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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使命)이 양식입니다(1) (요 4: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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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使命)이 양식입니다(1) (요 4:31-34)


예수님의 필연적인 사마리아성 방문(요 4:4)은 그 결과가 실로 위대하였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4장 42절에 기록된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동신앙고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라고 함에서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마리아인들의 메시아적 공동신앙고백은 수가성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 여성과 주님 사이의 단독적인 만남과 대화의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바로 사마리아인들과 그녀가 그처럼도 대망하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였음을 확신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요 4:25-26). 주님은 그녀에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는 종족(요 4:9)을 초월하는 메시아로, 유대의 남자 사마리아의 여자(요 4:9)라고 하는 이성을 초월하는 메시아로, 그녀가 자랑하는 역사적 조상 야곱보다 크신 메시아로(요 4:12), 그래서 마셔도 다시 목마르는 야곱의 우물물이 아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 메시아로(요 4:10, 13-14), 과거에 그녀의 인생을 짓밟아버렸던 세상의 남편 다섯, 그리고 지금 있는 남편까지도 진정한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없는 도덕적 불만(요 4:16-18)을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로, 그리고 사마리아의 그리심산록의 예배와 유대 예루살렘성에서의 예배, 곧 장소지상주의를 초월하는 메시아로(요 4:19-21),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가르치는 메시아로(요 4:23-24) 자신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과 대화하던 그녀의 입에서 놀라운 대망의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요 4:25)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 4:26)라고 자신이 바로 그녀가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확실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성내로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도착하였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이 그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으나 별다른 생각이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요 4:27). 
그때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가 살던 사마리아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인들이 주께로 나아오게 되고, 예수를 믿고, 「…우리가 친히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요 4:42)라고 하는 사마리아인들의 메시아적 신앙의 공동고백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요 4:30, 39, 40-42). 

오늘 우리가 받은 말씀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기막힌 메시지의 선언에 있습니다. 성내에서 먹을 것을 사서 예수님께 가져온 제자들은 「랍비여 잡수소서」(요 4:31)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라고 하심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심오한 주님의 메시지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요 4:33)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제자들의 암매(暗昧)를 아시고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라고 다시 그 말씀의 진의를 알려 주셨습니다. 
말하자면 '사명이 양식이다'라는 주님의 차원 높은 메시지였습니다. 

Ⅰ. 주님의 사명(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4:34). 

아버지 곧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1. 많은 죄인을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됨에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 13:33)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겟세마네동산에서의 최후기도에서도 「내 아버지여…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자기 사명성취의 개가를 토했습니다. 율법과 예언의 성취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세상에 오시고, 사신 주님 자신의 양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2. 택자 구원을 완성시킴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명, 곧 양식은 그가 마지막 날에 다시 재림하심으로 대속의 은총을 입은 모든 신자들을 부활시킴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자신이 생존하는 양식, 곧 사명이라고 하였습니다. 

Ⅱ. 그리스도인(교회)들의 양식도 하나님의 뜻을 이룸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1.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믿음이고, 그 결과 부활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2. 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 믿음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은 예수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6:41).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산 떡,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 6:48)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51)라고 하셨고,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5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산 떡을 가리켜서 「세상(죄인)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51)고 하였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라고 하였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라고 하였습니다.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58)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믿음을 가리켜 '먹는다', '마신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믿음이란 떡 맛을 알고 먹고, 음료(피)의 맛을 알고 마심과 같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양식이요,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식음작용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란,
  
① 존재론적으로 자기 생존을 의미합니다.
송장에게는 식음작용이 없습니다. 죽은 영들에게 있어 예수 속죄와 부활과 영생의 맛을 아는 영적 생존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② 내용적으로 자기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성립시킵니다.

③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의 목적성을 성립시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사람의 사람 된 사명, 곧 양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사명대로 되어갈 때 존재의 보람, 의미, 가치와 즐거움을 누립니다. 반대로 사명대로 되지 아니할 때 우리 자신의 인생은 잃어버린바 되고 고통과 절망과 불안에서 허덕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룸에 있습니다. 곧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의 속죄공로와 부활의 영광을 믿는 믿음입니다.

Ⅲ. 이런 의미에서 '경향교회'라는 공동체는 사명의 교회입니다.

말하자면 예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소망을 믿고, 떡을 먹고 물을 마시듯이 체험적으로 움직이는 사명의 교회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개인구령운동, 개척교회운동, 별들의학교운동, 고려신학교운동, 세계선교운동, 학원복음화운동, 기독교복지운동, 기독교문화(문서, 방송, 인터넷))운동입니다.
하나님은 장터(세상)에서 놀고 있던 우리를 이러한 믿음의 역사(役事)를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경향포도원으로 초청한 것입니다(마 20:1-16).
  
벌써 우리는 '경향 40년'이라고 하는 시간과 역사 속의 공간을 지내왔습니다. 을지로 개척시대부터 동자동, 여의도에 이르는 20여 년 동안은 셋방살이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이미 지금 우리가 받은 교회 사명의 비전(vision)은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 20년의 강서시대는 교회가 받은 사명의 수행을 위하여 새 성전 건축과 교육관, 교회회관을 건립하였습니다. 
1994년 8월, 현재의 학교법인 경향학원을 인수하고, 1995년 7월 17일에 새 성전 건립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말하자면 새 성전 공사와 경향교회 회관, 교육관 역사(役事)가 19년이나 계속된 것입니다. 이제 2014년 4월로 이 모든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확실한 목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40년 역사는 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생존의 양식으로 삼고' 달려온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교회의 양식, 곧 사명만이 존재할 따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40년 역사 속에는 정사(正史)도 있고, 비사(祕史)도 있습니다. 비사 속에는 여러 경우들의 희비애락이 엮여져 있습니다. 
  
저에게 아프고 괴로웠던 여러 일들 가운데 새 성전의 비전을 받은 후, 이 일에 동조하지 않는 몇 분이 저와 나누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강서에서 얻은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몇 분을 제가 직접 사직을 시킨 일입니다. 그분들은 선의로 연보를 작정했으나 감당을 못하게 됨으로 불가불 다시 저들의 연보를 교우들에게 돌려 다시 다함께 연보를 할 수밖에 없었기에 저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 장로직에서 물러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장로직에서 물러나야 될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저들이 작정했던 연보를 스스로 실행하지 못하고 교우들에게 짐을 지워야 되는 형편이어서 저는 아프고 아픈 마음으로 그 책임을 묻게 된 것입니다. 그 분들은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 시무장로는 아니지만 열심히 주를 위해 여러 모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새 성전과 교육관, 경향교회 회관 문제가 다 정돈이 되면 그 분들을 다시 복직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사명감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사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명이 우리 모두의 양식이었습니다.
지금 구라파에서 유일하게 로마가톨릭교회보다 개신교가 우세한 국가는 화란(네덜란드)입니다. 이 나라 조상들은 물 가운데 성전의 기초를 세우고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자기 조부, 아버지, 손자로 이어지는 계대적인 사명이었습니다. 저들 생존의 전 목적이 소가죽을 사서 성전 기초를 위해 물속에 넣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소가죽의 기초 위에 대를 이어 계대적인 헌신으로 세워진 성전은 4-5백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흔들릴 줄 모르는 예배당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경향인 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기억합시다!
예수님에게는 너희가,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4:32). 그 양식은 바로 나(예수)를 보내신 이(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4:34).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대신속죄의 죽음과 부활, 그로 말미암는 택자들의 궁극적 구원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는」(요 6:40)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경향인의 양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곧 예수 믿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믿음만이 우리 생존의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성립시키는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 믿음은 마치 떡을 먹고 피를 마시는 식음적(체험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새 성전, 회관, 교육관 사역들은 이러한 생존의 양식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실로 세상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아닌가!
이러한 사명의 양식을 먹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있으라! - 아 멘 -  (석원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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