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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가족의 힘 (시 127:1-5, 마 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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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힘 (시편 127편 1-5절, 마태복음 12장 46-50)

여러분 혹시 모세의 기적을 아십니까? 제가 말씀 드리는 모세의 기적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은 아닙니다. 또 우리 교회를 섬기다가 신대리 교회를 섬기는 박모세 목사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금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스페셜 올림픽 대회 개막식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우렁차게 부름으로써 4천 여명에게 감동을 주었던 박모세라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사진1)

여러분 이 청년은 나이가 22살입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장애아로 판정을 받습니다. 의사를 판정을 내린후에 이 아이를 낳아봤자 살 가망이 1%도 없습니다. 아예 낙태를 시키던가 수술해서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 조영애씨는 어떻게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낳겠습니다. 해서 고집을 피워서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뇌가 머리 밖으로 90%가 튀어 나온 아이에요.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에요. 그래서 어려운 수술을 통해서 뇌의 90%를 잘라냅니다. 뇌의 10%를 가지고 살아가는 애에요. 

태어났을 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아이에요. 숨만 쉴 뿐이에요. 병원에서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강제로 퇴원 시켰어요.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6번의 위험한 수술을 거쳐서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안정되어 갑니다. 그러나 잘 걷지도 못하고 전혀보지 못합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기도합니다. 이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 아이가 뭔가 중얼거려요. 주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어요. 아! 애가 듣는구나. 애가 말할 수 있구나. 용기를 얻었어요. 

7살 될 때 애가 찬송가를 따라 부르시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박자 음정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 찬송가를 들려주고 노래를 들려주고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데 박자, 음정이 정확하게 맞아요.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잘 걷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음성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이 아이가 소문이 나서 이러저런 모임에 가서 찬양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 아이가 22살이 되었을 때 평창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동계 올림픽 스페셜 올림픽 개막전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우렁차게 불러서 많은 사람을 감동케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창은 너무너무 유명한 곳입니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곳이에요. 또 누구의 고향이기 때문에? 네1 저의 고향이기 때문에 평창은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참으로 이 젊은이는 위대한 것입니다. 어머니 조영애씨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남들은 우리 아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모든 장애를 이기고 지금 자랑스러운 모세가 된 것 이 세상에서 최고로 자랑스럽다. 나에게는 최고의 아들입니다. 하면서 어머니는 너무너무 자부심을 가지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만약 이 박모세 군에게 이런 조영애 씨 같은 믿음의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아니 이 아이를 포기했더라면 낳아 봤자 장애만 될 뿐, 짐만 될 뿐 본인도 괴롭고 낳지 말아야지 했더라면 이 아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 한 위대한 인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로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가족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모세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가족의 힘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이번 스페셜 올림픽의 또 하나의 인물 현인아 라는 선수 이 아이는 태어나보니까 자폐증이에요. 자폐증은 누구말도 안 듣고 산만하고 아주 혼란스러운 애에요. 이 아이를 데리고 어느 날 스케이트장을 갔는데 이 아이는 스케이트 타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는 거예요.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스케이트를 시켰는데 이 아이가 500m에서 777m에서 쇼트트랙 두 개의 금메달을 땄어요. 2관왕이 됐어요. 대단한 딸이에요. 여러분 이 자폐증 아이가 두 개의 금메달을 따기까지 가족들의 헌신과 배려가 어느 정도였을까요? 생각해보세요. 

우리 교회 집사님 아들 수종이를 야구를 시키는데 엄마, 아빠가 아예 발을 벗고 나섰어요. 그렇게 돕지 않으면 운동을 시킬 수가 없어요. 막 따라나가죠. 이거 보통일이 아니에요. 더구나 이 아이는 장애 아이인데 그런 아이 교육시키려면 온 가족이 헌신 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저는 이것을 보면서 가족의 힘은 정말 위대하구나. 가족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몇일 전에 신문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가족의 기적의 드라마를 읽었습니다. 대구 사는 송희근 씨라는 분이 아들을 낳으니까 뇌성마비에요. 어떻게 해서 엎고 가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쳤지만 대학을 보낼 재주가 없어요. 마침 아이가 대학을 입학할 때가 돼서 온 가족이 결심을 했어요. 두 아들이 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을 합니다. 동생도 입학을 하고 형도 특차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하고 아버지도 시험을 보고 또 거기에 입학을 했습니다. 온 가족 4명이 같은 과에 같은 학년에 입학을 했어요. 

그 학교는 계단이 많은데 동생이 형을 엎고 계단을 올라서 강의실까지 형을 올려놓습니다. 아버지는 오른쪽에 엄마는 왼쪽에 앉아서 아버지는 대신 노트를 해주고 또 이 아이가 눈이 어두워요. 엄마는 대신 책을 읽어줍니다. 그렇게 한 3년 동안 같이 공부를 했어요. 4가족이 2009년도에 훌륭하게 졸업을 했어요. 그리고는 졸업장에서 아버지는 너무 감격해 하면서 이야기 합니다. 가족이 돕고 기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가족 드라마요. 기적의 이야기 아닙니까? 가족이 아니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가족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가족은 함께 협력하고 의지하고 도움으로써 어려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을 만날 것입니다. 얼마나 설레이고 기대되는 이야기 입니까? 여기 며느리들은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아. 설 명절 가봐야 죽도록 일만 할텐데 여러분 그래도 가족을 대접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조금 얄미운 동서를 만나면 어떻습니까? 동서가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죠. 시누이를 만나면 어떻습니까? 행복한거죠. 여러분 가족의 힘은 위대한 거예요. 

1846년 11월 미국의 서부 개척민 80명이 서부 캘리포니아 산맥을 넘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눈보라를 만나가지고 갈 수 가없어요. 그래서 도너란 계곡에 결국 짐을 풀고 거기 갇혔어요. 눈이 너무 많고 눈보라 때문에 전진할 수 없었어요. 그리곤 그 겨울을 도너 계곡에 갇혀서 살아갔습니다. 누가 구조대가 들어갈 수도 없어요. 그런데 그 80명 중에는 독신남자가 15명 있어요. 그리고 8살 아이부터 65세 노인까지 한 65명의 가족이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겨울을 지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면서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었을 때 그 이듬해 구조대가 도너 계곡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래보니 독신남자 15명 중에 12명은 죽었어요. 3명만 살았어요. 25%의 생존율입니다. 그런데 65명의 가족 8살부터 65세의 노인인데 그들은 60%가 생존하고 있었어요. 노인들이 추위를 이겨냈어요. 아이들이 굶주림을 이겨냈어요. 그 원인이 뭐냐? 간단합니다. 가족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믿어주고 서로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혼자 사는 독신 젊은 남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의지할 때가 없어요. 그래서 가족의 힘은 정말 위대하지 않느냐? 이 도너 계곡 사태를 분석하고 연구한 인류학자 도널드 그리스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어요. 가족은 생존의 보증 수표와 같다. 가족은 생존의 보증 수표 돈이 없어도 질병이 와도 가족이 함께 있다면 세상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족이 없다면 그는 살아갈 수 가 없어요. 

또 지난 주 설교제목을 삼결줄 교회라는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했어요. 여러분 거기 전도서 4장 7절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만족함이 없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보람이 없다. 홀로 사는 사람의 아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가족이 있다는 것 물론 자녀가 미국에 가있고 외국에 가 있을 수 있어요. 일 년에 한번이나 볼까 말까 그래도 거기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몰라요. 가족은 위대한 힘이고 위대한 격려가 되는 존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가족의 위대함 가족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가리켜주고 있습니다. 시편 127편은 가족에 대한 시입니다. 시편 127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아멘.

하나님이 집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성을 보호하지 아니하시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는 구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것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절에 우리의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줍니다. 여호와께서 그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의 집을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족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가족은 매우 매우 소중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2:18절을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게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자인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비뼈를 빼어서 여자 하와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최초의 가족을 만드신 거예요. 부부를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시고, 가족을 세워 주신거예요. 

그래서 가족은 귀한 거예요. 왜? 누가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워주셨기 때문에. 가정은 함부로 깨어질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가정을 세우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족은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는 존귀한 자녀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3절, 4절, 5절 말씀을 쭉 읽어보시겠습니다. 
시편 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자녀들은 여호와의 기업이다. 그 얘기는 바꿔 말하면 자녀들은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감사히 받아서 잘 양육해야합니다. 또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보상, 우리에게 주신 상급이다. 왜 그럴까요? 장사의 수중에 화살이 많으면 전쟁에 다가서 담대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젊은 자의 자식이다. 이게 뭔이야기예요? 내가 나이가 들면 그 자녀들이 나를 부양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들은 가정에 든든한 존재가 된다. 언제든지 그 부모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자녀들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그런 이야기죠. 

그것만이 아니예요. 자녀들이 많은 가정은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예를들면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로부터 억울한 고소를 당하고 재판장에 섰을 때 그 당당한 자녀들이 그냥 있겠느냐? 그들의 자기의 아버지를 구명하기 위해서 힘을 쓸것이고 그 자녀들의 노력 때문에 아버지는 결국은 풀려날 것이고 그리고 그 모든 수치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가족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란 바로 부모에게는 위대한 힘이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그의 상급이다. 자녀들로 인해서 가족 때문에 우리는 부끄러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이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하나의 위기가 있지요. 가족이 자꾸 해체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가족이라 해서 보통 7명에서 10명이 한 가족으로 살아갈 때 행복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핵가족 시대예요. 자꾸 나눠 살다보니까 가족 수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국에 있는 가구의 평균인원이 2.7명이예요. 평균적으로 한 가정에 그래도 부부가 살고 0.7 아이 하나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고 평균인원이 2.7명이예요. 아이가 둘씩 있는 집도 드물다는 거예요. 그리고 혼자 사는 1일 가구의 수가 전체가구의 24%, 그런가 하면 4인 가구 네 명이 사는 가족은 숫자는 2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가족이 자꾸 해체되어 가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가족이 해체되어갈 때 아이들이 때로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합니다. 때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 사회에 폭력의 배후에 있는 아이들, 또 성폭력의 배후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족들의 애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남에게 반대로 폭력을 행사해서 자기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의 아픔이 무엇입니까? 종종 신문에 보면은 어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이 전기 아끼느라고 전기장판에 전기도 안 꽂고 또 보일러 기름 아끼려고 보일러도 안켜고 주무시다가 이 추운 겨울에 그냥 얼어죽는 경우도 있고 고독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잠깐보니까 6년동안을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아가지고 시신이 그냥 다 뼈만 남았어요. 다락에서 혼자살다가 돌아가셨는데 6년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그런 경우예요. 이런 참 안타까운 거예요. 

저는 그래서 이 구역장님들의 사명이 대단한 것 같아요. 여러분 특별히 우리교회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구역예배를 드려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거예요. 어르신이 구역예배에 안오신다. 교회에도 안오신 것 같아. 그럼 찾아가 봐야되요. 그래서 교회는 사랑의 띠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야 되요. 그물과 같이 연결 되어야 되요. 그냥 어디 외국을 가셨는가보다 하고 그냥 방치해 두었다가는 돌아가셔서 몇 개월이 지나도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거예요. 우리 구역장님들은 구역원을 돌보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되요. 이것이 바로 사랑의 띠로 뭉쳐진 교회 공동체가 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가족은 소중한 것입니다. 가족이 있다면 그렇게 가까이에 있다면 혼자 고독사하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이 가족들이 서로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할까,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여러분 우리는 때로 내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부모는 내 생명의 뿌리라는 것으르 생각하셔야 되요. 가족이 있을 때 내 삶에 보람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시편 133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128편에 보니까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는 거 큰 행복이라는 겁니다. 자녀들이 있는 것 행복한 거예요. 부모가 계시다는거 얼마나 위로가 되는 것인지 몰라요 여러분. 이걸 잘 몰라요. 우리가 젊을 때는. 가족의 소중함은 나중에 꼭 돌아가시기 한 달전에 깨닫더라구요. 이게 너무 늦은거예요. 

이번 명절 때 여러분 가족들을 만나면 잘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가족은 너무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첫째 함께 사랑하는 가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행복이 오는 거예요. 제가 언제가 행복한 동행에 실린 글을 읽어보았더니 어떤 수의사가 쓴 글인데 토끼를 기르는데 토끼들은 습기에 약하답니다. 그래서 여름에 장마철이 계속되면은 습기 때문에 토끼들이 전염병에 걸려서 죽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어느 해는 정말 장마가 길어서 토끼들이 쓰러져 가는데 아 가만히 보니까 두 말의 토끼는 언제 봐도 쌩쌩하더라는 거예요. 이상하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두 마리 토끼는 작년 가을에 누가 서울로 이사가면서 토끼를 키울수 없으니까 그걸 수위사에게 맡기고 갔어요. 그런데 이 가족들은 이 토끼를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했다는 거예요. 사랑하고 아끼고, 가족의 사랑을 받았더 이 토끼는 이 여름 장마철에도 쌩쌩하게 전염병을 이기고 잘 살았다는겁니다. 아 가족의 사랑을 받는 짐승은 이렇게 전염병도 이길 수 있구나. 

이 가족의 사랑이 바로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늘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해야 되요. 좀 마음에 안들어도, 내 생각과 달라도, 가족은 사랑해야될 대상이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가친척을 만나면 여러분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지나간 이야기 따지지 마시고, 섭섭한거 따지지 마시고, 그냥 사랑해 주세요.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사랑을 나누는 것 외에는 없다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함께 기도하는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옆에 분들과 한번 인사합시다. “함께 기도하는 가족이 됩시다.” 그래서 이번 설 명절에 만나면 꼭 예배드리셔야 되요. 어러분. 예배드리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함께 가족들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거기에 바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성령의 임재가 있는거예요. 

토마스 브룩스라는 분은 그런 말을 했어요. “기도 없는 가족은 지붕 없는 집과 같다.” 그래서 하늘의 모든 폭풍에 그대로 노출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라는 겁니다. 기도하지 않는 가정은 마치 지붕이 없는 집과 같다. 여러분 집에 지붕이 없으면 비가 그냥 쏟아져 들어오는 거예요. 태풍이 불어오면 다 날아가는거예요. 기도하지 않는 가정은 지붕없는 집과 같다. 우리가족들이 모이면 꼭 기도하셔야 되요. 우리가정에도 새해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행복하고 겸손하고 서로 위로하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위기의 시대에 가족의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위기의 시대에 가족의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기도하는 가족이 꼭 될 때 거기에 행복이 밀려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 가족은 함께 나누는 가족이 돼야 하는 거예요. 함께 나눠야 해요. 내가 조금 여유가 있으면 동생이 어려우면 좀 도와주세요. 형님이 어려우면 조카들 등록금 좀 대주세요. 너무 가족들 모이면 그렇게 아귀다툼 하지 마세요. 그 한 푼 더 뺏어 오려고 부모님 유산 한 푼 더 그렇게 불을 켜고 그러지 마세요. ‘나는 뭐 관심이 별로 없네요. 형님이 그냥 필요하니까 가지세요. 아우 자네가 갖게나 나는 이걸로도 충분해 나는 하나님이 더 축복해 주실거야’ 아 이래야 전도가 되지! 아! 집사님 가족이 더 뺏으려고 발버둥을 치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너무 물질 때문에 욕심내지 마세요. 함께 나누는 크리스챤 나누는 가족이 될 때 그게 진짜 행복이 올 수 있다하는 것입니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 가니까 두 형제 마을, 형제 마을이라는 마을이 있었어요. 비석도 세워 놨어요. 여러분 너무 잘 아는 얘기 아닙니까? 형은 이미 결혼해서 자식들도 있고 동생은 막 결혼했어요. 가을에 추수를 해서 벼를 쌓아 놨는데 형이 생각하니까 “동생은 농도 사고 할 일이 많지. 내가 좀 우리 벼를 가져다가 거기에 쌓아 둬야지” 그래서 달밤에 그 벼를 이고 동생의 낫 갈이에 가져다 올려다 놓고 오는 거예요. 동생이 또 생각해 보니까 “아후!! 형님은 조카들도 많고 돈 쓸데가 많을 거야 나야 뭐 단출한 부분데 그래서 벼를 이고 또 형님 낫 갈이에 가져다가 올려놓느라고 또 지고 가다가 깨어 나보면 또 그대로고 깨어나 보면 또 그대로고 어느 날 달빛 아래서 조우했어요. 만났어요. 얼마나 감동이 컸을까? 서로 형님 먼저 서로 아우 먼저 이게 진정한 의리 있는 가정 아니예요?! 크리스챤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하지요. 기회만 되면 서로 뺏으려고 그냥 그렇게 뺏어 와서 뭐해요. 이번에 여러분 할 수 만 있으면 양말 한쪽이라도 사들고 가서 다른 가족들에게 나눌 수 있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교회 나가냐고 하면 우리교회 나간다고 그러세요. 목사님이 누구냐고 그러면 이 아무개 목사라고 좀 얘기해주세요. 시골 교회 가시면 좀 헌금도 풍성히 하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여기는 우리 교회가 아니니까 천원만 하고 오지’ 그러지 마시고 우리교회 아무개 집사 ‘오늘 고향 교회 와서 예배드리니까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하고 헌금도 좀 두둑히 하고 오세요. 그게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예요. 여러분 우리의 뿌리가 바로 고향 교회 아닙니까? 어머니가 섬기는 교회가 바로 우리 교회가 아닙니까? 형제들에게도 나누고 고향 교회 가면 좀 넉넉히 헌금도 좀 하세요.

여러분 정읍에 사는 떡수리 오형제 아시지요? 제가 언제 한 번 금요 심야 기도에 말씀을 드렸는데요.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고 떡수리 오형제예요. 떡수리. 왜 그러냐? 그 집이 떡 집을 하거든요. 어머니가 치매가 왔습니다. 

이 큰 형이 어머니를 돌보는데 이 직장에 나가니까 감당할 수 없어요. 서울과 경기도 사는 동생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혼자 감당 할 수 없어. 너희들이 와서 좀 도와줘라” 동생들이 “얘 우리가 곧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둘째 동생이 달려옵니다. 둘째 동생이 경기도에서 떡집을 했는데. 이 정읍에다가 떡집을 하나 내려고 가게를 보고 땅을 사려고 하니까 돈이 부족해. 그러니까 셋째 넷째 동생이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도와드릴게요.” 5천 만 원씩 모아서 1억을 만들어서 형님을 도와 드렸어요. 땅을 사가지고 떡집을 지었어요. 

그러더니 셋째 넷째도 다 정리하고 정읍에 다 모였어요. 형님은 슈퍼마켓을 하고 네 형제는 떡집을 같이 하는데 얼마나 떡집이 잘 되는지. 효도하는 자식들이 하니까 떡이 더 맛있데 그냥, 돌아가면서 1년 씩 같은 형제들이 같은 동네에 살면서 어머니를 모셔요. 그러니까 늘 찾아뵙고 얼마나 행복한 이 떡수리 오형제 집. 

보통 사람들 같으면 서로 안 맡으려고 ‘나는 뭐 어쩌구 저쩌구 형님이 보세요.’ ‘아우가 좀 보게나 나는 사정이 좀 있어.’ 그런데 이 집은 서로 맡으려고 어머니를. 얼마나 아름다운 집안이에요. 좀 이런 가정들이 그리스도인 가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는 가정,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럴 때 1년에 한 두 번씩 만나는 가족들이지만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혈연에 의지한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우리 한국인들은 이 피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한국인들은 입양을 안 합니다. 자기 피로 난 가족만이 가족이라고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외국인들은 그런 개념이 없어요. 누구든지 입양을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고아 수출국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육신적인 피로 맺힌 가족도 중요하지만 더 큰 것은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는 것을 늘 되새기며 살아가야 해요. 

우리 육신적인 가족은 소중하지만 하나님의 영적 가족은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해요.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사실 일가친척들이야 1년에 한 번씩 보고 두 번씩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가대 한 번 보세요. 이렇게 늘 자주 앉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우리 장권사님 옆에 김행실 집사님이 앉아 있어요. 서로 이렇게 주일마다 연습하고 또 같이 찬양하고 사실 가족도 이렇게 자주 못 만나요. 가족이 아니고 성도 다르지만 늘 자주 이렇게 만나서 예배드리고 이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난 두 분이 친한지 안 친한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늘 이렇게 자주 앉아 있거든요. 어찌보면 이것이 성도들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가족이냐?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예요.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가족은 부모의 피로 혈연이 되어서 육체적인 가족이 되었지만 우린 누구의 피로? 예수의 피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2:13절에 보니까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이것은 한 가족이 되었다 그런 얘기입니다. 에베소서 2:19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이 권속이라는 말은 다른 번역에 보니까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그랬어요. 우리는 예수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옆에 분들과 서로 좀 악수하면서 “예수의 피로 우리는 한 족이 되었습니다.” 인사하세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가족은 서로 부족한 부분도 싸매주고 덮어 줄 수 있는 것이 가족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도 7남매 보통 우리는 식사를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한 10가족 11가족이 식사를 같이 해요. 그러면 우리도 꼭 이상한 분들이 있어요. 왜 그 놈의 방귀는 미리 꾸고 들어오지 밥 먹을 때 꼭 꾸는 사람이 있어요. 에이 방귀는 또 왜 꾸냐 이러고 밥을 먹지 그러나 남 같으면 그것이 되겠습니까? 아마 성가대에서 미안하게도 가스가 차서 방귀를 한 번 꾸면 소문이 금방 날거예요. 아마 어느 집사님 방구 쟁이라고 그냥 옆에 안 앉는다구. 그러나 가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 이해해요. 냄새가 조금 나도 다 참을 수 있고 뭐 그런 정도야 웃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가족이거든요. 여러분 가족은 그래서 좋은 거예요.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영적 가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공동체는 곧 가족 공동체라는 것을 늘 기억하셔야 해요. 여러분 마가복음 5장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병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그 옷깃에 손을 대니까 그 병이 고쳐졌거든요. 예수님이 뭐라고 했어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예수님이 그 여인을 향해서 “딸아!” 딸이라는 것은 뭐예요. 너는 내 가족이다. 그 얘기예요. 너는 이제부터 나의 가족이다. 가족도 돌보지 않는 그 여인. 버려진 그 여인이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그 순간이예요. 

우리가 예수 믿으면 믿고 구원 받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 된거예요.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18년 동안 귀신 들려서 허리가 꼬부라진 그 여인이 회당에 들어 왔을 때 그 여인을 만나서 “아브라함의 딸아.”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그랬어요. 

마가복음 2장에 보면 4명의 친구가 중풍병 환자를 들것에 실려 가지고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소자야 네 죄가 용서 받았다.” 그런데 그 원어로 보면 테크논이라는 소자는 자식 자녀라는 뜻이예요. 다른 번역에 보면 “아들아 네 죄가 용서 받았다.” 그랬어요. 예수님은 바로 그 중풍병자를 자기의 가족으로 받아들였어요. 그것은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랬어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서 형제가 되고 자녀가 되고 부모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의식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예수의 피로 한 가족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예요. 

그런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어느 교회라고 말씀 안 해요. 그 교회에서는 예수의 피로 가까워 진게 아니라 계 모임으로 가까워졌어요. 그래서 계주가 계원을 소집하면 모여 가지고 곗돈 주고받고 그리고 식사하고 놀러 다니고 그것으로 한 파벌을 이루고 있어요. 그건 교회에 아주 암적 요소가 됩니다. 파벌을 만들고 거기에 끼워주지도 않아요. 거기에 못 끼면 왕따 시켜 버려요. 여러분 그것은 계모임이지. 그것은 교회의 영적 모임이라고 말 할 수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로 예수의 영적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일치와 화합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 모두가 가족 의식을 가져야 해요.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예요. 가족들은 어떻게 여깁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존중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이 바로 가족 아닙니까? 상대의 허물도 덮어 줄 수 있어요.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 주고 세워 주는 것이 가족 공동체예요. 가족이란 이처럼 소중한 거예요. 이번 설에 여러분 혈연으로 통한 우리의 가족을 만날 때에도 정말 잘 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세요. 더더욱 우리 교회에 속한 우리 가족은 더 뜨거운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 줄 때 세상을 섬기고 지역을 섬기는 우리 교회 아름다운 예수 공동체가 꼭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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