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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와 찬양의 위력 (시 1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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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찬양의 위력 (시 100:4∼5)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편 4∼5절)

원망·불평·탄식이 가득한 이 세상
감사와 찬양 통해 예수님 바라보면
행복 가득한 플러스 인생 살 수 있어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울때 쯤 되면 어머니가 꼭 가르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을 가르치고 그 다음에는 ‘고마워요. 감사해요’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어느 민족에 가도 똑같이 엄마가 어린아이에 가르치는 처음 언어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고통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언어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엄마, 아빠 밖에는 부를데가 없지 않습니까? 사회생활에 나와서 인간관계와 자기 개인의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도 항상 고맙습니다. 감사하는 말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 근원적인 언어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1. 감사와 찬양과 나의 삶의 관계

 감사와 찬양이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와 찬양을 하려고 하니 힘이 듭니다. 설교를 들을 때는 ‘오늘부터 감사하고 찬양하고 살아야지’ 그러다가 버스타면 다 잊어 버립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이냐.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되는 것이 왜 이러지’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우리에게 부패한 습성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니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영화롭게 생각하거나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부패한 심정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부패한 심정은 미움, 분노, 시기, 비판, 원망, 부정적인 태도는 쉽게 취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안가르쳐 줘도 미움을 갖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비판하고 원망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성품의 자연적인 발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바탕에 불안, 행복, 평안, 기쁨 등은 거리가 멉니다. 평안을 갖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갖겠다고 하면서도 마음엔 미움과 분노와 시기와 비판, 원망,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과 기쁨이란 날개를 치고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좋은 환경이나 지위나 명예 등 외부적인 조건이 행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물질이 주는 만족을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비유했습니다. 물질적인 기쁨이란, 처음에는 아주 맛있지만 점점 녹아서 별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다는 것입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조금 떨어진 남태평양에 외딴 섬나라가 있습니다. ‘바누아투’ 공화국입니다. 이 나라는 인구 19만 명에 문맹률이 85%나 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달러도 되지 못합니다.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신경제학재단(NEF)이 2006년에 발표한 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세계 178개국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나라가 바로 이 바누아투 공화국으로써 행복지수 1등을 거두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나 미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호주나 이런 나라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환경이 좋으니까 행복지수가 높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가장 비난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바누아투 공화국이 행복지수 1위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물질이나 좋은 환경, 지위나 명예 등 외부적인 조건이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되 마음의 바탕이 변화되면 우리가 행복을 수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환경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바탕이 변화된 것입니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학교 심리학과 로버트 에먼스 교수와 마이애미대학교 심리학과 마이클 매컬로프 교수는 공동과제로써 연구를 해서 감사와 심리적 변화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들이 감사하고 찬송하며 웃고 지내면 삶에 대하여 더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게 아니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그러면 내가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화됩니다. 늘 마음이 우울하던 사람이 즐거워 하게 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고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일하게 되었으며 결단력이 강해졌고, 유머 감각이 생겨났고, 힘든 일을 처리하는데 자신감이 생겨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어릴 때부터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살해당해 고아로 자랐습니다. 청년 시절에 혁명당 활동을 하다가 러시아 황제에게 잡혀서 사형 선고를 받고 시베리아로 유배가서 말로 다할수 없는 고통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해방되고 나온 다음 결혼했는데 얼마있지 아니하여 아내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천신만고를 겪고 재혼을 하여 첫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병들어 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자신도 간질병에 걸려 평생을 고통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질병을 ‘거룩한 병’이라 불렀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일에 감사했습니다. 감사를 안하고는 정신적으로 견딜수가 없었기 때문에 감사를 통해서 그 신앙이 더 굳어지고 깊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속에서 적은 책들이 오늘 역사에 남아 있는 불후의 명작들이 되어 오늘날도 온 세계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이 그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한 것이 오히려 고통을 좋은 기회로 삼아서 승리의 발판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솔제니친은 시베리아 정치 수용소에서 11년의 고통 가운데 암이 걸려서 죽음에 이르자 예수님을 믿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는 출옥한 후에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하는 소설인 ‘수용소 군도’를 써서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속에서 솔제니친은 “감방이여 고맙소”라고 고백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시베리아 감방에서 11년 동안 갖혀 있지 않았으면 결코 수용소 군도라는 책을 짓지 않았을 것이요. 그 다음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했을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역경이 오히려 축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를 믿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을 가졌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감사와 찬양과 이웃과의 관계

 감사와 찬양은 우리 이웃과의 관계를 참으로 좋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웃에 감사하면 이웃의 자존심을 높여 주며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웃을 보고 비난하고 욕하면 이웃을 짓밟고,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주고 원수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에 감사하고 이웃이 한일을 찬양하면 이웃에게 자존심이 생기고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 삶에 기름을 치는 것입니다. 이웃과 선한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소문이 들리기를 “그 사람이 자네를 칭찬 하더라” 벌써 마음속에 선한 감정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들으니까 그 사람 뒤에 돌아다니면서 자네에게 나쁜 욕을 하고 손가락질 하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감정이 악화되고 미운 생각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2절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이 행복하고 감동을 받게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도움을 받았으나 감사편지를 안썼으니까 이제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적을 때에 길러 주시고 먹여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대학까지 들어오게 해주시니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다 열심히 편지를 써서 우편으로 자기 부모에게 붙였습니다. 부모들이 이 편지를 받고 난 다음에 얼마나 마음에 감격하고 감사했는지 학교 당국에 감사하다고 편지를 쓰고 전화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부모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하고 난 다음 그를 읽어본 부모님들이 큰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모는 자녀들과 관계가 좋아지고 학교와의 관계도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사랑을 받아도 꼭 감사편지를 해야 되는데 이 감사편지를 하는 것을 등한시 하는 사람이 우리 한국 사람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제가 외국에 가서 집회하고 돌아오면 꼭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오는데 국내 교회는 집회하고 가도 고맙다는 편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외국에 가서 집회하고 오면 꼭 감사하다고 은혜받았다고 편지를 해오는 그러한 분은 제 기억에 꼭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집회를 하고도 고맙다는 편지도 않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인터넷 이메일이라도 오지 아니하면 그 사람을 잊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 감사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8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칭찬받고 사람을 칭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서로 도와줄 마음이 생기고 경계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데 갚아 주고 도와주고 돌보아주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에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서로 감사하고 칭찬하면 좋은 친구가 되고, 헐뜯고 흉보면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야훼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원수와 더불어 화목하게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칭찬하고 이웃에 감사해야 화목하게 되고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감사와 찬송의 생활을 하면 내게 유익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나라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궁전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궁전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하나님 궁전에 감히 우리가 들어갈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까? 그런데 감사와 찬양은 하늘나라의 문이 열리고 하늘나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로 5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의 문에 들어가고 찬송하면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특별히 다른 곳이 아닌 내 사무실에서 내 부엌에서 내 안방에서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서 감사하고 찬미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 궁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간구하면 그 간구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중에 거하십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찬송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게 하는 향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합니다. 이 우주에서 하나님 보다 높으신 이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영화로우신 분도 없습니다. 영화의 극치를 가지고 계시며 지극히 거룩하고 높으신 분이 더 높아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더 높일수 있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존귀를 받고 영화로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최고로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더 높이고 더 영화롭게 하는 길이 감사와 찬양의 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더이상 높일수가 없고 더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하면 하나님이 정말로 더 높아진 마음에 고요함을 가지고 더 영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로 26절에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한밤중에 차꼬에 묶인채 온몸은 맞아 상처를 입어 아프고 빈대, 벼룩이 들끓는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부르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감동을 하시고 영화로움을 느끼셨던지 빌립보 옥토를 흔들어 버렸습니다. 거대한 진동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려 버리고 차꼬가 다 끌려져 버리고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이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불행과 우울증과 고통으로 묶어 놓지만 감사와 찬양은 자유와 해방을 가져오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은 굉장히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은 입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옛날에 여우잡으러 가면 여우굴에다 생나무를 꺾어다가 불을 지피면 여우가 연기 때문에 코가 아파서 견딜수가 없어서 튀어 나오면 몽둥이로 때려 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연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달콤한 향기가 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향기를 흠향하시고 기뻐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M. J. 라이언은 ‘감사’라는 책에서 인생을 변화시키는 감사의 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치며, 언제나 생기가 있고, 우울증이 치유된다. 감사하면 건강해지고, 걱정 근심이 없어지며,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고통과 분노가 사라지며,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되고,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며, 무엇이든 나누어 주고 싶어진다. 감사하면 모든 생명체와 교감이 있으며, 평범한 일상도 은총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격언에는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템플턴 상으로 유명한 존 템플턴은 그의 책 ‘열정’에서 감사의 생활을 실천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첫째, 감사할 대상을 찾아 칭찬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 둘째, 우리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라. 셋째,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도전 과제에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내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고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며 이웃과 함께 협력하며 잘 살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삶은 감사와 찬양을 하는 삶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삶은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 자신에게도 플러스가 되고 이웃과의 관계에도 플러스가 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는 더욱 큰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힘써 해야 되겠는데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성령은 감사와 찬양을 하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환경에 처해 보십시오. 내 위치에 처해 보십시오. 내가 어떻게 감사 찬양할 처지가 됩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처지가 안되니까 더욱 감사하고 찬양해서 그런 처지가 되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들에게 좋은 선물을 가져오지만 원망과 불평은 우리들에게 수렁을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원망과 불평과 탄식 소리가 천지를 진동합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불평과 원망과 탄식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관계, 부부관계, 사회 노사관계, 정부 모든 일에 감사 캠페인이 일어나서 작은 일에 감사하면 더 큰 일에 감사 할 수 있는 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감사할 것이 없으면 감사할 것을 만들어서라도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감사할 것을 과거나 현재에서 발견하여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작은 감사가 점점 30배, 60배, 100배로 커져서 큰 기쁨과 행복의 샘물이 터지게 할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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