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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투하는 교회 (계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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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재림 직전에 있어야 할 마지막 환난의 본격적인 묘사는 1 3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2장은 그 환난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 환난을 위한 준비로서 하늘의 환상을 보여 줍니다. 환난에 앞서 서 이 비전을 바라본 사람들은 넉넉히 이 환난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비전이 없을 때 사람들은 망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 광을 바라보는 사람, 그 영광의 무리 속에 끼어 있는 자기 자신 의 환상을 본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좌절된다 할지라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11장에 이어서 12장에도 교회의 파노라마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아는 사람 들, 그들은 교회의 한 지체가 된 이 영광스러움을 깨닫고 그들 앞에 놓여진 인생의 여정을 실망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 다.

신학자들에 따라 교회의 유형을 나누는 방법이 다른데, 다음은 그 중에서 대표적인 분류 유형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첫째/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와 지역 교회( local ch­urch) 「우주적 교회」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살았던 모든 성도 들을 다 합한 것으로서 「보편 교회」라고도 합니다. 이 교회의 구성원 중에는 거짓 성도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 신 자들은 아직 한번도 이 땅에 함께 모여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이들 중의 상당수가 이미 하늘 나라에 가 있습니다. 이들은 주 님이 다시 오시게 될 때 주님 앞에서 모두 모이게 될 것입니다.

역사 속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총칭하는 우주적 교회와는 달리, 역사적인 시점을 따라서 일정한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 모이는 「지역 교회」가 있습니다.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지역 교회 안 에는 참된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얼마든지 끼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역 교회는 언제나 불완전성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이상(理想)을 이루기 위해 서 하나님이 쓰시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구약 교회(Old Testament church)와 신약 교회(New Testament church)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에 그분이 오시기를 사모하던 하나님의 백 성들의 공동체를 「구약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오 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며 모이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가 「신약 교회」입니다. 구약 교회는 그 중심이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방인들 가운데서 도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된 자들도 있지만, 구약 교회의 주류를 이루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교회에 오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 과 이방인들 사이에 담이 무너지고 모든 족속, 모든 나라, 모든 국가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이 교회의 한 부분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신약 교회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으며, 구약 교회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셋째/승리한 교회(church triumphant)와 전투하는 교회(church militant) 「승리한 교회」란 이 땅에서의 신앙 생활 여정을 끝내고 주님 앞 에 가 있는 성도들의 무리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의 싸움을 끝내 고 주님 앞에 가게 되면 승리한 교회의 일원이 될 것입니다. 그 러나 이 지상에서의 교회는 아직도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전 투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이 교회 공동체가 사단의 역사 때문에 많은 저항을 받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 을 이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리한 교회는 「 천상 교회」로, 전투하는 교회는 「지상 교회」로 불리기도 합니다.

 교회를 어떻게 분류하든 간에, 교회라는 단어의 핵심은 사람입 니다. 교회 공동체가 건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 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교회를 가장 적 절하고 단순하게 정의(定義)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저마다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을 받아 구원에 이른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누구도 약점과 불완 전함을 벗어 버리지 못했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한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귀한 뜻을 펼치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유일한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통해서 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사도 요한은 다시 한번 하늘의 비전을 바라봅니다. 그 비전 속에 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12장에 서 교회는 여자라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여자는 좁은 의 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고, 넓은 의미에서는 신구 약 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12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열두 별의 면류관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쉽게 구약의 열두 지파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의 기자가 의도하는 이 미지가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줄기였습니다. 구약 시대 에 열두 지파를 쓰신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와서는 열두 제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대단히 중요한 숫자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여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마리아로 보는 해석, 이스라엘로 보는 해석, 하나님의 교회 전체로 보는 해석 등등입니다. 사실 저는 신약의 교회와 구약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교회를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 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 의한다면,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존재 했습니다. 신약 교회는 결국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장 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38절에 시내 산에 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광야 교회란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약속의 땅을 향해 가던 광야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구 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가장 큰 기대는 메시야의 오심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여자를 통해서 인류 역사를 바 꿀 수 있는 중요한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시대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언했던 메시야,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간절히 소망했으며 기다렸던 메시야, 드디어 그 메시야가 탄생하십니다. 그러면서 신약 교회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 12장의 사건을 통해서 성경 기자가 보여 주려고 한 교회의 모습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갈등 왜 하나님의 백성은 갈등을 겪어야 합니까? 이 갈등의 근원은 무 엇일까요? 3절에 보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의 정체가 용이라는 상 징으로 등장합니다.

하늘에 또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 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용에 대한 해석은 어렵지 않습니다. 9절에서 그 정체를 밝혀 주 기 때문입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 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使者)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용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이 바로 용입니다.

 사단은 창조 기사에서부터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그것을 대 적하는 사단의 사역간의 갈등은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 다. 사단과 하나님과의 사역의 갈등을 가장 구체적으로 첨예하게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을 「최초의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뱀으로 상징된 혹은 뱀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뱀이 여자의 후손에 게 어떤 타격을 가하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타격은 치명적 은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다고 했을 때, 그것은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여기에서 여자의 후 손은 예수님입니다. 왜 예수님을 여자의 후손이라고 불렀을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 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여자 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우 리들은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남녀 합작의 후손입니다. 동정녀 마 리아를 통해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사단의 역사를 깨 뜨리고 인류의 구원의 길을 여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이미 사단과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긴장과 갈등을 볼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에 시달리면서 말할 수 없는 역사의 어 둠 속에서 이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메시야가 오자마자 마귀의 발 악이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을 보십시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 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사단의 공격 대상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면서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사단의 공격 목표입니다. 이 사단의 공격 때문에 교회는 갈 등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사단이 이 세상에서 활동할 것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0절을 보십시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 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예수께서 다락방 강화를 하는 중에 갑자기 이 세상 임금(사단)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사단의 역사가 이 세상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단의 역사는 이 땅에서 결코 승리하 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가시는 것으로 자신의 역사를 끝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대신해서 주님과 질적으로 같은 분, 그러나 주님과 인격적으로 구별되는 한 분이 오셔서 이 땅에서 사단의 역사를 제압하시고 성도들을 성도답게 살도록 격 려하시며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실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보 혜사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11절에서 성령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 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 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義)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 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 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 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이 세상 임금이 활동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사 역에 의해서 이미 결정적으로 심판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주께 서 사단의 활동과 사단의 최후를 동시에 예언하시는 이 장면을 주 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갈등의 궁극적인 근원은 바로 마귀입니다. 사실 마귀가 제일 싫어 하는 대상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그 리스도를 높이며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리스도의 증거를 이 세상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마귀는 그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때로 그 핍박의 원인이 교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일 수 있 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했다고 해서 세상이 교회를 향해 박수를 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마귀 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싫어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에게 속 한 백성들을 언제나 비판하고 공격할 것입니다. 설혹 모든 면에서 우리가 완벽한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단은 언제나 교회의 원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박수를 받 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기대인지요.

 요한복음 15장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 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 앞 절에서 예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세상에 속한 자 라면 세상은 당신을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죽인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인 우리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어느 시대의 그 리스도인들보다도 더 모범적인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의 모본을 말할 때마다 초대 교회를 이야기하지 않습 니까? 그러나 사도행전의 역사를 읽어 보면, 초대 교회의 그리스 도인들 역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박수가 아닌 끊임없는 핍박을 받았 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던 그 깨끗하고도 당당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 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 의 푸대접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리스도 때문에, 복음 때문에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다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께 속한 하나님 의 백성이기 때문에 받을 수밖에 없는 핍박이 있습니다. 팔복 가 운데 마지막 축복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 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의 상이 큼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의(義)는 단순한 사회 정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 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편에 속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자랑할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일 때, 닉슨 행정부는 행정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명단에 포 함된 사람들은 자신이 닉슨의 적이 된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 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것 때문에 수치를 당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원수의 명단에 올려 놓았다면, 우리는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께 속했다 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신앙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받는 어떤 핍박이 있다면 기뻐합시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여 기에 교회의 갈등의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사단에게 일곱 면류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모든 모습을 모방합니다.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그의 평생 소원이기 때 문입니다. 12장 1절에도 여자가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나옵니다 . 그 여자가 만약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 이스라엘의 상 징이라면 그 면류관은 성도들이 쓰는 면류관입니다. 사실상 원문에 보면 12장 1절의 여자가 쓴 면류관과 3절의 마귀가 쓴 면류 관이 다른 단어로 나와 있습니다. 성도들이 쓰는 면류관은 누군가 가 씌워 준 영광의 면류관으로서 『디아데마』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쓰고 있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라는 단어로서 단순한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힘을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지배를 추구하고 있는 사단이 쓰고 있는 면류관은 우리가 사모하 는 면류관과는 다릅니다. 주께서 성실하고 충성스러웠던 사람들에게 면류관을 씌워 줄 것입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사단은 비슷하게 묘사하지만 본질과 속성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그 것이 사단의 속성입니다.

 4절에 묘사된 사단의 행동을 보십시오.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사단의 본래 정체는 천사장입니다. 그것이 역사적 교회의 성경 해 석입니다. 천사장을 계명성(啓明星)이라고 했습니다. 별로 묘사되 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맞서려고 하다가 타락했던 천사장입니 다. 그런데 천사장이 타락할 때 그와 함께 동조한 천사들이 있었 습니다. 그 천사들이 바로 악령들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복수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악령들은 복수입니다. 아마도 천사 들 가운데 삼분의 일이 반역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귀는 바로 이 악령들, 귀신들을 거느리고 이 세상에서 어지러움과 전쟁과 분리와 분열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모든 갈등의 근 원은 마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경험하는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대적인 마귀입니다.

 교회의 보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에는 일천이백육십 일, 삼 년 반, 사십이 개월이라는 표현이 매우 많이 나오는데, 그 표현들은 처음의 삼 년 반을 의 미하던가 나중의 삼 년 반을 의미하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저 는 여기의 천이백육십 일을 최초의 삼 년 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자들에 따라서 이것을 예수께서 오신 이후 지금까지의 신약 시대 혹은 복음 시대 전체로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고난과 비바람과 폭 풍우와 함께 우리는 그곳에서 삼 년 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삼 년 반이라는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을 금지당했던 악몽 같은 영적 암흑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간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생하는 기간의 상징으로 이 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 으로도, 복음을 전하는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고난과 환난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본문에서 보 아야 합니다. 그 광야의 삶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 에서 그분의 보호를 받으며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한 대단히 아름다 운 묘사입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교회 는 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 는 이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이스라엘을 통해서,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통해서 인 류 역사의 소망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한동안 계속 어두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교회는 아직도 광야에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그리스도께서 유감없이 자신의 주(主)되심 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이 세상에서 한껏 나타내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스 도는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따라갔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순간에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이것을 휴거의 사건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사건으로 연관시키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승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분은 우주를 통치하는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그 러나 한동안 어둠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다시 오실 때, 마치 철장으로 다스리는 왕처럼 그분은 모든 불의의 세력들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 온전한 주님의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 것은 위대한 승리의 선포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교회의 승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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