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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삽의 시 (시 7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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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삽의 시 (시 73편)


Ⅰ. 성가대장인 아삽도 시험에 들었습니다. 


<2절에> 시편 73 장은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현대교회로 비유해보면 성가대장의 직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시험이 닥쳤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면 큰 일 납니다. 바지도 찢어지고, 무릎도 깨집니다. 이것이 실족입니다. 실족하는 것은 위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14절에> 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열심을 다해서 봉사를 했는데 괴로움을 당합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괴로움을 당하는데, 주위를 보니 믿지 않는 자들이 더 잘됩니다. 자녀도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더 받습니다. 


Ⅱ. 아삽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3절에> 악인이 어째서 형통하느냐는 것입니다.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잘 삽니다. <6절에>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9절에> 입술로 하나님을 욕하고, 예수믿는 사람을 욕합니다. 하나님 섬겨서 잘된 것이 무엇이며, 예수님을 믿어서 잘된 것이 무엇이냐?고 비웃습니다. <10절에> 주의 백성들이 답답하여 잔의 물을 마십니다. <11-12절에>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시겠냐?” 합니다. <13절에> 아삽도 악인들을 보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열심히 살고자 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뭐냐며 불평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어마어마한 위기입니다. <15절에>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었는지, 자기의 처지를 보니, 자기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이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Ⅲ. 아삽이 시험을 극복했습니다. 


 <17절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합니다.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아삽은 성소에 들어가 떡도 갈아넣고, 향도 갈아 피우고.... 할 때에 회복했습니다. 성도들이 성소를 떠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실족할 뻔 하게 됩니다. 저는 성도들이 은혜 받을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주의 백성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배 가운데 있어야만 합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예배의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예배시간을 통해서 받는 은혜가 성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예배 드릴 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은혜 받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예배생활입니다. <아삽이> 하나님께 불평했던 것에 대해, 성소에서 깨달은 것 세 가지입니다.


1. “세상에서 왜 악인이 잘 됩니까?” 

첫째는 하나님 어째서 악인이 잘됩니까?입니다. 악인이 잘되고, 출세하고, 잘먹고, 잘사는 것 같지만 <18-19절에>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는 말씀처럼 그들의 길은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라도 결국 미끄러운 곳이며, 파멸에 떨어지는 곳입니다. 그들의 삶이 잘되고, 기름진 것처럼 보이지만 길어야 70-80년입니다. 그 후에는 미끄러지고, 파멸에 떨어집니다. 반면 우리의 삶은 마치 시궁창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이 잠깐 지나면 영원히 감사하며 살수 있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18-19절은> 악인의 결국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은 의인의 수고를 잊으셨습니까?” 

둘째는 하나님 어째서 의인의 수고를 몰라주십니까?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20절에>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입니다. 하나님이 주무시고 계신 것 같지만, 믿는 자가 한 모든 수고는 하나님께서 결국 다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갚아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잊어버리거나, 모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 시간을 드리면 한 시간 만큼 기억하시고, 진심으로 헌금을 드리면 그 진심으로 드리는 헌금만큼 기억하시고, 감사함으로 찬송 한 곡을 부르면 그 한 곡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주실 날이 있음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수고를 아시는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3. “내가 뭔가 보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셋째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입니다. 아삽이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한 것만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 정도하면 하나님도 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마음에 서운했는데,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나서 <21-22절에>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합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해 영생을 주셨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도 부족해서 날마다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까? 평생 고생해도 기껏해야 백년입니다. 영원한 삶이 있는데, 너무 안달하지 마십시오. “내가 누구관대” 구원받기 전의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런 대접을 하나님께 받고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하나님의 자녀 되었고, 중국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가 있고, 가족이 있고, 생업이 있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거저 은혜로 주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불평하면 안됩니다. 회개하십시오. 


Ⅳ. 아삽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3-24절에> 아삽이 “실족할 뻔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제가 하나님의 오른손을 붙잡고 갑니다.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드십니다. 아삽이 그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자는 롬8:39절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24절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아삽을 평생 동안 붙드십니다.

이 땅의 삶을 마치는 그 순간을 향해! 성도의 삶은, 비록 오늘 힘들다 해도 결국은 영광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25-26절에> 이것은 연애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이 감동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는 반석 위에 선 자입니다. 영원한 분깃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감격의 눈물을 뿌리는 것입니다. <27-28절에> 주를 떠난 자는 음녀로 비유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음녀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아름다운 찬양을 합니다. 


성도여러분의 삶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습니까? 그 모든 괴로움과 어려움을 아삽도 경험했습니다.불평과 원망의 시험에 들었다가 회개와 감사와 찬양으로 회복했습니다. 고통을 통하여 아삽이 내린 결론은 하나님은 선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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