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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들의 행복 (눅 10: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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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1 너희의 보는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0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 으며,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을 놓고 볼 때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옛사람들 보다 우리가 행복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 니다.

우리가 먹고 살기가 좋아지면서 많은 휴가를 떠나는데,진정으로 즐겁고,행복한 휴가는 아닙니다.

남들이 가니까 바캉스를 떠나고, 남들이 가니까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캉스지옥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해마다 아수라장 이고,고생길입니다.

옛사람들은 집안일을 하다가도 앞 개울에 나가 솥을 걸고,물고기 를 잡아 천렵을 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적인 안락함이나, 더 많은 것을 보고,듣고, 안다고 하는 면에 있어서는 우리가 훨씬 낫다는 사실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옛사람들 보다 진실로 행복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 땅을 거니실 때에 그를 본 사람은 많았지만, 그가 그리스도인 것을 안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구도자들 만이 그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았고 ,짐작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풍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의 몸으로 계실 때, 그의 소문을 들은 사람은 많이 있었지마는, 그들이 예수를 직접 만나는 경험을 모두가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도,성령의 도우심으로 경험으로 만날 수 있고,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의 말씀이요, 강복의 선언입니다.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1 너희의 보는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0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 으며,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이밤에 기도하러 나오신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인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사람은 더욱 복이 있습니다.

진실로 복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말씀은 놀라운 복음입니다.

너희의 보는것이란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계시 되었지만,그것을 진실로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보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알아보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가난하고, 멸시받고, 무식한 사람들이나,돈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 나,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오늘날 우리에게 완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복음,예수를 진실로 그리스도로 보는 사람,믿는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누리는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는 제왕들 보다 더 사랑을 받고,예언자들 보다 더 큰 은혜를 입고,등급에 있어서 우리 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 보다 더 높습니다.

현세대, 제자들에게는 이런 큰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 옛날 모세의 율법 아래 살던 사람들에게는,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오늘 같이 극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율법 보다 차원이 낮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주로 상징과 그림자,형시과 의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엄격하고 번거로운 의식이 많았고,더 좋은 언약에 근거한 그리스도 인들의 율법 보다 저급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은 은총과 용서,평화와 영생이며,영적이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과 폭넓은 교제를 허용받은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율법은 모세의 율법 처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는 율법이기 때문에 훨씬 우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본 다윗과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 보다 더 많은 빛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우리는 그들이 보기를 원했던 것이나,듣기를 원했 던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소망 중에 죽었으나,그 언약을 유업으로 받지는 못하였습 니다.

 그러나 오늘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하는 말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들로도 자신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에 살면서,교회나 그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특권이 있는 사람은 책임 더 큰 까닭입니다.

 존 케벨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를 본 자>라는 시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심오한 사상의 눈으로도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

그들이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기 전 까지

그리스도는 오만한 눈으로 보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오만한 자는 아무리 완전하다 할지라도 온전한 복을 받지 못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에 나타나는 빛을 죄인들의 눈은 보지 못한다.

오직 온유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그 분의 옷자락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그분의 모습에 나타난 영광을 본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오만한 두눈으로는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온화한 빛은 사랑스런 구세주의 자비로운 얼굴이 변화시키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사 마침내 우리도 희미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분께서 구속하는 피로 씻기우시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다.

그분의 보호하는 손길 아래에서 바위 위에 예언자들이 서 있던 것 처럼

우리가 보는 것들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그러나 이 생명나무를 많은 사람들이 옻나무로 오인하여 그 나무를 쳐다 보았으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John Kebl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여러분이 보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어떤 예수입니까 그분이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그리스도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예수를 다시 한번 바라 보십시다.

말구유에 잠들어 있을 때,목자들과 동방박사 가까이서 잠들어 있던 아기 예수, 조롱과 증오의 눈길에도 아랑곳 없이 군중을 가르치시 고,병을 고치시던 온유하고 겸손한분, 그 얼굴이 타인 보다 상하 였고, 그 모양이 인생 보다 상하였던 분,(사52:14),십자가에 달려 서 수난을 당하였던 분,그 무덤이 열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 중에 계시는 분,우리가 보는 그리스도는 바로 그러한 분입니 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 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비로운 뜻 을 펼쳐 보이시는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망 중에 보고 기뻐 하였을 뿐입니다.

진실된 믿음으로 구세주를 보게 될 날을, 생생하게 그려보면서 오실 예수를 소망 중에 바라 보았습니다.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지는 못하였지만, 비스가 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본 것 처럼,아브라함은 믿음의 산에 올라가 어렴픗하게나 마, 주님의 생애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사람은 그들이 보고자 한 바를,본 사람이고,그들이 만나고자 하는 그리스도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며,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정말로 내가 복있는 사람인가 정말로 내가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인가를 점검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아멘 예수가 정말로 여러분의 그리스도가 되십니까 아멘 그렇게 믿습니까 아멘

본문을 다시한번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마13:16,17에서는--1 많은 선지자와 의인--0이라고 기록한 것에 반하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1많은 선지자와 임금--0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들이 우리의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신앙심과 도덕성을 그들이 가졌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비록 여러가지로 인간적인 실패를 경험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생애를 종합하면 그들은 승리자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환상중에 메시야의 영광을 보았으나,성육신한 그리 스도를 본 적이 없고,아무도 그의 이적을 알지 못하며,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약속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히11:13) 그러나 오늘 예수의 제자들은 그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를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실하게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옛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예수가 여러분의 그리스도가 되고, 예수가 여러분의 선생님이 되고, 예수가 여러분의 인생안내자가 되고, 예수가 여러분의 그리스도가 되고, 예수가 여러분의 주님이 되십니까

독일 뤼베르크 성당에는 작자미상의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주는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너희 날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 날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 날 길이라 부르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 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 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 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 날 가멸다 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희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 날 어질다 하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 날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 날 의롭다 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느니 그런즉 너희들 내 너희를 꾸짖는다 해서 나를 탓하지 말라.

 우리가 앞서면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주라 하면서도 종으로 삼고, 예수를 따라가노라 하면서도 오히려 따라 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목마르십니까 주리고 있습니까 믿으십시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고 나오며,꼴을 얻으리라(요10:9)

나는 부활이요,생명이니,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7:37-3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 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하나, 포도나무라고는 하나 포도열매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생활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아니하고,그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주여, 주여 할지라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과실을 맺는 것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행함이라고 하는 것은 의지적인 신앙의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8:31에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거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듣고자 하였으되,듣지 못한바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이미 선언적인 복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큰 은혜와 행복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이같이 개방하시는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요.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1 너희의 보는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0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 으며,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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