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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이란 무엇인가? (요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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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이란 무엇인가? (요 17:1-3)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5)


대제사장의 기도문

요한복음 17장을 가리켜서 흔히 “대 제사장의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기도의 내용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기도입니다. 내용은 대충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1-5)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6-19) 셋째는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20-26)
  
기도 내용은 주기도문과 유사한 점들이 많습니다. 하늘 아버지(1,5,11,21,24,25), 하나님 이름(6,11,12,26), 하나님 나라(1,5), 하나님 뜻(4,5), 시험에 들지 않게(12),

악에서 구원(15) 등등. 그러나 주기도문과는 사뭇 다른 특징도 있습니다. 첫째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 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 사이의 내적인 교통입니다. 둘째로, 이 기도는 죄인이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거룩하고 의로운 아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죄의 고백이 없습니다. 셋째로, 이 기도는 무엇을 달라는 간구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약속에 근거하여 드리는 부탁입니다.  
  
그러면 먼저 주님은 대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빌었을까요? 주님은 자신이 창세전에 가졌던 영광을 회복해 달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5)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초라한 모습입니다. 왕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되신 것만도 낮아진 것인데 마구간에 나셨으니 얼마나 낮아지신 것입니까? 

예수님의 33년 6개월의 지상의 삶은 낮아짐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절에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약속한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아버지와의 약속에 따른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것도 약속에 따른 것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도 아버지와의 약속에 따른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님께나 아버지께나 영광의 시작입니다.
  
십자가가 왜 영광이 될까요? 그 십자가로 사람들을 영생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2)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물의 지배권을 주셨습니다. 그 지배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살리는 권세입니다. 아버지는 그 영생을 받을 자들을 아들에게 지정해 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지정해 주신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영생을 이루게 하셨으니 영광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아들의 최고 영광이며, 그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영생은 하늘과 지상의 공통적인 관심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영생을 얻음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가장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하나님게 영광이 아닙니다. 돈 버는 것이 영광이 아닙니다. 유명해지는 것이 영광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영생을 얻는 것이 주님께나 성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이 영생을 어떻게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면 됩니다. 예수 믿으세요! 영생 얻으세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요!  


생명이란 무엇인가?

오늘 읽은 요한복음 17장 첫 부분의 주제는 영생입니다. 영생은 요한복음 전체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생명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생물학적으로는 다양한 정의가 있습니다. 엥겔스는 “생명이란 단백질의 존재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식과 번식을 생명으로 규정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를 제어하는 능력을 생명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특징은 세포 조직의 상호 연결과 대사 작용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세포 조직, 혹은 상호간에 물질대사 에너지대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엥겔스가 생명을 단백질의 존재 양식이라고 한 것은 단백질이 생체 구성과 대사물질로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단백질은 영어로 프로테인이라고 하는데, 헬라어의 프로테오스란 말에서 왔습니다.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인체는 거대한 화학공장입니다. 단백질은 모든 세포원형질의 주성분이며, 세포내의 모든 생명 현상에 직접 관계합니다. 단백질은 핵산과 함께 생물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입니다. 단백질이 구성하는 효소는 약2200종이나 알려져 있습니다. 

효소란 대사 작용에 있어서 어떤 특정 화학반응만을 촉매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혈액 운반 작용, 호르몬 작용, 구조, 저장, 보호 등등. 단백질의 화학적 성분을 보면 단순합니다. 탄소 50-55%, 수소 6.9-7.3%, 질소 15-16%, 산소 19-24%, 황 1-2%, 약간의 회분 등입니다. 이런 원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각종의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육체의 생명 작용입니다.  
  
생명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미생물 학자였던 L. 파스퇴르는 1862년에 모든 생물은 어버이 없이는 탄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생명체는 반드시 어떤 모체에서 발생합니다. 저절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의 모체는 어떤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생명의 시조가 나타난 시작점이 어디일까? 생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바로 자연 발생설입니다. 생명의 시조는 행성이 존재하고 나서 어느 시점에 우연히 생겨났다! 그리고 그 시조로부터 후손들은 유전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아주 다른 정보를 알려줍니다. 성경은 자연발생설을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생명은 유물론적인 생물학자들과는 두 가지 점에서 아주 다릅니다.  
  
첫째로, 생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물질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1:1) 

하늘도 땅도, 해 달 별도, 동식물도, 인간도 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육지와 바다, 사 계절의 운행, 생태계와 증식과 번식도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결과들입니다. 창세기 일장에는 모든 생명체들이 그 種類대로 증식과 번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각각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대를 이어갑니다. 

그러므로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들은 창조 때나 지금이나 본연의 모습에서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연발생설을 믿든지, 창조론을 믿든지 자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해도 사실(fact)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하나님의 창조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은 180도 달라집니다.  
  
둘째로, 인간 영혼의 생명입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판이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입니다. 인간의 창조 과정은 다른 생명체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먼저 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창조하셨습니다.(창2:7) 그 다음에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창조하셨습니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창1:26-27)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적 생명과 영혼의 생명, 두 가지 생명이 존재합니다. 육체는 다른 생물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압니다. 정의와 불의, 깨끗함과 추함을 구별하는 도덕적 감각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경배하는 종교적 성향이 있습니다. 성경을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물질적 작용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가령 컴퓨터가 제아무리 발전한들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자동 제어가 아무리 잘 된 기계라고 해도 기계가 도덕심을 가진다거나 영원을 사모하겠습니까? 물질은 어디까지나 물질이요 영혼은 어디까지나 영혼입니다. 영적 작용을 물질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과 상관없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육체의 생명보다 영혼의 생명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생명은 귀중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은 다른 생명과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혼의 가치는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육체의 생명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생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의 생명 그리고 영생

본문에서 주님은 ‘생명’이라는 말 대신에 ‘영생’이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생명은 본성적으로 영원합니다. 인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소멸되지 않습니다.(immortality) 비록 육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존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은 본래적으로 영생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생의 의미는 그런 의미에서의 영생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생은 바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상호 교류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면 영생이고, 하나님과 끊어져 살면 제아무리 죽지 않고 살아도 사망입니다. 주님은 12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육체의 죽음과 영적 죽음은 별개입니다. 영적 죽음이란 바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지옥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혼의 생명을 더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영생의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3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3)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메시야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다는 것은 성경 지식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본문에서 안다(ginwvskw)는 말은 인격적인 교제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부부 간의 성 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눅1:34) 서로 깊은 교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 혼자만 아는 게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겁니다. 내 양은 나를 알고, 나도 내 양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주고받고, 기도하고 응답받고, 생명이 오고가고, 지혜, 지식, 도덕적 능력, 악의 영을 지배하는 권세가 오고갑니다. 앞서서 육체의 생명을 설명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대사 작용으로 요약됩니다. 세포 상호간의 교류가 기본입니다. 

원소들을 나열했다고 생명체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반응이 일어나고 상호작용을 해야 합니다. 서로 교류하지 않는 세포는 죽은 세포입니다. 영혼의 생명, 영생도 마찬가집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의 연결이요 그리스도와의 연결입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상호 작용을 할 때,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을 원하나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으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접하세요. 그러면 주님과의 연결 속에서 영혼의 생명 작용이 시작됩니다.  
  
영생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교제합니다. 영어에 “lif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생활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생명의 목적은 살아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나 영혼의 생명은 다 같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생활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사용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하는 자가 되어야지 단순한 ‘존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생물학적 생존자가 아니라 영적인 생존자가 되어야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면 살아 있다고 합니다. 먹고 마시고 소화 잘 되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증식과 번식이 잘 되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자식 낳고 가족 늘어나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자동 제어가 잘 되면 살아 있는 겁니다. 신체가 건강하여 제대로 움직여 주면 살아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생물학적 생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끊어져 있으면 영적 사망자입니다. 주님과 끊어져 있으면 죽은 자입니다.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합니다. 능력 있고 수완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도덕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지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영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끊어져 있다면 영적 사망자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살아남는 생물학적 생존자들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영생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가

생명은 소중합니다. 영생은 더 소중합니다. 영생을 누리세요. 영생을 누리는 사람은 두 가지 삶의 원칙이 잇습니다.  
  
첫째로, 육체의 생명보다 영혼의 생명을 귀중히 여깁니다. 육신의 생명은 지상에서 유한합니다. 문헌상으로 명확히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미국 뉴욕주 출신 델라이나 필킨스 부인입니다. 그는 1815년 5월 4일 출생하여, 1928년 12월4일 사망했습니다. 113년 214일 동안 생존했습니다. 그는 평생 안경을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얼마나 건강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의 몸은 지금 무덤 속에 있습니다. 육체는 지상에서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를 따라 살면 불행하되, 영혼을 따라 살면 행복합니다. 영혼의 욕구를 채우면 만족하되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면 만족이 없습니다. 육체가 추구하는 것은 죄악이로되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생명을 위주로 살 것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을 위주로 살아야합니다. 육체적 생존자가 아니라 영혼의 생존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영생은 하나님과의 연결입니다. 생명의 특징은 세포의 상호 연결과 대사 작용입니다. 영혼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죽은 영혼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우리는 단순히 죽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영적 능력을 공급받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삶은 지옥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고독사가 많습니다. 고독사란 혼자 죽음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매년 최소 500명에서 1000명의 사람들이 고독사를 당합니다. 고독사 위험군에 속한 사람만 대략 50만 명이나 됩니다. 살아 생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끊어지고 단절된 삶이 문제입니다. 2010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414만 2165 가구입니다. 점점 가족공동체에서 격리된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삶,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져 있으면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영적 능력, 도덕적 능력, 성결의 능력, 미적 감각, 사랑과 자비심, 영원을 보는 눈.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능력들을 하나님과 교제 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영적 능력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제대로 작동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영생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단순 생존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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