저자도 상당히 낙심 중에 있었습니다. 5절, 6절, 11절에 보면 시편기자가 대단히 낙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42편에 대해서 칼빈은 원래 이 시는 다윗이 쓴 것인데 고라 자손들에게 맡겨 보관되었고 훗날 고라 자손들의 마스길(교훈) 전용으로 불렸다고 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생애 중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도망 다니는 상황에서 기록한 시입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9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잊은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굉장히 슬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낙심을 극복하는 내용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낙심 극복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낙심합니까?

  1)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안될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2).
다윗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갈 수 없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 나와 올라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낙심 중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일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2) 일이 안 되는 이유를 모를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느 때 예루살렘에 올라갈까 모르는 상황에서 애타게 절규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잊었는지, 어찌하여 원수들이 핍박하는지를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원인을 알게 되면 고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모른다면 낙심이 될 수 있습니다. 

  3) 일이 안 되는 이유를 알지만 자기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만 그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 버는 길이 보이는데 자본금이 없어서 시작할 수 없다면 낙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낙심했습니다. 

  4)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인정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주변에서 인정해주면 힘이 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했어도 인정받지 못하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3절에 보니 사람들이 다윗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너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결과는 무엇이냐, 결국 아들에게 쫓겨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5)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실제로 빈곤한 것은 아닌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서 적게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다윗은 압살롬과 자신을 비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살았는데 믿음이 없는 아들은 왕위에 올라가고 자기는 아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낙심할 수 있었습니다. 

  6) 스트레스를 감당할만한 힘이 없을 때 낙심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면 마음에 낙심이 생기게 됩니다. 다윗은 아들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나와서 피신을 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황은 다윗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들의 낙심 극복법

  1) 낙심 될 때 일수록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무능한 자신만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았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고 노래합니다. 그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사슴은 암사슴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대부분 광야이기에 풀이 많지 않고 마실 물도 귀합니다. 더구나 4월부터 9월까지는 비가 안 오는 건기이기 때문에 풀도 말라죽고 개울물도 말라버립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암사슴이 이때 새끼를 뱁니다. 마실 물도 없고 뜯을 풀도 귀한 때에 새낀 밴 암사슴이 얼마나 목마르겠습니까? 더구나 사슴은 열이 많은 짐승입니다. 그 어떤 짐승보다 물을 찾습니다. 하지만 물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암사슴은 물을 찾아다니다 못 찾아 목말라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새끼 밴 암사슴처럼 하나님께 목말라 있다는 것입니다. 낙심된 상황에서 하나님을 그토록 사모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런 상황에서 낙심을 극복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이 낙심 중에 하나님을 찾은 이유는 2절에 보면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은 도우시는 분입니다. 

  2) 낙심 될 때 일수록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비전을 바라봐야 합니다.
4절에 보면 과거를 생각하니 마음이 상하게 되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6절에서는 비전을 바라보므로 새 힘을 얻습니다. 지금은 갈 수는 없으나 예루살렘을 볼 수 있는 산에 오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신 산지 예루살렘, 비전의 땅을 사모하며 바라봅니다. 과거에 집착하며 현재 그렇지 못한 것 때문에 한탄하고 있으면 더 깊은 낙심의 골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비전을 바라보고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택하셔서 사역을 맡기시기 전에 대부분 약하고, 가난하고, 미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비전을 심어주시고, 그 비전으로 그들을 흥분하게 하셔서 비전에 헌신하게 하시고 결국 그 비전을 성취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처음에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꿈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받고 기도하면서 나아가면 전혀 가능성이 없던 그 일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고 결국은 그것이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3) 낙심 될 때 일수록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대화를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면 자신에게 새 힘이 임하고 병든 자신이 치유 됩니다. 낙심도 사라집니다. 

5절과 11절 보면 시인은 자신에게 말합니다. “낙심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을 잘 관찰해보면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말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평균 1분당 150개에서 20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 자신과 대화할 때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인 1분에 1,30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심리학자들은 ‘Self-Talk’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말에는 능력이 있어서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으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긍정적인 말을 계속 들으면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밝게 하는 사람이 긍정적이고 밝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침체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자기 자신과 대화함으로 더 낙심케 되며 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합니다. 영적침체에서 자유케 되려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 긍정적이고 신앙적이며 덕스럽고 용기를 주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는 내 생각과 하나님이 주신 생각 그리고 사단이 주는 생각이 공존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잡아내고 그 생각을 따라갑니다. 그는 사단이 주는 생각을 물리치고 자기 생각은 다스립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막아버립니다. 사단적인 사람은 사단이 주는 생각에 순종하여 사단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4) 낙심 될 때 일수록 찬송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5절과 11절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말합니다. 그는 낙심하고 있는 자신에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면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mp3를 들고다니면서 계속해서 음악을 듣는데 믿는 사람들은 기왕이면 찬송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찬송하며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인생은 감사와 찬송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수년 전 미국의 프란시스 로셔 박사와 고든 쇼우 박사가 이색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6개월간 모차르트 곡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은 미취학 아동들이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뛰어난 학습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좀 더 확실한 근거를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봤는데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쪽엔 10분간 모차르트 곡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은 들려주지 않고 수학과 과학 시험을 보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음악을 들은 쪽 학생들이 반대쪽 학생들에 비해 평균 30%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음악은 어떨까 비슷한 실험을 했답니다. 록 뮤직(rock music) 등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고 시험을 치렀더니 평소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식물들도 음악에 대해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의 도로시 리틸락 박사는 하루 3시간 록 뮤직(rock music)을 식물에게 들려주었더니 애호박에 주름이 생기고, 토마토가 납작해지고, 옥수수가 구부러졌다고 합니다. 반면에 왈츠나 세레나데를 들려준 식물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열매도 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여러 면에서 유익하다는 사실입니다. 두뇌 활성화, 학습 능력과 생산성의 향상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의 장애나 질병을 치료해 준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음악 치료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 음악을 가리켜 ‘영적인 언어’라고 했는데, 이 말처럼 음악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음악을 선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이 있습니다. 무엇이죠? ‘찬송’입니다 

신기한 일을 취재해서 방영하는 TV프로에 모 가수의 이야기가 취재되어 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붓글씨로 2m X 5m의 대형 크기의 종이에 꼬박 1년에 걸쳐서 성경의 잠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정성스럽게 다 썼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 써놓고 보니 그 글씨들이 따뜻한 열기를 발산하고 그리고 잠언서를 표구하여 걸어놓았을 때, 수맥차단현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또 동일한 프로그램에서 연속해서 어떤 성가대의 합창을 녹음해서 틀어놓고 수맥현상을 실험해 보였는데, 거기에서도 동일하게 수맥차단현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TV프로그램 진행자는 그저 ‘알 수 없는 이상한 일’ 정도로 언급하고 말았지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말씀과 찬양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찬양팀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 가운데 영적인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할 수 없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능력의 이름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5) 낙심할 때 일수록 지난날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6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다윗은 말할 수 없는 낙심 중에서 지난 날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과거에 자기를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은 한 번도 나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고난을 당하지만 과거에 선을 베푸신 하나님, 지난 날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니 또 다른 은혜가 밀려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라고 합니다. 과거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니 마치 내륙으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와 같은 놀라운 영적 부흥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얻은 영적인 지위, 환경적인 축복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6) 낙심 될 때 일수록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주를 기억하였다고 했는데 다윗은 지금은 비록 쫓기는 신세이지만 그의 왕국이 영원하리라는 삼하 7:12-16의 약속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낙심될 만한 상황이 되면 롬 8:28의 약속을 기억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훈 목사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장애인학교 교사인 남자 집사님이 갑상선에 암이 발생해 5㎝짜리, 3∼5㎝짜리, 3㎝짜리 종양 3개가 무섭게 자리잡았습니다. 의사는 수술하고 치료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나 입원하는 날부터 9일 동안 수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집사님에게 열병이 발생해 체온이 40도를 오르내려 수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장애인 제자들은 선생님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고 교회는 열병이 빨리 나아 암이 더 확산되기 전에 수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9일 후 하나님의 응답으로 열이 내렸고 곧장 최종검사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3개의 종양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9일 동안의 열병이 그 무서운 암덩어리 3개를 녹여버린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열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암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더 악화될 때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가끔 더 악화되게 해서 고치시기도 하십니다.

  7) 낙심될 때 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8절에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고 말합니다. 낙심될 때 기도하면 기도가 아름답게 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따지기도 하고, 하소연의 기도이기도 하고, 때로는 건방진 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도한다는 것,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는 것 같습니다.

거창 고등학교를 세운 정영창 선생님이십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미국에 남아서 거기에서 활동할까 하다가 ‘전쟁 이후에 폐허가 된 한국 땅에 돌아가서 내가 인재를 양성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 땅에 옵니다. 때마침 거창에 빚더미에 올라서 폐허가 된 학교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고 1958년 빚으로 넘어가는 학교를 그가 맡게 되었습니다. 막상 학교를 맡기는 했지만 빚을 갚을 길이 없어서 빚쟁이들의 독촉에 학교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찬송, 담요 하나를 가지고 거창읍에서 40리 떨어진 산마루턱 언덕에 있는 굴속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이 민족을 위해서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을 해보려고 하는데 이 학교가 이렇게 되어서 어떻게 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 하나 할 수가 없습니다. 빚에 쪼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사흘 동안 금식하면서 매달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 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으니 아무런 확신이 없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제가 일주일 금식기도 마치고도 응답을 해주지 않으시면 서울에 올라가 동아일보에 하나님 안 계신다고 광고를 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협박할 수 있는 담대함으로 기도를 하고 나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으면서 시원하더랍니다. 

그가 찬양을 부르면서 하산해서 학교에 오니까 편지가 왔는데 조은복이라는 크리스챤 미국인 성도가 2050$을 보내주어 당시 부채를 정확하게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1971년 학교를 운영하면서 학교 본당 건물이 낡고 볼품이 없어서 “하나님, 기왕에 교육을 시작했사온데 본관 건물이 이것이 뭡니까 이것이 학교라니 부끄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가 22만불을 보내주어 학교를 제 궤도에 올렸습니다. 

혹시 선을 행하되 열매가없어서 낙심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갈 6:9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한경직 목사님이 설교 중에 사용한 예화 중에 미국 광산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산을 찾아보는 과학자들이 어떤 산에 가보니 거기에 금이 많이 매장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산을 파보기로 했습니다. 전에 광부들이 파 놓은 갱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마지막 지점에 큰 곡괭이가 박혀있는데 그 자루가 썩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광부들이 그 곳까지 파내려간 것입니다. 자루가 썩은 곡괭이를 치우고 그 자리를 다시 파보니 그 속에 금이 가득한 노다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전에 팠던 사람들이 몇 번만 곡괭이질을 더 했다면 노다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안타깝게도 노다지 바로 위에서 곡괭이질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고 믿음으로 사는데 어려운 일이 많고 환경이 더 어려워지는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곧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사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