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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2) (엡 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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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2)  (엡 6:10-17)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부터 현대까지 지구촌에는 전쟁이 없었던 때가 거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이후에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해서 광야로 이끌고 나가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부족 간의 전쟁, 국가 간의 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인류에게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무역전쟁, 문화전쟁, 교통전쟁, 입시전쟁, 부패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더위와의 전쟁, 추위와의 전쟁, 졸음과의 전쟁 등 모든 갈등과 고통의 상황 뒤에 전쟁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그렇게 호전적이고, 투쟁적이 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신앙생활이 영적인 전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인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적과 맞서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의 대상인 마귀는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존재는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의 싸움이니 대부분의 성도들은 마귀와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마귀는 아주 교묘하고, 집요하게 계획을 세워 어느 순간에는 우리로 하여금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움을 주며 공격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쳐 놓은 유혹의 손길에 걸려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전쟁은 힘들고 어려운 싸움입니다.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10절에서 첫 단어가 ‘끝으로’라는 단어입니다. 개역본에서는 ‘종말로’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6장 본문 전까지의 말씀을 통해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데 그 예수님을 중심으로 교회는 화평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가정에서 부부가, 부모와 자녀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교회를 화평으로 하나가 되게 만들고 싶어 하고, 가정에서 부부가 사랑하며, 부모와 자녀가 하나가 되고, 직장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덕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 해도 악한 마귀 세력이 그것을 방해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10절의 말씀을 보면 마귀가 어떤 존재인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큰 용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탄의 특징은 ‘하늘에서 쫓겨난 자’입니다. 그는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그는 ‘참소하는 자’입니다. 그는 참소하는 방법으로 천하를 꾀어 혼란과 분열을 만들어 냅니다. 마귀, 사탄이라는 말은 ‘갈라놓는다’ ‘이간질 시킨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거짓과 교묘한 말을 통해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본업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파괴한 것도 사단의 역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는 살인도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사단은 분열과 다툼을 원합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곳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성도와 성도를 갈라놓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를 갈라놓습니다. 교회와 성도를 갈라놓습니다. 이러한 마귀의 존재와 활동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삶의 자리가 마귀의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끝으로’라고 말하며 믿음의 사람들의 평화를 깨고자 하는 마귀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마귀와 대적하여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과 지혜를 마귀와 비교하면 우리는 마귀 앞에서 정말 메뚜기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 대적이 될 수 없습니다. 감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막강한 능력을 가진 마귀와 대적하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무장할 수 있을 때 마귀와 대적해 싸울 수 있습니다. 
 
질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몸에는 하루에 3000개에서 4500개 정도의 암 세포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몸은 항상 병균과 전쟁을 하는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우리 몸에 면역력이 강하면 아무리 많은 암 세포들이 만들어지고 공격을 해도 넉넉히 이겨냅니다. 그러나 면역럭이 약해지면 암 세포들의 공격에 지게 되고 암 세포가 자리를 잡고 자라서 암이 발병하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병균이 공격해 와도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하면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활 속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에게 면역체가 왕성하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악한 마귀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틈을 탈 수가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신앙의 부담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게 살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이겨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영적인 면역성이 떨어짐으로 마귀의 온갖 유혹에 바람에 요동치는 갈대와 같은 모습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도리어 마귀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부터 멀어지도록 온갖 유혹을 할 때 기도하는 가운데 승리할 수 있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영적인 면역성이 강해져서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넉넉히 이기는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귀와의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갖추어야 할 두 번째의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할 때 군사들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을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갑옷이 아닙니다. 아마 세상의 갑옷이라면 돈, 명예, 권력, 지식, 배경 등을 말할 것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그것들은 도리어 공격과 유혹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려면 세상의 갑옷이 아닌 하나님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여섯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말하면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입니다. 가슴에는 의의 흉패입니다. 허리에는 진리의 띠입니다.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다른 한 손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발에는 복음의 신발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음으로 마귀의 공격을 잘 방어하고 방어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검 즉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해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여섯 가지 가운데 구원의 투구에 대해서 말씀을 간단하게 드리고자 합니다. 전쟁에 나갈 때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머리는 모든 신체를 움직이는 명령체입니다. 머리가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으면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심은 예수님이 구주가 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고백으로 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투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신앙의 확고한 고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고백이 없으면 마귀의 간교한 공격과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무엇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머리에 온통 재물로 가득 차 있다면 그의 삶을 이끄는 주인은 돈이 됩니다. 명예가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의 삶의 주인은 명예입니다. 머리가 쾌락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쾌락 종이 된 삶을 삽니다. 모든 생각이 건강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도리의 그는 건강의 노이로제에 걸려 건강의 노예가 됩니다.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실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확신을 하지 못하면 마귀는 그 틈새를 헤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고 앉습니다. 그는 온갖 의심을 하게 합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게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쌓이게 합니다. 

그 마귀가 우리의 삶에 헤집고 들어올 수 없게 하려면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신앙고백과 함께 믿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가운데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신 의미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싸움에서 항상 후퇴하고 비굴해져 사단의 웃음거리가 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탄식하게 하십니다.   우리들이 한 주간 동안 살아갈 때 마귀는 우리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것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위협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게 할 것입니다. 

그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기 되심을 고백하는 구원의 투구를 단단히 매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달콤하고, 아름답고, 즐겁게 보이는 것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 안에서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일어서며 구원의 투구를 단단히 매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순간적으로 우리의 감정을 어떨 때는 슬픔으로, 어떨 때는 분노로 흔들어 놓으며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사모하며 구원의 투구를 단단히 매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도 성도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마귀의 놀이터가 아닌 성령의 놀이터가 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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