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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례] 이드로의 회심 (출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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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로의 회심 (출 18:1~12)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 25주일은 성례를 관해서 다룹니다. 성례는 거룩한 예식인데, 세례와 성찬을 가리킵니다. 일생에 한번 뿐인 세례를 받는 것은 큰 복이며 은혜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례를 은혜의 방편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예배 중에 찬양과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만, 성례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같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설교와 성례는 하나입니다. 설교가 복음을 듣는 것이라면, 성례는 복음을 보는 것입니다. 둘 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구원 사건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요지: "나는 말씀과 성찬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첫째로,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깨닫고 믿어야 성찬에 참여할 때 은혜가 됩니다. 

HC 제 25주일은 제 65-68문답으로 구성됩니다. 

65문.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이 믿음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답: 성령께서 거룩한 복음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 마음에 일으키며 성례를 통하여 확증합니다. 

66문. 성례는 무엇입니까? 성례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하고, 눈에 보이는 표와 인침입니다. 성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음의 약속을 우리에게 더욱 잘 선포하고 표증합니다. 즉 성례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 제물 때문에, 우리에게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주시는 것을 선포하고 표증하는 예식입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이 1563년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작성 될 무렵에 성례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찬식에 어떻게 임재하시는가를 두고 교회개혁가들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루터는 예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편재설에 기초해서 예수님의 몸이 떡 위에, 아래, 떡 안에 계신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빈은 성찬은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한다는 기념설을 주장했습니다. 카토릭은 성찬 시에 포도주와 떡이 실제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주장했습니다. HC는 기념설 즉 영적 임재설을 따릅니다. 

복음을 들으면 우리 마음에 믿음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롬 10:17). 올바른 복음을 듣고, 믿고, 실천하는 것은 천국의 열쇠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HC 83-95). 성령님은 복음으로 성도 안에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믿음을 자라나게 하시고 확립시키십니다. 

성례는 설교에 무언가를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없는 성례는 불가능합니다. 성례는 복음을 확신하도록 합니다. 성례는 설교에 확신이라는 도장 찍는 것입니다. 성례는 복음을 요약해서, 우리 마음에 확인 도장 찍는 것입니다. 성례를 통하여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셨다는 것과 나는 예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례를 받기 전에,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세례와 성찬이라는 2가지 성례만 시행하는 개신교와는 달리 천주교에서는 7가지 성례를 시행합니다. 1439년 7성례가 '피렌체 회의'에서 비준되었습니다: 세례, 성찬, 신품성사 (ordination), 고해성사 (penance), 견진성사 (confirmation), 혼인성사 (matrimony), 종부성사 (extreme unction). 주님이 직접 제정하신 세례 (마 28)와 성찬 (고전 11)은 일단 개신교회에도 있기 때문에 생략을 합시다. 
'신품성사'는 신부가 되는 예식을 가리킵니다. 
'혼인성사'는 결혼식입니다. 
'고해성사'는 신부에게 가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에 의하면 세례에 의해서 원죄가 사해집니다. 그리고 성찬식과 고해성사를 통해서 자범죄가 사해집니다. 
'견진'은 교구를 감독하는 주교 또는 주교로 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제가 성인 신자에게 거룩한 기름을 바르고 그에게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종부성사' 혹은 병자성사는 사람이 죽을 때에 신부가 눈과 코와 귀와 손과 발에 기름을 붓고 기도를 해주는 예식인데 이것은 일생토록 눈으로 지은 죄, 귀로 지은 죄, 입으로 지은 죄, 손, 발로 지은 죄를 용서하는 예식입니다. 

천주교에서 성찬식 때 빵 덩어리를 4등분하여 한 등분은 하나님께 희생으로 드리고, 다음의 한 등분은 하늘의 승리교회를 위하고, 세 번째 등분은 연옥에서 고통당하는 교회를 위하여 나누어 주고, 마지막 등분은 지상 전투교회용으로 사용하는데 그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신자에게 빵을 나눠주지만, 포도주는 신부만 마십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발생시키고 강화시킵니다 (벧전 2:2). 성도는 갓난 아기에서 시작하여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성도는 복음으로 자라납니다. 우리가 자라나고 있음을 성찬을 통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고전 12:13절은 한 분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했다면 성도의 교제와 위로는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고전 10:17절은 우리는 '한 떡'에 참예한다고 가르칩니다. 엡 4:3-6절은 우리는 '한 세례'에 참예함을 가르칩니다. 연인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 살고 있음을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고, 자라고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찬 시에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성찬 시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을 눈으로 보면서 확인하십시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는 성찬에 참여한 후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해야 합니다. 

67문. 말씀과 성례 이 두 가지가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근거로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전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복음을 통하여 가르치시고 성례를 통하여 확신시켜 줍니다. 

68문. 그리스도께서 신약 성경에서 몇 개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까? 세례와 성찬 두 가지입니다. 

본문 출 18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50일 지나 시내산 근처에 도착할 무렵을 배경으로 합니다 (출 18:5). 모세의 장인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옵니다. 블레셋, 에돔, 모압, 가나안 족속들은 출애굽 소식을 듣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출 15:14-16). 그러나 미디안 족속인 이드로는 출애굽 소식을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아마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이 소식을 아버지 이드로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모세가 장인에게 보내었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시내산으로 옵니다. 출 4:20절에 보면, 모세는 자기 가족을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데리고 오지만, 18:2절에서 가족이 모세에게로 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가족을 미디안으로 왜 그리고 언제 보냈습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애굽에 내려진 10재앙이 시작되어 바로가 그의 가족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미디안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혹은 칼빈이 말하듯이, 출애굽 직후에 십보라를 이드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도록 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찾아온 장인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큰 구원의 일인 출애굽을 설명합니다 (8절). 원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기에 이방인입니다. 그가 출애굽의 하나님을 발견하고는 "하나님이 모든 신 보다 더 위대하다"고 고백합니다 (11절).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방인 이드로는 신속히 깨닫고 믿게 됩니다. 이드로를 보니,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있습니다. 출 9:16절에 보면, 애굽에 재앙을 내림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온 땅에 널리 알리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이 말씀이 성취되어,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이드로가 번제물과 제물들을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져왔으며, 하나님 앞에 함께 떡 (lehem, 한글 개역에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12절). 이드로가 드린 번제물과 제물들은 매우 중요한데, 광야에서 드려진 첫 번째 희생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개종자가 하나님께 첫 번째 제사를 광야에서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드로, 모세, 아론, 장로들이 이드로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먹었던 떡은 무엇입니까? 이 떡은 광야에서 먹었던 주식이었던 만나일 것입니다 (칼빈). 이드로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먹이시는 증표인 '만나'를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만나를 통해서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로 삼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심으로써, 구원의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하나님께 찬양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이드로는 신약 사도행전의 하나님을 경외하던 이방인처럼 여호와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드로는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들어와서 제사장으로 섬깁니다. 무엇이 이드로를 변화시켰습니까? 출애굽의 복음입니다.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개종을 통해서 별과 모래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를 믿을 것이라는 열국의 아비라 불린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창 17:5-6).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던 사람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를 출애굽시키신 예수님의 복음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혈통과 민족의 구분에 상관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세례를 받아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만나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먹고 마십니다 (롬 11:11-24). 

어제 한국개혁신학회 갔다가 서울에서 목회하는 동기를 만났습니다. 동기가 섬기는 교회 주위에 순복음교회가 있는데 설립 7년 만에 7000명이 모이고, 그 교회에 이번 중에는 조용기목사가 와서 설교를 한다고 합니다. 고신에서 가르치는 것은 주로 다른 교파에 속한 사람들은 이점에 있어서 틀렸고, 저 점에 있어서도 틀렸고, 이런식으로 죄를 캐묻는 검사 역할만 신학교에서 배워서, 다른 교단보다 더 진취적이고 선구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복음의 능력을 세상 속에 발휘하는데 부족하다는 진단을 해 보았습니다. 납 보다 더 바른 성경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데, 왜 순복음보다 가시적인 열매가 적습니까? 과연 우리가 자랑하는 지식이 천국의 열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바른 지식과 교리를 가지고 바른 실천을 통해서 개인의 부흥과 교회의 부흥을 맛봅시다. 여러분이 복음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많이 들어 알고 있으며, 영양을 공급받고 있기에 이제 밖으로 나가서 뛰어다니며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만에 걸리지 않고, 더 건강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자라납시다. 성찬에서 구원의 은혜를 보고 확증합시다. 다음 주일에 성찬에 참여하여 영생의 만나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써 잔치를 벌입시다. 만약 여러분이 내일 저녁에 어느 근사한 뷔페 식당에서 식사 약속이 있다면, 왠지 기분 좋고, 평소에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기대감으로 설래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베푸시는 만찬에 참여할 때는 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성찬에서 먹고 마신 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신 위에 더 뛰어나신 하나님, 유일한 구세주께서 주신 생명과 은혜를 증거하여 다들을 식탁에 초대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성찬은 동삼동, 영도, 부산 시민 전체가 먹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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