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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첫번째 수난 예고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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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의 첫번째 수난예고]라는 제목으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이전에도 수난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러나 본문 21절에 ‘이때로부터’라고 했듯이 이전에는 암시적,비유적으로 말씀하셨을 뿐이고 본문에서처럼 공개적으로 아주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이제 곧 수난을 당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그래서 이것이 첫번째 수난예고입니다.우리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는 적어도 세 번 내지 네번에 걸쳐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에 보면 세번에 걸친 수난예고가 나와 있습니다.

1.제자들의 오해와 예수님의 책망
예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수난받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본문 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했습니다.그런데 누구에게 고난을 받는고 하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산헤드린 공회입니다.거기에서 일어날 일을 우리 예수님께서는 첫째 많은 고난을 받겠다,둘째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셋째는 제 삼일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이 세 가지를 아주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런데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이 말씀의 뜻을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제자들은 이사야서 53장에 기록되어진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그것이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루이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것은 그들이 흔히 생각했던 정치적인 세속적인 그런 메시야 왕국을 이룩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가 십자가에 달려서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알지를 못했습니다.주님이 가르치지 아니했기 때문이 아닙니다.사람은 편견이 있고 각자의 안경이 있습니다.그래서 똑같은 설교를 듣고 있지만 안경을 쓴대로 듣습니다.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설교를 듣습니다.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전이해(Free Understanding)라 하는데 이 전이해에 따라서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예수님께서 삼 년 동안 저들을 가르쳤습니다.3년이면 신학교 졸업반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쳤는데도 시몬 베드로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그렇게 하지 마세요.’예수님을 말립니다.그는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지 않도록 자기가 방관하지는 않겠다고 말합니다.그리고 실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칼을 빼서 말고의 귀를 짜른 사람이 바로 시몬 베드로입니다.의리의 사나이입니다.자기의 선생님이신 예수님이 그것도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잡혀서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몬 베드로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가장 의리가 있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설득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게 하려고 했을 때 우리 주님은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십니까“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고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조금전에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17절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칭찬하시고 복이있다고 축복하셨던 예수님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습니다.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주님께서 십자가 지신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그것이 바로 성공입니다.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그것을 시몬 베드로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2.주님을 따르는 자의 성경적 자세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말리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24절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제자들의 오해는 첫째로 우리 예수님이 메시야 왕국을 이땅에 이룩하개 위해서 오셨다고 오해를 했고 둘째로 우리 예수님에게 봉사하면 바로 이 세상에서 명예도 얻고 보상도 얻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습니다.우리도 그런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복신앙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세상에서 모든 것,명예 보상을 다 얻는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얻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왜 필요합니까 물론 이 세상에서도 주십니다.그러나 이 세상에서 주시는 것은 한 모델 케이스입니다.주시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주십니다.그러나 완전한 보상,완전한 명예는 우리 예수님이 재림한 다음 하나님 나라에 가서 다 이루어집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의 바른 자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우리는 주님을 따라갈 때에 주님 앞에 가지말고 뒤를 따라가야 되는데 뒤를 따라가는 사람의 자세는 24절에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첫째로 ‘자기를 부인하고’입니다.부인한다는 말은 매 순간마다 내 자신에 대해서는 ‘아니요’하고 얘기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렇습니다.아멘’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우리 인간은 순간순간에 나를 자꾸 긍정하려고 합니다.그런데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내 머리에 씌워져 있는 왕관,교만해 하는 왕관을 벗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내가 왕관을 쓰고 있는한 우리는 참된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입니다.누구의 십자가라고 그랬습니까 자기의 십자가입니다.십자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질려고 해도 질 수가 없습니다.주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대속의 십자가입니다.우리는 남을 대속할 수 없습니다.주님만이 가능하십니다.죄가 없으시고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인 우리 예수님만이 그 대속의 십자가를 지십니다.우리가 져야될 십자가는 자기 몫의 십자가입니다.셋째로 ‘나를 좇을 것이니라’입니다.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그것은 온전한 순종을 말합니다.온전한 순종은 우리 예수님이 앞서 가시면서 내어놓으신 발자욱을 그냥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우리 예수님이 오른 발자욱 남긴 곳은 오른 발자욱,왼발 자욱 남긴 곳에는 왼발 자욱,한 발 두 발 그것만 따라가면 됩니다.아주 쉽습니다.

3.기독교의 역설적 진리
본문 25절과 26절에는 우리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가 나옵니다.“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습니다.이것이 역설적인 진리입니다.그러면 잃는 자는 찾고 찾는 자는 잃는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세상적인 그런 방법을 추구할 때에 다시말하면 자신의 소유,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세상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잃습니다.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위험을 각오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습니다.우리는 귀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버려야 합니다.어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워가지고 놀다가 보니까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미련없이 버리고 또 다른 것을 줍습니다.그런데 지금 우리 손에는 버려야 될 시시하고 가치없는 세상적인 장난감이 너무나 많습니다.그것은 버려야 됩니다.그래야 더 귀한 것을 얻습니다.우리는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바로 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다른 것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그래서 여기에는 역설적인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우리가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첫째로 성도들은 현실적인 축복과 유익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둘째로 육신의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원수되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시몬 베드로는 육신의 생각을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것을 참 의리있는 사람처럼 아주 큰소리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되게 만듭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마지막 세째로 고난 동참과 상급약속입니다.메시야 왕국은 반드시 옵니다.우리는 고난에 동참해야 됩니다.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예외없이 상급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영어에 “NO CROSS,NO CROWN”이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십자가 없이는 왕관이 없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 당하고 주님을 위해서 욕먹고 주님을 위해서 침뱉음을 당하고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에게 상급을 반드시 주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말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릇되게 한 적은 없는가,내가 이 세상에서 모든 축복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이 시간에 우리의 믿음을 반성해 보면서,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좇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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