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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시 73: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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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시 73:23~28) 


  미국 사는 한인들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누가 맞으러 나오느냐에 따라, 그의 직업이 결정된다고 한다. 술장사가 분이 나오면, 술장사가 되고, 세탁소를 하는 분이 나오면, 세탁업에 종사하게 되고, 운전을 하는 분이 나오면, 운전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누가 전도를 했느냐에 따라, 신앙의 수준이 좌우된다. 새벽기도를 하시는 분이 전도를 하면, 새신자도 새벽기도를 한다. 기도 많이 하는 분과 가까이 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봉사 잘하는 분과 가까이 하면, 봉사를 즐거워하는 성도가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서, 그 운명이 달라지게 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놀기 좋아하는 자를 가까이 하면, 공부와 거리가 멀어진다. 술을 좋아하는 자와 가까이 하면, 술주정뱅이가 된다. 

  불평을 잘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게 불평꾼이 된다. 이단을 가까이 하면, 이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좋은 스승과 좋은 책을 가까이 하면, 공부도 잘하고, 좋은 인생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좋고 능력 있는 분들을 가까이 하시기 바란다. 

  인간들은 사랑하는 자는,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결혼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달만 그 사람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쳐다보고 주목하라.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달된다.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 

  사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복된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복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좋아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친밀함을 말한다.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죄와 사탄과는 거리가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은혜와 축복 속에 살 수 있게 된다. 무지함에서, 깨닫는 자가 된다. 그러면 어떤 복이 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자. 

1.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말이다. 나는 항상 주와 함께 하고, 주는 내 오른손을 붙드셨다는 말씀이다. 

  한번 두 번 가까이 하고, 멀리 말지 말고, 항상 주와 함께 한다. 성도는 항상 주와 함께 해야 한다. 일에도 말에도, 생각에도 꿈에도, 늘 찬송하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한다. 주님을 가까이하면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다. 누가 붙들어 주느냐가 중요한데,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심은, 환난에서의 보호를 의미한다. 무서운 시험가운데서도 지켜주시고, 위기의 순간에서도 지켜주신다. 하나님은 성도를 꼭 붙잡고 계신다.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심은, 완전한 보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항상 내 편에 서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구원이 보장된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다.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으시면,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왜냐하면 주님의 손은 능력의 손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능력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약한 것이 강해지고, 적은 것이 많아지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이단이 왜 무서운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오도록 만든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이단 밑에 있던 사람이, 구원자가 될 수 있나? 

  주님의 손은 자비의 손이다. 자비의 손에 붙잡히면, 무한한 위로가 넘치고, 불쌍히 여김을 받고, 끝없는 새 힘을 얻는다. 주님의 손은 치료의 손이다. 치료의 손에 붙들리면, 육체도 정신도 영혼도 치료를 받는다. 

  주님의 손은 축복의 손이다. 축복의 손에 붙들리면, 가난한 자는 부해지고, 꼬인 문제는 풀어지고 안 되던 일은 되게 된다. 주님의 손은 구원의 손이다. 구원의 손에 붙들리면, 실패가 회복되고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고, 쇠잔한 영혼이 생기를 얻는다. 

  주님의 손은 사랑의 손이다. 사랑의 손에 붙잡히면, 하나님의 자녀의 대우를 받고, 명예와 존귀와 영광을 얻는다. 그러므로 주님께 붙들리기를 소원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모든 것이 안전하고 잘되고 성공하게 된다. 

  갈대같이 흔들리는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시기를 바란다. ‘마르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도와 불신자를 소망으로 구분했다.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성도와 불신자로 구분된다. 불신자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행복의 조건을 구하지 않는다.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고 산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가까이한다.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사랑과, 자비와 은혜와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지금의 형편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하나님 앞으로 다가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때 벌써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계심을 발견하게 된다. 

  1948년 루마니아의 한 목사가, 공산당에 의해 투옥되어 16년 동안이나 이곳저곳을 끌려 다니면서 매를 맞고, 마취를 당하고, 고문을 당했다. 악랄한 세뇌도 받았지만,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 년 간의 투옥 생활 후에, 그는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한번은 죄수들에게, 가족의 방문을 요청하는, 엽서를 쓸 기회가 주어졌다. 세수와 면도를 하고 깨끗한 내의를 받았을 때, 죄수들은 희망에 차 있었다. 그 역시 면회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엽서가 집에 도착되지 않았던 것을, 그는 알 리가 없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큰 스피커에서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제는 너에게 관심도 없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울기 시작했다.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대형스피커에서 “기독교는 죽었다, 기독교는 죽었다”는 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온 후, “감옥생활이 그렇게 길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은, 그곳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하나님은 분명히,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계신다. 주님께로 나오면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은 나의 곁으로 오시기 위해, 2000년 전,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위에 오셨다. 주님은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인도하신다(24). 그러므로 주님 밖에는 사모할 자가 없다(25). 


2. 주님을 멀리 하면, 망하기 때문이다(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북극과 남극에는 만년설이 있다. 생명체가 많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저주를 받아서 그런가? 아니다. 

  태양과의 각도가 멀어서, 태양 빛이 도달하는 양이 적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태양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태양과 거리가 멀면 얼어붙어 버린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마음이 얼어붙고, 차가워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예배를 등한시하고,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고, 새벽을 멀리하면, 그 사람 주변은 하나씩 얼어붙게 되어 있다. 우리의 삶이 얼어붙으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발버둥 쳐야,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는 줄 안다. 하지만 그 해결점은, 거리의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행위가 낳을 결과는 무섭다. 죄악은 항상 멀리 떨어진 마음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멀어진 마음은 죄를 낳는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혀 끌려갈 때, 멀리서 따라갔다. (눅22:54)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가니라” 

  이때만 해도, 베드로가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몰랐다. 궁금하긴 하고 가까이 가면 죽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좇았다. 그런데 베드로의 앞에 나타난 한 계집종에게, 자신은 예수님을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다. 

  왜 그랬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님을 가까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베드로는 이미 영적인 힘을 잃은, 죄악 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더 이상 제자도 아니다. 이름은 사도이지만,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그렇게 된다. 

  반면에 적도는,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이다. 14개 나라의 영토와 영해가, 적도에 있다. 가봉, 콩고, 케냐, 우간다,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등이, 그 지역이다. 태양의 직사광선을 많이 받기에, 높은 온도와 습도가 많아 열대 우림이 있다. 

  적도에 나무가 무성한 이유는, 축복을 받아서 그런가? 아니다. 태양과 가까우면, 넘치는 생명으로 충만한데, 하나님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뜨거운 태양 앞에 눈 녹듯이, 삶의 모든 문제가 녹아내린다. 왜 성도가 세상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민족을 살리고 시대를 구원할 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된다. 미국의 힘이 무엇인가? 저는 이번에 안식년을 맞이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미국을 보았다. 특별히 바이블 벨트(남동부)지역을 돌아보면서, 수많은 교회들을 보았고, 그 곳에서 찬양과 예배가 끊어지지 않고, 드려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하면, 마약을 하고, 갱들이 총을 들고 싸우는, 나쁜 모습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만약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면, 왜 미국에 가서 사람들이 살기 원하는가? 잘못된 일부분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영화나 나쁜 뉴스만 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정말 경건하다.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 착각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세상을 좋아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동창회, 계모임, 결혼식에 가려다 보면, 주일 예배에 빠지게 됨은 당연한 이치다. 

  바울은 자신을 따라 전도하며, 같이 사역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음을 서운해 하면서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하였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람을 떠난다. 세상을 사랑하면 교회와 멀어진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교회가 안중에도 없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그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자리가 없다. 이런 사람이 바로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주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는 결국 자살했고, 그 끈이 끊어져, 창자가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비참한가? 그러므로 주님을 멀리하면, 불행이 오게 됨을 깨닫고,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란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잘 되기 때문이다(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여기서 내게 복이라고 했는데, 히브리어로 토브(בוֹט, 좋은, 선한, 잘 됨, 복지, 번영)이다. 

  (눅10장)을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나온다. 마리아의 능력은 예수님을 가까이 함이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니, 예수님께서 기뻐하셨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열심히 섬겼지만, 예수님께서 더 원하심은, 가까이 있기를 원하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능력 있는 분을 가까이 하면, 복이 된다. 

  캐나다에서 아이를 낳은,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혼자되신 어머님을 모셔오자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어머니에게 말하니, 어머니는 캐나다로 오셔서, 같이 살게 되었다. 이민생활이 얼마나 바쁜가? 갚아야 할 돈은 다가오기에,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만 한다. 

  다 출근하고, 영어를 못하는 할머니는, 집에서 아이를 보다가, 갑갑함을 느껴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집에 들어오는 일이 일상생활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공원 구석에, 거지처럼 초라하게 여겨지는, 어떤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다음 날 할머니는 김밥을 싸서, 할아버지에게 주었더니, 할아버지는 김밥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아, 다음 날은 잡채로, 그 다음 날은 불고기로, 날마다 대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게 되었다. 이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만나, 제법 영어도 말하게 되었다. 정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할아버지가 이 할머니에게 청혼을 하였다. 이 할머니는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끙끙 앓게 되자, 며느리는 무슨 고민이 있냐고 했다. 할머니는 말할 듯하다, 말하지 못하고, 시간이 계속 흐르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틀림없이,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니 남편이 어머니에게, 무슨 걱정이 있는지 꼭 들어보라고 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들과 며느리는 정말 효자였다. 어머니가 마음에 드신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렇데 결혼한 할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토론토 한국 신문에 났다고 한다. “신데렐라가 된 할머니”란 제목으로 났다고 한다. 그 날 이후, 그 공원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할머니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복이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 중에, 12년 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여인을 치유해 주셨다. 무슨 말인가? 

  무리 지어 옆에 있다고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시도가 이적을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 더 가까이 가면, 생명을 맛보게 된다. 기도 많이 하고 싶은가?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라. 그러면 기도가 나온다. 

  독서를 잘하고 싶으면, 독서의 대가에게 가까이 가라. 그러면 독서의 사람이 된다.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싶은가? 게임 전문가에게 가까이 가라. 그러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누구 옆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가까이 가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흔히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한다. 결혼 초기에는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자주 마찰이 일어난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가게 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부라기보다는, 오누이로 착각할 정도로 외모도 닮는다. 

  어렸을 때, 자석을 가지고 놀 때, 자석에 쇠를 붙여두면, 쇠막대가 자성을 띄게 된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삶의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단을 가까이 하면, 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나아지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다만 가까이 오라고 하신다. 그런데 가까이 가는 것도 못하는가? 더 나아지는 것은 능력의 문제다. 능력의 문제는,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 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관계없이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을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듣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가까이 하신다. 예배에 성공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아직도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힌 사람이 있는가? 실업률이 줄지 않는다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사는 게 힘들다는 사람이 있는가? 모두 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모두 변화된다. 무력에서 능력으로, 좌절에서 소망으로 변화된다. 

  모세의 능력의 비밀도, 하나님과의 거리에 있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그의 삶은, 강력하였다. 목회는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일이다. 작년보다 금년에, 지난달보다 이 달에 하나님을 가까이 가면, 성장하게 된다. 

  (약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찾지 말라. 술집에, 춤추는 곳에, 도박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겠는가? 주님이 일하실 만한 곳으로 가라.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라. 기도의 자리로 가라. 선교의 현장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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