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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먼저 ( 마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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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다. 특히 제자 훈련을 통해서도 우리가 가장 많이 암송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주님이 주시고저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구할 것을 구하며 살라고 도전하고 계신 것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참으로 구할 것이 많다. 불경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구하고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issue로 인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 말씀의 issue는 25-26절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주님은 우리 몸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먹고 마시며 무엇을 입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라고 하신다. 

물론 주님은 우리들이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들이 근심하고 염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천지와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산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염려하고 근심할 때에 우리는 제자답게 살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기에도 공중 나는 새를 먹이신다. 하물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성도들을 살리시지 않겠는가? 몰두하며 살지 말라. 오직 주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위해서 살라. 이것을 무엇보다고 먼저 구하라. 이것만이 참된 제자의 삶이다. 먼저 구할 그의 나라는 물론 하나님의 Kingdom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나라를 구하라는 뜻이다. 

가정에 하나님이 임하시고, 한 지역과 한 나라에 하나님이 왕으로 임하시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Kingdom이 되는 것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Kingdom이 임하시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과, 그 분을 나의 구세주와 인격적인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 분을 나의 삶의 왕으로 모시면 내 마음에 하나님의 Kingdom이 임하시는 것이다. 심령과 심령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각 예배하는 자리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신다. 주님의 이름을 높혀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그 자리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신다. 주님은 오늘도 이것을 위해서 먼저 우리의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하신다. 

주님의 나라와 함께 주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의’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밝혀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고 요구한다. 말씀의 의를 순종하고 따라 살아야 그 뜻이 우리 주위에 전파되고 하나님의 의가 펼쳐지게 된다. 

6장9-13절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제일 먼저 기도 할 것은 아버지의 이름과 그의 나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이름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동시에 우리 삶과 교회와 이 나라를 통해서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이것을 먼저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리고 이 때에 주님은 귀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 때에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주님이 개입하셔서 책임을 지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감동하시며 기뻐하여 그 삶을 채우시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염려와 근심이 있는 사람, 온갖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온통 요동치는 세상을 살 때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 때이다. 세상이 요동을 치면 칠수록 우리는 기본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하지만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근심과 염려가 많을 때에 더욱 그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때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셨다. 염려와 근심 속에 사로 잡히지 말고 더욱 더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약한 우리는 어려움에 사로 잡힐 수 있지만 그 때에 하나님의 일에 더욱 더 all-in 할 수 있어야 하며 주님이 그 어려움을 해결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붙잡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특권이며 힘이다. 

물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은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다. 다만 아버지에게 안겨 있는 아이의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물 속으로 들어갈 때는 오직 아이가 할 일이 있을 뿐이다. 더욱 아버지를 의지하고 그를 붙잡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control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control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오직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그 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근심, 걱정할 만한 일은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이때에 더욱 더 주님의 의와 그의 나라를 위해서 힘쓰자.

‘The joy of the Lord is my strength’ Joy와 happiness는 다른 말이다. Happiness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joy는 그렇지 않다. Joy는 상황과 상관없이 항상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 joy를 통해서 삶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체험할 수 있는 지를 알려주시려 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 교회가 먼저 추구하고 먼저 구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다. 

이민 2세 중에서 18세가 넘는 성인들은 약 50만 명 정도인데 그들이 교회에 다니는 비율은 5%도 안된다. 우리는 나름대로 다음 세대를 위해서 Slogan도 만들고 열심을 내었지만 우리는 어느 덧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1세들은 이미 약 30% 정도가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2세들이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교회를 다니며 믿음 생활을 하였지만 그들이 성인이 된 후에는 아무도 그들을 care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영적으로 양육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영적 양육과 직결된다. 우리는 그 일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우리의 기도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신6:4-5절을 보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은 구약의 대계명이며 모든 주의 백성들이 암송했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다. 이제 이 대계명과 연결되어 나오는 다음 말씀을 보자. 

신6:6-7절을 보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대계명을 먼저 마음에 새기고나서 너희 자녀들이 들어서 알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붙잡아야 할 대계명과 함께, 하나님은 이것이 우리의 대대후손을 통해서 흐르게 하기를 원하신다. 사시기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움 시대였다. 

삿2:7을 보자.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리고 삿2:10을 보자.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다음 세대를 향한 영적 impression이 없었던 것이다. 영적이 계승에서 그들은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에 하나님의 역사와 그 분의 영광은 끊어지고 흑암 속으로 추락했다. 

요엘서 2:28을 보자.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이며, 그 때에 삼 세대가 함께 역사를 일으킬 것일라고 하였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에 우리의 자녀들이 함께 그 자리에 동참할 것이다. 함께 역사할 것이며 결코 separate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기기를 원한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자신에게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아이들을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그 아이들에게서 천국시민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를 구하는 것은 이같이 자녀양육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리에게는 2,000여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이민교회와 미국교회를 이끌 수 있는 영적 인물을 키우고 있는가? 지금까지 그런 leader는 없었다. 신학교에는 1.5-2세 신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다. 목회 중인 1.5-2세 목회자들도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사역의 현장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일학교도 부흥하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은 하늘 나라의 그릇과 인재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교회는 훈련 받은 수많은 평신도를 배출했다. 사실 나는 헌신하는 순장, 순모들을 보면서 큰 inspiration을 느낀다. 그들과 함께 사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강점이며 장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에는 한계도 있다. 훈련을 받아서 순장, 순모로 성장하고 함께 사역하는 문화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훈련된 보화같은 주의 백성들이 다음 세대를 키우고 양육하는 일은 약한 것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약한가? 우리는 다음 세대를 향해서 all-in하거나 우선 순위를 두는 일에 약하다. 

내가 이 교회에 오기 전에 주님께 ‘주님 왜 접니까? 왜 제가 가야 합니까?’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제가 가서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하나님의 응답은 이것이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사역을 하라. 그래서 미국과 전 세계를 향한 선교를 펼쳐달라.’ 북미에는 엄청난 수의 한국 이민 교회가 있다. 이것이 다음 세대와 연결되어야 한다. 

겨자씨는 작지만 엄청난 숲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전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단순히 필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것을 안하면 교회로 인정을 받지 못해서도 아니다. 여러분,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들의 세대 없이 자녀들의 세대도 없다. 1세들이 없이 2세들도 있을 수 없다. 출애굽 당시에 아말렉 군사들과 전쟁을 할 때에, 싸우는 병사들은 1.5-2세들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의 승패는 기도하는 1세들에 의해서 좌우되었다. 우리 자녀들의 세대는 이런 일을 이룰 수 없다. 우리 1세들의 영성이 이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거룩한 손을 높이 들 때에 우리 자녀들의 무대가 만들어진다. 어렵고 힘들어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2세를 통해서 문제를 능가하게 하고, 하나님이 더 큰 기적과 더 큰 힘이 땅 위에 역사하게 하자. 이제 함께 나아와서 기도하며, 그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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