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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 (마 16:13-20)

첨부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를 누구로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크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①대상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아닌 존재를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가 하나님 떠난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를 통하여 혼동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특징은 하나님을 여럿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존재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잘못을 여러 번 범했습니다.
애굽을 빠져 나와 광야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은금보화를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신상이 애굽 땅에서 자신들을 인도한 신이라고 말했습니다(출 32:4). 이들은 여호와의 절기에 번제와 화목제를 금송아지 신상에게 바치며 춤추며 놀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제사를 우상에게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진노하셨습니다.
이사야 40장에도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금과 은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썩지 않는 나무들을 택하여 우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섬겼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경배를 가로채는 마귀의 첨병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바로 발견하지 못하고 우상에게 빠져있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 중 3/5이나 됩니다.
②어떻게 믿느냐 즉 내용에 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대상은 바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어떻게 믿느냐 하는 내용에 있어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믿거나 각색해서 믿으면 큰일납니다.
오늘 본문 속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중의 하나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더 날카롭게 회개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엘리야 이상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예레미야와 같은 눈물이 있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이 말하는 4대 성인 중의 한 분이거나 선지자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를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합니다(잠 1:7, 9:10). 예수 그리스도는 부분이 아니라 만물의 기초에서 완성까지입니다.
에베소서 1:10에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8에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했습니다. 골로새서 2:2에는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과연 그를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사람들의 견해에 만족하실 수 없었던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답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심히 기뻐하사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하시면서 베드로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베드로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베드로와 같은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반석 같은 믿음으로 칭찬 받는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주인입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여자 가수가 불러서 히트했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인 양 살아가지만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면 내맘대로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생입니다.
이 시간도 병원에 가면 젊디젊은 사람들이 병마에 신음하며 수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인생을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천년을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됩니까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크게 세 가지의 주인이십니다.
①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역사는 BC와 AD로 나누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과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역사로 나뉘어집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역사의 정점으로 삼았습니까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입힌 분일 뿐만 아니라 역사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예수 그리스도 없는 역사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인입니다.
②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1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③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다른 말로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솔직히 물어 봅시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인생에 진정한 주인이 되고 있습니까 상대방을 어떻게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와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3년 6개월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단 한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랍비라고만 불렀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할 때에 “예수님을 팔 자가 내니이까” 물을 때에 유다는 “랍비여!” 했습니다(마 26:25). 겟세마네 동산에 병사들과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입맞출 때에도 랍비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선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선생은 더 좋은 선생이 나타나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가롯 유다는 단 한번도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고백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베드로, 나다나엘, 빌립 등 제자들도 처음에는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각 복음서 말미에는 모두 주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모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처럼 계속 목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모자라고 목마른 인생에 예수님을 귀빈 삼지 마십시오. 보조자, 협력자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인을 삼으십시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됩니다. 무의미한 인생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생수 되시는 예수님이 모든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주인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면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인도 따라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주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2.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직책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는 세 가지 직책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기름은 세 가지 직분의 사람에게만 부었습니다. 첫째는 선지자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불러 선지자로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왕상 19:16). 둘째는 제사장입니다. 모세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출 28:41, 30:30, 40:13, 40:15). 셋째는 왕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삼상 10:1, 16:13).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인간이 가진 세 가지 근본문제를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 되셔서 해결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세 가지 근본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①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창세기 3:1-6을 보면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뱀, 곧 마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에게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이 왔고, 육체의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체의 생명을 마치는 날에는 마귀를 가두기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상태를 가리켜 에베소서 2:1에는 너희의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이 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존재가 다시 사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영이 된 인간은 어떤 노력으로도 사는 영이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선지자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그토록 간절하게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는 선지자를 요구했는데 그 선지자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그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체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빌 2:6).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셨고,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②인간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하나님이 보실 때 의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롬 3:10).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사망이었습니다.
자범죄가 적고, 의로운 선행으로 남에게 인정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출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우리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석가, 공자도 다 죽었다는 말은 그들도 죄인이었다는 말이요, 죄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 안 죽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의인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죄인은 죄를 용서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공로로 당신이 날 때부터 안고 태어난 죄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9:22에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피도 죄가 없는 의로운 피라야 합니다. 죄인의 피는 남은 물론 스스로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죄 없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의 피를 믿을 때 우리의 모든 죄는 눈과 같이 양털같이 씻겨집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히 9:12-13)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4-26)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③인간은 사단에게 소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보호받고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자 찾아온 것이 마귀 사단입니다. 부모의 보호의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가 동네북이 되듯이 하나님 떠난 인간은 일평생 마귀에게 끌려 다니며 지배받게 되었습니다.
요즘 대학에 들어가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 하면서 다 때려부수었던 장승들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민족종교를 표방하며 증산교, 대순진리회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컴퓨터 문화를 자랑하는 시대에 신문지상에는 매일같이 전화로 운세를 점치는 운명철학관이 광고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이와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무당, 점쟁이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점쟁이가 흉일이라고 하면 이사도 못합니다. 길일이라고 하면 밤늦게까지 예식장이 미어터지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주팔자,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 운명, 그 팔자에 매여 살아가다 죽어 지옥가게 만드는 존재가 마귀 사단입니다. 미신,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단순히 그들에게 나쁘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빠져 나오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사단의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최고, 최후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
14-15)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결론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은 선지자로 하나님 떠난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라는 말이요, 제사장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말이요, 왕으로 사단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심으로 우리를 해방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자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가 되셔야 합니다. 날마다 사건마다 영접하셔서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죄악의 세력들을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우는 사자같이 다가오는 사단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분명히 육체적으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해서는 살아 계셔야 하고, 그는 함께 하시고자 살아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19-20)
살아 계셔서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예수님은 예배하는 오늘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법입니다.
함께 하시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흔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보여달라고 말들을 합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기도응답입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응답하십니다. 응답이 그가 살아 계신 증거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랄 땅에 내려간 요셉이 농사꾼도 아닌데 농사하여 그 해에 100배를 얻었습니다. 그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땅을 파는 곳마다 샘이 터지고 마침내 샘의 근원을 얻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창 26:28).
보디발의 가정에 비록 종으로 팔렸지만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는 것을 보고 주인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창 39:2-3). 그 주님이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엡 2:7).
예수님은 살아 계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버지를 본 자는 나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읍시다. 반석 되게 하시는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천국 열쇠를 주셔서 늘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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