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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 (창 4: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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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 (창 4:19-26)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제사는 안 받고 아벨 제사만 받으시자 아벨을 시기해서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아 밭을 갈아도 땅이 제대로 수확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땅은 아담이 범죄했을 때 저주받고 가인이 범죄했을 때 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방랑자(vagabond)가 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와 독일어, 불어도 다 똑같습니다. 저는 프랑스의 샹송보다는 이탈리아의 칸초네를 더 좋아합니다. 칸초네 가수 중에서 니꼴라 디 바리(Nicola Di Bari)라는 유명한 가수가 있는데 ‘Vagabondo’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우리나라의 박인희라는 여자가수가 ‘방랑자’라고 번역해서 불렀습니다. 제가 가사를 잠깐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림자 벗을 삼아 걷는 길은 서산에 해가 지면 멈추지만 마음의 님을 따라 가고 있는 나의 길은 꿈으로 이어진 영원한 길 방랑자여 방랑자여’ 왜 이런 노래를 사람들이 공감하느냐? 우리가 방랑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인생을 방랑자처럼 살아갑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살인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리대로 하면 사형을 당해야 됩니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 9:6). 살인자는 사람을 향해서 범죄하는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는 그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서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을 시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판사들도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왜 죽지 않았느냐? 

창세기 4장에는 아직까지 국가의 사법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사사롭게 가인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무리 범죄를 했더라도 개인이 사사롭게 형을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형의 집행은 국가 사법기관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무슨 표를 어떻게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벨이 죽고 가인은 혼자 남았을 것인데 누가 자신을 죽일까봐 걱정했을까?’ 

창세기 5장 3절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셋을 낳을 때 130세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 사건이 있기 전에도 아담과 하와는 부지런히 자식을 낳았을 가능성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60년을 살아도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으니까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낳았겠습니까? 성경은 중요한 인물 위주로 기록하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 이후에도 얼마든지 다른 자녀를 낳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방랑자가 되어 살면서도 계속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다 불경건하고 세속적인 계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인의 계보와는 다른 계보를 허락하셨습니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5~26). 

셋의 계보는 경건한 후손들을 이어나갔습니다. 창세기 5장 24절에 나오는 에녹도 역시 셋의 후손입니다. 에녹은 365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곧바로 하늘로 올라간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역시 셋의 후손입니다. 

셋의 계보로부터 에녹, 노아, 다윗,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계보는 불경건하고 세속적인 계보였고 셋의 계보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실 경건한 계보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두 가지 계보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가인의 계보 아니면 셋의 계보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계보에 속해 계십니까? 

Ⅰ.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의 삶 

첫째,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은 혼인제도를 부패시켰습니다. 라멕은 가인까지 포함해서 가인의 6대손입니다. 라멕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아내 둘을 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중혼제도를 처음 실시하여 결혼제도를 부패시킨 것입니다. 라멕은 왜 아내를 둘씩이나 취했느냐? 그 이유는 정욕과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를 볼 때 자식을 낳는 도구로 생각하고 공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목적으로 결혼한 것입니다. 한 여자가 낳으면 10명 낳을 것을 두 여자가 낳으면 20명 낳을 것 아니냐며 자식을 두 배로 얻기 위해서 아내 둘을 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2장 20~25절에서 하나님이 혼인제도를 정하실 때 일부일처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만나 한 몸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는 서로 이용해먹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 관계로 한 결혼은 파탄이 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상호 협력해야하는 관계입니다. 동반자이고 협력자인 것입니다. 

남자는 자녀가 100명이라면 사랑을 1%씩 주는 것이 아니라 100%씩 100명에게 모두 줍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내가 2명이면 2명 모두에게 100%씩 가는 것이 아닙니다. 50%씩 나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100%씩 다 가는데 왜 아내한테는 사랑이 나뉘느냐?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의 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우리 각자를 인구수대로 나눠서 사랑하시느냐? 그러지 않으시고 우리 각자를 100% 사랑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중혼을 절대 금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구약성경을 보면 경건한 사람들이 불경건한 사람들을 따라 악을 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권하여 여종 하갈을 취했고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 때문에 지금도 중동지방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야곱은 아내가 넷이었고 다윗은 아내 일곱과 첩 셋을 거느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후궁이 칠백명에 첩 삼백명 도합 천명을 거느렸습니다. 

만약 교인이 천명이라면 이름만 외우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천명이면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겠습니까? 이처럼 중혼제도는 언제나 질투와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와 여종 하갈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서 집안에 문제가 생겼고 야곱도 아내들끼리 서로 질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사무엘의 아버지인 엘가나가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여자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을 잘 낳고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자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혔고 한나가 기도하여 하나님이 사무엘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경건한 사람들도 가인의 계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따라서 중혼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과 어긋나는 일반적인 관습을 따라서 중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남들이 다 한다고 해도 성경과 어긋나는 관습은 따르지 말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의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이 머리가 좋아서 갖가지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라멕에게는 아다와 씰라 두 아내가 있었는데 아다는 두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야발과 유발이었습니다. 야발은 장막에 거하며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목축업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한 곳에서 건물을 지어놓고 육축을 치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장막에 거했느냐? 그 이유는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서 풀이 충분히 나지 않기 때문에 풀을 다 먹고 나면 다른 곳을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집을 짓고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발의 아우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음악인과 예술인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라멕의 첫째 아내 아다에게서 난 야발과 유발이 각각 목축업과 음악인의 선조가 되었고 라멕의 둘째 아내 씰라가 낳은 두발가인은 기계공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동철로 각종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창조성(ingenuity)이 있습니다. 경건성(piety)은 없어도 창조성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은혜(Common Grace)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도록 하시는 것은 특별은혜인데 가인의 후손들은 특별은혜는 못 받아도 일반은혜는 받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불신자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같이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아프면 불신자 의사한테 가서 진료를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배고프면 불신자가 운영하는 음식점에도 가서 먹어야 됩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이 만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그린 그림을 볼 수도 있는 것이고 학교에 가서 불신자 선생님에게 배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두에게 일반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일반은혜를 주셨지만 가인의 후손들은 이것을 악용되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 4:23~24). 

이것은 라멕이 부른 노래입니다. 성경에서 인류 최초로 나온 노래인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면 소년이 자신을 때렸기 때문에 그 소년을 자신의 아들 두발가인이 만든 날카로운 기계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흉악한 내용의 노래가 인간이 최초로 부른 노래가 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이렇게 악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발가인이 만든 날카로운 기계도 올바르게 써야 되는데 그것으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음악과 기계 모두 악용한 것입니다. 

사람이 원자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자원을 만들어냈지 않았습니까? 원자력을 발전소를 잘 이용하면 엄청난 전기를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폭탄을 만들어 대량 살상무기로 사용한 것입니다. 또한 의술의 발달도 사람들을 유혹하여 장기를 적출하는데 악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도 가정을 이루고 문화도 발전시키며 살아가지만 결국 그런 것들을 모두 악용하는 것입니다. 


Ⅱ. 셋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의 삶 

가인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번성하여 온 세상이 악해질 것 같아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셋을 주십니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 4:25).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을 끊으려고 온갖 시도를 다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끊으려고 노아의 홍수 이전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부패시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와 여덟 식구를 의로운 자손으로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왕 바로는 갓 태어난 이스라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여서 이스라엘의 후손이 끊어지게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본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출애굽기 18장 11절에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출 18:11).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십니다. 예수님의 계보를 끊으려는 사단의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단보다 훨씬 크고 높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 가운데 7번째 왕이 아합의 딸 아달랴입니다. 아달랴는 아주 악한 여자입니다. 아버지는 아합이고 엄마가 이세벨인데 부모보다 더 악한 여자였습니다. 아달랴는 바알 숭배자였는데 여호와 섬기는 것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을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린 요아스를 살려두셨습니다. 요아스는 그의 고모였던 여호세바와 고모부이면서 당시 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의 손에서 자랐고 요아스가 7살이 되던 해 여호야다가 혁명을 일으켜서 아달랴를 쫓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다윗의 후손이 끊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0).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었을 때 유다 백성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라는 자가 모르드개를 미워해서 모르드개가 성문으로 들어가고 나갈 때 자기한테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만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모두 몰살시키기 위해서 날짜를 잡았는데 하만은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조카였고 직접 딸처럼 키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에스더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서 악한 하만이 자기 민족을 몰살시키려고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아하수에로 왕이 진노하여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준비했던 나무에 도리어 하만을 매달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셋의 후손 편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아무리 잘 살고 문화를 발전시켜도 하나님은 믿음의 자손들 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을 때 동방에서 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옵니다. 그리고 헤롯 왕에게 찾아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봅니다. 이 말을 들은 헤롯 왕이 서기관들을 불러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어보자 서기관들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미가서에 기록된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발견하면 자기에게도 말해달라고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꿈에서 헤롯 왕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자 헤롯 왕은 자신이 왕인데 또 무슨 왕이 나느냐며 베들레헴 근처의 두 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모두 죽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천사를 요셉에게 보내어 피하게 하셨습니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마 2:13).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해 있다가 헤롯 왕이 죽고 나사렛으로 간 것입니다. 메시아를 죽이려는 사단의 음모는 예수님의 탄생 순간까지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단보다 한발 앞서서 역사하셨습니다. 


결론 

이 세상의 가인의 후손들이 아무리 번영하고 발전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믿음의 후손, 셋의 후손들의 편이 되어주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신명기 32장 35~36절은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될 확신인데 개역성경의 번역이 어려워서 제가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복수는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내 백성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때가 되면 그 원수들은 실족할 것이다. 그들의 환난 날이 가까우니 그들이 당할 운명이 속히 임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나니 자기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자기 백성들이 무력해지고 종이든 자유인이든 남지 않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개입하실 것이다." 

이 세상을 보면 불신자들과 악한 사람들이 오히려 성공하고 이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운명인 것입니다. 반면에 셋의 후손들은 세상에서 핍박도 당하고 시험에 들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늦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개입하셔서 도와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4장 26절에 보니까 공적인 예배가 셋의 후손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셋의 후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주일은 안식일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일에 하나님을 마땅히 경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직분을 가지신 분들은 교회를 옮겨서는 안 됩니다. 현재 직분을 가지신 분들은 이사했다고 해서 교회를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셋의 계보에 속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셋이라고 확실히 대답해야 됩니다. 우물쭈물해서는 안 됩니다.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고 셋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도 문화와 부유와 쾌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내를 둘씩 거느리고 자식도 많이 낳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계보와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믿음과 경건을 갖고 예배하는 셋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때로는 어려울 수 있고 좌절할 수도 있으며 낙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꺼져가는 심지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불을 피워주시고 상한 갈대 같을 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붙들어 주셔서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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